이즘 선정 2011 올해의 가요 앨범
검정치마 < Don't You Worry Baby (I'm Only Swimming) >
검정치마의 데뷔작이 도시적이었다면 이 음반은 교외적이다. 전자가 일렉트릭했다면 후자는 어쿠스틱하다. 속도는 떨어지고 감성은 짙어진 이러한 변신에, 누군가는 찬사를 보냈고, 누군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두 진영 모두가 박수를 보낸 공통분모는 있다. 바로 검정치마 특유의 변함없는 '위트'다. 그의 위트는 특별하다. 혀끝에선 상큼하지만 뱃속에선 쓰린, 진짜배기 위트다.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 '허무명랑'하다. 그에 대한 평가가 다소 과장된 것이 아니냐고 의문을 품은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 과장하게 만드는 것도 일종의 재능이다. 그는 단 두 장의 앨범으로 자신만의 컬트 제국을 세웠다. 대중과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창조해냈다. 그는 분명히 '어떤 현상'이다/
2011/12 배순탁 (greattak@izm.co.kr)
메타 & 렉스 < DJ & MC >
메타와 렉스에게 노장이라는 칭호는 집어던지자. 엠시 메타는 가리온 2집으로 올해의 앨범 리스트를 석권한지 1년도 채 안 되어 또다시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디제이 렉스 역시 오랜만에 기지개를 펴고 CCM 컴필레이션 앨범에 이어 녹슬지 않은 프로듀싱 능력을 증명했다. 이처럼 쉬지 않는 창작열과 낡지 않은 접근법은 신진 아티스트에게 기대하는 역할이다. 그만큼 다소 활력을 잃은 국내 힙합 신을 반영하는 사례이지만, 두 맏형은 따끔한 채찍으로 다시 일어설 것을 웅변한다.
2011/12 홍혁의 (hyukeui1@nate.com)
아이유 < Last Fantasy >
한 소녀가 짊어지기엔 필요 이상으로 부풀어진 기대치를 과연 어떻게 감당해낼 것인가. 걱정하기엔 너무 일렀다. 12명의 흑기사를 동반한 아이유는 솔직하고 당당했다. 겁 없는 10대의 블록버스터 판타지는 아이돌의 단단한 껍질을 깨는 것으로 모자라 아티스틱한 무늬까지 그려냈다. 그녀의 행진에 믿음을 심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몫을 해낸 앨범.
2011/12 조아름 (curtzzo@naver.com)
옐로우 몬스터즈(Yellow Monsters) < Riot! >
아직 순수를 간직한 삼십대 괴물들은 이 앨범을 통해 비로소 '폭동'의 전도사가 되었다. 남근 상실의 시대에 가하는 후련한 일갈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나태의 세대에 가하는 따끔한 일침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확할 듯. 게으름도 권리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을 쿡쿡 쑤시는, '행동'에 대한 메시지로 가득한 앨범.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팔을 뻗고 이들의 선동에 동참해보자. '바로 지금, 모두 일어나!'
2011/12 여인협(lunarianih@naver.com)
원더걸스(Wonder Girls) < Wonder World >
그녀들은 애초에 '음악' 자체로 승부할 수 밖에 없었다. 노래 반, 캐릭터 반인 아이돌 세계에서 절반을 채우지 못한 채 미국으로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 무모함의 대가는 이제 '한국에는 원더걸스의 자리가 없다.'라는 혹독한 현실과 등가교환 되는 듯 했다. 그런데 그 절박함이 극적인 진화를 이뤄냈다. '레트로'라는 정체성을 세련된 편곡과 대중친화적인 멜로디로 마감질한 회심의 역작 'Be my baby'는 그렇게 다시 조국의 영토에 깃발을 꽂았다. 다시 한 번 음악의 힘을 믿은 정공법의 성공적인 안착이었다. 1집에 비해 훨씬 나아진 보컬의 표현력, 여기에 'G.N.O'와 'Me, in'의 작사, 곡, 편곡 등을 도맡으며 성장의 한걸음을 내딛은 예은의 음악적 역량까지. 미국에서 쌓은 경험치를 스탯으로 변환, 놀랄만한 레벨업을 이뤄냈다. '올해의 발전상'으로 꼽고 싶은 다섯 소녀의 재도약.
2011/12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이디오테잎(Idiotape) < 11111101 >
록의 요소를 분해해 일렉트로니카에 씌운 뒤 단단하게 용접한 이 믹스쳐의 질감은 예상보다 훨씬 탱글탱글했다. 이른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그 관심을 댄스플로어의 흥분으로 몰아갈 돌연변이의 출현!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와 리얼 드럼으로 만들어 내는 이 사운드 폭발은 그 충격으로 튕겨나간 진공상태로 공기가 모여들 듯 단시간 내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시작부터 신스폭격을 가하는 'Pluto', 호흡을 조절하며 밀고 당기기의 진수를 선보이는 'Even floor' 등 앨범에 담긴 10곡 모두 고삐를 늦추지 않고 달려나가는, 철저히 본능으로 점철된 구조주의적 일렉트로닉 밴드. 1980년에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가 있었다면, 2011년에는 단연 이디오테잎이다.
2011/12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이승열 < Why We Fail >
생각 없이 들어서는 안 될 음반이다. 록, 재즈, 블루스, 포크라는 여러 갈래의 장르는 목소리라는 큰 뿌리를 밑바탕으로 앨범 안에서 완벽한 공존을 이룬다. 이승열은 더 어두워졌으며, 더 고독해졌다. 인간의 실패와 패배, 몰락이라는 절망적 고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마침내는 긍정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왜 우리는 실패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통해 이끌어 낸 것은 '그러다 보면 오십 되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자성적 메시지이다. 상처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단단해졌고, 이제 모든 걸 다 알아버린 듯하다.
2011/12 신현태 (rockershin@gmail.com)
타블로(Tablo) < 열꽃 >
절절하게 아픈 앨범이다.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패배라고 간주되는 세계에서 그는 쓰라린 속살을 그대로 내비쳤다. 길거리에서 무릎 꿇린 채 사방에서 날아오는 돌을 맞아야 했던 그에 대한 동정표는 아니다. 생채기 난 마음들은 진정성이 담겨 있는 소리 없는 절규를 통해서 같이 울고 위안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두들 실체 없는 행복을 노래하며 뜬구름을 잡을 때 타블로의 상실감은 오히려 가식 없이 전달됐다.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나려는 온기까지. 고열 끝에 피어나는 열꽃처럼 이번 앨범은 새벽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두운 암흑이다.
2011/12 홍혁의 (hyukeui1@nate.com)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우정모텔 >
어눌해 보이는 두 남자는 음악이나 공연으로 단숨에 사람을 휘어잡는 기술을 알고 있다. 지금은 단종된 현대의 구형 자동차인 스텔라를 타고 시간을 건너온 듯한 복고풍의 컨셉은 일단 주의를 환기시킨다. 다음으로 설렁설렁해 보이는 기타 리프 사이로 실하게 엮여져 있는 멜로디와 보컬이 얹어진다. 때로는 환자복, 때로는 갓을 쓴 엽기 코드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진지하게 음악에 접근하고 추근대고 작업해나간다. 울리고 굴절되는 목욕탕 사운드는 이번 2집에서 에로틱함을 더해 더욱 은밀하고 야릇하다. 뜬금없이 곡 전개가 흐뜨러지고 트로트가 나오는 등의 재기발랄한 실험도 놓치지 않았다. 그 독창적 시도가 난해하지 않고 고막으로 직접 와닿는 것이 이 남자들의 유능함이다.
2011/12 김반야 (10_ban@naver.com)
정차식 < 황망한 사내 >
황망하다(慌忙--) [형용사] 마음이 급하고 당황하여 어리둥절하고 허둥지둥하는 면이 있다. 황망한 사내의 작법과 멜로디는 '억-' 하는 단말마의 충격으로 청자를 당황시키며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귀곡메탈로 잘 알려진 레이니썬의 보컬 정차식이 앨범의 작자라는 것이 음악의 불온한 기운을 뒷받침한다. 음울하고 위험해 보이던 그룹 활동 보다 점잖아 보이지만 퇴폐적인 기운과 변태적 성향은 더 짙어졌다. 음악을 토해낸 당시의 감정과 기운을 재현하기 위해 한 번에 녹음하고, 노래도 즉석에서 나오는 데로 불렀다. 올해의 문제작이라고 손꼽을 수 있을 만큼 '황망한 사내'는 매력적이고 치명적이다.
2011/12 김반야 (10_b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