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온 인터뷰

가리온(Garion)

by 홍혁의

2010.12.01

가리온은 한국 힙합의 시작과 현재이며 미래이다. 한국어 랩에 대한 회의와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순간에, 이들은 이미 한국어의 묘미를 다각도로 실험하며 선구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현재 힙합 신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신진 래퍼들에게 가리온은 롤 모델이자, 연구 대상임에 틀림없다.

아쉽게도 전설의 유산들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란 많지 않았다. 2005년에 정규 데뷔 앨범과 이어 발표한 싱글 앨범을 제외하고는 간헐적인 피쳐링 작업으로만 엠씨 메타(MC Meta)와 나찰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공백기가 길어짐에 따라 고리타분한 래핑일 뿐이라며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통쾌한 귀환이 2집 < 가리온 2 >다. 과학적인 구조물을 연상케 하는 래핑이 치밀하게 연계된 수려한 비트 위에서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기간 동안 힙합 신에 머물었던 두 거장의 복잡한 시선이 앨범에도 드러나 있다. 하지만 그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시나 현재 힙합 신에 대한 질문에 꼬리의 꼬리를 이었던 답변은 그간 수면 밑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어도 전체를 조망해온 장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좌: 나찰, 우: 엠씨 메타(MC Meta)

콘서트 반응은 어땠나.
메타: 재미있었습니다. 많이들 오시고.

주요 관객들의 연령층은 어떻게 되었던가.
나찰: 일반적인 공연보다는 높긴 해요. 힙합 플레이야 쇼 같은 경우를 보면 10대 관객들이 많긴 하지만 아무래도 저희 공연은 상대적으로 높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메타: 예매하신 분들의 연령층을 보면 거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신 분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오신 분들까지 체크해봤더니 20대 중후반 분들이 20퍼센트 정도 되었던 것 같아요.

결국에는 국내 힙합 팬들의 연령층이 10대~20대 초반에서 계속 순환하는 것 같다.
메타: 힙합을 능동적으로 체감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리신 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공연 중에 “90년대 생 손들어!”하면 거의 다 앞줄에 계신 분들이 손을 들거든요. 저희가 초창기에 활동할 때부터 같이 나이 먹으면서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속 공연을 보러 오시기는 하지만 소수인 것 같아요. 뭐랄까, 현재 국내에서 힙합의 주요 소비층이 아직까지도 20대 초에 머물러 있으니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같은 범주에 계신 것 같더라고요.

저는 힙합이라는 음악 자체의 매력 중에 하나가 나이를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10대에게 어필하는 매력이 분명히 있죠. 덜 형식적이라고 할까. 물론 힙합이 턴테이블이 있고 디제이가 있고 비보이가 있는 것처럼 형식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악기를 다뤄야 하는 음악 장르 같은 경우에는 형식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있어야 하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단계의 형식을 접근하고 받아들이고 즐기는데 있어서는 여타 장르보다 힙합이 10대에게 편한 구조인 것 같아요. 듣고 바로 삘이 오는. (웃음)

나찰: 힙합이 공연 위주의 음악이기 때문에 작용하는 점도 있을 거에요. 젊었을 때는 공연장에서는 다 같이 '풋쳐 핸섭'하다가 나이가 점점 들면서 귀찮음? 힘들어짐? (웃음) 특히 우리나라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대해서 체면같이 남들을 의식하잖아요. 저희가 콘서트한다고 하면 또래의 주위 분들이 “나 이런 옷 입고 가도돼?”라고 물어볼 정도로 패션이라는 측면도 무시 못 하고요.

메타: 예의범절이라는 개념은 우리 민족의 자연스러운 속성이니까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약간만 그 무게가 덜어지면 좋을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TV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정말 좋은 문화적 환경이라면 집 앞 가까이 나가면 공연장이 있고, 그곳에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이런 음악이 참 재미있구나 느낄 수 있는 상황일 텐데, 대다수 우리의 경우는 'TV속의 음악'이라는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다고요. TV 속의 음악 관련 프로그램의 장면을 보고 “아, 이런 음악은 이런 식으로 엄숙하게 들어야하고, 또 저렇게 놀면서 즐기는 음악을 즐기려면 저렇게 입어줘야 한다. 저렇게 놀아줘야한다”라는 것을 자기의 인식에 끼워 맞춘다는 거죠. 그렇게 뇌리에 고정관념이 박혀버리니까, 음악을 즐기기도 전에 내가 여기에 어울리냐, 아니냐를 가늠하게 되는 거에요.

나찰: 힙합의 경우는 정말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고 하나의 문화일 뿐인데,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런 인식이 부족한 것 같아요.

메타: 4년 전부터 일본에서 살고 있는 아는 후배가 있어요. 음악을 하려 했다가, 지금은 영상 쪽에 종사하고 있는 친구인데. 그 친구가 일본에서 가장 와 닿은 느낌은 오타쿠 문화가 개개인의 문화라는 거죠. 우리는 '오덕'이라고 우습게 표현하지만 오타쿠짓 자체가 개인에게는 너무 행복한 거에요. 개인도 주위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주위에서도 그런 문화를 인정해준다는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확실히 느꼈데요. 저희도 간접적으로 들은 것에 불과하지만 충분히 이해가 가더라고요.

물론 특정한 문화 자체가 전체 대중을 아우를 수는 없죠. 저희도 어렸을 때 AFKN에서 방송하는 소울 트레인(Soul Train)쇼를 보면서 흑인 음악을 느끼고 즐겼던 것처럼 특정 음악까지 조명할 수 있는 공연 문화가 있다면, 다양한 나이 대에서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은 방송에서 나날이 라이브 프로그램이 폐지되고 있고…(쓴웃음)


씁쓸한 현실이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혹여 세부 장르를 조명해 준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선호하는 스타일이 또 있기 마련이다. 힙합에서는 무브먼트 크루가 여전히 대세를 차지하고 있고.
메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시각적으로 비춰지는 것. 이런 것만이 이 음악에서 다라는 고정관념이 생겨버린 거죠. 힙합, 록을 포함해서 얼마나 장르가 많은데, 그런 음악들 각각마다 미디어에서 골고루 기회를 줄 수는 없겠죠. 자유경쟁체제에서 골고루 줄 리도 없을 것이고요. 그 기회를 얻기 위해서 음악적인 면을 포기하기까지도 하는데요. 물론 제 생각도 고정관념일 수도 있지만, '특정다수에게 어필할 수 있는 머리 아프지 않는' 음악 이 우선 방송하는데 다루기 쉽고, 보기에도 편하고, 게다가 호응도도 좋으니까 바퀴가 굴러가는데 딱 여러 요소가 들어맞게 되는 거죠.

저희도 마스터플랜에서 공연을 시작하면서 뭐 혁명을 꿈꾸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웃음), 벅찬 느낌이 있었거든요. 기존의 시장이 아닌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보자라는 느낌? 남들이 봤을 때는 허무맹랑한 유토피아나 판타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희끼리는 가능하지도 않겠는가라는 느낌이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기존의 시장을 무시할 수 없고 우리만의 시장은 엄밀히 말하면 불가능하다라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꿈은 가지고 있었지만 저희는 일개 랩하는 팀이었을 뿐이고 저희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던 것이죠. 이해는 하죠. 현명한 방법이고. 그 점에서는 상심이 컸어요. 물론 저희가 기존의 가요시장 원리를 아예 배척하지는 않아요. 가요 시장에 대해 'Fuck you'를 날리다가도 적어도 어깨동무를 할 수는 있는 거죠.(웃음) 하지만 그 밑에 들어가서 굽실대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일단 문화적으로 풍성해지고 풍성해진 문화 자체가 비즈니스 쪽으로도 회사건 시스템이건 여건이 갖춰져서 기존의 주류 시장과도 연계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의도적으로라도 주류와 인디가 구분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해요.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후배와 한 시간 반 이상 통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일본에서는 지금은 대세가 소녀시대와 카라래요. 그 중에서도 카라가. 후배가 어찌어찌해서 소니 비엠지 같은 굴지의 메이저 음반 유통사의 관계자들과 같이 접촉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미팅을 하고 이야기를 하면서 느끼는 점이 한국 가요에 대해서 일본 현지는 카라와 소녀시대가 끝이래요. 개인적으로 이 친구는 한국의 인디 음악도 소개를 하고 싶은데 말이죠. 물론 일본에서도 아이돌이 크긴 크죠. 하지만 이친구가 보고 느꼈던 것은 인디 시장도 인기가 있고 사업도 꽤 괜찮다는 거죠.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메이저 몇몇 회사가 인디 시장까지 제작, 유통, 배분까지 독점하는 체제가 아니라, 인디 카테고리만 따로 다루는 회사도 있다는 거에요. 음원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벨소리를 다루는 사이트도 독자적인 체계가 잡혀있다는 거죠. 힙합이 중심인 곳이 있고, 모던 록, 재즈 같은 장르별로 정리된 경우도 있고. 사실 우리나라는 인디 음악의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믹스된 시장에서 불필요한 과정을 거칠 때가 있잖아요. 음원을 받으려고 사이트를 들어갔는데 보기 싫은 가수들도 메인 페이지에서 봐야하고.(웃음) 힙합만이 잘 정리된 공간이 있으면 그만큼 사람들도 모이기 편하고, 정보를 구하기에도 좋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모르겠어요. 몇 사이트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온라인 마켓의 역할에 가까워진 측면도 있고. 물론 앞으로 할 수는 있겠죠. 기존의 시장에서도 좀 더 장르가 분화되고 카테고리화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반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 2집은 이미 2년 전에 완성해 놓은 상태였는데, 기한을 미룬 까닭은 무엇인가.
나찰: 계속 여러 일들이 걸렸어요. 메타 형에게도 농담으로 “3집 때도 이러면 안 된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웃음) 뮤지컬이나 개인사가 하필이면 겹치게 되어서 앨범의 발목을 잡게 되었어요. 외적인 일로 인해서 시간이 흘러간 일이 많았던 거죠.

메타: 나찰이 아팠던 것도 있었고 1년 동안 뮤지컬 했었던 부분도 있었고요. 저희는 뮤지컬 시작 할 때도 앨범 작업도 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다른 작업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막노동처럼 공연 끝나고 오면 퍼지고. 마음껏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되었기 때문에 아예 두 손 놓게 된 거죠.

나찰: 뭐하나 마무리하면 또 일이 터지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2년 정도가 된 것이죠. 실제 앨범 제작기간은 1,2년 안에 다 끝났어요. 그 시간을 스튜디오 안에 다 들어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어느 정도 공백기를 뒀다가 다시 작업하고, 또 다시 쉬었다가 작업하고, 그런 식으로 1년에서 조금 더 시간이 걸렸던 것 같네요.



이번 2집은 2곡 이상을 맡은 프로듀서가 없을 정도로 많은 프로듀서 진이 참여했다. 세세하게 배분을 한 이유는?
메타: 콘셉트는 명확하게 잡아 놓은 것이 있었어요. 한 이야기를 통해 저희를 비춰보고 싶었던 것이죠. 이야기는 되게 단순해요. 맨 처음에는 짧은 만화영화 같은 그림을 생각했는데요, 세상에 지쳐버린, 출신이 다른 어떤 두 남자가 있어요. 서로 세상에 지친 두 남자가 화가 났는데 한 명은 체념하고 한명은 분노하는 상반된 입장인 것이죠. 옛날에 코미디언 김병조씨의 유행어 중에 “지구를 떠나거라~”가 있었잖아요. 이 두 남자도 세상사에 너무 지쳐서 지구를 떠나고 싶은 거죠. 그리고 지쳐가지고 정말 떠나요.(웃음) 그 대목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이번 앨범의 첫 트랙인 '다만 가리온'에서 처음 효과음이 우주선 타고 올라가는 소리에요.(웃음)
1997년 말에 저희가 준비를 하고 1998년 1월 첫 주에 마스터플랜에서 활동을 했단 말이에요. 7년 만에 발표한 1집도 앨범을 내겠다고 가사를 쓴 곡들이 아니라 마스터플랜에서 라이브용으로 공연했던 곡들이었고요. 그때 가졌던 생각들은 적어도 가리온 음악이 물들지는 말아야겠다라는 것이었어요. 사실 전 멤버이자 디제이였던 제이유(JU)를 통해서 새롭게 힙합에 대해서 이해를 한 점이 되게 많아요. 래퍼로서, 디제이로서 힙합을 이해하는 각도는 엄연히 달랐던 것이죠. 저희는 상당히 편협했던 것이었어요. 힙합 자체가 융통성이 좋아서 플렉서블하게 수용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희한한 음악이 나올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음악에서 콘셉트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죠.

항상 저희는 다른 공간을 설정하고 이미지를 그린 것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현실 도피적인 생각일 수도 있는데, 다른 공간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별것 아닌 이야기같지만 비록 우리의 몸은 지금 이 현실에 있지만 2집에서 이야기하는 화자는 다른 공간에 있는 것이죠. 장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물고기의 꿈같은 개념을 쓰고 싶었어요. 앨범 콘셉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프로듀서 선정이 힘든 부분이었죠. 이번 앨범에 참여해주신 프로듀서가 싫다는 말이 아니라(웃음), 사실은 제가 곡 역시 다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콘셉트에 맞게 곡들이 왔기 때문에 저는 200퍼센트 만족해요. 애초에 한 프로듀서에게 저희 앨범 콘셉트의 온전한 퍼즐을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신은 이 조각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주쇼”라는 개념으로 부탁을 드리고, 그 조각들을 모으고 맞추는 것은 가리온이 하면 되는 것이니까요. 여러 우여곡절이 많았었지만 원했던 그림만큼은 완성되었다고 봐요.

나찰: 다양성이나, 변화 혹은 진화라는 목표를 두고 진행을 하면서 메타 형이 큰 틀의 콘셉트를 잡고 하나하나를 추구하실 때 솔직히 초반에는 불안했어요. 이 곡은 너무 안 맞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각 트랙이 완성되고 배치를 해보니까 “아, 다 통하는 것이 있었구나.”라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초반에 걱정이 되었지만 퍼즐을 맞춰간다는 느낌이 들 때부터 통일성에 대한 문제는 걱정을 덜게 되었죠.



에스원(s-1), 제이 롤스(J. Rawls) 등 해외 프로듀서진도 이번 가리온 앨범에 비트를 제공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접촉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작업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메타: 싱글 때부터 '비밀의 화원' 같은 곡에서 존 도(Jon Doe) 등과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제이 롤스와 에스원, 디제이 미쓰 더 비츠(DJ Mitsu The Beats) 등과 작업을 했어요. 접촉을 하고 선정하는데 있어서는 회사 쪽에서 주선을 해주었죠. 1집을 마치고 제이유랑 헤어지게 되면서 저희 팀이 프로듀서가 없었으니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저희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어떤 프로듀서와 잘 맞을까 접촉을 시도했던 것이죠. 요즘에 힙합 신에서도 외국 아티스트와 공동 작업을 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 저희도 같은 식이에요. 우리의 정보를 먼저 주고, 서로 곡 콘셉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샘플 비트를 주면, 받고 진행하는 경우죠.

그런 경우는 있었어요. 서신을 주고받다가 그쪽이 워낙 바빠서 연락이 잘 안되었던 적도 있고. 그게 어쩔 수가 없는 게 국내에서 친분이 있는 아티스트랑 작업할 때처럼 전화해서 “야 , 연락 왜 안돼?”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웃음) 그쪽도 에이전시가 있기 때문에 거쳐야 하는 점도 있고요. 주로 메신저로 의견을 나눴어요. 이번에 '약속의 장소'를 프로듀싱한 문샤인(Muneshine)같은 경우에는 부정적인 면이 전혀 없던 친구였어요.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해서 메신저도 항상 켜놓고 해서, 작업할 때도 MSN으로 계속 대화를 나눴어요.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피셜한 느낌으로 갔죠. 피드백을 주면 결과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애써 친분을 만들려고 노력하거나 그런 점은 없었어요. 물론 저희야 좋은 친분을 유지하고 싶은 바람이야 당연히 있죠. 하지만 굳이 오버스럽게 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제이 롤스는 기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연결이 된 후에 너무 좋아서 (주먹을 불끈 쥐며) “와! 됐어. 제이 롤스라니.” 라고 그랬는데 제이 롤스야 워낙 바쁘고 일도 많이 하는 분이라서 적극적으로 관계를 만드는 것까지는 힘들겠더라고요. 교류의 측면에서는 상대방 아티스트의 성향에 따라서 많이 좌우되는 것 같아요. 미츠 더 비츠도 내한해서 공연할 때에 보니 사람이 선하더라고요. 막걸리도 되게 좋아하고요(웃음) 한두 번 봤어도 친근감이 느껴졌고요. 아마 다른 힙합 아티스트들도 별 차이가 없을 거에요. 물론 그 사람의 네임 밸류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번 앨범에서는 메타가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해서 매우 의외였다.
메타: 노래 욕심이 있어요.(웃음) 중학교 때 어머니께서 남자는 악기를 다뤄야 한다고 해서 기타를 사주시려고 했는데 저는 그것이 너무~ 싫었어요. 저때는 초등학교 1,2학년 때 피아노학원을 다 다니게 하셨잖아요. 그것도 정말 싫었어요. 1년 넘게 다녔나싶은데 무슨 바이엘은 고사하고 어린이 소곡집도 겨우 하나 뗐을 정도였죠. 그 학원에 제가 되게 싫어했던 여자애가 있었어요. 키도 되게 크고.(웃음) 제 타임 때 그 여자애가 같이 있으니까 그게 싫어서 안 가게 되고, 안 가니까 선생님에게 맞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기타도 연주하기 싫었던 거죠.

그런데 고등학교 가니까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을 절감하게 되는데, 제가 대구에서 유일한 남녀공학학교를 나왔거든요. 소풍을 갔는데 주변의 여자들이 모두 기타를 치는 남자에게 모여 있는 거에요. (웃음) 그래서 구석에서 친구와 김밥을 먹다가 “아, 이건 아니다.”싶어서 독학으로 통기타랑 일렉 기타를 연습해서 결국에 대학가서 밴드를 하려고 했는데 그때도 이상하게 싫은 여자애가 하나 있어서 오디션을 안 봤어요. 개인적으로 노래에 대한 로망은 있어요. 어느 정도는 1집에서의 음습하고 어둡고 진중한 느낌에서 밝고 무게를 덜어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노래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자연스럽게 저는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이에요. 다양성도 고려했고.

나찰: 지금 힙합 신에 있는 엠씨들이 거의 다 노래하고 싶을 걸요? 못해서 안하는 것뿐이지. (메타를 바라보며) 그런데 저는 왜 안 될까요? 옛날에는 잘 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날 이후'가 2집 정규앨범에서 수록되었다. 기존의 여러 싱글 곡에서 추려낸 기준과 이유가 있다면.
메타: 큰 이야기의 축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넣은 것이에요. '무투' 싱글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1집을 내고 2006년쯤에 저희 상황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인터넷에서도 가리온이 주차장에서 일을 한다고 우스갯소리가 많이 떠돌아다녔고요. 일을 하면서 다시 신에 돌아오면 풀어놓고 싶은 한 같은 것이 엄청 컸어요. 내가 다시 돌아가면 무슨 머리 긁적거리면서 돌아가지는 않겠다는 느낌이었던 거죠. '무투'는 가리온의 두 번째 문을 열기위한 시작점이자 출사표인 것이지, 2집의 콘셉트에는 부합되지 않은 싱글이었어요.



가리온의 가사는 심오하면서도 철학적인 느낌이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가사를 쓸 때에 가장 우선시하는 기준이 있다면.
나찰: 일단 캐릭터를 보는 성격이에요. 저는 가사의 주제, 소재, 표현법이 엠씨의 외모와도 연관된다고 보거든요. 귀엽게 생긴 애가 쌍욕 들어가는 랩을 하면 웃기잖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잡혀온 편인데 각자의 색깔이 있다고 봐요. 가리온 작업할 때는 그런 면이 자연스럽게 나와서 편하기는 한데, 다른 캐릭터를 필요로 하는 피쳐링 작업에서는 그 색깔을 버리려고 하죠.

메타: 일단 가리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드리자면 1집 같은 경우에는 구어체적인 표현이 거의 없고 문어체가 대다수에요. 글만 놓고 볼 때에는 가볍지 않고 무슨 시나 에세이 같은 성격이잖아요. 옛날 글귀도 많이 인용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시문학적인 요소도 있었고요. 저희가 추구했던 점은 철저하게 하나였어요. 한국에서 코어적인 정수만 담아놓은 힙합이 전무했다는 점이 저희가 음악을 하게 된 가장 파워풀한 동기였죠. 어렸을 때부터 힙합을 너무 좋아하고 들어오던 그런 애들이었는데 가만 보니 “우리나라에는 왜 힙합이 없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옛날에는 상황이 이랬잖아요. TV에서 나오는 래퍼들은 사랑에 실패한 멍청이로 나오고, 포즈나 행동 같은 경우도 심지어 아직까지도 힙합은 개그 소재로 쓰일 정도고요. 그렇게 TV에서 업신여기고 우스꽝스럽게 비춰지는 이미지가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우리만의 마켓을 가지자. “그 쪽 세계는 그렇게 하라고 그래, 우리는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맞는 음악을 하자.”라는 다짐으로 출발하게 된 것이죠. 따라서 가볍고 멍청해 보이고 생각 없는 가사를 혐오하기 때문에 그런 류의 가사는 절대 안 썼죠. 1990년대 후반 당시에 저희와 생각이 같았던 래퍼들의 랩 스타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죠. 한마디로 시적으로 썼어요. 언젠가는 우리 가사를 보고 시로 봐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업신여김에 대한 해소가 되는 것이잖아요. 2010년은 여전히 코미디이긴 한데, 다행인 점은 그런 오해가 줄어들었고 우리 편이 더 많아 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업신여기는 것보다 멋있다는 느낌이죠. 이런 반응이 인터넷을 통해서 빠르게 전파괴도 공유되다보니 약간은 힘이 되어요.

그래서 이런 분위기가 저희 가사에 영향을 줄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개개인의 작업이나 가사의 태도를 버린다는 것은 절대 아니에요. 스타일의 변화이지, 기본적인 태도를 잊어먹거나 간과하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물론 옛날 1집을 들어보면 “그때 이렇게 왜했지?”라면서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해요(웃음) 하지만 그 시기를 거침으로써 얻은 것이 있고 시기에 따라서 변화를 줄 수는 있지만 또 다른 시점이 맞아 떨어지면 기존의 스타일도 다시 끌어들일 수있다라는 거죠. 저희 랩을 듣고 추상적이다 철학적이다 라고 평해주신다면 감사한 거죠. 뭐 어떤 점에서는 비아냥거림으로 말하시는 분도 있긴 한데 상관은 없어요. 그렇게 인식이 되는 것은 저희가 가진 여러 면 중에 하나이니까요. 가사의 사상에 대해서 무겁게 받아들이는 분도 고려해야 하는 점이기도 하고요. 균형 잡기 힘든 부분이죠.

요즘은 이렇게도 생각해요. 트렌드나 유행이나 음악이 절대 한 군데 머물러 있진 않잖아요. 전자음악의 영향이 없었다면 힙합이 나오지는 않았겠지만, 현재 일렉트로-합(Electro-Hop)이 대세이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피타입(P-Type)처럼 '오직 한길로만'(웃음)같이 눈, 코, 입 다 닫으려는 면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이폰도 사고 스스로 뭔가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가리온의 방향성이나 궁극적인 추구점이 이제는 손상되지 않을 것이고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국어 랩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1세대 힙합 아티스트로서 한국어 랩에 대한 진보를 어느 정도로 보는가.
나찰: 굉장히 발전한 것 같아요. 힙합에서 흑인 특유의 배틀 마인드가 작용한 것인지는 몰라도 “미국에서 저렇게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게 뭐있어?”라는 오기가 생기는 거죠. 예전에는 국영혼용체부터 해서 가사에 영어가 들어가면 싫어하는 면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한 논의 수준 자체를 뛰어넘은 정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최소한 일본 정도는 이기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고유의 리듬감을 살리는 친구들도 많아진 것 같고요. 요즘에 어린 친구들보면 정말 겁나게 잘 하는 것 같아요.

메타: 중요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서 나찰이랑 저랑 모니터를 많이 해요. 그런데 오해를 하시는 대목이 테크니션의 문제에요. 대표적인 예로 유엠씨(UMC)같은 경우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힙합 신에서 사회적인 이슈를 건드리면서 적어도 리포터 혹은 사람들을 일깨워주는 혁명가 같은 캐릭터의 역할로서 활동하는 엠씨들이 존재하잖아요. 우리도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이 많았고, 조피디(조pd)의 경우도 그랬고요.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룬다는 점이 회자되면서 그러한 면모가 스킬의 역량으로 판정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묘한 위치에서 판단되는 것이죠. 테크닉의 측면에서 평가할 때 라임의 유무를 놓고 호불호가 확연하게 갈라지곤 하는데 유엠씨만큼 특정 테마를 센스있게 다루는 친구들이 없다보니 면죄부처럼 상쇄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가리온 엠씨는 테크닉을 추구하는 테크니션이에요 가사적인 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심미적인 면에 출발점을 두는 것이 사실이에요. 감정에 대한 것을 많이 끄집어내고 싶고요. 하지만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랩 자체의 기술적인 문제를 항상 고민하는 엠씨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인권이나 외국인 노동자 환경처우 개선을 변호하시는 단체 분이 저희에게 부탁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언더그라운드 소속이고, 랩 특성 중에 하나가 가사의 양이 많기 때문에 설명적인 속성에서 그 자체가 미디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인지라 부탁을 하신 것 같은데요. 저희는 그럴 자격이 되면 몰라도 아직은 아니다보니 고사를 했어요. 한편으로는 저나 나찰도 그런 생각을 하긴 해요.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사회적인 목소리를 낼 수도 있겠다는 그 때가 오면 현재 저희가 테크닉에 몰두하는 것보다 대략 10배 정도는 힘들지 않을까 고민해 봐요. 사회적인 시선은 테크닉만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요.

지금의 엠씨들 중에서 유엠씨는 좀 달라요. 그 친구가 고등학교 때부터 봐왔는데. 군대도 뒤늦게 갔다 오고, 음악 때문에 상처받고 판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 이런저런 사회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면서 자신만의 분명한 입지를 다졌다고 할까요. 저희는 처음부터 테크닉으로 갔기 때문에 여기에 사회적인 목소리까지 포함하려고 하면 10배 이상 힘들 것 같다는 말이죠. 이번 2집에서 넣었던 메시지에서 가장 큰 부분이 이 힙합 신(Scene), 바닥에 대한 이야기에요. 이 세상에서는 남들이 말하는 사기꾼도 있고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이 존재하는데 저희가 있는 바닥에서도 똑같이 돌아가는 것을 느꼈거든요. 이런 테마가 앞으로 조금 더 랩을 하게 되면서 때문에 사회적인 현상이나 정치적인 주제까지 갈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최근 들어서 힙합이 시대 흐름에 응대하는 면모가 약화되고 트렌드 장사로 전락된 측면이 없지 않다.
메타: 저희도 어느 순간부터 일렉트로 힙합이 되어버리고, 파 이스트 무브먼트(Far East Movement)가 빌보드 1위하는 광경들을 보면 가사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잖아요. 그 팀뿐만이 아니라 빌보드 차트 음악을 보더라도 너무 없는 것이에요. 같은 차트를 석권해도 투팍(2pac)이나 비기(Biggie)가 살아있을 때만해도 아니었잖아요. 내용자체도 있었고. 그 뒤로는 너무 많이 안타까워진 것 같아서.

두 사람은 투팍과 비기 중에 누구를 더 좋아했나.
메타: 저는 원래 시작은 투팍이었어요. 비기가 테크니션이고 잘 하는 것은 알아요. 사실 비기는 끝판왕이죠.(웃음) 하지만 저는 투팍의 객기를 좋아했어요. 리릭이 그렇고 감정 역시 객기에요. 비기는 살인자 같잖아요. 감정 없이 조용하게 다가가서 총으로 '빵'하고 처리하는. 비기가 차가운 살인마 같다면, 투팍은 울면서 죽일 것 같아요(웃음). 너무 감정이 풍부해서요. 둘은 안타깝게 죽었지만 그 이상의 캐릭터가 나올까 싶어요.
나찰: 저도 개인적으로 투팍이에요. 영어 랩이기 때문에 100% 못 알아들어도 적어도 감정이라는 것이 확실히 들어오잖아요. 이런 매력이 엠씽의 최종 단계인 스킬일 것 같아요. 감정 표현을 완벽하게 하는 것

1집도 그렇고, 이번 2집에도 가사 기재를 안 하는 이유를 설명해 달라.
메타: 일부러 안 넣었어요. 넣는 것은 그리 문제가 안 되는데 가사 집을 기본적으로 다 넣게 되면 소비하시는 분들이 앨범을 듣고 음악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수능시험 볼 때 지문 보듯이 학습하는 모양새가 될 것 같은 우려가 있었던 것이죠. 음악이 바로 주는 감동보다는 텍스트적으로 받아들이는.

애초에 계획했던 분위기는 달성했다는 말인가.
나찰: 충분히 나왔다고 보고요. 막상 발매될 때 되어서는 솔직히 겁도 났어요. 예전에 작업한 곡은 4, 5년 되는 곡도 있을 정도로 오랜만에 나오는 앨범이잖아요. 마스터링 다하고 모니터해보면서 쭉 들어보니까 이 정도면 훌륭하다, 반응 괜찮겠다 싶어서 홀가분했죠. 그래도 이렇게 한 번 변화를 줘볼까 싶긴 했는데 메타 형과 둘이서 '이제 여기서 손 뗍시다'라고 합의해서 마무리 지었어요.

앨범 중에서 가장 만족하는 트랙이 있다면.
나찰: 저는 마지막 트랙인 '그리고 은하에 기도를'이요. 집중이 되게 잘되었던 곡 중에 하나고요, 1번부터 17번 트랙까지 오면서 짠한 느낌도 들고요. 다른 곡은 '생명수'와 '수라의 노래' 정도?

메타: 저는 글쎄요. 꼽기 어려운데요. '영순위' 같은 경우에는 제일 고생한 가사에요. 나찰은 두 번째로 고쳐 쓴 가사로 갔고요, 저는 소절에서 분위기가 바뀌는 부분이 있는데 확실히 테크닉적으로 기존에 없던 스타일을 전략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가사적인 면에서 진보를 보여주고 싶었고, 앨범 전체에서 보면 한 두 개정도 킬링 트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테크닉 지향적으로 갔던 곡이죠. 대중적인 접점을 이루려는 측면에서는 '생명수'가 적당할 것 같고요.

타이틀곡을 '산다는 게'로 정한 이유는.
나찰: 우리도 타이틀곡이란 것을 하나 만들어볼까 해서 정한 곡이에요.

메타: 원래는 '산다는 게'가 2집 컨셉트에는 없던 곡인데 개개인의 작업이라든지 한 번도 대중성에 대하여 생각한 적이 없고, 아직도 이해를 못하겠더라고요. 가리온이 생각할 수 있는 타이틀이 과연 뭘까가 과제가 된 거죠. 뭐 사실 저희가 대중작곡가와 연결할 가능성도 별로 없고 하다가 예전부터 작업도 같이 했던 킵루츠(Keeproots)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킵루츠가 은지원과도 같이 작업하고 대중적인 곡도 근래 많이 썼잖아요. 그래서 이 정도면 적절한 선에서 타이틀곡을 쓸 수 있지 않겠냐는 의도에서 보내준 곡이 '산다는 게'였어요. 사실 처음에는 저희가 퇴짜를 놨어요. 그러다 1, 2년 지나도 타이틀곡에 대한 답이 안 나오고 그냥 이대로 갈까하는 생각까지 들다가 나찰이 '산다는 게'의 비트가 계속 귀에 남는다고 하더라고요. 다시 들어보니 리듬이 재미있는 리듬이고해서 다시 작업에 뛰어든 경우에요. 비교적 초기에 잡은 앨범 콘셉트랑 상관없이 뒤에 작업한 곡이라 튀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을 거에요.

한국 힙합 초창기에 활성화되었던 클럽이 문을 닫으며, 문화향유의 공간이 인터넷으로 대부분 귀속된 측면이 크다. 활성화의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인터넷의 폐해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메타: 우리나라가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IT 기술이 우리나라 한민족의 재능이어서 그런 것이겠지만요. 우선 프로모션 차원에서는 인터넷이 참 편한 것 같아요. 엠씨는 물론이거니와 디제이나 비보이조차도 인터넷을 통해서 프로모션이 가능해진 상황이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건강하지 않은 형태 같기도 하죠. 가리온도 무대를 통해서 호흡하고 긴장감을 통해서 만들어졌으니까요. 항상 나찰이 하는 말이 힙합 공연장에 가면 어린 엠씨들이 무대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다는 말을 해요. 저는 비록 나찰만큼 공연장에 많이 참석하지는 않지만 어떤 이야기인지는 알 것 같더라고요. 공연을 직접 몸을 부딪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영상을 보면서 해외 아티스트의 레퍼런스만 하는 것이죠. 영상을 보면서 “아 이렇게 행동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잠식하게 되면서 뻔한 스타일의 공연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고요. 궁극적으로 힙합과 인터넷이 가야할 방향은 동행인데 조금 더 직접 무대에 올라오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나찰: 실제로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잘하는 엠씨들이 많이 안 나와요. 라이브 무대를 보면서 느끼고 저 사람이 좋아져서 연결이 되고 앨범 피쳐링 작업까지 이어지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인터넷의 자작게시판에서 올린 랩을 듣고 선택을 하는 것은 힘들다는 말이죠. 새롭게 등장하는 엠씨들이 오히려 없어요, 이제는.

본인의 결정적인 앨범을 꼽아달라.
나찰: 블랙 스타(Black Star)의 < Mos Def & Talib Kweli Are Black Star >인것 같아요. 완벽하게 힙합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 저에게 교과서적인 앨범이었어요. 엠씨가 가리온처럼 두 명인 점도 작용했던 것 같고요. 아직까지도 어느 자리에 가서도 제일 먼저 꼽는 앨범입니다. 요즘에는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앨범을 듣고 나서 충격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랩 스타일은 싫어하는데 곡들을 놓고 봤을 때에는 더 이상 더 좋은 사운드가 나올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거든요.

메타: 너무 어려운 질문이신데… 맨 처음에 랩을 하고 싶게끔 만들었던 사람은 너티 바이 네이쳐(Naughty by Nature)의 트리치(Treach)였어요. 너무 좋아했고요. 최근에 들었던 앨범은… 저에게 매번 앨범을 추천하시는 형님이 있으세요. 그 분이 최근 추천해주신 팀 중에 블루 스콜라(Blue Scholars)라는 팀을 되게 좋게 들었어요. 멤버가 하와이안인 것 같더라고요. 둘 다 흑인은 아닌 것 같고, 프로듀서는 백인 같아요. 1990년대 중후반부터 동양인 힙합 아티스트들이 막 떠오른 적이 있었잖아요. 마운틴 브라더스(Mountain Brothers)가 그랬고. 우리나라도 그렇고 백인 파워도 있지만 아시아 계통이나 하와이 사람들이 본토 흑인 사람보다도 실력이 좋다는 평을 많이 해요. 최근에는 추천을 받고 들어보니 너무 좋았어요. 나찰이 말한 블랙스타 앨범이나 로커스(Rawkus) 스타일처럼 1990년대에 좋은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의 느낌이더라고요.

이번 앨범의 가사를 들어보면 직설적이지는 않지만 현재 돌아가고 있는 한국 힙합 신에 대하여 상당한 불만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급자에 대한 불만인가. 수용자에 대한 불만인가.
메타: 불만보다는 안타까운 것을 앨범 재킷에서 간략한 문구에서 담았어요.

존중은 이해와 사랑이다. 이해는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면 존중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랑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면 역시 존중이 아니다.
존중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를 하거나 이해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주위 분들을 보면 소위 힙합 신에서 너무 쉬운 말로 자기 인생을 힙합에 바쳤다라고 그러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분의 대다수가 나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아쉬운 점은 그 문구대로 애정이 있는 분이 너무 넘치는 것에 비해 이해가 없으니까 오히려 맹목적인 애정이 너무 무서운 거에요. 이해를 못한 상태에서 마니아다, 너무 좋아한다하고 끝나는 거에요. 힙합에 대해서는 잘 알아요. 하지만 그런 애정만 있지 근본적으로 어떻게 이 신에서 뭉쳐야 할지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은 요연하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애정으로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빠삭하게 분석하고 막연하게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그것은 개인의 이상하게 꼬인 자기만족이지 문화에 대한 애정이 있었다면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고 봐요.

그런 아쉬움이 기본적으로 가사에 깔려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어릴 때부터 힙합을 계속 들으며 충족된 뭔가가 있었잖아요. 그것은 힙합이 저에게 준 것이니까 이제는 내가 매개체가 되어서 누군가에게 전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랩이 댄스 음악의 양념 같은 것이고 애들 양아치들 문화가 아닌 정말 고유한 색깔을 지닌 음악인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세를 무너뜨리지 않고 집중을 하려고 애써왔지만 저희와는 처해진 상황이 다른 분들이 더 많더라고요. 먹고 살기 위해서 이 길이 아니다라며 떠난 사람도 있었고요. 저희는 그런 측면에서는 행운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저런 일을 겪더라도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지지를 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점이 이제야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저희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지지를 해주는 분들도 있으시고요.

지지를 해주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다음 앨범은 꼭 빠른 시일 내에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메타: 네, 다음 앨범은 절대 오래 걸리지 않을 거에요. 속도를 내서라도 팬들의 기대를 뛰어넘는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목표이니까요.

인터뷰: 임진모, 홍혁의
사진: 김민호
정리: 홍혁의
홍혁의(hyukeui1@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