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콰이엇(The Quiett) 인터뷰

더 콰이엇(The Quiett)

by 한동윤

2007.06.01

2000년대에 들어서 마스터 플랜(Master Plan), YG, 무브먼트(Movement) 같은 대형 레이블 혹은 크루의 도약이 힙합을 대중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했다면, 2004년은 신흥 언더그라운드 세력들이 연이어 등장함으로써 또 한 번 힙합 신(scene)에 약진의 기운을 불어넣은 중요한 시기가 됐다.

그해 여름 소울 컴퍼니(Soul Company)라는 새로운 레이블이 출현, 컴필레이션 앨범 < The Bangerz >를 발표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바깥세상에 내보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12장의 앨범 제작과 수차례의 자체 공연을 꾸준히 소화해내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제 힙합 음악 청취자군 사이에서 '소울 컴퍼니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3년 만에 저류를 넘어 확고한 위치를 튼 이들이다.

소울 컴퍼니가 그렇게 신의 명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공훈을 세운 이를 한 명 꼽는다면 단연 레이블의 간판 프로듀서 더 콰이엇(The Quiett)일 것이다. < The Bangerz >를 포함한 수많은 MC의 음반에 참여하며 비트메이커, 전문 프로듀서로서 마니아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그는 본인의 솔로 앨범 두 장과 팔로알토(Paloalto)와 함께한 프로젝트 음반 < Supremacy >로 계속해서 독자적 스타일을 선보였고 올해 3월 열린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힙합 앨범 부문을 수상했다. 혹자는 감각적이면서도 안락하다고 말하는 그의 음악에 대해 콰이엇 자신은 “꼭 클럽이 아니라 방에서 틀어놔도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그루비 함”이라고 정의 내렸다.



소울 컴퍼니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소속 아티스트는 누가 있나?
2004년 출범했고요, 옛날부터 알고 지내면서 함께 활동하던 친구와 두어 살 위의 형들이 자연스럽게 집단을 형성하게 된 경우에요. 앨범을 낸 가수들을 말씀드리자면 로퀀스(Loquence)라는 팀이 있고요, 저희 레이블의 CEO를 맡고 계시는 키비(Kebee)라는 래퍼가 있습니다. 작년 가을에 입단을 한 라임 어택(RHYME-A-)이라는 분이 계세요, 이분은 다른 곳에서 이미 앨범을 두 장 내셨고요. 화나라는 래퍼와 그리고 저 이렇게 입니다.

어떻게 해서 소울 컴퍼니 마니아층이 형성 되었는지, 왜 그들은 소울컴퍼니 음반을 신뢰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저희가 등장하면서 생긴 새로운 팬이 있어요. 어린 친구들인데, 인터넷 등을 통해서 피드백을 가시적으로 하는 층이라고 볼 수 있죠. 저희 이전에 선배 뮤지션들이 하던 음악은 대체로 대단히 진지한 메시지에 가끔은 폭력적인 내용도 나오는 그런 것이었어요. 저희가 의도적으로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저희 또래들의 이야기, 10대 시절 경험, 우리 나이에 다들 해봤을법한 고민을 푸는 데 충실한 음악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 음악에 공감해주시는 팬들이 차츰 생기더라고요.

소리 측면에서도 뭔가 맞닿는 것이 있으니까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되는데.
사운드 적인 측면에서는 다른 레이블과 확실히 뭐가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제 관점으로는 항상 좋은 음악을 썼던 것 같습니다. 지금 나오는 어떤 앨범들보다도요. 그런 면에 중점을 두고 프로듀싱을 해왔던 저로서는 늘 노력할 수 있었던 동기였죠.

개인 앨범을 내기 전에 프로듀싱한 작품은 무엇인가?
소울 컴퍼니 첫 번째 앨범 < The Bangerz >는 제가 거의 전체를 프로듀싱 했고, 화나의 EP 앨범 같은 경우도 제가 전 곡을 담당했어요. 소울 컴퍼니에서는 제가 제 트랙을 쓰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어요. 그런데 계속 그렇게 제가 프로듀싱을 하고 다른 래퍼와 합작을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 된다면 고정된 형상이 되어버리니까 지금은 다른 프로듀서들도 의도적으로 많이 기용하려고 하는 추세죠. 저도 다양하게 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한 사람이 하면 통일된 코드가 있잖아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힙합 앨범 상을 받았는데 그때 느낌이 어땠나?
일단은 매우 좋았는데, 뭐랄까 약간은 좀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왜냐면 차라리 나중에 받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 Q Train > 앨범으로 상을 받았잖아요,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리지만 이것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또 저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후보들도 있었거든요. 커다란 부담감을 느낀다거나 잠을 못 이룰 정도는 아닌데, 이왕 상을 받은 거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좋은 음악을 선보여야겠다는 느낌은 들죠. (수상에 대한 주변 뮤지션들의 반응을 묻자) 다들 별로 신경을 안 쓰세요. 그런 거에 관심이 없으시더라고요. (웃음)



힙합 음악에 대한 경험은 언제쯤인가?
90년대 말인 것 같아요. 음악을 제가 만들면서 항상 참고하고 이런 걸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그때쯤이었는데,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의 기본 구성은 나중에 알고 보니까 90년대 중반에서 끝난 거더라고요.

좋아하는 프로듀서가 있다면?
피트 락(Pete Rock), 제이 딜라(J Dilla),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 등을 좋아합니다.

그들이 본인에게 준 영향은 무엇인가?
처음에 들었을 때는 사실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왜냐면 그때는 그쪽으로 귀가 트지 않았을 뿐더러, 그것보다는 조금 더 듣기 좋은 쪽을 좋아했어요. 피트 락이 생각보다 귀에 잘 안 붙는 음악이더라고요. 그런 걸 서서히 알아나가게 되었는데, 그의 작품들을 간간이 듣다 보니깐 “괜찮은 것 같네”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렇게 점점 빠져들었고 그때 받았던 인상은 굉장히 섬세하다는 느낌이었어요. 한 때는 카피도 많이 했을 정도로 피트 락의 사운드 기법이나 샘플 운용, 작법상의 모든 것이 저한테는 교과서가 되었어요. 저한테는 그 사람이 상징이거든요. 처음으로 뭔가를 배운 느낌이었으니까.

그럼 첫 앨범 < Music >을 만들 때 주로 들었던 음악이 있다면?
물론 피트 락도 많이 들었고, 앨범은 2005년 여름에 발매가 되었는데, 작업 기간은 2005년 봄이었거든요. 그 당시 메이저에 나오던 음반들은 안 들었어요. 그래서 유행하는 트렌드를 제가 조금도 못 따라갔어요. 그때는 “힙합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그랬는데 지금은 그것도 좋아합니다. 즐길 수도 있게 되었고.

그 앨범의 특징은 무엇인가?
힙합의 기본적인 모습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거기에만 머물고 싶진 않았습니다. 제 색깔도 담고 싶고 뭐랄까, 그래도 사람들이 못 들어본 것은 해야 하잖아요. 그게 제가 가진 도전 정신일 테고 힙합의 기본적인 틀 안에서 저만의 프레시한 감각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 중 제가 좋아하는 곡은 팔로알토와 함께 한 '상자 속 젊음'이란 노래에요. 앨범을 들으신 분들께서 가장 많은 반응을 보였던 곡이기도 하고요.

< Q Train >은 < Music >과 비교했을 때 뭘 담고자 했는지?
일단 < Music >은 첫 앨범이니까 많은 걸 담으려는 욕심을 부렸어요. 할 수 있는 것을 정비해서 제 음악의 라이브러리를 만들어보자는 포부가 있었고, 그래서인지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신경 써야 할 것도 너무 많았죠. 타이틀도 'Music'이라고 애초에 박아놓았기 때문에 더 했던 것 같아요. 음악이란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걸 표현하려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되고... 그래서 이걸 만들고 나서 많이 지쳤어요. 뭔가 돌아오는 것도 없고. 2집은 그걸 위로하는 차원에서 만들었어요. 편하고 듣기 좋게, 흘러가듯이.

콰이엇이 프로듀서로서는 음악 만드는 것이 깔끔한데, 랩은 잘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앨범을 내고 주변 반응에 스트레스를 받진 않아요. 저는 상관 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최대한 안 보는 방향으로 하죠. 저는 그게 싫거든요, 좀 제대로 된 분들이 평가를 해주시는 게 좋은데, 요즘 인터넷 시대가 뭐 하나에 대해서 별의별 이상한 전혀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그런 것들이 너무 피곤해서요. 가끔 나오는 리뷰들은 봅니다.

다른 피곤함은 판매량에 대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네요. 지금만 해도 음반을 내기만 하면 3천 장, 4천 장까지도 팔거든요. 그 당시에는 1천 장이 나가긴 했는데, 물론 언더그라운드에서 많이 판매한 축에 속하긴 하죠. 하지만 음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지 5년 만에 낸 앨범이었는데... 그 긴 세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것만 만들었는데... 그걸 다 정리하고 보니까 별로 남는 게 없더라고요. 또 음악적인 결과물을 스스로 평가했을 때 시간이 갈수록 아쉬움이 너무 컸고요.

현재 외국은 완전히 프로듀서들이 온갖 음악을 다 주도하는 시스템이 되었는데, 우리나라도 콰이엇을 비롯한 많은 프로듀서가 그런 흐름을 작게나마 만들어가는 것 같다. 프로듀서가 주도하는 음악 신을 보면 어떤가?
재밌는 거 같아요. 저는 음악을 만드는 데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프로듀서들의 활약이나 이런 것들을 유심히 봐요. 프로듀서가 활발히 활동함으로써 네임 밸류가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브랜드 적인 힘까지 얻잖아요.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악영향이나 부작용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그들이 각광받으면서 더 재밌는 걸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힙합의 태동부터 DJ 역시 힙합의 중축을 담당했으니 비트메이커도 기본 문화로서 래퍼랑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 많은 사람에게 음악을 알려야 하고 음반도 많이 팔아야 하는 상황에서 음악이 파퓰러하게 조정이 될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 음악은 예전부터 충분히 굉장히 파퓰러해지고 있어요. 지금 제 작업이 최종적으로는 < Q Train >이지만 벌써 일 년 반도 더 되었고 그 이후에 제가 스스로 평가하는 저의 음악적 느낌은, 저는 팝처럼 만들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편하고 듣기에 좋아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듣는 음악은 어떤 것인가?
최근에 인기 많았던 조스 스톤(Joss Stone)이나, 노라 존스(Norah Jones)입니다. (가요는 듣느냐고 묻자) 사춘기 때 들은 게 전부에요. 지누션 막 나오고, 유승준 이런 때에 잠깐.

그럼 콰이엇의 음악은 문제의식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당시에 힙합 뮤지션들이 한국에도 존재했으니까, 그런 걸 보고 미국 힙합을 많이 들으면서 “한국 힙합은 왜 이런 게 없지?”, “왜 이게 안 될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었죠. 그게 모티브가 많이 되었어요. 한국 음악 시장에도 나라도 제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건방진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있죠.

불만이 많은 편인가?
네. 은근히 많습니다. (웃음) 그냥 끄덕끄덕하고 사는 편인데, 알게 모르게 되게 반항해요. 핸드폰 아예 사지도 않고, < Music > 앨범 낼 때도 핸드폰이 없었어요. 제 딴에는 세상에 대한 저항이었죠. 그리고 공부 안 하고, 남들 놀 때 공부하고. 대학교 1학년이면 보통 수업 잘 안 들어가잖아요. 저는 수업을 끝까지 다 들었어요. 그런데 시험 날 안 나갔어요. 수업만 나가고 MT, 과 행사 이런 거 한 번도 참여를 안 했어요.

힙합 음악의 전체적인 골격이 되고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비트, 자신만의 그루브가 어떤 것인지 묻자, “드럼 톤이란 게 어떠어떠한 드럼의 느낌을 내고 싶다는 얘기도 있지만, 누가 만들든 그것을 제작하는 이의 성격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래서인지 남들과 똑같아지기를 거부하는, 어쩌면 외곬과도 같은 그의 행동이나 태도가 고스란히 음악에 묻어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콰이엇은 또한 다이나믹 듀오의 '덩덕쿵 (Remix)', 에픽 하이의 'Still life'에 랩 피처링, 윤미래 3집 < YOONMIRAE >의 수록곡 '검은 행복'의 프로듀싱을 맡으며 언더그라운드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신을 횡단하며 활동 영역에 경계를 허물었다. 이는 남들이 인정하는 자기만의 문법과 실력이 밑받침되었기에 막힘없는 행보가 가능했을 것이다.

윤미래와는 어떻게 연결이 되었나?
제가 다이나믹 듀오 2집이 나오고 2005년 12월에 콘서트를 네 차례 했어요. 그 당시에 많은 뮤지션을 만났는데, 다들 저한테 관심을 두시더라고요. 소울 컴퍼니도 어느 정도는 들어본 것 같다고 얘기해주시고, 저 같은 경우엔 첫 앨범이 나온 상태였는데, 잘한다는 소문 정도만 접하신 것 같더라고요. 뮤지션하고 얘기도 많이 나누다가 타이거 제이케이 씨하고 굉장히 친해졌어요. 코드도 맞고 나이 차이는 별로 연연하지 않는 분이셔서 친해질 수가 있었어요. 그분이 윤미래 씨의 앨범을 많은 부분을 담당하셨으니까 저에게 곡을 하나 맡기셨죠.

검은 행복 작업할 때 어땠는지.
재밌었어요. 스튜디오에서 처음 가사를 봤을 때, 찡하다는 느낌도 들었고요. 특별한 거라면, 원래 그 곡이 아니었어요. 같은 가사에 다른 곡을 드렸었는데, 샘플 클리어 과정에서 여건상 못 쓰게 되었고 이래저래 하다가 다른 곡을 드리게 됐죠.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검은 행복이에요.

바뀐 곡의 중점은?
그냥 저는 하던 대로 했어요. 곡은 원래 만들어놓은 거였어요. 그걸 맘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드럼만 좀 바꿔 달라는 부탁을 받았죠. 드럼이 좀 하드 했거든요. 그래서 하이햇은 깔끔하게 찍었는데 스네어 같은 경우엔 제 스타일을 고집했어요. 다행히도 “안 된다.” 이렇게 말씀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버스(verse) 부분에 베이스라인만 나오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 너무 썰렁하다는 거죠. 근데 그게 사실 저의 주된 방법론이거든요. 남들 싫어하니까 하고 싶어요. 약간만 채우는 식으로 하고 거기에 터치를 별로 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제 것처럼 나왔고 마음에 들었죠.

얼마 전에 나온 로퀀스의 앨범은 소울 컴퍼니나 콰이엇의 색깔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서 'Death note' 같은 경우는, 사람을 죽이는 내용의 곡을 할 거라고 해서 만든 거예요. 그런데 다른 곡들은 그렇지 않아요. '죽음의 문턱'이나 'Hell drive'도 제가 만든 곡인데, 로퀀스가 해서 이 이미지에 묻어가게 된 것 같습니다. 'Hell drive'는 약간 예외적인 스타일인데, 현재 활동하는 어떤 뮤지션한테 드리려고 했던 곡이에요. “요즘에는 이런 거 안 해.” 이러 길래 그냥 가지고 있다가 로퀀스가 픽업한 거죠.



현재 하는 작업은?
타이거 제이케이 씨 앨범이요. 준비 중인데, 아마 올여름 안에 나올 것 같습니다. 제 앨범하고 키비, 화나도 앨범 준비 중이고 그 정도인 것 같네요.

타이거 제이 케이가 콰이엇 음악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네 음악은 어떻다.”라고 구체적으로 얘기는 안 하셨는데, 들려드리면 항상 좋아하셨어요. 제 곡을 굉장히 많이 가져가셨고요.

주류의 힙합 프로듀서 인정하고 싶은 사람은? 한국이든 외국이든.
외국은, 지금 활약하는 대부분 프로듀서의 음악에 공감합니다. 넵튠스(The Neptunes)의 < The Neptunes Present... Clones > 앨범을 최근에야 이해했어요. 그 사람들 작업물을 듣고 좋아했던 건 켈리스(Kelis)였고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는 최근 들어서 다시 좋게 생각했어요.

미국 언더그라운드는 네오 소울, 일렉트로니카 성향이 강한 힙합이 많이 나오는 추세다. 'Sunshine luv'에서 하우스를 시도했는데 변화를 염두에 두는 것인가?
요즘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데, 분명히 그걸로 음악을 재미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존재한다고 봅니다. 화성만 따로 하는 건 아니지만, 건반을 배우면서 코드로 하고 있는 거죠. 저도 일렉트로니카를 좋아해요. 뚜렷한 매력이 있거든요. R&B 뮤지션들과 작업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꼭 힙합이 아니라도 앞으로도 다양한 음악을 만들 계획입니다.

그럼 사운드를 디자인하는 개념이 아니라 작곡을 하고 싶다는 얘기인가?
컴포지션이란 얘기는 사실 지금도 할 수 있겠지만, 지금 되게 하고 싶은 건 건반을 치는 거예요. 아무튼, 재밌게 배우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바이엘도 어렵더라고요. (웃음)

새 앨범 계획은?
작업하고 있고 아마 가을쯤에 나올 거 같아요. 글쎄요, 머릿속에는 있지만 말로 표현은 못 하겠어요. 곡은 다 나왔어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고 뭔가 좋은 느낌이에요.

인터뷰: 임진모 이대화 한동윤
정리: 한동윤
사진: 배강범
한동윤(bionicso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