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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rnal For Plague Lovers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2009

by 박효재

2009.05.01

앨범 발매 전부터 < Holy Bible >의 속편이 될 것이란 추측을 낳았던 < Journal For Plague Lovers >가 세상에 나왔다. < Holy Bible >을 내놓은 지 얼마 안 돼 돌연 자취를 감췄던 리치 제임스(Richey James)(이하 리치)가 남긴 메모를 모아 만든 노랫말. 제니 사빌(Jenny Saville)의 작품을 다시 빌려 쓴 앨범커버. 예전의 공격성을 회복한 점은 모두 < Holy Bible >과의 연관성을 추측하게 하는 단서다. 과거로의 회귀는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의 정체성을 대변했던 리치를 위한 한풀이로써 분명한 목적이 있다 하겠다. 트라우마는 어떤 식으로든 해소되기 마련이다.

한풀이를 해대는 소리는 전작보다 훨씬 파워가 업그레이드 됐다. 너바나(Nirvana)의 < In Utero >를 프로듀스 했던 스티브 알비니(Steve Albini)가 매만진 소리는 역시나 두텁고 난폭하다. 선동적인 기타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베이스라인이 엮어내는 불안감의 증폭, 또 불안감의 극적인 해소는 짜릿한 청감을 선사한다. 더불어 정제되지 않은 듯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이 살아있어 흥분지수를 높인다.

크리스천 베일(Christian Bale)의 축축한 음성으로 시작하는 앨범의 첫 곡 'Peeled Apples'은 그런 불안감의 응축과 해소, 날 것의 느낌이 제대로 묻어있는 곡이다. 참고로 크리스천 베일의 불길한 목소리는 영화 < 머시니스트(The Machinist) >에서 따온 것이다. 불면증과 식욕부진으로 점점 쇠락해가는 영화 속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듯 성마른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James Dean Bradfield)의 목소리와 기타는 엄청난 공격성을 내재하고 있다. 아레나 그런지 'She bathed herself in a bath of bleach'는 팔딱거리는 물고기마냥 생(生)의 에너지로 충만하다.

공격성의 회복은 신보를 < Holy Bible >과 비교하게 되는 주된 근거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차이점 또한 감지되는 바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바로 아레나의 기운이다. 전작 < Send Away The Tiger >에 비해서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 Holy Bible >에 비하면 팝 성향의 멜로디가 훨씬 강화되었다. 타이틀곡 'Jackie Collins existential question time'은 그러한 차이점이 극대화된 지점이다. 스트레이트한 < Holy Bible >과 달리 신보는 곳곳에 완급, 강약조절을 위한 장치들이 장착했다. 비감어린 어쿠스틱 기타가 앞 곡들이 띄워놓은 분위기를 지긋이 누르는 'This joke sport severd', 부드러운 하프 연주가 슬픈 무드를 자아내는 'Facing page: Top left', 울퉁불퉁한 질감의 연주와는 별개로 선명한 선율이 돋보이는 'Virginia State epilpetic colony'는 한바탕 질주 뒤에 쉴 곳을 마련해준다.

록 본연의 거친 숨결을 살리고 그와 더불어 팝의 융통성을 발휘, 곡선미를 살린 점은 좋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앨범의 중심이 다소 흔들려버린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거친 질감과 무게감 있는 사운드를 추구했지만 < Holy Bible >만큼 저돌적이지 못했고,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 Everything Must Go >만큼의 신비로움이나 < Send Away The Tigers >에서 선보인 고감도의 선율은 보여주지 못했다. 뭔가 하나의 줄기로 통합되지 못하면서 전작들만큼의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안타깝다. 신기하게도 떨어진 응집력을 보상하고 되살리는 것은 리치의 부재다.

대체적으로 슬픔에 젖어있는 수록곡들은 리치를 향한 멤버들의 애정과 그리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려준다. 이제는 그를 놓아주어야할 때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가 남긴 메모들로 가사를 만들고 그와 함께했던 작품의 성향으로 회귀한 것은 다 영결을 위한 절차였을 것이다. 리치의 부재는 그런 까닭으로 결코 결핍의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 팬들은 잠시나마 그와 함께해 좋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며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밴드 멤버들은 그를 기리면서 초기의 사운드를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다. 리치의 부재가 없었더라면 모든 것이 완벽했던 과거와의 만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거와 조우한 이들에게 이제 남겨진 것은 과거와의 영원한 이별, 그리고 결국은 내디뎌야할 현재와 미래를 향한 발걸음이다.

-수록곡-
1. Peeled apples [추천]
2. Jackie Collins existential question time
3. Me and Stephen Hawking
4. This joke sport severed
5. Journal for plague lovers
6. She bathed herself in a bath of bleach
7. Facing page: Top left [추천]
8. Marlon J.D.
9. Doors closing slowly
10. All is vanity
11. Pretension/Repulsion
12. Virginia State epilpetic colony [추천]
13. Williams last words
14. Bag lady

Produced by Steve Albini
박효재(mann6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