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승근이 좋아하는 노래들 (소승근) | 나를 사랑한 음악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땐 < 유머 1번지 >라는 개그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항상 그 당시 인기 있던 팝송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코너가 있었는데 당시에 < 팝스 다이얼 >의 DJ였던 김광한씨가 진행을 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뮤직비디오를 구하기가 쉬었겠는가? 어느 날 뮤직비디오 클립을 구하지 못했는지 김광한씨가 쿼터플래시의 'Harden my heart'를 틀어놓고 이 노래에 대한 설명을 했다. 그때 < 유머 1번지 >에 출연하던 개그맨들이 무대 위에서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상상이 가는가?). 팀의 보컬리스트였던 린디 로스의 색소폰은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의 마음에 펌프질을 했다. 그 날 이후 마루에 있던 라디오를 내 방에 갖다 놓고 가수도, 노래 제목도 모르던 그 노래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1녀 후쯤에 이름과 타이틀을 알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무조건 쿼터플래시의 'Harden my heart'를 뽑는다. 지난 해 오이 스트리트 특집 기사에서도 이 노래를 선정했다.

재수할 때 한 여학생을 좋아했다. 공부? 당연히 안됐다. 그 친구에게 빠져 있을 때 심야 라디오에서 알 스튜어트의 'Year of the cat'을 들었다. 이상하게도 이 노래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색소폰 연주가 나오는데 그 부분만 들으면 그 여학생이 춤을 추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 그 당시 60분짜리 테이프에 이 노래만 녹음해서 계속 듣고 다녔다. 피아노 인트로, 중간의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솔로, 색소폰 연주 그리고 맨 마지막 신시사이저까지 전혀 빈틈없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 완벽한 팝송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에 피터 가브리엘의 < So >가 발표되었고 여기서 첫 싱글 'Sledgehammer'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내겐 별로였다. 노래도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두 번째 싱글 'In your eyes'를 들은 건 아마 정확히 20년 전인 1986년 이맘때였던 것 같다. 버스 안에서 AFKN 라디오를 듣고 있었는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낙엽이 깔린 거리를 보면서 이 곡을 듣는데 전엔 몰랐던 '가을'이란 정서가 내 마음을 물들이고 있었다. 마치 낙엽이 물드는 것처럼. 그래서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언제나 쓸쓸한 가을을 느낀다. 이 노래 때문에 피터 가브리엘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힌 앨범 < So >를 샀다. 이 음반을 보신 어머니가 한 마디 던지셨다. “고놈, 자알~ 생겼네”

나는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음반이나 테이프를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건방지게 들리겠지만 중학교 때부터 하루 종일 팝송만 나오는 AFKN 라디오를 정말 많이 들었다(지금도 라디오를 틀어놓고 잔다). 그래서 우리나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노래들을 주한미군 라디오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 노래 하나가 내 레이다에 포착되었다. 미국인 디제이의 말은 너무 빨라 가수가 피터 가브리엘이란 건 알게 되었지만 노래 제목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그걸 알아야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신청이라도 해볼 것 아닌가? 1990년대 중반 광화문에 있는 중고음반 매장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피터 가브리엘의 베스트 앨범 < Shaking The Tree >를 구입했다. 내가 그토록 찾던 그 노래가 바로 첫 트랙에 있는 'Solsbury hill'이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감동을 가질 수 있다는 건 인생의 행복이다.

중학교 때 케이트 부시의 'Running up that hill'을 들었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 당시엔 방과 후 레코드 매장을 들러 새로운 앨범이 나왔는지 보는 게 낙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검은 머리카락에 동그란 땡처럼 둥근 얼굴을 가진 묘하게 생긴 여성의 음반이 걸려 있었다. 이름을 보니 케이트 부시였다. 고등학교 입학선물로 전축이 생긴 나는 내 머리 속에 기억해 둔 그 앨범을 샀다. 케이트 부시의 싱글 모음집 < The Whole Story >였다. 첫 곡 'Wuthering heights'를 듣고 그녀의 마력에 빠졌다. 을씨년스럽고 어두웠지만 동시에 내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이 노래 때문에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 폭풍의 언덕 >을 읽었지만 노래만큼 감동은 없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님은 케이트 부시의 음악을 이렇게 정의한다. “강시음악이야”

1980년대 후반 < 연예가중계 >의 맨 마지막엔 가수 이광조씨의 동생이 나와 팝스 계 소식과 뮤직비디오를 소개했다. 그런데 거기서 피터 가브리엘과 케이트 부시가 함께 부른 'Don't give up'이 나왔다. 석양을 배경으로 피터와 케이트가 꼭 껴안고 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포기하지 말라는지, 왜 둘이 꼭 껴안고 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해서 가사를 해석했다. 피터 가브리엘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부르면 케이트 부시가 위로하는 음색으로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제발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부르는데 '나라면 절대 포기 안 하겠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좋아했다. 노래를 듣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린 경험을 안겨준 곡이다.

나는 서던 록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레너드 스키너드를 가장 좋아한다. 이들의 데뷔앨범에 수록된 'Simple man'은 무엇보다 가사가 훌륭하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인생을 서둘지 말고 여유를 갖고 살거라. 살면서 위기가 오지만 곧 지나갈 거야. 물질을 탐하지 마. 중요한 너 자신이야. 할 수 있다면 나를 위해서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 주겠니?'라고 말하는 고백조의 가사는 볼 때마다 죄를 들킨 것처럼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이 노래도 피터 가브리엘의 'Solsbury hill'처럼 AFKN에서 많이 들어서 귀에 익었지만 제목을 알게 된 건 나중이었다. 독특한 무그 신시사이저 연주의 인트로부터 내 귀를 확 잡아끌었다. 분기탱천하는 키스 문의 드럼과 로저 달트리의 두려움 모르는 보컬 그리고 피트 타운젠트의 스트레이트한 기타 등 모든 것이 시원시원했다. 요즘에 발표되는 록에서는 느낄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1990년대 후반 9개월 정도 캐나다에 있었다. 그곳 하숙집 아주머니의 남동생과 음악 얘기를 하는데 나에게 누굴 좋아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난 자연스럽게 “Who”라고 얘기했다. 그는 다시 “I said what is your favorite singer?”라고 묻는 것 아닌가. 속으로 생각했다. '내 발음이 나쁜가?' 이번엔 좀 더 정확하고 큰 소리로 “Who”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웃으면서 “Ah... The Who!”라고 맞장구를 쳤을 때 하나를 배웠다. 그룹 Who 앞에는 항상 정관사 The를 붙여야 한다는 것을.

1998년 라디오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 이런 노래도 있어?'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음반 매장에 아르바이트 할 때 한 시간 동안 이 노래만 틀었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금 나오는 이 노래 누구 거냐고 묻기도 했다. 그 후 6년이 흐른 지난 2004년 여름,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진행자 김형준님이 폐렴으로 3일 동안 입원해 델리 스파이스의 윤쥰호님이 대신 진행을 했다. 그때 윤준호씨에게 “1998년에 '차우차우' 듣고 정말 좋아했는데 만나서 반갑다”고 얘기를 했더니 윤쥰호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민규가 만든 거요”

1998년에 이 곡을 처음 듣고 속된 말로 뻑이 갔다. 나는 헤비하면서 그루브 한 곡들을 좋아하는데 'Shimmer'는 그런 나를 충족시켜주었다.

1997년 5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캐나다 벤쿠버에 있었다. 명목은 공부였지만 결과는 계획과는 달랐다. 내가 머물렀던 하숙집은 벤쿠버 시내에서 벗어난 노스 벤쿠버에 있었는데 한적하고 조용한 장소였다. 그곳은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밤에 별이 그렇게 밝고 크게 보일 수 없었다. 어느 날 밤늦게, 늘 그렇듯 라디오를 들으며 하숙집에 들어가다가 하늘을 쳐다보았고 바로 그 순간 라디오에서는 플리트우드 맥의 'Landslide'가 흐르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들으며 쿠키에 박힌 커다란 초콜렛처럼 큰 별이 박힌 하늘을 보았을 때만큼은 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나중엔 스매싱 펌킨스와 딕시 칙스가 이 곡을 리메이크를 했지만 원곡을 심하게 훼손했다.

1997년 5월 캐나다를 떠나기 직전 들었던 노래 중에서 버브 파이프의 'Freshmen'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캐나다에 있을 때 이 곡의 싱글을 구입해 알 스튜어트의 'Year of the cat'처럼 60분짜리 테이프에 녹음해 운동하러 체육관을 갈 때마다 이 노래를 들었다. 지금 이 곡만 들으면 벤쿠버에 있었던 모든 기억들이 새롭다. 멘쉬 가족과 강아지 켈리, 고양이 버디 그리고 그 지긋지긋했던 비까지도..

캐나다에 있을 때 알게 된 여가수다. 그곳 사람들은 잰 아덴을 셀린 디옹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캐나다인들은 그녀를 1997년 당시 < Surfacing >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일구던 사라 맥라클란과 동급으로 취급했다. 아무튼 캐나다에 있을 때 이 노래가 라디오에서 너무 많이 나와 귀에 익었지만 음반은 사지 않았다. 그리곤 1998년 2월에 귀국했다. 몇 개월이 지나니 캐나다에서 들었던 노래들이 점차 그리워지기 시작했는데 레코드 가게에서 이 노래가 수록된 앨범이 국내 라이센스로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연히 구입했다. 겸손하고 편하게 부르는 그녀의 창법이 참 좋고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녀가 사는 아파트 옥상에서 '사랑한다'고 쓴 플랜카드를 건다는 뮤직비디오도 참 사랑스럽다.

나는 두 개의 이메일을 사용한다. 그 중 하나의 메일 아이디가 jeremy97523이다. 뒤에 97523은 97년 5월 23일, 내가 캐나다로 떠난 날짜다. 캐나다의 하숙집 아주머니는 내 한글 이름이 어려운지 계속 미안하다며 내 이름을 물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영어 이름을 Jeremy로 정했다. 나중에 많은 사람들은 내 아이디를 보고 묻는다.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를 좋아하시나 봐요?”

1989년에 발표한 앨범 < Steel Wheels >에 들어있는 곡으로 싱글 차트 50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해 국내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노래다.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에 여유를 담아낸 이 곡을 듣자마자 푹 빠져버렸다.

한 아티스트에 접근하기 가장 안전한 방법은 베스트 음반을 구입하는 것 같다. 검증된 히트 곡들과 유명한 곡들이 일단 마음에 들면 다른 음반들을 구입하는 것이 내가 그 아티스트와 친해지는 노하우였다. 밴 모리슨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1990년대 중반에 < The Best Of Van Morrison >을 구입해 들었는데 수록된 노래들이 참 좋았다. 그 중에서도 맨 마지막에 자리한 Dweller on the threshold가 너무 좋았다. 머리숱이 별로 없고 배 나온 이웃집 아저씨가 구수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부르는 밴 모리슨이 우리나라에서 푸대접 받는 건 아쉽다. 참 임진모님의 별명 중 하나가 밴 모리슨이다. -.-;;
누락하긴 너무 아까운 노래들은 < 하나씩 하나씩 >처럼 나열만 한다.
The right kind of love - patti LaBelle
U will know - Black Men United
Holiday / Into the groove - Madonna
Prime of life - Neil Young
I don't want to wait - Paula Cole
You ain't seen nothing yet - Bachman Turner Overdrive
Love will find a way - Yes
All along the watchtower - Jimi Hendrix
Star Wars main theme
On earth as it is in heaven / Gabriel's oboe
Bust a move - Young MC
Hip Hop hooray - Naughty By Nature
In the ghetto - Elvis Presley
Ain't no stoppin' us now - McFadden & Whitehead
Rock and roll woman - Buffalo Springfield
Round here - Counting Crows
In the city - Eagles
Dreamboat Annie - Heart
Remedy - Jason Mraz
Walk away - James Gang
Unfinished sympathy - Massive Attack
Spirit of radio - Rush
Caught in the game - Survivor
Motorcycle emptiness - Manic Street Preachers
Wonderwall - Oasis
Don't look back -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