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CE GIRLS vs HANSON | 라이벌 열전
크로스오버 지배기에 흑인 음악으로 성공한 '다르면서 닮은 꼴'의 백인 그룹들
누구라도 스파이스 걸스와 핸슨이 경쟁자가 될 수 있는가를 안다. '롤링 스톤'이 정확하게 지적한다.
“올 해 벌써 두곡의 넘버원 싱글, 스파이스 걸스의 'Wannabe'와 핸슨의 'Mmmbop'이 있다. 아티스트의 명백한 창조의 즐거움으로부터 힘과 추진력, 그리고 광채를 얻는 곡 말이다. 두 노래는 공히 거의 의미가 없고 가끔은 자기에 대한 의성적 축사 수준을 넘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에 어떤 사람은 짜증나고(그 노래들이 싫은 사람) 어떤 사람은 신나는(그 노래들이 좋은 사람) 배반의 양상이 연출되는 것이다.”
스파이스걸즈정말 'Mmmbop'과 'Wannabe'는 곡을 좋아하기 위한 사전 준비나 정신 무장이 거의 필요가 없다. 즉각적으로 귀에 들어온다. 과장하면 팝 역사에서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자연 팝송'의 전형이라 할 수도 있다. 이런 곡을 만난 제작자나 매니저는 한마디로 천운의 소유자다. 그러나 이같은 특장점이 동시에 뼈아픈 약점이기도 하다. 음악의 심각성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이 곡들에다 다수 대중들이 끌려가는 것이 왠지 못마땅하다. 보편적 매력은 때로 그것이 그만큼 싱겁다는 뜻이 된다.
'롤링 스톤'의 묘사처럼 운명적으로 장단을 함께 소유한다는 점에서 스파이스 걸스와 핸슨은 '우호적 라이벌'이다. 인정할 수 없다면 최소한 'Wannabe'와 'Mmmbop'은 그렇다.
두 그룹의 공통 분모는 곧 경쟁의 이유
두 그룹이 경쟁자가 되는 이유는 친숙한 곡을 가지고 겨룬다는 점 말고도 많다. 오랜만에 팝 팬들은 영미 아티스트의 대결을 목격하게 되었으며 이성의 격돌에도 약간의 흥미를 느낀다. 서로 엇비슷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점이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 것이다.
'Wannabe'와 'Mmmbop'이 히트 팝의 모델이란 측면 외에 중요한 음악적 공통분모가 있다. 영국의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는 스파이스 걸스의 앨범을 일컬어 '팝 소울의 고전(Pop Soul Classic)'이라고 했다. 대중적인 성격의 흑인음악이라는 얘기다.
누가 들어도 'Wannabe'는 시작과 함께 전개되는 랩의 재미가 핵심이다. 'Say you`ll be there' 역시 전형적인 리듬 앤 블루스의 코드를 취하고 있다. 백인 '양념 걸'인데도 불구하고 실은 흑인 음악을 구사하고 있는 셈이다.
핸슨은 정도가 좀 더 심하다. 핸슨 형제는 미국 오클라호마 툴사(Tulsa) 지방 출신의 백인. 그러나 음악의 색깔은 백인 트리오라는 신분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검다. 뉴욕 WPLJ 방송국의 한 직원은 'Mmmbop'을 처음 틀었을 때 잭슨 파이브인지 알았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잭슨 파이브는 마이클 잭슨이 속해 있던 `70년대 흑인 형제 그룹이다. '멜로디 메이커'지는 축약해서 핸슨은 '포스트 모던 잭슨 파이브'로 표현하기도 했다. 어린 백인 친구들이 흑인적 호흡을 체화하고 있다는게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다.
핸슨스파이스 걸스와 핸슨의 세계적 성공은 다시 한 번 이 시대가 크로스오버의 지배기임을 일깨워준다. 스파이스 걸스가 판에 박힌 백인 여자들 소리를 냈다면, 핸슨이 백인 틴에이저의 귀여움만 소구했다면 아마도 이처럼 호응이 폭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흑인 음악 정서에 어느 정도 감염된 우리나라에서도 두 그룹의 인기는 단연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두 그룹 모두 프로모션차 한국을 다녀갔으며 지금까지 앨범은 판매고 30만 장에 육박하고 있으며 핸슨의 도 두 달 사이에 15만 장을 돌파했다.
컴필레이션 앨범을 뺀다면 독집 앨범으로는 각각 1,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불황의 한 복판임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기염이다. 모두들 핸슨이 잭슨 파이브 같다고 하지만 사실 `70년대 우리 청취자들에게 잭슨 파이브는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그런데 핸슨은 정 반대의 양상이다. 우리 수요층의 정서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그리고 크로스오버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실증해주는 대목이다.
평범함과 의외성의 차이
그러나 음악의 동질성과는 다르게 두 그룹의 '소비자 지향'은 커다란 격차를 보인다. 스파이스 걸스의 눈부신 성공은 단적으로 '평범함(normal)에의 어필'이다. 외모나 신체가 너무 잘 났거나 음악이 뛰어났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멜 B는 이렇게 말한다.
“성공했거나 1위곡을 가진 아티스트가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되길 바라고 '난 저들과 달라'하는 식의 생각을 한다. 그래서 평범한 우리들은 좀 더 힘을 합친다. 그리고 정상적인 수준에 우리가 서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
빅토리아는 보다 직설적이다.
“우리는 6피트 키의 말라깽이 모델들이 아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것을 먹고 정상적인 것을 한다.”
이에 반해 핸슨은 범상(凡常)에 호소하지 않는다. 세 형제의 나이가 합쳐봤자 40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의외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이 미성년자들로부터 성숙한 음악을 바라지 않는다. '애들이 해봤자...'라는 식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곡을 만들고 연주하는 더욱이 스튜디오 라이브로 실연하면 대개가 깜짝 놀란다. 다시 말하면 '의외성'에 사로잡히고 만다.
핸슨을 발탁한 머큐리 US 레이블의 간부 스티브 그린버그 는 그 깜직함의 충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지난 해 봄 그들의 두 번째 데모 CD를 건네 받았을 때 우선은 라이브로 잘 담았다는 것에 놀랐다. 연주도 좋고 노래도 잘 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진짜 그들이 노래와 연주가 아니라고 확신했었다.”
스파이스 걸스가 정상(正常)의 힘을 신뢰하고 핸슨이 비상(非常)을 내세우는 차이를 따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구별점을 발견한다. 양념 걸들은 곡을 스스로 못쓰는 보컬 아마조네스고 핸슨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작곡 능력을 겸비한 신동 브러더스라는 점이다. 즉 스파이스 걸스는 보컬 그룹인데 비해 핸슨은 어엿한 밴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 모 신문은 핸슨을 비틀즈로 스파이스 걸스를 몽키스(Monkees)로 구분하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이 점은 부분적으로 옳다. 자신들이 만든 곡을 연주해 '자아'를 반영하는데 좀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핸슨 쪽이 훨씬 아티스트에 가깝다.
스파이스 걸스 멤버들의 불만도 대부분 이와 관련한다. 빅토리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제조되었다는 것과 곡을 스스로 못 쓰는 점을 지적하는데 마치 우리가 뇌세포마저 없는 사람인양 취급한다'며 불평을 늘어 놓는다.
“많은 사람들이 애초부터 우리에 대해, 우리가 다섯 여자들이라는 점에 대해 많은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직 우리는 무너뜨려야 할 장벽이 많다.”
하지만 이 부분도 심사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스파이스 걸스를 인위성으로, 핸슨을 자연성으로 차별화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핸슨의 스타덤이 오로지 그들 천재성의 결과물이라는 시각에 전적인 동의는 어렵다.
는 결코 핸슨만의 작품이 아니다. 어린 만큼 주변의 협조와 윤색이 많이 가해진 것이 사실이다. 스티브 그린버그는 핸슨 앨범이 시장을 관통한 두 번째 이유로 (첫번째는 물론 전염성이 높은 멜로디이다) 핸슨 형제들과 업계의 명망 있는 작곡가들을 묶었다는 점을 꼽는다. 그리하여 신시아 웨일과 배리 맨 콤비(I will come to you)에서 실력을 과시한다. 마크 허드슨, 데스먼드 차일드, 엘렌 시플리 등 유수한 송라이터들이 참여했다. 9곡이 이들과 공동 작업한 결과이며 핸슨 형제가 독자적으로 쓴 곡은 3곡에 불과하다. 물론 이 3곡 가운데 'Mmmbop'이 끼어 있다는 게 대견스럽다.
여기서 우리는 핸슨과 스파이스 걸스가 아티스트의 본격 '작품'이 아니라 팝 음악 산업의 마케팅과 홍보 전략이 주조해낸 하나의 '상품'이라는 점에 착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스파이스 걸스를 다룬 해외 음악 언론을 보면 당사자들의 얘기만큼이나 매니지먼트 측과 소속 레코드사인 버진의 입장이 많이 개진되고 있다. '진실한 재능을 압도하는 냉소적인 마케팅에 의해 빛을 본다'는 스파이스 걸스는 아예 이 부분에 비난이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버진 US의 간부 필 콰타라로의 작전을 들어보자.
“어떤 레코드라도 성공의 인자는 빡빡하다. 그래서 타이밍이 이 문제를 푸는 중요한 요소라고 본다. 올 해 11월이나 12월 쯤 되면 누구나 스파이스 걸스 노래를 듣게 될 것이지만 우린 먼저 댐의 문을 막고 물이 꽉 찰 때까지 기다릴 요량이다. 그렇게 되면 방류의 충격이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음반사 간의 세계 석권 의지 반영하는 대리전
아티스트의 자유보다 회사의 입김이 더 들어간 '각본'의 냄새가 난다. 스파이스 걸스의 구성과정에도 약간의 혐의(?)가 나타난다. 처음 이들이 모였을 당시 뒷일을 봐주던 매니저가 있었지만 어느 날 존재가 사라지고 최종적으로 애니 레녹스를 관리하는 사이먼 풀러라는 사람과 연계되어 버진과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팝계에서는 왜 전(煎) 매니지먼트 팀과 갈라서게 됐는지에 대해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그리고 모임과 그룹 결성, 연습의 시점이 오락가락한다. 어딘지 석연치 않은 느낌이다.
전 매니저는 밥 허버트와 크리스 허버트라는 부자(父子)였다. 이들의 퇴각은 비틀즈의 드러머가 특별한 이유없이 피트 베스트에서 링고 스타로 교체된 것과 맞먹는 미스터리로 얘기된다. 영국 팝계 일가에서는 허버트 부자가 거액의 대가를 받고 입을 막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밥 허버트는 지금은 원만하게 해결된 문제지만 스파이스 걸스와 헤어지게 된 것을 두고 우회적으로 '우리 사이에 가동되지 못한 비즈니스 관계중의 하나'로만 언급했다. 그리고 스파이스 걸스가 성공하기 전에 최소한 4만 파운드 이상의 보상을 받았다고 얼마 전 '롤링 스톤'에 밝혔다.
분명히 스파이스 걸스가 짜여지고 그들의 지향이 확립되는데 버진 레코드사의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버진 레이블은 거액의 계약금으로 재닛 잭슨을 끌어들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최근 매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스파이스 걸스는 버진의 세계 시장 석권 의지가 낳은 상품인 셈이다.
버진이 위력적인 공세를 퍼붓자 보수적인 머큐리도 이에 뒤질세라 핸슨의 깃발을 들고 싱글 차트와 시장 공략에 나선 듯 하다. 어느 면에서 스파이스 걸스 대(對) 핸슨은 버진과 머큐리 간 대리전의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 마치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를 놓고, 또 토니 브랙스턴과 셀린느 디온을 내걸어 혈투를 벌이는 아리스타 레코드사와 소니 뮤직 간의 격돌을 닮아있다.
바로 이 지점이 핸슨과 스파이스 걸스의 라이벌전에서 간과해선 안 될 중요한 대목으로 생각된다. 머큐리사가 애써 핸슨을 최고급 작곡가나 프로듀서와 연계시킨 것은 누가 봐도 성공의 확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임이 분명하다. 이에 대한 머큐리측의 설명을 들어보자.
“아이들의 음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음악적 신용을 하지 않지만 핸슨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추천한 프로듀서들은 창작성과 작업의 숙지도가 높다. 핸슨 앨범이 매력적인 이유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노래가 그들이 가담하면서 완전히 현대적인 패션으로 프로듀스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핸슨의 자발성은 이 과정에서 마모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핸슨의 앨범도 일반의 인식과 달리 스파이스 걸스의 것과 편차가 크다고 할 수는 없다. 스파이스 걸스가 자랑스럽게 말하는 또 이들의 성공 밑천이기도 한 '걸 파워'가 그리고 멜 C의 오른쪽 어깨에 새겨진 여력(女力)이라는 문신이 전적으로 이들 스스로가 확립한 이데올로기의 소산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평범함을 생명으로 하되 의식(意識)의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버진, 매니지먼트 그리고 스파이스 걸스가 공히 절감한 것 아닐까? 스파이스 걸스는 걸 파워를 슬로건으로 하되 그것을 전투적 페미니즘이 아닌 긍정적인 메시지와 혼합해 세대와 계층을 포괄하는데 성공했다. 여기에 회사측의 가이드가 개입했을 소지는 충분하다.
누가 뭐라 하든 스파이스 걸스와 핸슨은 이 시대 팝의 특성과 순간적 공백을 정확히 파고 들었다는 점에서 '세기말의 팝의 대표적 라이벌'이다. '타임'은 스파이스 걸스 부각의 정황을 비슷비슷하게 생기고 음악도 대차없는 '보이 밴드'에게 10대들이 물려 서서히 '자세'와 '뛰어난 마케팅 전술'을 가진 여성의 멜로딕한 팝으로 취향이 바뀐데 따른 것으로 정리했다. '소외된 여성의 반란'인 셈이다.
반대로 핸슨은 '소외된 10대의 반란'으로서 의의를 갖는다. 미국의 한 컴퓨터 통신에는 '우리 틴에이저는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어서 이제는 격려를 받아야 할 시점이다. 핸슨이 그 가능성을 뚫었다. 그들을 계기로 10대의 재능이 온당하게 평가되길 바란다'는 의견이 접수되었다.
핸슨과 스파이스 걸스는 비단 여성과 10대 뿐 아니라 '그 동안 빛을 못 본 누구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꿈을 제공한다. `90년대 말 정서와 음악 산업의 흐름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두 팀은 필생의 라이벌이다. 팝 역사에서 이처럼 '서로 다르면서도 닮은꼴인' 그룹을 찾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