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이 지(Jay-Z)
데뷔/결성: 1996년
활동시기: 1990, 2000, 2010년대
아티스트 소개
by 김獨
’뉴욕 힙합의 제왕’으로 불리는 제이 지(Jay-Z)는 21세기 힙합 네트워크를 지배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이제껏 발표된 정규 앨범 8장 모두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했고, 3집 < Vol. 2: Hard Knock Life >(1998) 이후로는 내놓는 음반마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5년 연속, 정규 앨범 5장)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차트 성적만 가지고 본다면 상업적인 폭발력은 최근 팝 스타 가운데 제이 지가 단연 최고다. 해마다 한 장씩의 음반을 발표해 차트를 독식한 셈이다.
그 동안 제이 지와 함께 작업한 힙합 아티스트(프로듀서)의 리스트만 봐도 그의 현재 위상이 대번 파악된다.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에미넴을 비롯해 닥터 드레(Dr. Dre), 피 디디(P. Diddy), 팀벌랜드(Timbaland), 넵튠스(Neptunes), 큐 팁(Q-Tip), 스눕 독(Snoop Dogg), 자 룰(Ja Rule), 폭시 브라운(Foxy Brown), 릴 킴(Lil’ Kim) 등 가히 눈부실 정도다. 세기말과 2000년대를 관통한 그 무렵, 막강한 세력 확장을 통해 뉴욕 랩 씬을 정복하기에 이른 것이다.
제이 지는 래퍼 뿐 아니라 음악 외적인 요소에서도 ’영향력 1순위’를 자랑한다. 지금껏 라커펠라(Roc-A-Fella) 레이블과 의류 브랜드 라커웨어(Roc-A-Wear)의 대주주와 보드카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게다가 지난 5월 맨해튼에 스포츠 바(Bar) < 40/40 >를 오픈하며 사업 기반을 확장해나갔다. ’장사꾼’다운 치밀한 사업 추진력을 바탕으로 그는 단 기간 ’힙합 모굴’로 급성장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이 지를 두고 랩 문화권의 거물로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숀 카터(Shawn Carter)가 본명인 제이 지는 1970년 생으로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다. 동부 랩의 메카로 유명한 브룩클린에서 출생하고 성장한 점은 그가 뉴욕 힙합을 바라보는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쉽게 짐작이 간다. 갱스터 래퍼로 출발한 그의 랩 인생은 래퍼로서의 경력과 활동 영역을 넓혀가면서 보다 다양한 팝 스타들과의 작업으로도 이어진다. 결국에는 ’세기의 연인’ 비욘세(Beyonce)와의 약혼식으로 혈기 왕성한 뭇 남성들의 질투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는 10대가 되기 이전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방황하는 시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성장기 시절 빈민가의 허슬러로서의 거친 삶에 익숙해져 갔고, 그곳에서 자신에게 힘과 믿음이 되어준 랩에 빠져들었다. ’헝그리 정신’으로 오직 랩이 인생의 전부라 여겼던 그를 두고 주위의 이웃들이 ’제지(Jazzy)’라 불렀고, 그 닉네임은 제이 지를 대변해준 정신적 영혼과도 같았다.
천부적인 음악적 끼와 재능은 친구 데이먼 대시(Damon Dash), 카림 버크(Kareem Burke)와 레코드 회사 < 라커펠라 >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거기서 탄생된 첫 작품이 바로 데뷔 앨범 < Reasonable Doubt >이다. 1996년 발표 당시 매스컴으로부터 호평을 받았고, 일부 언론에서는 나스(Nas) 1집 < Illmatic >(1994)의 뒤를 잇는 데뷔 걸작으로 평하기도 했다. 이후 1집은 50주간 이상 차트에 남아 있었다.
1997년 2집 < In My Lifetime, Vol. 1 >(3위)을 통해 제이 지는 동부 힙합의 중심 인물로 부상했다. 절친한 동료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사망이 결정적이었다. 자전적 요소가 담긴 영화 < Streets Is Watching >(1998)에 참여해 그의 존재를 부각시켜 나갔고, 3집 < Vol. 2: Hard Knock Life >(1위)를 통해 이듬해 그래미상에서 ’베스트 랩 앨범’ 부문을 수상하며 차츰 힙합 아티스트로서 명성을 획득해 나갔다.
그리고 계속해서 <라커펠라> 소속 래퍼들과 랩 파티를 이룬 1999년 4집 < Vol. 3: Life and Times of S. Carter >(1위), 2000년 5집 < Dynasty Roc la Familia >(1위) 같은 히트작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상업주의로 변질된 힙합 상품을 만든다”는 일부 혹평에 시달리기도 했다. 제이 지는 그러나 2001년 6집 < The Blueprint >(1위)를 발표하며 ’뉴욕 힙합의 제왕’이라는 수식어구와 찬사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6집은 그 해 영국의 < NME >지가 선정한 올해의 앨범 4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일부 매스컴(힙합 < 소지 >지 별 다섯 개 만점)에서도 6집을 ’힙합의 클래식’으로 평가하며 1집 < Reasonable Doubt >와 더불어 최고 작품으로 평가했다.
이후 제이 지는 라이브 앨범 < Unplugged >(2001)와 알 켈리와 합작품 < Best of Both Worlds >(2001)를 발표하지만 대중들의 호응은 예전처럼 뜨겁지는 않았다. 그래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함과 더불어 < The Blueprint >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2002년 7집 < The Blueprint? The Gift & the Curse >(1위)을 선보이며 비욘세와 듀엣 곡 ’03 Bonnie & clyde’(4위)를 히트시켰다. 최근에는 전작의 개정판인 8집 < Blueprint 2.1 >(2003)까지 선보이며 왕성한 활동을 꾸준히 지속했다.
제이 지는 1990년대 중반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사망으로 인한 ’뉴 히어로’의 갈망에 보답한 최상의 래퍼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부드러운 랩 톤과 매끄러운 라임, 멜로디 흐름을 잘 타는 그의 래핑이 그 누구보다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기 때문이다. 이젠 제이 지가 뉴욕 힙합을 평정한 사실을 두고 그 누구도 의심할 반론의 여지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