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체포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것 같던데 / 잡고 나서 놓아줄지는 의문이군.
- The Rolling Stones, 'Connection'
괘씸죄까지 적용되었던 것일까. 전작 < Between The Buttons >에서 경찰에게 비웃음을 날렸던 키스 리처드(Keith Richards)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약 복용의 혐의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다른 멤버들의 상황 역시 비슷했다. 환락의 영역에서도 리처드와 환상의 조합을 이루던 믹 재거(Mick Jagger) 또한 경찰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고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도 마찬가지였다. 용의선상에서 나란히 연결(connection)된 롤링 스톤스의 트로이카는 경찰서와 법원을 밥 먹듯 드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밴드에는 내분까지 닥쳤다. 수사망을 피해보려고 떠난 모로코에서 키스 리처드는 브라이언 존스의 여자 친구인 아니타 팔렌버그(Anita Pallenberg)와 눈이 맞았고 이는 당연히 반목으로 점철되었다. 롤링 스톤스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결정적인 사고는 아니었지만 밴드 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사건인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마이크나 기타가 아니었다. 구속영장과 기소장 그리고 도피를 위한 비행기 표가 악기들을 대신했고 합주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나마 멤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술과 마약, 친구들이 뒤따랐고 녹음실에 울려 퍼진 것은 새 노래가 아닌 향락의 소리였다. 롤링 스톤스의 시작을 같이 했던 매니저이자 프로듀서인 앤드류 루그 올드햄(Andrew Loog Oldham) 마저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밴드를 떠났으니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연속이라 할 만 했다.
빌 와이먼(Bill Wyman)의 첫 자작곡 'In another land'에는 이러한 밴드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있다. 하프시코드와 12현 기타가 자아내는 몽환적인 사운드 위로 빌 와이먼이 전하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는 약물에 취한 멤버들을 빗댄 것이었다. 니키 홉킨스(Nicky Hopkins)와 밴드 스몰 페이시스(Small Faces)의 로니 레인(Ronnie Lane), 스티브 매리엇(Steve Marriott) 등이 주요 악기 연주자들로 올라 있는 곡의 크레디트 또한 작업의 바깥에서 머물던 멤버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앨범에는 사이키델릭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다. '2000 man'은 오르간 특유의 사운드를 통해 분위기를 몽환적으로 띄워낸 곡이며 '2000 light years from home'은 갖가지 음향효과로 우주적 색채를 칠해낸 대작이었다. '(I can't get no) Satisfation'만큼 강렬한 기타 연주가 매력적인 'Citadel'은 앨범의 수준을 범작에서 수작으로 끌어올리는 핵심트랙이며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가 현악 편곡을 더한 'She's a rainbow'는 롤링 스톤스 식 발라드 라인에서 절대 뒤쳐지지 않는 명곡이다.
탁월한 작품들이 앨범 곳곳에 포진해있지만 전체적인 짜임새의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운 점을 보인다. 'Sing this all together'와 'Sing this all together (See what happens)'를 중심축으로 삼고 <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라는 하나의 컨셉 작품을 이끌어내려 하였으나 'Citadel'의 두터운 로큰롤 사운드나 'Gomper'의 아프리카 리듬 등 다양한 접근이 앨범의 통일성을 저해하고 있다. 다채로운 색이 오히려 산만하게 보인다고 할까.
잇따른 혹평은 비틀스의 대작 <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와의 비교에서도 나타났다. 롤링 스톤스가 구사한 사이키델릭 사운드는 다분히 비틀스 식의 것이었고 'Within you, without you'를 연상시키는 'Gomper'는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였다. 'Sing this all together'와 'Sing this all together (See what happens)' 식의 트랙 구성 역시 페퍼 상사(sgt. pepper)를 떠올리게 하는 지표였으며 앨범 커버의 복장도 비틀스의 영향권 내에 자리하는 것이었다.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함께 음반에 목소리를 빌려주었던 존 레논(John Lennon)마저 “사탄 폐하(satanic majesties)는 페퍼 상사일 뿐”이라는 말과 함께 형편없는 아류작이라고 평가했으니 비난의 화살이 몰리는 것은 불가피했다.
비틀스의 뒤를 쫓는 2등 밴드로 굳어진 음반의 이미지는 여전히 아쉬운 흔적, 그러나 단순히 아류작으로만 남겨지기에 밴드의 역량은 출중하고 또 탁월했다. 더구나 로큰롤 사운드로 채워진 밴드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음반에는 매력적인 희소가치가 있다. 히피의 열기가 뜨겁던 1967년, 그 해의 12월에 나온 <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 >는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에 찍는 마침표였다. 그리고 이는 롤링 스톤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수록곡-
1. Sing this all together
2. Citadel

3. In another land

4. 2000 man

5. Sing this all together (See what happens)
6. She's a rainbow

7. The lantern
8. Gomper
9. 2000 light years from home

10. On with the 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