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그롤이 프런트 맨을 맡고 있는 그룹 푸 파이터스의 2005년도 신보 앨범. 그들은 그간 발표한 4장의 음반 전부를 히트의 존에 안착시키며 대표적인 포스트 그런지 공동체로서 팬들의 절대적 성원을 받아왔다. 그런지 이후의 록이 제 궤도 안착에 실패한 채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을 때, 평단과 대중 모두를 향해 높은 소구력을 뽐냈던 밴드가 바로 푸 파이터스였던 것이다. 'This is a call', 'Big me', 'Monkey Wrench', 'Learn to fly', 'All my life' 등의 히트 싱글 퍼레이드가 이를 잘 말해준다.

더블 씨디로 구성된 이번 신보에서 푸 파이터스는 그 동안 내면에 꼭꼭 숨겨왔던 음악적 야심을 본격적으로 표출, 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처럼 '세상을 뒤흔들 위대한 레코드'를 완성하는 것을 준거점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멜로디에의 천착 아닌 록 본연의 자세, 즉 맹렬한 화력 시범을 통한 강성 록의 한판 승부. 그만큼 볼륨의 업-다운을 통한 청감수성의 상승효과를 훌륭히 표출해낸 작품으로 음반에서 들려주는 세밀한 볼륨 조절은 감동의 밑바닥을 두루 훑고 지나가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첫 번째 씨디의 수록곡들이 모두 이러한 지향을 좆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퍼스트 싱글로 커트된 'Best of you'의 탁월한 사운드 조탁은 근래 발표된 레코드들 중 최우수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렇듯 강렬한 이미지를 한껏 부각한 CD-1과는 달리 두 번째 챕터에서 푸 파이터스는 어쿠스틱 사운드로의 완전 경사를 일궈내며 그들만의 팝 록 사운드를 선사해준다. 앞 쪽에서는 레드 제플린의 베이시스트였던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가 참여한데 반해 게스트로 노라 존스('Virginia Moon')를 초청한 점부터가 이를 잘 말해주며 이를 통해 그들이 비단 정통 록 뿐 만이 아닌 록과 팝 사이의 임계점에서 그들만의 소리 왕국을 건설하려하고 있음을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첫 번째 씨디에 비해 과거와의 간극 차이가 너무 커 듣는 이에 따라서는 그 의미를 굴삭하는데 애를 좀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길게 펼쳐놨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지만 각각의 레코드가 일관된 테마에 의해 명확한 수렴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평가받을만한 록 수작 앨범이다. 누구는 이것을 성숙이라 부를 수도 있고 아니면 명료성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록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직관의 깊이'에 가까울 것이다. 성숙이 두터움을 강조한 어휘이고 명료성이 논리성을 강조한 표현이라면 깊이에는 이 모든 것이 다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그레이트한 사운드'를 주조해낼 시기가 그리 멀지 않았다.


-수록곡-
CD-1
1. In Your Honor
2. No Way Back
3. Best Of You
4. DOA
5. Hell
6. Last Song
7. Free Me
8. Resolve
9. Deepest Blues Are Black
10. End Over End
CD-2
11. Still
12. What If I Do
13. Miracle
14. Another Round
15. Friend Of A Friend
16. Over N' Out
17. On The Mend
18. Virginia Moon
19. Cold Day In The Sun
20. Razor
글, 배순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