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표된 알이엠(R.E.M.)의 후기 베스트 <The Best Of R.E.M.>은 그들이 <워너 브라더스(Warner Brothers)>라는 거대 자본과 천문학적 액수로 계약한 뒤 내놓았던 일련의 앨범들 중에서 골라낸 보석들만을 담고 있기에 특히 중요하다. 알이엠은 지금까지 주류 뮤지션의 지위가 주는 스위트니스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인디 시절의 태도를 견지, 성공적으로 싸움을 전개해왔다. 바로 알이엠이 유투(U2)와 함께 대중 음악의 역사 속에서 긴히 언급되는 이유이다. 1992년의 <Automatic For The People>은 그러한 그룹의 음악적 커리어에 있어서 단연 정점이었다

자연스레 음반의 빅 히트곡인 'Man on the moon'과 영화 <맨 온 더 문>에 함께 실렸던 싱글 'The great beyond'가 앨범의 첫머리를 장식한다. 'Man on the moon'은 잘 알려져 있듯,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먼(Andy Kaufman)의 희비극적이었던 생애를 표현한 곡으로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의 사려 깊은 목소리를 통해 그의 삶이 눈 앞에 잔잔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번 베스트 컬렉션은 또한 두 곡의 신곡을 담고 있어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이어서 등장하는 'Bad day'는 흡사 <Document>(1987)나 <Green>(1988) 시절로 회귀한 듯한 인상을 풍기며 그들의 참 마니아들을 향해 구애의 손길을 뻗친다. 과거 다소 투박했던 분위기의 곡들에 비해 좀 더 세련된 느낌을 첨가, 듣는 맛을 한껏 높인 점이 특색이다. 또 다른 뉴 송인 'Animal'은 마이클 스타이프 특유의 '따스하고 유머러스한 시니컬리즘'이 돋보이는 넘버이다.

이 밖에 그들의 주요 히트 송들인 'Losing my religion', 'The sidewinder sleeps tonight', 'Stand', 'Orange crush' 등이 모조리 수록되어 있어 알이엠을 알고자 하는 팬들에게 최상의 선택으로써 부족함이 없다. 본 모음집과 함께 1994년 나온 <R.E.M. Singles Collected>를 함께 구비한다면 알이엠 히스토리의 대강의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셈이 된다.

사실 알이엠의 지난 세 장의 음반들인 <New Adventures in Hi-Fi>(1996), <Up>(1998), 그리고 <Reveal>(2001) 등은 숨겨진 다이아몬드 트랙인 'Leave'를 비롯해 'Imitation of life', 'Daysleeper' 등의 뛰어난 곡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음에도 불구, 그다지 좋은 성적표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베스트 앨범 출시는 그룹이 미래에 다시 한번 더 도약키 위한 숨 고르기 같은 성격을 띄고 있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 섰음에도 알이엠의 음악 여행에는 끝이 없는 까닭이다. 바로 아티스트로서의 필연적 숙명이다.

이런 점을 잘 알기에 마이클 스타이프는 아마도 고뇌하는 커트 코베인에게 'Hang on'(매달려)이라고 충고해주지 않았을까.(그와 커트는 커트가 자살하기 전, 긴 시간동안 통화를 했다고 한다. 마이클 스타이프는 지금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경구는 비단 타인에게만 하는 말처럼 들리질 않는다. 메인스트림의 약육강식적 세계 속에서 알이엠이 지금껏 자신들만의 음악적 상아탑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희망적 자세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이클 스타이프는 현실로 인해 힘들어 하는 우리들에게 지금도 이렇게 조언해줄 것 같다. Hang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