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쓰는 글이기에 절대 객관이란 존재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책임하게 "내 느낌은 이렇단 말이야 어쩔래" 식의 꼬장(?)으로 지면을 소비하는 것도 곤란하다. 결론적으로 평론가들의 책무란 주관을 배제하고, 가감 없이 문화현상과 결과물들을 짚어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결코 녹록치가 않다. 주지하다시피 '객관'이란 것이 글 쓰는 사람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윤아의
오랜만에 앨범을 발매한 김현철을 두고도 '상반된 객관'이 맞설 소지는 충분하다. 아마도 이런 견해 차(差)를 제공한 것은 그의 8집 앨범 <...그리고 김현철>이, '본격 듀엣앨범'이라는 나름의 파격적 구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현재 이를 둘러싼 극과 극의 평가가 흥미롭게 전개되고 있다. '자신에게 바치는 헌정앨범?'이라는 강도 높은 비난에서부터, '특권의식을 최소화한 50:50의 균형감'이라는 호평까지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전자의 경우, 데뷔 시절에 김현철이 너무 훌륭했다는 죄(?)로부터, 이에 대한 강한 향수를 표명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김현철이 1집 이후 일곱 번에 걸쳐(혹은 그 이상) 꾸준하게(?) 욕을 먹어온 이유와 같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관점엔 초기작에 대한 과한 애정과 본 작에 대한 실망이 교차한다.
후자는 이런 소급형의 비교에 상관함 없이, 말하자면 불후의 명작이라는 1집 회귀의 기대심리는 생략하고, 순수하게 해당 앨범만을 듣고 게스트와의 조화와 및 폭넓은 장르 소화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할 수 있다. 둘 다, 관점이 다를 뿐이지 타당성이 있는 얘기일 것이다. 타이틀곡 'Loving you'에 대해서도 혹자는 잘 뽑은 선율이라고 호감을 표시하는 반면, 일각에서는 앨범 중 가장 시시한 곡이라고 치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 상황이다.
결국 평가란 '평가자가 애초 세워둔 심지나 기준'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닐까 한다. 어떤 비교 대상을 택하는지, 혹은 어떤 구성을 취하는지에 따라 '객관의 방향'에 차이를 보인다는 말이다. 이는 곧 글이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인상은 상당하기 때문에, 평가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설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한참 혹평한 후에 그러한 전후의 맥락을 무시한 채 “취향 차이는 어쩔 수 없다”고 공론화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그러한 독단적 주장은 심지의 차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객관에 도달하려는 의지가 없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평론하는 사람이라면, 객관화에 대한 노력은 물론이겠거니와 '사적(私的) 취향'에 대한 엄격한 자기제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를 의식하고 글을 써야 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