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만큼 가요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는 여가수도 없을 것이다. 혼혈이라는 것을 차치하고라도 성인 가수로 단정짓기에는 비교적 현재의 가요 트렌드를 부단히 쫓아왔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인이 지니기 힘든 풍부한 성량과 넘치는 파워로 무대를 후끈한 흥으로 넘쳐 흐르게 만드는, '정말 노래 잘하는 가수'라는 대중의 인식이다. 이를 기반으로 최근 <열린 음악회> 등 가족용 음악 프로그램에서 열창하면서, 대중과의 친숙함을 쌓아가는 찰나였다.

2001년 박진영이 프로듀스한 <My Turn>에 수록되었던 '또'와 같은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으로 얼마 전 조피디의 곡 '친구여'에 피처링 보컬로 참여하면서 인순이는 신세대의 지지까지 끌어냈다. 사실 조피디에게는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던 부진을 말끔히 털 수 있는, 인순이에게는 뒤늦은 제 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한마디로 서로 상부상조한 것이다. 둘 모두가 '친구여' 덕택에 스타덤에 올랐으니 말이다.

그러나 과연 '친구여'가 잠시의 '히트'만이 아닌 장밋빛 '미래'까지 보장했을 지에 대해서는 그리 낙관적일 수가 없다. '친구여'의 대박 이후 몇 달 되지도 않아 급히 발매된 인순이의 앨범은 잠깐의 히트를 등에 업었다는 비판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가수가 앨범을 못 낼 이유는 없다), 준비 기간이 짧았던 만큼 성의의 부족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인순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슬라이 앤 더 패밀리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의 원곡을 1980년대를 달군 미국의 댄스 가수 티나 터너가 다시 리메이크했던 'Higher'는 인순이에게 잘 맞아떨어질 수 있는 타이틀곡이다. 그러나 인순이는 다만 '목소리'만 내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알앤비 발라드 '웃고 있지만', '여정' 등은 요즘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흔히 들려오는 젊은 가수들의 곡에서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기성세대를 포괄하기 위한 곡들인 '잠깐'(나훈아 원곡), '첫 사랑'(신중현 원곡), '비에 스친 날들'(박남정 원곡) 등의 흘러간 노래들도 실려 있지만 그마저도 신중하지 않은 댄스 풍의 리메이크로 잠깐 스쳐가 버린다.

진짜 노래 잘하는 가수 인순이의 내공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아 아쉽다. 특유의 시원한 보컬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나오는 것이 아니라 높은 가창력과 노래의 기교에 치중한 것도 수십 년을 켜켜이 쌓아 온 커리어가 지닐 수 있는 보석을 빛내주지 못하고 있다. 현란한 테크닉과 가창력의 보컬이 아닌 그만의 '곡'이 좀처럼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신구를 아우르는 위치에 선 인순이만의 신나는 새 출발에는 신중한 고민이 없어 보인다.

-수록곡-
1. Tonight (작사 : 김민지 / 작곡 : 박해운)
2. Higher (저작자 : Sylvesta Stewart)
3. 웃고 있지만 (김태윤 / 박해운)
4. My life (윤경 / 서재하)
5. 연가 (채지오 / 김도형)
6. 여정 (이건우 / 임기훈, 최준영)
7. Swing my baby (김민지 / 서재하)
8. 연인 (김민지 / 박해운)
9. 여자이니까 (윤경 / 박해운)
10. 잠깐 (나훈아 / 나훈아)
11. 첫사랑 (신중현 / 신중현)
12. 비에 스친 날들 (박남정 / 박남정)
13. 친구여 (조PD, 박근태 / 박근태)
14. 비상 (강찬우 / 전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