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의 서두 글에서 롤링 스톤은 2011년 오리지널 명단이 “대부분 클래식 록 뮤지션” 위주라며 지난 버전에 대한 자기반성을 에둘러 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순위 선정에 있어서는 “멋보다는 묵직함을, 다듬어진 것보다는 감정을, 개선(refinement)보다는 발명을, 테크니션보다는 모험가와 창시자”를 더 높게 평가했다고 서술했다. 인상적인 연주를 넘어 훌륭한 음악과 혁신적인 음반을 제작한 이들을 보다 우대했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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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위권만 본다면 2015년 버전과 엄청난 차이를 느끼기는 힘들다. 동일한 10위 내 자리에 머무른 아티스트는 7명이나 되고, 그중 순위 변동이 없는 아티스트도 셋이나 있다. 부동의 1위는 역시 지미 헨드릭스의 몫이다. 장르를 혼합하며 다양한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를 창조한 그를 “기타의 진짜 장인”이라 칭한 롤링 스톤은 18위에 오른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톰 모렐로가 한 말을 인용했다. “살아있었다면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 그가 남긴 유산은 가장 위대한 기타 연주자로서의 그의 지위를 공고히 한다.”
그다음으로 자리를 지킨 뮤지션은 지미 페이지. 레드 제플린의 명장이 되기 전부터 후(The Who)와 킹크스(The Kinks) 등 런던 여러 밴드의 세션으로 활약하며 대중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남긴 그는 “록 기타의 신 중 하나”라는 칭호와 함께 3위를 유지했다. 그와 함께 영국 밴드 야드버즈(The Yardbirds)에 몸담았던, “기타리스트의 기타리스트”로 불린 제프 벡도 2015년에 이어 5위에 올랐다. 유명세를 거부했음에도 기타에 대한 열정만은 그대로였던 그를 롤링 스톤은 'People get ready', 'Nadia' 등의 곡을 언급하며 “범상치 않은 방식으로 기타를 통해 인간의 목소리를 해석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로큰롤 기타 연주의 토대를 마련한 척 베리는 7위에서 2위로, 태핑(Tapping) 주법과 하드 록과 헤비메탈을 상징하는 밴 헤일런의 에디 밴 헤일런은 8위에서 4위로 올랐다. “블루스의 홍보대사”로 칭한 비비 킹과 올맨 브라더스 맨드(Allman Brothers Band)를 결성한 프론트맨 듀안 올맨(Duane Allman)도 각각 6위에서 8위, 9위에서 10위로 순위가 소폭 하락하긴 했으나 10위 안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롤링 스톤이라는 매체가 지닌 역사성 및 정통성을 적당히 고려한 결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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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볼 것은 신규 목록이다. 블루스 록의 개척자 에릭 클랩튼(2위→35위)과 롤링 스톤스의 키스 리처드(4위→15위), 그리고 후(The Who)의 피트 타운센드(10위→37위)를 대체하여 시스터 로제타 사프(Sister Rosetta Tharpe), 나일 로저스(Nile Rodgers), 그리고 조니 미첼(Joni Mitchell)이 10위 내 빈자리를 채웠다. 앞의 둘은 아예 이번에 새로 명단에 입성했고, 조니 미첼도 과거 75위라는 하위권에서 9위로 엄청난 상승을 보였다.
가장 먼저 나일 로저스의 7위 입성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더욱 심화된 영미권 대중음악의 1980년대 복고 정신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펑크(funk), 디스코가 인기 장르로 발돋움하면서 그가 지금도 이끌고 있는 밴드 쉭(Chic)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6위 시스터 로제타 사프는 흑인 여성이라는 점에서 겉으로 보기에 다양성을 중시하는 최근 미디어의 기조를 따르는 듯하나, 동시에 엘비스 프레슬리와 리틀 리처드, 조니 캐치, 척 베리 등 숱한 뮤지션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소위 “로큰롤의 대모”라는 점에서 롤링 스톤의 유구한 록 친화적 성향과도 일맥상통한다.
조니 미첼의 경우는 과거에도 명단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주로 그를 둘러싼 찬사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질 위주였던 편이다. 이번 순위 상승은 아티스트 자체의 재조명과 일렉트릭 기타 위주의 평가에서 한 발짝 물러나 어쿠스틱 기타에도 시선을 할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개 글에서는 실제 자신의 독창적인 기타 연주를 사람들이 잘 몰라준다는 그의 말을 따오기도 했다. 물론 음악 외적인 요소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10위권에서 가장 크게 순위가 하락한 에릭 클랩튼이 코로나19 백신 위험론을 펼친 것과 달리, 조니 미첼은 스트리밍 서비스인 스포티파이에서 발행한 팟캐스트 관련 코로나19 가짜뉴스 논쟁이 발생했을 당시 자신의 음악 유통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새로운 등장은 더 많아진다. 리스트에 처음 진입한 아티스트는 11위부터 50위까지 총 여섯 명. 소울과 알앤비, 펑크(funk)까지 영향력을 행사한 제임스 브라운의 밴드에서 활동하며 (롤링 스톤의 말을 따르자면) “펑크(funk) 기타를 정의한” 지미 놀렌(Jimmy Nolen), 20세기 초 컨트리 음악의 초기 모델을 제시한 카터 패밀리의 마더 메이벨 카터(Mother Maybelle Carter)가 각각 12위와 17위에 발을 들였다.
26위 자리는 독특한 음악으로 평단의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 세인트 빈센트(St. Vincent)가 차지했고, 왼손 연주법을 개발하여 수많은 아티스트가 커버한 'Freight train'을 만든 블루스 아티스트 엘리자베스 코튼(Elizabeth Cotton) 또한 36위에 올랐다. 흑인 헤비메탈 밴드로 재즈와 펑크(funk) 사운드를 하드 록에 녹여낸 리빙 컬러(Living Colour)의 버논 레이드는 42위, 다채로운 장르를 아우르며 1990년대 여성 얼터너티브 뮤지션 흐름의 주축을 이룬 피제이 하비(PJ Harvey)가 49위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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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사이 내놓은 개정판에 가해진 반발을 의식한 것일까, 여전히 탄탄한 최상위권과 아예 늘려버린 자릿수는 다양성 추구에 지나치게 휘둘린다는 비판에 대한 완충제처럼 보인다. 록의 문법을 적극 차용한 젊은 뮤지션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 Guts >에 만점을 수여하며 “현시대의 고전(Instant Classic)” 칭호를 하사했듯 “메인스트림 록의 부활”을 소망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꾸준히 리스트를 다듬는 롤링 스톤의 움직임은 명단 만들기를 과거의 '역사의 결론' 위치에서 '변화의 서론' 자리로 옮긴다. 주류 미디어가 대중을 이끌던 그때 그 시절의 영광을 깔끔히 포기하고, 인터넷의 발전으로 탈중앙화가 이뤄진 음악 소비 문화에 대한 생존 방식인 것이다.
사실상 “절대적인” 순위를 매기는 일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이상향 혹은 신기루다. 따라서 이번 기타리스트 순위도 음악 잡지로서 롤링 스톤이 지향하는 바를 드러내는, 미래시제로 서술된 선언문으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과연 지금 그들이 취하는 자세가 맞는 것일까? 202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그 답은 아마 다음 개정판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20위 리스트. 괄호는 순위 비교.
1. Jimi Hendrix (순위 동일)
2. Chuck Berry (7→2)
3. Jimmy Page (순위 동일)
4. Eddie Van Halen (8→4)
5. Jeff Beck (순위 동일)
6. Sister Rosetta Tharpe (신규 진입)
7. Nile Rodgers (신규 진입)
8. Riley "B.B." King (6→8)
9. Joni Mitchell (75→9)
10. Duane Allman (9→10)
11. Carlos Santana (20→11)
12. Jimmy Nolen (신규 진입)
13. Tony Iommi (25→13)
14. Prince (33→14)
15. Keith Richards (4→15)
16. Robert Johnson (71→16)
17. Mother Maybelle Carter (신규 진입)
18. Tom Morello (40→18)
19. Freddie King (15→19)
20. Stevie Ray Vaughan (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