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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셋째 주 토요일은 세계 위스키의 날이다. 위스키는 누가 뭐래도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술 중 하나이다. 맥아나, 기타 곡류를 발효해 증류한 후 오크통 등에서 숙성하는 이 '생명의 물'을 찬미하는 이유는 뭘까.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주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를 모르겠으나 수많은 위스키 관련 노래들로 답을 대신하고 싶다. 그래서 준비했다. 위스키 송 특집!
술은 대중문화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다. 고통과 슬픔을 잊게 만들고 즐거운 축제와 파티의 흥을 돋우는 마법을 발휘한다. 술과 관련한 노래도 무수히 많지만 이 글은 위스키를 위한 특집이기에 위스키 노래들로 제한을 뒀다. 우리의 소주가 발라드와 맞닿아 있는 것 같이 위스키는 국내에서 인기가 없는 컨트리와 블루스가 많아 대중적 음악가를 중심으로 리스트를 선정했다. 술을 마시며 음악을 쓴 뮤지션처럼 위스키를 음미하며 쓴 글도 있으나 찾지 마시길 부탁드린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을 때에는 '반드시' 마시기를 권장한다.
빌리 아이돌(Billy Idol) 'Rebel yell'
우연히 만나 운명이 된 위스키 명곡. 술 좋아하기로 유명한 롤링 스톤즈 멤버들과 찾은 '레벨 옐' 버번위스키 행사에서 빌리 아이돌은 그 이름에 반해 곡을 썼다. 펑크(punk)의 피가 흐르는 그에게 '반란군의 외침'이란 얼마나 강렬한 이름이었을까. 남성적 이미지의 위스키와는 찰떡의 제목이자 타이틀이다. 전자 피아노로 연주한 것 같은 도입부의 리프는 영화 < 탑 건 >의 테마 연주로 유명한 스티브 스티븐슨이 기타로 연주했다. 현재는 위스키 명이 'Rebel'로 바뀌었다. 어쩐지 힘 빠지는 개명이지만(그래도 맛은 좋다), 노래 속 빌리 아이돌의 외침에는 여전히 거친 맛이 살아 있다.
에이씨디씨(AC/DC) 'Whiskey on the rocks'
전성기를 목전에 두고 세상을 떠난 보컬 본 스콧에게 유쾌한 조의를 표하며 'Have a drink on me'와 명반 < Back In Black >을 남겼던 에이씨디씨가 다시 술잔을 꺼내 들었다. 바텐더가 밴드 리더에게 반한다는 내용의 가사를 억지로 꿰맞춰 보면 본 스콧을 추억하는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건 아닐 것이다. 슬픔을 극복하고 'Rock 'n' roll train'에 이미 몸을 실은 이들에게 후진이란 없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열심히 전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양질의 음악과 술이다. 오늘은 에이씨디씨의 음악을 들으며 '위스키 온 더 락' 한잔을 마셔 보는 건 어떨까?
크리스 스테이플턴(Chris Stapleton) 'Tennessee whiskey'
위스키의 은은함을 노래로 표현한다면 이 곡을 뽑을 수 있지 않을까. 가사마저도 사랑하는 이를 위스키(와인, 브랜디)에 빗댄 내용이다. 데이비드 앨런 코가 원조지만 이 버전이 제일 유명하다. 2015년 컨트리 뮤직 어워드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하고 'Tennessee whiskey'와 'Drink you away'를 함께 한 무대가 호평받으며 노래는 단숨에 빌보드 핫100 20위를 찍었다. 최근에는 오토튠의 왕 티 페인이 커버해 '테네시 위스키'의 건재함을 알렸다. 테네시주에는 내슈빌과 멤피스라는 음악의 도시가 있지만, 그 유명한 '잭 다니엘스'가 이곳 출신이다. 2018년에는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Say something'에 참여하며 최초로 탑 10을 기록했다. 저스틴-테네시-크리스, 완벽한 위스키 삼박자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존 메이어(John Mayer) 'Whiskey, whiskey, whiskey'
'Tennessee whiskey'를 들으며 존 메이어 생각이 많이 났다. 역시나! 그도 위스키 노래를 불렀다. 무려 세 번씩이나 말이다. 아쉽게도 여기서 존 메이어는 알코올 의존적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래한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술을 찾지만 이내 깨닫는다. 실제로 그는 약 7년 전부터 금주에 들어갔다. 순전히 음악을 위해서 실행한 엄청난 자기 관리다. 그래서인지 재작년에 나온 'Last train'은 참 좋았다. 금주 곡은 여기서 마무리하겠다.
밴 헤일런(Van Halen) 'Take your whiskey home'
밴 헤일런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시작해 이내 밴드 밴 헤일런의 하드록 스타일로 변모하며 폭발한다. 음악만 들으면 당장 위스키를 대령하라는 것 같지만, 사실 이 곡은 알코올 중독을 견제하는 건전한 곡이다. 남성적인 위스키와 야수적인 록이 만나 잘못된 선입견을 심어줬다. 리드미컬한 인트로부터 깔끔 화려한 기타 솔로까지 팝의 터치가 묻지 않은 순수한 록의 매력을 펼친다. 이랬던 그들이 4년 뒤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자살 종용 밴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술 때문인가? 그래도 'Jump'는 희대의 명곡이다.
모건 월렌(Morgan Wallen) 'Whiskey glasses'
요즘 가장 핫한 컨트리 가수 모건 월렌의 첫 히트곡이다. 노래에서 위스키는 전형적인 술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이별의 아픔을 달래는 일. 아이디어도 '나는 진실을 보지 않기 위해 위스키 잔이 필요해'라는 가사로부터 나왔다. 음악은 달콤하고 내용은 씁쓸한 것이 마치 위스키를 연상케 한다. 곡 자체는 평범한 컨트리 팝이지만, 지금의 모건 월렌을 만든 데 일조했음에는 틀림없다. 그래서인지 그의 투어 셋리스트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 중의 하나가 됐다. 이게 다 위스키 덕 아닐까. 술과 함께 주류 뮤지션으로 올라선 것이다. 역시 술은 이별(, 그리고 음악)과 함께 할 때 완벽해진다.
후(Who, The) 'Whiskey man'
미국 침공의 기회를 엿보던 영국 밴드가 포문을 열었다. 데뷔작 < My Generation >으로 자국에서 출사표를 날렸던 후가 2집 < A Quick One >(미국 반 : Happy Jack)의 싱글 'Happy jack'으로 빌보드 HOT 100 24위에 오르며 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 곡의 뒷면에 함께 실린 노래가 'Whiskey man'이었다. 결정적이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있지 않았을까. 참고로 영국판 B사이드는 'I've been away'였다. < Tommy >와 < Who's Next >라는 명반으로 거대한 업적을 남긴 모드족의 대표주자도 이렇게 위스키의 도움을 받았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W.h' 앞 두 글자도 같다. 그렇다면 이건 필연이다.
앨리스 쿠퍼(Alice Cooper) 'Lace and whiskey'
'쇼크 록'에 더 어울리는 건 술이 아니라 마약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실제로 알코올 중독이었다니 할 말은 없다. 이 곡이 담긴 동명의 앨범은 주당 형사 캐릭터 '모리스 에스카르고'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소환해 만든 콘셉트 작품이다. 앨리스 쿠퍼의 명성에 비해 음악의 전체적인 특징은 평범하다. 그나마 후렴구가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이 곡을 들어야 하는 이유라면 그의 창의성과 다양성이 잘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나 콘셉트 앨범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밴드에서 솔로까지 주목받는 것이 아니다. 각설하자면 앨리스 쿠퍼는 1977년 투어를 끝으로 알코올 중독 치료에 들어갔다.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Whiskey rock-a-roller'
헷갈리지 말자 모음은 전부 'Y'다. 위스키도 모음에 차이가 있다. 캐나다나 일본 같은 국가에서는 'E'를 빼기도 하며 서로를 배려해 'Whisk(e)y'로 혼용하기도 한다. 서던록하면 빼놓을 수 없는 레너드 스키너드의 명반은 명실상부 1집 < Pronounced Leh-Nerd Skin-Nerd >이지만, 앨범 첫 탑10은 이 곡이 수록된 3집 < Nuthin' Fancy >가 세웠다. 'Whiskey rock-a-roller'는 싱글 발매도 하지 않아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심심찮게 이 노래를 라이브에 부른다. 여행과 음악,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서던록으로 어루만진다. 우리 모두 'Whiskey' 마시며 'Rock-a-roller'가 되자! 'Lord, don't you take my whiskey and rock'n'roll. (주여, 제 위스키와 로큰롤은 가져가지 마십쇼.)'
마룬 파이브(Maroon 5) 'Whiskey (Feat. ASAP Rocky)'
다시 절절한 이별 이야기가 나왔다. 쌍방의 사랑인 줄 알았던 관계가 사실은 남자만이 진지했던 일방적인 관계였다니 얼마나 절절한가. 가사의 배경도 제일 쓸쓸한 계절인 가을이다. 그리고 다시 떠오르는 위스키. 이 노래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은 마룬 파이브의 여섯 번째 정규작 < Red Phill Blues >의 수록곡이다. 익히 알고 있는 마룬 파이브의 보컬 아담 리바인은 상당한 하이톤의 고음이 특징이지만, 여기서는 애절한 감정을 소화하기 위해 힘을 뺐다. 부담스러운 소리는 줄어들고 담담한 느낌이 흡인력을 발휘한다. '키스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모른다. 위스키처럼'
포스트 말론(Post Malone) 'Broken whiskey glass'
'록스타(Rockstar)'가 되기 전 발매했던 정규 1집 < Stoney >의 1번 트랙이다. 제목만 봐도 대충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온다. 술(과 약)에 취해 자기 과시와 한탄, 반항을 동시에 담았다. 각종 마약, 패션 브랜드, 로커의 삶 등 자기 경험을 열거한다. 이에 맞춰 음악은 몽환적인 이펙트와 육중한 베이스를 강조했다. 이와 중에 에이씨디씨의 'Highway to hell'을 가사에 넣으며 샤라웃(shout out)을 잊지 않았다. 재밌는 점은 그가 '문화 도둑(cluture vulture, 문화 독수리)'이라고 불릴 걸 예견이라도 한 듯 노래에 독수리 사운드를 넣었다는 점이다. 오선지 안에서만 취한 줄 알았던(거짓말이다) 그도 알코올 중독으로 꽤나 고생했다고 한다. 적당히 마셔야 보약이다.
도어즈(The Doors) 'Alabama song (whisky bar)'
'Light my fire'는 알아도 이 노래는 모르지 않을까. 데뷔작인 < The Doors >에 같이 들어 있는데도 말이다. 큰 성과는 올리지 못했던 'Alabama song (Whiskey bar)'은 특이하게도 프랑스 차트에서 3위까지 올랐다. (의외로 도어즈가 프랑스에서 성적이 좋다.) 프랑스를 제외하고서라도 인기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라이브에서도 꽤 자주 불렀다. 기타 없이 키보드 중심으로 흐르는 이들의 사운드를 스카 리듬으로 잘 담았다. 독일의 세계적인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가사를 썼으니, 철학적인 가사를 쓰기로 유명한 도어즈에게 이미 보증받은 노래였다. 음악은 < 서푼짜리 오페라 >로 유명한 쿠르트 바일이 작곡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 B-사이드에서도 들을 수 있다.
신 리지(Thin Lizzy) 'Whiskey in the jar'
아이리시 하드록의 한 축을 담당했던 신 리지의 뿌리. 이 곡은 아일랜드 구전 민요로서 많은 가수에 의해 불려 왔다. 메탈리카와 브라이언 아담스도 커버했다. 공무원(혹은 군인)을 약탈한 후 여자에게 갔으나 배신당하는 이야기로 민요 특성상 정확한 해석은 어렵지만, '위스키'는 여기서 욕망을 상징하지 않을까. 취할 걸 알면서도 단지 안에 든 술을 안 마시고 배기겠는가. 그것이 더욱이 위스키라면 말이다. 아일랜드는 맥주와 함께 위스키도 유명하다. 소주와 비슷한 포지션으로 '제임슨'이라는 위스키가 있다. 고난과 핍박의 역사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위스키에도 많은 은유가 담겨 있다. 동상이몽의 마음으로 오늘은 소주 대신 3번 증류해 특히나 부드러운 아이리시 위스키를 즐겨 보자. *이즘의 '욱' 모 필자에게 이 노래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