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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보컬 그룹의 귀환, 2021년 빅마마의 재결합 소식은 유난히 반가웠다. 급작스러운 해체 이후 9년 만에 용기 내 얼굴을 마주한 이들에게 그 시절을 함께 했던 팬은 물론 빅마마를 전혀 모르는 신세대까지 뜨거운 관심으로 화답했다. 외모 지상주의를 향한 도전으로 출중한 가창 실력을 앞세웠던 2000년대 초중반의 당찬 하모니가 다시금 생명력을 회복하는 순간이었다.
올해로 빅마마 데뷔 20주년을 맞았지만 멤버들은 오히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팀의 리더 신연아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강의실. 오랜 기간 호원대학교 교수로 재직한 그에게 교정은 무대만큼 친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뷰 역시 평소 학생들이 사용하는 연습실에서 진행했다. 잔잔히 깔리는 제자들의 피아노 연주를 따라 담화를 이어간 신연아 교수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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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빅마마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소감이 어떤지.
건너뛴 시간이 길어서 살짝 양심에 찔리지만 (웃음) 데뷔한 지 20년 됐다는 걸 누군가 기억해 주고 기다려 준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20년이구나. 사람으로 치면 성인이 되는 시기인 만큼 빅마마란 팀도 어느 정도 무르익었는지 돌아보게 되는 지점인 듯하다.
2021년 재결합을 알린 후 딩고 킬링보이스, odg, it's live 등 유튜브 콘텐츠를 중심으로 모습을 비췄다. 일련의 과정이 계획된 움직임이었나.
재결합 자체가 그해 4월에 갑자기 진행된 얘기다. 처음엔 거절했다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압력 센 노래를 소화할 수 있을까 싶어서 더 힘들어지기 전에 후다닥 하게 됐다. 그래서 5월에 만나 음원 하나를 거의 바로 녹음해 발매했고 첫 스케줄로 딩고 라이브가 잡혔다. 20분 넘는 시간을 원테이크로 부르는 데 정말 사람 잡는 일이더라. 9년 만에 만나서 맞추려니 걱정도 되고 떨리기도 했는데 조용한 환경 조성을 위해 에어컨도 끄고 녹화해서 리허설 한 번에 땀이 확 났다. 그래도 다들 한가락 하던 사람들이라 그런지 간만에 모였는데도 몸이 기억해서 나오더라.
천만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대중들이 많이 기다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도 우리를 그렇게 계속 찾아주고 좋아해 준다는 거는 진짜 선물 같은 일이라고 본다. 그런 중에 또 희한한 건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팬층으로 유입됐다는 것이다. 20대 친구들이 언니라고 부르면 참 기분이 묘하다. (웃음)
작년에 빅마마 전국투어 < ReBorn >을 성공리에 마쳤다. 20주년을 맞이하여 올해에도 예정된 대규모 공연 계획이 있는지.
물론이다. 사실 데뷔 앨범이 나왔던 2월도 고려했었지만 공연 대목인 연말에 하는 게 더 좋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아마 올해 말 정도에 음원 하나 발표하며 찾아 뵙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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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데뷔는 2003년이지만 1990년대부터 3인조 코러스 팀 '빈칸 채우기'로 활약하며 당대 발매된 수많은 앨범에 이름을 남겼다. 코러스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시작은 인하대학교 창작가요 동아리 '꼬망스'다. 데뷔곡 'Break away'를 써준 (이)현정 언니는 동아리 2년 선배고, 함께 했던 (김)효수는 2년 후배다. 어느 날 현정 언니가 소찬휘 선배 앨범에 곡을 수록하게 되면서 셋이 같이 코러스를 해보자고 제안해서 한 곡 녹음을 해봤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때부터 프로듀서분께서 앨범 전체를 맡겨 주셨고 나아가 광화문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대부분의 작품에 코러스로 참여했다. 입소문이 나다 보니 그렇게 한 6~7년 정도를 하게 됐다. 셋 모두 톤이 다름에도 배음 효과를 통해 서로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줄 수 있다는 걸 이때 느꼈다.
'꼬망스'는 인하대학교에서 하나의 단과로 치부될 만큼 유명 뮤지션들이 거쳐 간 모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학교 시절 기억에 남는 동아리 에피소드가 있다면.
그 시절 가요제에 많이 출전했는데 성과가 나름 괜찮았다. 1995년 MBC 강변가요제 은상을 수상했을 때도 같이 나갔던 친구와 그 곡을 써주신 선배 모두 동아리 멤버였다. 한 기수에 10명도 채 안 되는 인원이었지만 걸출한 음악인들이 많이 탄생한 걸 보면 다들 열정이 대단했었다.
인천의 음악이 유독 강점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항구 도시 특성상 문물을 빠르게 흡수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 전에 기본적으로 바다 주변 사람들은 파도처럼 감정의 출렁임이 큰 것 같다. 일반인으로 살기는 불편할지라도 음악처럼 감성적인 예술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어느 정도의 우여곡절이 음악의 깊이를 더해주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믿고 있다.
지금의 신연아를 만든 가수 혹은 음악이 있다면.
블루스에 빠져 지내던 대학 시절엔 허스키한 중저음의 프랑스 여성 보컬 파트리샤 카스를 즐겨 들었다. 그러다 졸업할 때쯤 인천대 출신인 낯선 사람들의 데뷔를 마주하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동아리 멤버들과 둘러앉아 앨범을 듣고 이렇게 훌륭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좌절감이 몰려왔다. 그 정도로 낯선 사람들 1집은 내게 최고의 명반으로 남아있다. 베이비페이스 같은 알앤비에 관심을 두다가도 프랑스에서 재즈와 월드 뮤직에 끌리고, 맨하탄 트랜스퍼부터 스테이시 켄트까지 변했던 것처럼 그때그때 꽂힌 장르와 아티스트에 귀가 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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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은 어떻게 결정하게 된 건가.
코러스 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스스로가 노래 자판기 같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다 한 작곡가분의 추천으로 유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는데 마침 나와 똑같은 불문과였던 친언니가 프랑스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어서 나도 겸사겸사 따라가게 됐다. 잠시 코러스 생활을 접고 도망치듯 떠나갔던 상황이라 마땅한 계획은 없었다.
타지에서의 유학 생활은 할 만했는지.
대학생 때 노래만 하느라 불어 실력이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보니 현지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음악을 접을 생각까지 하며 방황기를 겪다가 우연히 한국에서 가져온 테이프 하나를 탁 틀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음악을 안 하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자만이었다는 걸 느끼고 그때부터 학교를 알아보고 C.I.M 음악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학교에선 음악 용어를 쓰다 보니 어학원에서 배운 단어는 무용지물 수준이었다. 제일 어려운 수업이 화성학이었는데 학기 전에 불어 화성학책을 살짝 봐둔 게 그나마 도움이 됐다. 그렇게 눈치껏 하루하루 배워가긴 했지만 주변 친구들과 깊숙한 대화를 나누긴 힘들었다. 물론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 사귀게 되었던 친구가 지금의 남편이 됐다.
당시의 추억들이 한국에 돌아온 이후 음악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어학원과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시선이 본인에게 맞춰져 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하고 싶은지 분석이 전부 끝난 상태였는데 그게 참 부러웠다. 나도 그때부터 주변 환경에 개의치 않고 온전히 나를 바라보는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유행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했고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며 다양성을 존중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훗날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큰 양분이 되어 돌아왔다. 입시만 봐도 우리는 어떤 선을 넘기 위한 단점 보완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그 시간에 나만의 장점을 발굴해 더욱 발전시키는 게 훨씬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학생들이 스스로가 가장 빛날 수 있는 포인트를 뽑아내는 게 교육자의 임무라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항상 옆 친구 노래 따라 부르지 말라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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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호원대학교 실용음악학부에서 보컬 전공 교수를, 그리고 K-POP학부에서 학과장을 맡고 있다. 교수직은 어떻게 맡게 되었는지.
교수를 하기 전만 해도 가수 활동에 대한 의욕이 남아있던 때라 교수직을 거절했었다. 그런데도 정원영 교수님은 학교에 있으면 음악을 더 잘하고 많이 하게 될 거라며 불굴의 의지로 계속 설득하셨다. 그냥 믿어 보자 하고 시작했는데 정말 다른 즐거움, 다른 행복감을 느끼게 되었다.
가수와 교수 활동의 연차가 거의 비슷하다. 단상과 무대에 오를 때 차이가 있다면.
가수로 활동할 때는 온전히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 시선이 나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학교에 있으면서 나보다 남을 더 많이 바라보니까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타인의 인생에, 특히 가치관을 정립해 나가는 성장기에 내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거니까 모든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되더라.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스스로를 더 솔직하게 바라보게 됐다. 막말로 애들한테 하는 만큼 내가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다. 예전엔 무대에서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됐고 음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볼 여유가 생겼다. 가르치면서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겸손함으로 이끌었다.
강의할 때 중점을 두는 교육 방침이 있다면.
모든 게 다 그렇겠지만 노래도 결국 몸으로 하는 거라 마음에 따라 소리 내는 게 달라진다.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내 환부를 다 보여줘야 치료가 가능한 것처럼, 개선에 도달하기 위해선 나와의 시간이 즐거워져야 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나부터 편하게 느끼고 다가올 수 있게끔 내 고민도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그들의 걱정 또한 최대한 이해하고 들어주려 한다. 과거의 내가 배울 곳이 많지 않아서 느꼈던 답답함을 제자들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진 않다.
기억에 남는, 눈길이 가던 친구가 있다면 간단히 소개 부탁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친구들이 참 많다. 정채원이란 친구는 대학원이나 유학을 통해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배움을 포기했는데, 그렇다고 불만도 없더라. 그 모습을 보고 이 친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막연한 기대로 주변 친구들과 함께 앨범을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줬고 올해 초에 EP < Attention >을 발매했다. 최근 연락을 해보니 본인이 나왔던 예고에 선생님으로 가게 됐다면서 그 월급으로 유럽으로 공부하러 가겠다고 말하는데 내가 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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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학과장 신연아는 해외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글로벌 K팝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다. 프랑스에 머물렀던 2000년과 비교해 보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뒤바뀌었고, 크게 일조한 게 바로 K팝이다. 2016년에 학교에서 해외 6개국을 돌며 K팝을 알려주는 K팝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외국인 친구들이 들고 오는 음악이 단순히 아이돌에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방탄소년단 같은 그룹을 시작으로 아이유부터 이적, 박효신, 성시경까지 다양하게 소비하면서 그것 때문에 한국어를 배우고 있더라. 그야말로 엄청난 문화적 파장이다.
물론 우리 스스로 아이돌 음악을 경시하던 시기도 있었다. 춤만 잘 추고 노래는 못 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지만 춤이라도 잘 추는 게 어딘가라는 생각을 한다. 가만히 서서 노래해도 상당한 근력을 요구하는데 춤까지 추려면 체육인만큼 체력 단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결과를 내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고 나아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는 영역까지 도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박수받아 마땅하다.
음악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지.
연습이 잘 되는 매 순간순간이 행복하다. 대부분 사람 앞에서 노래할 때가 행복할 거라 생각하지만 무대에서 늘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감사한 일이지 혼자 마음껏 행복한 것과는 살짝 거리가 있다. 그래서 컨디션이 잘 안 돌아오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게 아닌가 불안해하다가도 노래가 잘 되고 내가 쓴 곡이 제법 괜찮을 땐 뿌듯하다. 결국 나 자신과의 콘서트인 셈이다.
빅마마 그리고 솔로 활동을 통틀어서 꼽는 신연아의 Best 5는 무엇인가.
빅마마 '거부' (2003) - 사회에 대한 분노 지수가 한창일 때 가사를 썼다. 지금 보면 그때 왜 그렇게 썼을까 싶다가도 당시의 반항 정신을 어느 정도 대신해 주지 않았나 싶어 뿌듯한 면도 있다.
빅마마 'Thanks to..' (2006) - 팬들을 향한 감사함을 담아 가사를 써 내려간 곡인데, 최근에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빅마마 '사랑' (2010) -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작곡가분께서 써주신 곡이다. 클래시컬한 멜로디 위에 사랑의 이면을 철학적으로 담았는데 빅마마 5집에 담겨서 무대에서 보여드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신연아 'Cosmos' (2014) - 사랑을 주고받을 존재 하나면 우주를 다 가진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절대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 그런지 가사가 아름답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신연아 '늙은 어미의 노래' (2014) - 죽음을 앞둔 어머니가 남겨둔 자식들을 걱정하는 내용의 노래다. 멜로디도 좋지만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다면 처음 접한 분들도 쉽게 감동할 수 있는 좋은 곡이다.
끝으로 신연아는 어떤 음악인으로 남고 싶은지.
나 자신은 물론 환경으로부터 자립하기 위해선 일단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이 많아야 한다. 곡 작업은 물론이고 각국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음악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진행 : 장준환, 정다열, 김태훈
정리 : 정다열
사진 : 정다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