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와 온도를 대비한 가사의 '덧칠'에서 희망을 향한 지향이 잘 드러난다. 알앤비 가수 콜드와 함께한 이 트랙은 서정적인 기타 사운드에 터 잡아 어둠 끝 아침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다. 젊음의 불안을 피어날 꽃에 비유한 신스팝 '개화'에서도 그 방향성은 일관적이다. 트렌디한 보컬 죠지와의 앙상블은 곡에 세련미를 더할 뿐 아니라 세대 간 소통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가수들의 얽힘은 서로를 향한 위로를 담고 있기에 상호적이다.
앨범 전반을 휘감는 최백호의 농익은 목소리가 특유의 극적인 표현으로 음반의 서사를 단단하게 한다. 지나간 것들의 의미를 완성하는 이별을 그린 '나를 떠나가는 것들'에선 정승환의 멋들어진 보컬을 차분하게 받쳐주는가 하면 시간의 흐름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변화'를 연주할 땐 거칠게 내지르며 감정을 발한다. 이 모든 순간에서 그는 열창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마치 조용히 눈을 감고 편안하게 쉬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 찰나 (刹那) >는 최백호가 멘토로 있는 신인 작곡가 그룹과 협업한 음반이다. 비슷한 연배의 뮤지션 정미조와 함께한 '그 사람'을 제외하고는 피쳐링한 가수들도 전부 나이 차가 꽤 나는 후배 아티스트들이다. 살아온 기간과 방식이 다르더라도 모두가 공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양태를 포착하고, 이를 교집합으로 삼아 전혀 다른 문화를 경험한 이들과 소통하며 추억을 접합하는 모양새다.
무게감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층적으로 쌓아 올린 세밀한 표현도 놀랍지만 가장 도드라지는 건 철학적인 가사를 친절하게 풀어낸 감정의 태도다. 그래서 이 앨범을 들으면 그의 경력이나 나이 등 어떤 권위를 발할 수 있는 요소가 의도적으로 감추어져 있다는 기분이 든다. 깊이를 자랑하지 않으며 그저 담백하게 드러낸 차분한 감성이 듣는 이에게 색다른 명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짧은 순간들이 모여 인생을 이룬다면 우리의 모든 기억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이유가 된다. 후회도, 기쁨도, 슬픔도, 지나간 사랑도 비단 기억의 파편일 뿐만 아니라 지금을 있게 만든 삶의 궤적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의 가객이기에 전할 수 있는 통찰이라고 단정 짓기엔 세대를 넘나드는 그의 소통을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의 추억들이 아주 짧기에 더 소중하다는 그의 메시지가 모든 세대에게 울림이 있는 이유다.
-수록곡-
1. 찰나의 순간 (Narr. ZICO)
2. 찰나 (刹那)

3. 덧칠 (Feat. Colde)
4. 개화 (Feat. 죠지)

5. 변화 (Feat. 타이거JK)
6. 그 사람 (Feat. 정미조)

7. 나를 떠나가는 것들 (Feat. 정승환)
8. 책 (Special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