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음악은 등장인물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수반해 짧은 주제나 동기를 반복해 연주한다. 알다시피 할리우드의 영화 음악, 엄밀히 스코어(Original Score)의 탄생이 바그너(Wagner)가 가극에 쓴 라이트모티프(Leitmotif) 방식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 악구나 악절을 통해 극의 주요한 악상은 주제적 정체성을 지닌 선율로 명징하게 표현되고, 기악 편성과 그 연주 방식에 따라 스코어 전반에서 다채롭게 변주된다.
흔히 주제곡, 또는 주제음악으로 아는 모티프와 멜로디가 영화를 보면서 확실히 인식되는 순간을 관객들은 뇌리에 새긴다. 음악이 끝나면 그 전개 장면에 대한 기억은 마음에서 우러난 감동과 함께 체화된다. 수많은 영화 속에서 그러나 영화 주제의 함축성, 극의 서사구조를 보강하는 요소로서의 기능성, 음악 자체의 본질적 순수성을 모두 갖춘 오리지널 스코어를 접할 기회는 드물다.
엔니오 모리코네(Enn io Morricone)의 1986 년 영화 < 미션 >의 스코어는 그러한 면에서 불후의 걸작이다. 베트남전 명화 < 킬링 필드 >의 감독 롤랑 조페의 연출과 로버트 드니로, 제레미 아이언스, 에이단 퀸, 리암 니슨과 같은 명배우들의 출연, 1740 년대 남미 과라니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과정에서 신앙과 도덕의 문제를 탐구한 서사, 거장 모리코네의 음악은 거기에 최후의 방점과 같았다.
현대 클래식의 장인이 부여한 풍부한 영감은 영화의 극적 정체성 그 자체였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시각적 연출과 배우들의 명연기, 그 배후에서 음악은 드라마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완벽한 조화를 이뤄냈다.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포함해 아카데미 시상식 7개 부문 후보로지명된 가운데, 음악상(Best Original Score)에 엔니오 모리코네가 당당히 거명되었음은 물론이다. 눈부신 장관, 자기성찰의 심오하고 복잡한 내용, 화면을 종교적이고 민속적인 음악 풍광으로 꽉 채운 마에스트로의 스코어에 평단에선 찬사를 보낸 만큼 다관왕 수상에 대한 기대와 열망은 지대했다.
저조한 흥행성적처럼 촬영상(Best Cinematography) 수상에 만족해야 했지만, 모리코네의 스코어는 음악 자체로 영화의 명성과 후대에 길이 남을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오스카 이전 글든 글로브(Golden Globe)와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BAFTA)에서의 수상으로 그 진가를 이미 확증한 모리코네는 < 라운드 미드나잇 >의 허비 행콕에게 오스카 트로피를 양보해야 했지만, 전통 클래식에 근거해 한층 더 원숙한 경지에 이른 대가의 최고작으로 < 미션 >을 손꼽는데 이견은 없었다.
조페 감독의 환대 속에 함께한 모리코네는 자신의 음악이 토착 원시부족에게 언어처럼 다가가야 하고, 그들의 기운이 배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따라 팬파이프와 다양한 민속 타악기를 우선 기본 악기로 편성했다. 가톨릭 예수회 전통을 지원하는 전례 합창곡도 영화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였다. 선악의 세력다툼, 탐욕과 관용의 대치, 무력과 신앙 사이에서의 쟁투를 그린 이야기의 화면 전개에 부합하는 음악을 병치해야 하는 것 또한 고려해야 했다.
모리코네는 무엇보다 목관 악기를 절묘하게 사용해 영혼을 울리고 감동을 불러내는 낭만주의로 세례식을 주관했다. 극 중 가브리엘 신부에게 주어진 악기인 오보에를 중심으로 모리코네는 세 가지 주제를 기본으로 하고 두 가지 보조 테마를 쓰는 식으로 스코어를 구성했다. 첫번째 주제는 가브리엘 신부를 위한 테마 'Gabriel's Oboe'(가브리엘의 오보에), 이 곡은 처음에 제레미 아이언스의 가브리엘 신부가 원주민들에게 들려주는 연주로 등장한다. 그것은 그의 정체성 역할을 한다. 팀파니와 베이스 전주곡은 인간의 손으로 작곡된 가장 숭고한 멜로디 중 하나를 소개하고, 오보에 독주의 황홀한 독백을 특징으로 현악, 하프시코드 앙상블이 전하는 영묘하고 매혹적인 대위선율이 압권. 슬프도록 아름다운 테마는 과라니 부족을 감화시키고 믿음을 얻는 가브리엘 신부의 겸손과 연민, 그리고 평화롭고 온화한 본질을 완벽하게 포착해낸다.
두 번째 주제는 하프와 현을 위한 경이롭고 아름다운 선율의 'Falls', 서정적이지만 애조띤 곡조를 들려준다. 하프에 이어 민속적인 풍의 팬플루트와 피치카토 주법 베이스로 차분하게 시작하는 곡은 점진적으로 웅대하게 고조되는 관현악 협주로 전개된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이자 과라니 문화의 중심지로서 고대문화의 중요성을 지닌 이구아수 폭포의 위용을 표현한 한편 영화 전체를 물들인 투쟁, 고행과 죽음의 장면을 동반하는 주제곡. 이구아수 폭포의테마는 영원한 샘을 유지하고, 영양을 공급하며, 정화를 담당하는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정체성 역할을 한다. 이 주제는 또한 'The mission'과 'Miserere'에서 재연되어 나타난다.
세 번째는 과라니 부족을 위한 선교의 테마. 'On earth as it is in heaven'에서 등장한다.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란 성경 구절을 제목으로 쓴 이 곡은 하프시코드, 현악기, 라틴 합창단의 성가를 도입으로 율동적으로 발전하는 테마로, 전통 민속 타악기를 배후에 깔고 합창을 보조하는 가브리엘의 테마가 대위선율로 하모니를 자아낸다. 그것은 환영과 행복, 그리고 낙관주의를 발산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제가 무작위 리듬에서 체계적인 멜로디로 어떻게 진화하는가이며, 이는 가브리엘 신부의 신앙과 음악 도입을 통해 원주민들이 종교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반영한다. 서구 문명과 교회가 과라니 부족과의 사이에서 빚어내는 문화적 충돌과 융화를 표현한 곡.
세 가지 주제는 악보에 써낸 스코어 전반에 토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일례로 'Vita Nostra'에서 조옮김 된 가브리엘의 오보에 테마에 민속적 타악기를 수반하고, 미션 테마의 영창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식으로 부족을 위한 변주를 소개한다.보조 테마로는 로버트 드 니로의 로드리고와 그의 동생의 관계를 위한 주제 'Brothers'가 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플루트 독주, 기타, 부드러운 현악 화음이 전하는 온기가 사랑과 배신으로 둘을 갈라놓기 전 형제애로 가득하다. 한편 갈등의 주제는 스코어에서 가장 어두운 악상으로 기본 테마와 병치해 각각의 이면을 연상하도록 완벽하게 착상되었다. 최저 음역에서 진정 암울하고 위협적인 음감을 주는 바순 연주로 구동하고, 점점 증대하는 현악이 합류하며 불길한 분위기로 고조된다.
'Climb'에서 모리코네는 폭포 테마를 현악을 통해 다소 어둡고 안정적인 한편 격정적인 음감의 연주로 전한다. 리암 니슨의 필딩 신부가 이구아수 폭로를 등반해 가브리엘 신부와 만나는것처럼, 위험해 보이는 순간과 황홀한 경관, 그리고 성공과 재회의 감격이 함께 하는 때까지 의 과정을 보강하는 지시곡. 곧이어 'Remorse'에서는 저음 현으로 어둡게 변주한 폭포의 테마를 재편성해 멘도자의 행동과 구원에 대한 필요성, 가브리엘이 속죄의 의미로 그에게 부과한 어려운 도전을 되새기게 한다. 예리하면서도 둔중한 불협화음 조의 현악을 강조해 불길한 악절을 삽입한 곡의 중반부에서는 < 엑소시스트 2 >(1977 )을 연상시킬 만큼 섬뜩하게 심리적불안과 공포를 불러낸다.
영화와 동명의 제목을 가진 'The Mission'은 두 번째 주제 '폭포'를 변주한 곡으로 목가적인 피리와 감성적인 현의 선율이 부드럽고 평화로운 협화음을 이루면서 가브리엘 신부가 전하는 지상낙원의 감성으로 관객을 이끈다. 뒤이어지는 'River'는 바티칸에서 파견된 관리가 가브리엘 신부를 방문하기 위해 이구아수강 줄기를 따라 이동하는 여정을 반복하는 타악기와 목가적인 목관 악기 협주로 보강하며, 과라니 부족을 위한 합창이 가브리엘의 종교적 사명을 재차 강조한다.
두 개의 전례 합창 음악인 'Ave Maria Guaran í'와 'Te Deum Guaran í'에서 모리코네는 남미 원주민의 합창을 편성해 한층 더 영적이고 고대의 원형에 접근한 보컬 하모니를 들려준다.'Alone'에서 모리코네는 타악기와 현악을 중심으로 불안과 공포, 그리고 긴장으로 연속된 순간의 분위기를 보강한다. 로드리고와 과라니 부족이 포르투갈 진영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동안의 연속장면에 쓰인 지시 악곡은 점점 수위를 높이는 불협화음으로 일관한다.
종반의 대부분은 가브리엘과 멘도자의 과라니 전사 그룹 대 강력한 포르투갈 식민 군대 간의 절정의 대결을 보강하는 음악이다. 'Penance'는 바순을 주요 악기로 현악, 강세를 주는 금관악, 그리고 타악기와 결합해 강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Refusal'은 팬플루트와 목관 악기, 타악기, 피아노, 현악 반주가 불협화음 조로 전개되는 가운데, 군국주의적인 나팔 소리가 상징성을 부여한다. 전자는 이후 마침내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쥔 작품 < 헤이트풀 에잇 >에서 아주 효과적으로 재연되고, 후자는 1966 년 < 알제리 전투 >(The Battle of Algiers)에 쓴 추상적이고 불협화음적인작법을 재구성했다.
'The Sword'는 가브리엘의 오보에 주제를 트럼펫 팡파르를 상징으로 한 피아노와 관현악 불협화음에 삽입함으로써 군국주의 식민지화에 맞서 비무장 평화 저항으로 원주민들을 선도하는 가브리엘 신부를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Miserere'(자비를 베푸소서, 불쌍히 여기소서)는 가브리엘 신부의 주제를 어둡고 회한에 가득 찬 현악과 베이스 플루트로 반주한다. 엄숙하면서 아름다운 소년 소프라노의 독창이 영화 < 미션 >의 주제를 다시금 환기하게 하면서 스코어도 영화와 함께 막을 내린다.
모리코네의 음악은 아마존 정글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의 창조물 중 하나로 묘사한다.예수회 사제들을 거룩한 사람들로 악보에 그렸다. 과라니 원시 부족민들을 돕고 당시 문명화된 현대의 세계로 안내하고자 노력하는 사제들의 모습들을 엄숙하고 장엄한 교회 전통의 클래식 음악으로 보강한다. 폭력과 죽음으로 얼룩진 장면에도 우아하고 영적인 음악을 병치해 그 이미지가 마치 꿈처럼 보이게 했다. 그의 음악이 없으면 단지 무섭고 끔찍했을 극 중 상황 전개가 종교적 이해를 통해 상쇄되거나 치환된 장면들로 받아들여진다.
영화의 주제음악이 대중들의 의식에 시대를 초월하는 영감을 불어넣는 작품의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모리코네의 “미션”은 형언하기 어려운 원초적 감동이 있다. 지구촌 사람들의 내면에 잠재한 영성과 연결해 의식을 깨우는 테마음악에는 천지창조에 대한 인류의 신앙적 영광과 경의의 보편정서가 내재해 있다. 모리코네는 영화 < 미션 >을 통해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의 영적감흥을 전 세계에 전파했다. '가브리엘의 오보에'가 클래식 레퍼토리로 편곡되어 연주되고, 소프라노 사라 브라이트만이 '넬라 판타지아'로 불러 대중적 인기를 누린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음악이 고전음악 시대에 나왔다면 오늘날 클래식 명곡으로 사랑받았을 것이다.
[사운드트랙 수록곡]
01. On Earth As It Is In Heaven(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02. Falls(폭포)
03. Gabriel's Oboe(가브리엘의 오보에)
04. Ave Maria Guaraní(성모송 과라니)
05. Brothers(형제)
06. Carlott a(카를로타)
07. Vita Nostra(우리의 삶)
08. Climb(등반)
09. Remorse(회한)
10. Penance(참회)
11. The Mission(사명)
12. River(강)
13. Gabriel's Oboe(가브리엘의 오보에)
14. Te Deum Guaran í(테데움 과라니)
15. Refusal(거절)
16. Asun cíon(아순시온)
17. Alone(홀로)
18. Guaran í(과라니)
19. The Sword(검)
20. Miserere(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