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일곱 번째는 브릿팝의 전설, 오아시스의 태동부터 1996년 넵워스 공연까지의 여정을 다룬 영화 < 슈퍼소닉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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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맨체스터 공영주택 단지 출신의 두 형제는 성장 과정부터 범상치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악동이라 소문이 자자했던 둘은 매일 치고받고 싸우기 일쑤였고, 자전거를 훔치거나 선생님에게 밀가루를 던지는 등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 무단결석과 조퇴는 일상이었다. 학교에서는 퇴학을 당했으며, 집에서는 폭행을 일삼던 아버지를 버티지 못해 어머니와 함께 도망쳐 나오기도 했다. 안정이 없던 외곽의 삶 가운데 유일한 낙이라곤, 그저 우연히 집에 방치되어 있던 기타에 몰두하거나 실업수당으로 음반과 마리화나를 사는 일뿐이었다.
훗날 오아시스의 보컬이 되는 동생 리암 갤러거와 작곡과 기타를 담당한 형 노엘 갤러거의 가정사는 언뜻 불우함의 극치를 달리는 듯 보인다. 다만 그들은 지난 어린 시절을 지옥이 아닌 '매일 아침 좋은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눈을 뜨던 날들'로 회상한다. 매사에 호전적이고 행동 하나하나가 다소 비상식적일지라도, 언제나 긍정으로 작동하며 음악에는 항상 열정과 진심으로 대한 두 천재. “오아시스는 빌어먹을 페라리 같았다”는 자조적인 표현에서 미루어 볼 수 있듯, 그들은 정말 '페라리'처럼 밟는 족족 멋대로 뛰쳐나갈지언정 그 성능과 속도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월등한 폭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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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가 결성된 것은 어떤 단순한 계기에서였다. 매드체스터 시절 이름을 날린 밴드 인스파이럴 카페츠의 공연 스태프로 일하고 있던 노엘은 투어 도중 해고를 당하게 되고, 집에 돌아가기 전 어머니와 안부를 나누는 도중 동생 리암이 밴드를 한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흥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타를 치기만 하면 시끄럽다며 소리치던 동생이 이젠 밴드에서 보컬을 하고 있다니. 호기심에 노엘은 보드워크(Boardwalk) 클럽에서 열리는 리암의 공연을 보러 가게 되고, 본 김에 합주실까지 따라갔으며, 간 김에 본인이 만든 자작곡을 다 같이 연주해 보기로 한다. 이 사소한 만남이 본격적인 오아시스 5인 체제의 시작이었다.
처음 2년은 잘 풀리지 않았지만, 1993년 우연히 서게 된 글래스고의 한 클럽에서 기회는 찾아왔다. 그날 밤, 프라이멀 스크림,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등이 거쳐 간 영국 인디 록의 전설적 레이블 '크리에이션 레코드'의 설립자 앨런 맥기의 마음을 사로잡아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한 것. 부진하던 실록의 문장들은 이때부터 폭발적으로 휘갈겨 적어지기 시작한다. 동네 술집을 전전하던 무명 밴드가 '영국 브릿팝 운동'의 주역이자 '쿨 브리테니아' 서막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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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냥 날고 싶나 봐. 살고 싶고, 죽기 싫은가봐. /
어쩌면 그냥 숨 쉬고 싶은 걸지도, 어쩌면 그냥 믿기 싫은 걸지도 모르지. /
아마 우린 같은 것을 보는듯해. 우리가 보는 걸 아무도 못 본단 말이지. /
너와 나는 영원히 살 거야.” – Live Forever 中
운명은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날 노엘이 자작곡 하나를 가져와 들려주자 긴장 섞인 공기 속에는 의미심장한 열기마저 살짝 웃돌았다. “정말 네가 쓴 곡이 맞아?” 자리에 있던 멤버 모두가 곡이 가진 가능성을 단번에 직감했다. 희대의 명곡 'Live forever'의 탄생 설화다.
이 곡이 실린 1994년 데뷔 앨범 < Definitely Maybe >는 그 발매 동시에 영국을 집어삼켰다. 앨범 차트 1위 정복과 브릿 어워즈를 휩쓸고, 1,500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의 판매고를 달성했다. 당시 전 세계 음악 시장에는 미국 밴드 너바나를 필두로 한 우울하고 거친 '그런지(Grunge)' 음악이 유행했는데, 그 대항마로 영국의 신인은 드디어 '쉽고 직선적이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록 음악'을 내걸었다. 슬로건도 정확히 반대였다. 너바나의 보컬 커트 코베인의 충격적인 자살 소식으로 패배주의가 만연하던 분위기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영원히 살자'는 희망의 찬가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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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는 금세 영국 음악의 부흥을 이끌 영웅으로 떠올랐지만, 불어난 큰 인기에는 큰 부작용도 따랐다.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감시하는 이들이 생겼으며,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은 비즈니스의 개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밴드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굽히기 싫어하는 성격'은 기자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고 매체에서는 불명예스러운 제목과 함께 이들의 이름이 단골처럼 오르내렸다. 음악 업계는 동시대 밴드인 블러와의 차트 경쟁 구도를 조장해 부차적인 이목과 팬덤 수익만을 챙기기 바빴다.
그럴수록 후속작의 등장이 중요했다. 인기를 유지하려면 이 기세를 몰아 입지를 굳힐 만한 것이 필요했고, 우수한 퀄리티는 물론 제작 시간의 단축까지도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들은 퀸이 < A Night At The Opera >를 작업한 록필트 스튜디오로 장소를 옮겼고,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년 멤버이자 드러머인 토니 맥캐롤을 방출하기에 이른다. 성패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거리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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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5년, 2집 <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는 1집을 아득히 넘어선 성과를 가져왔다. 밴드의 선택은 부드러운 이지리스닝의 정통 로큰롤, 영국 현지에서는 비틀스의 재림이라는 반응이 터져 나왔고 그들의 음악은 남녀노소, 각기 계층 모두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일명 '모닝 글로리'라 불리는 이 음반은 역대 명반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단골 중 하나이자, 오아시스 커리어를 통틀어 1집과 함께 대표작으로도 점쳐진다. 1990년대 영국에서 제일 많이 팔린 음반이 되었으며, 'Wonderwall'은 미국 차트 톱10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두 형제의 실력 역시 전성기에 달해 있었다. 작중 노엘이 하루 만에 선율과 노랫말을 뚝딱 짜 전달하면 리암이 한번 듣고 단번에 불러 곡을 완성하는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물론 그 외 일정에는 술을 마시며 축구 경기를 보거나, 싸우다 스튜디오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수록곡 중 다섯 곡을 만드는 데 소요된 시간은 단 5일. 당시 그들은 버튼을 누르면 명곡이 나오는 자판기와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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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대망의 하이라이트이자 영화의 중심 주제이기도 한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이 열렸다. 영국 인구의 4%가 티켓을 얻기 위해 몰려들었고 뉴스는 현장 소식을 담기 위해 앞다투어 분주했다. 이틀간 모여든 인파는 무려 25만 명, 밴드의 인기가 관중으로 환산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치다. < 슈퍼소닉 > 역시 그 생생한 실황을 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유유히 뒷짐을 쥔 채 목을 쭉 뻗어 소리를 긁어내듯 열창하는 리암 앞으로 수많은 관중이 다 같이 'Champagne supernova'를 따라 부르는 장면은 묘하고도 울컥한 감동을 낳는다.
그럼에도 헬기에 타기 전, 그들이 스스로 회자하는 장면은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뭔가 시작이라기보다는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신 이런 일이 없을 것 같아. 너무 짧은 시간에 이뤄진 일이란 말이지.” 불과 2년 반의 시간이었다. 노동 계급 출신의 청년들에게는 어느덧 감당할 수 없는 돈과 명예가 손에 쥐어져 있었고, 회사는 그들을 밴드보다 잘 팔리는 브랜드로 인식하고 있었다. 묵묵히 뒤에서 양질의 믹싱과 라이브 음향을 전담하던 숨겨진 밴드의 공신, 마크 코일마저 귀에 이상이 생겨 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세상 아래 변하지 않은 것은 없다는 듯 하늘같이 치솟던 낙관주의 브릿팝의 인기도 거짓말같이 저물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오아시스의 광채는 빛이 바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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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입 맞추고 키스마크를 남겼다고 해서, 더 높이 올라갈 수 없다고 해서, 계속하지 말란 법은 없는 거잖아?
오아시스의 매력은 영국에 브릿팝 신드롬과 희망찬 시대정신을 가져다준 공신이라는 점도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지조를 보인 팀이라는 점에서도 일견 기인한다. 어떠한 인터뷰에도 그들은 늘 반항적인 태도로 기성세대에 굽신대지 않았고, 반대로 자기를 찾아준 팬들에게는 그가 누구라도 겸손하게 감사를 표할 줄 알았으며, 세태가 바뀜에도 본인이 생각하는 음악의 이상을 꿋꿋이 지켜나갔다. 물론 형제간의 불화를 이유로 해체의 수순을 밟았지만, 7집의 디스코그래피 동안 적어도 오아시스는 속도를 늦추거나 주행을 멈추지는 않았다.
2016년 작품인 < 슈퍼소닉 >에는 형제의 성장 과정부터 밴드의 희로애락, 성공 이면에 존재하는 오프더레코드, 그리고 자잘한 화합과 갈등이 적나라하게 담긴다. 노엘과 리암은 물론 주변인이 직접 내레이션에 참여하여 생동감을 높였고 재현이 불가능한 장면은 재치 있는 애니메이션 화폭으로 대체해 오락 영화의 질감을 가져오기도 했다. 오아시스라는 밴드의 입문용으로도, 팬서비스의 역할로도 충분한 작품이다. 그뿐인가. 그들의 역사는 화력 좋은 초음속(Supersonic) 폭죽처럼 촉발되었지만, 그 여파는 밤하늘에 흩뿌려진 샴페인 초신성(Shampagne Supernova)처럼 여기저기 곳곳에서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겠지만, 이들의 노래는 굳건한 길잡이별이 되어 많은 후배 아티스트를 견인하는 등대가 되어줄 것이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Shakermaker
2. Life in vain
3. Inspiral Carpets 'Saturn 5'
4. The Stone Roses 'This is the one'
5. Morning glory
6. Wonderwall
7. Sad song
8. It's better people
9. Acquiesce
10. F***** in the bushes
11. But what if
12. All around the world
13. Up in the sky
14. Bring it on down
15. Talk tonight
16. Rock 'n' roll star
17. Don't look back in anger
18. Columbia
19. Supersonic
20. The masterplan
21. Cigarettes & alcohol
22. See the sun
23. Live forever
24. Supersonic (live on the word)
25. Digsy's dinner
26. Champagne supernova
27. Sad s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