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열여섯 번째는 컨트리 록의 태동을 일군 캐나다 출신 밴드, 더 밴드를 다룬 영화 < 라스트 왈츠 >다.

1978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 라스트 왈츠 >는 제목처럼 어떤 이들의 마지막 몸짓을 그린다. 이 작품은 지나간 유행에서 자신의 끝자락을 읽어낸 한 밴드의 콘서트 실황이다. 팀의 이름은 참으로 당당하게도 '더 밴드(The Band)'다. 능력 있는 프로모터 빌 그레이엄의 지휘하에 콘서트가 열렸고, 당시 30대였던 마틴 스코세이지의 연출로 음악 다큐멘터리의 전설이 되어 2019년 미국 국립영화등기부에 올랐다.

더 밴드는 대부분의 멤버가 캐나다 출신인 록 밴드다. 데뷔 앨범 < Music From Big Pink >와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정규 2집 앨범 < The Band >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컨트리, 블루스, 포크를 아우르는 이들은 당시 유행한 사이키델릭의 영향이 짙었던 다른 뮤지션들과는 달리 록의 뿌리에 집중하는 루츠 록의 사운드를 연주한다. 밥 딜런의 백 밴드로 활동했던 이력이 있어 그와의 교우 관계로도 유명하다. 때문에 영화에서도 밥 딜런이 큰 축을 이룬다.


마빈 게이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Don't do it'을 연주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최선을 다했다는 가사가 앵콜곡을 연주 중인 더 밴드의 모습과 교차하며 묘한 느낌을 준다. 정규 공연이 끝난 후에 연주한 곡을 도입부에 배치한 판단도 흥미롭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마치 콘서트를 직접 관람하는 듯한 현장감이다. 비트에 맞춰 장면을 전환하는 모습과 관객의 시선에서 멤버들의 연주를 바라보는 연출이 음악 감상에 몰입도를 더한다.

콘서트 참여진의 명단이 화려하다. 앞서 언급한 밥 딜런과 더불어 링고 스타, 에릭 클랩튼, 닐 영, 조니 미첼, 밴 모리슨, 머디 워터스 등 로큰롤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출연한다. 이들이 공연에 함께한 것은 더 밴드와의 인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 시대를 장식한 밴드가 마지막을 암시하는 모습이 그들의 마음에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세월이 지나 이 시대를 관조하는 입장에서는 이들의 화려한 열창이 다소 서글프게 느껴진다.


팀의 주축인 기타리스트 로비 로버트슨은 반복된 투어와 상업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앨범에 지쳐 이 공연을 기점으로 멤버들에게 은퇴를 설득한다. 드러머 레번 헬름이 자서전에서 밝힌 내용을 고려하면 멤버들이 로비 로버트슨의 설득에 진정으로 동의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이 콘서트 이후 더 밴드는 스튜디오 앨범을 하나 내곤 사실상 해체로 불릴 수 있는 긴 휴식기를 가진다. 원래 마지막이 오기 전 스스로 끝을 인식하는 뮤지션은 거의 없다.

록 팬들에게 록 다큐멘터리 중 가장 좋은 작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지면 < 우드스탁 >과 < 라스트 왈츠 >를 고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두 작품이 꼽히는 이유로 단순히 많은 뮤지션의 참여, 콘서트 촬영의 패러다임 구축 등의 설명들만 제시한다면 그건 충분치 않다. 이 영화들이 위대한 이유는 지나간 시대를 가장 진솔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히피 문화의 절정, 다른 하나는 시대에 지친 영웅의 작별 인사다.


< 우드스탁 >보다는 비교적 얌전하고 보수적인 잔치이긴 하나 변화의 물살을 담담하게 맞이한 뮤지션의 자의적인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 라스트 왈츠 >에는 얼마간의 처연함이 있다. 어떤 측면에선 그들의 순수성이 거대화한 음악 산업의 덩치 앞에서 무력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밴드의 힘찬 마지막 춤은 우리에게 과거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관해 생각하게 한다. 레트로 열풍이 끝을 모르고 지속되는 지금이라 더 그렇다.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1. Who do you love
2. Such a night
3. Helpless
4. The weight
5. Dry your eyes
6. Coyote
7. Mystery train
8. Mannish boy
9. Further on up the road
10. Evangeline
11. Caravan
12. Forever young
13. Baby let me follow you down
14. I shall be released
15. Introduction to the canterbury tales
16. Loud prayer
17. Don't do it
18. Theme from the last waltz
19. Up on cripple creek
20. The shape I'm in
21. It makes no difference
22. Stagefright
23. Old time religion
24.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
25. Genetic method/chest fever
26. Ophe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