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세상에 던져진 '나',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확립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 가요계에 알앤비와 소울의 향취를 흩뿌리고 있는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멤버 성훈조차도 이 근본적인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했다. 2011년 발표한 첫 솔로 앨범 < Lyrics Within My Story >로 자신을 규정하고자 했던 그가 11년 만에 다시 한번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여정에 올랐다.
두 번째 여행의 키워드는 '연대기'다. 지난 6월에 공개한 정규 2집 < Cronicle >은 흑인 음악사의 요약이자 인간 성훈의 음악적 일대기다.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란 음악들을 시대 역순으로 파고들며 본인의 정체성을 다졌고 장르의 변천 곳곳에 그의 과거를 상세히 집필했다. 한 팀의 일원을 넘어 온전한 '나'로 거듭난 성훈,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여름날 논현동 롱플레이뮤직 사옥에서 만난 그의 얼굴엔 여유 넘치는 미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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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돌아왔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특별한 일은 없었다. 등산도 하고 다이어트도 하면서 평범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코로나 시국에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OTT로 서비스되는 아티스트들의 다큐멘터리를 많이 봤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앞으로 나는 어떤 식으로 음악을 접근해야 할지 영감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깨달음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핑크, 메리 제이 블라이즈, 빌리 아일리시 등 여러 뮤지션들의 영상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쓰는 가사 한 줄이 누군가에게 정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음계에 맞춰 전달하는 이야기에 엄청난 에너지가 담겨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면서 진중한 자세로 다시 음악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맺은 결실이 11년 만에 발표한 2집 < Cronicle >이다. 제작이 오래 걸린 이유는.
사실 2집을 낼 수 있을지 몰랐다. 이 시장은 수요가 없으면 공급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보니까 지금 내가 음악을 내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고민이 됐다. 솔직히 나는 여태까지 세상에 어떤 화두를 던져본 적이 거의 없다. 아직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 Cronicle >이라는 이름처럼 앨범에 성훈의 음악적 연대기를 담았다.
꾸준히 작업해 둔 곡들은 있었다. 그런데 이걸 막연하게 모아서 공개하면 이도 저도 아닌 앨범이 될 것 같았다. 해결책은 대학 시절에 배웠던 뮤직 히스토리 수업에서 찾았다. 나의 음악적 근간이 되는 흑인 음악을 정리하기 위해 시대별로 인기를 끌었던 장르들을 들여왔고, 그걸 역순으로 정렬해 다양한 감정으로 얼룩진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구성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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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처음과 끝에 스티비 원더의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와 빌리 홀리데이의 'God bless the child' 데모 버전이 실렸다.
2000년도에 오디션을 보며 한 큐에 녹음했던 음원이자,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멤버로 합류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곡들이다. 무엇보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입시곡으로 불렀던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는 가수 일대기의 시작점으로 규정하기 더없이 완벽한 노래라고 판단했다. 'I'd find myself'라는 가사에 딜레이를 걸어 정립한 줄 알았던 내 정체성을 다시 찾아가는 것처럼 그려냈다. 인트로 이후에 컨템포러리 알앤비부터 블루스까지 흑인 음악 역사를 거꾸로 하나씩 되짚어 나가는 것도 이런 연출의 일환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앨범 커버를 가득 채운 피아노다. 성훈에게 피아노란 어떤 존재인지.
조금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 가요를 들으면 그 멜로디를 곧장 피아노로 따라 쳤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웃음)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업라이트 피아노 있는 집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님께 정말 여러모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피아노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다.
그랜드 피아노는 물론이고 1960~70년대의 일렉트릭 피아노, 최신식 전자 키보드까지 피아노에도 변천사가 있다. 나를 정리하는 음반인 만큼 피아노를 강조하고 싶었고 다양한 종류의 건반을 사진에 넣게 되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찾아보니까 비슷한 느낌의 이미지가 있었다. '1990년대의 지미 헨드릭스'로 불렸던 미국 가수 레니 크라비츠가 여러 브랜드의 전기 기타를 주위에 놓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작가님께서 그것처럼 클래식 하면서도 올드하지 않게 구현해 주셔서 매우 감사하다.
같은 피아노일지라도 종류에 따라 그 소리와 질감은 제각각이다. 어떤 식으로 악기들을 운용하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피아노의 기초는 데이비드 포스터에게 두고 있고, 주류를 휘어잡을 수 있는 대중적인 재즈 터치는 빌 에반스에게 영향을 받았다. 이번 앨범은 팝 음반에 가깝지만 기회가 된다면 재즈 스탠다드 앨범도 내고 싶다. 회사에서도 어느 정도 제작에 염두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가수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재즈 덕분이라고 본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 결성 당시 재즈의 화성과 리듬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회사에서 미국의 유명 아카펠라 그룹 테이크 식스 같은 음악을 해보지 않겠냐 제안했고 처음부터 재즈에 관심을 두었던 나는 그렇게 팀에 합류하게 됐다. 기회가 된다면 재즈 밴드도 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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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곡 '아껴둔 노래'는 제목부터 곡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요즘에도 휘트니 휴스턴의 'Greatest love of all'이나 'Saving all my love for you', 나탈리 콜의 'Miss you like crazy'를 듣곤 하는데, 이 곡들을 만든 최고의 작곡가 마이클 매서를 정말 존경한다. 언젠가 진실한 마음을 담아 한번 곡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과거를 회상하는 뉴트로 시대에 발맞춰 깊게 접근을 시도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멜로디도 멜로디지만 무엇보다 노랫말에 집중했다. 예전엔 내 옛날 추억에 기반해서 작업했는데 이 노래의 가사는 토이의 '세 사람' 뮤직비디오를 보고 썼다. 영상의 주인공인 유연석 씨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짝사랑의 결혼식장에 가서 피아노를 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나 같으면 절대 안 가겠지만 어쩌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저렇게까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는 전혀 반대인 유연석의 입장에서 가사를 썼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다.
야외 결혼식에서 비가 내리는 뮤직비디오 연출도 인상 깊다.
실제로 겪은 적이 있다. 기상청에서 아무리 예보를 해도 피해 갈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처럼 이런 불가피한 상황이 앞서 얘기한 부분들과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있을 법한 일이라는 걸 강조하면서도 상대를 떠나보내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연출이었다. 뮤직비디오 감독님께서 아름다운 그림이 나올 수 있게 잘 포장해 주신 덕분이다.
'잊지 말아요'는 팀 동료인 정엽과 영준이 참여해 브라운 아이드 소울 팬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곡이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을 기다리는 분들께 오랜만에 우리 넷의 노래를 들려주면 좋지 않을까 해서 쓰게 된 곡이다. 원래 맨 마지막 부분은 나얼 형한테 부탁을 했었는데 아직 목소리 컨디션이 안 좋다 보니 셋이서만 부르게 됐다. 개인적으로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래도 조금 더 기다리면 더 좋은 노래로 보답할 수 있을 테니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다.
초반부 'Wake up, prove it, be brave'에선 그룹 활동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는데.
가수를 하다 보면, 특히 팀 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노래를 불러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게 된다. 프론트맨까지 확실한 그룹이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살이 많이 쪄 있었고 공연 때 잘 웃지도 않고 표정 없이 있다 보니까 팬분들께서도 많이 걱정하셨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선 나부터 솔직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대에 서는 게 힘들기도 했지만 분명 행복한 순간도 있었기 때문에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꺼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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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후배들과도 협업을 진행했다.
내 앨범이라고 해서 혼자 모든 걸 이끌어 갈 이유는 없다고 본다. 산타나의 < Supernatural >(1999)을 참 좋아하는데 그 음반처럼 나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회를 얻고 개인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했으면 한다. 그리고 내 또래 사람들하고만 일을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꾸준히 어린 뮤지션들과 교감하며 젊은 에너지를 유지하고 싶다.
작업 에피소드를 들려주자면.
이번에 1990년대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내가 원하는 소리를 구현해 줄 수 있는 프로듀서가 바로 싱어송라이터 준이었다. 시티 팝이나 뉴 잭 스윙을 흉내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디테일하게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그런데 준은 빛과 소금, 김현철 같은 대선배들의 노래를 나보다도 깊게 파고 들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두 번째 고백'은 준이 부르면 딱이겠다고 판단했다. 래퍼 크루셜스타도 마찬가지다. 보통 곡을 쓸 때 이 노래에는 누가 잘 어울릴지 떠올리는 편인데, 내가 좋아하는 'Can't take my eyes off you'라는 곡의 랩 느낌을 살리고 싶어 섭외하게 됐다.
보이그룹 CIX의 메인보컬 승훈 역시 정말 열심히 참여해 줬다. 아직은 순수한 목소리지만 곡을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 많이 연습해 왔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그 친구도 녹음이 끝나고 나서 너무 좋았다고 계속 얘기해 줘서 더 뿌듯했다. 아이돌이기 전에 분명 보컬리스트로서의 꿈도 있을 것이다. 다른 거 없다. 외적으로 뛰어난 것보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만큼 예쁜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중에 꼭 승훈과 더 좋은 작업물을 만들어보고 싶다.
'두 번째 고백', 'Uhm Jung Hwa'를 비롯해 앨범 전반에 노래를 전하는 대상 '너'가 자주 등장한다. 실존 인물과의 옛 추억을 회상하며 쓴 것인지, 아니면 가상의 스토리인지.
반반이다. 모든 걸 다 가상으로 하면 조앤 케이 롤링 같은 소설가가 됐을 거다. (웃음) 근데 'Uhm Jung Hwa' 같은 경우는 지어낸 이야기다. 앨범 작업 시기가 < 놀면 뭐하니? >에서 환불원정대를 할 즈음이었는데 막연히 디스코를 떠올렸을 때 바로 엄정화 선배가 생각났다. 그리고 '네가 좋아했던 OOO'이란 가사를 불렀을 때 입에 딱 달라붙는 이름이기도 했다.
엄정화 선배는 모든 세대를 다 아우를 수 있는 가수다. 원래 계획은 내가 실크 소닉처럼 완전 올드하게 가고 엄정화 선배가 도자캣처럼 세련된 톤으로 중간에 피처링을 맡아주는 거였다. 그때 스케줄이 많으셔서 만남이 성사되지 못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그렇게 리믹스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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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노래하는 이유, 가수로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몇 년 동안은 내가 노래 부르는 것 자체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근데 이제는 좀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여태까지는 평범한 사랑 노래로 접근을 했다면 이젠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졌다. 며칠 전에 비욘세의 코첼라 무대 영상을 봤는데 희망을 줄 생각을 하지 말고 본인 자체가 희망이 되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희망이 되고 싶고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모두 본인 자체가 희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후반부에 실린 'I hope your life makes more cents than your death'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 래퍼 로직의 '1-800-273-8255' 그래미 무대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곡은 미국 자살방지센터의 전화번호를 제목으로 쓴 노래인데 시상식 때 실제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들이 무대에 등장해 큰 감동을 자아냈다. 수천 명의 죽음을 막은 그의 음악처럼 나도 선한 영향을 전하고 싶다.
인터뷰 내내 정말 많은 뮤지션의 이름이 등장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나 앨범은.
나는 처음부터 스티비 원더가 되고 싶었다. 서울재즈아카데미에 다닐 때도 선생님께서 '너는 스티비 원더를 무조건 파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시대의 명반으로 손꼽히는 < Songs In The Key Of Life >(1976)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들었고 한 곡 한 곡 연구하다시피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나에게 정말 큰 자양분으로 남아있다.
가요 쪽에선 이은미의 < 자유인(自由人) >(1997)이다. 원래 김광민 선배처럼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런데 콘서트에서 이은미 선배가 맨발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런 라이브 가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음악 그리고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다름없는 소중한 앨범이다.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 과정만 봐도 공연이 주는 힘은 엄청난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하는 것보다 보는 걸 더 좋아한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 공연할 때 같이 노래하는 가수인데도 '나얼 형 참 잘 부른다' 이런 생각이 든다. (웃음)
공연의 시작은 티켓팅부터다. 옛날에 콜드플레이가 내한했을 때도 그렇고, 최근에 뮤지컬 < 웃는 남자 >를 보러 갈 때도 티켓이 오픈되기 전부터 설렌다. 직접 예매 사이트에 들어가서 결제하고 공연 당일까지 기다리는 일련의 과정을 온전히 느끼는 걸 좋아하다 보니 회사에서 표를 구해주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노래를 들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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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성훈의 무대는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
당장에 계획된 일정은 없지만 더 나이가 들어서 지금 나오는 음이 안 나오기 전에 많이 하려고 한다. 조심스러운 표현이긴 하지만 음악이라는 게 어쩌면 누군가가 선택해서 할 수 있는 그런 활동인 것 같다. 그렇다면 더 책임감을 갖고 자기 몸을 관리해야 할 의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담배도 안 피우고 좋아하는 술도 줄였고, 성대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 Cronicle >은 40대에 접어들며 한 번의 터닝포인트를 마련한 느낌이다. 앞으로 성훈이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인가.
나의 과거를 돌아본 것뿐이지 터닝포인트까진 아니다. 뭐가 당장 바뀌지는 않으니까.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냥 사는 거고 굳이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특별하면 전부 다 코첼라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웃음) 뛰어난 스타들도 따지고 보면 운이 따라주듯이 말 그대로 그냥 살아가면 된다고 본다. 앞으로도 '우리 모두 특별해요'라는 메시지보다 '우리 그냥 살아봐요'라고 얘기하고 싶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오늘의 크로니클을 완성한 것처럼, 사니까 사는 거다.
진행: 장준환, 임동엽, 염동교, 정다열
사진: 임동엽, 정다열
정리: 정다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