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 기술의 발전은 음악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으며,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바꿔 놓았다. 대중음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곡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만, 노래에 '대중성'이라는 특수성을 더하는 데에는 음향 엔지니어 혹은 음향 기사라 불리는 이들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음악가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음악을 조율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악을 분석한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프로듀싱까지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는 최고의 음향 전문가들을 이즘이 만났다. 그들이 꼽는 명곡 명반은 과연 뭘까. 이즘 필자, 독자, 라디오 PD에 이은 '내 인생의 음악' 시리즈 일곱 번째 특집이다.
음악가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음악을 조율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악을 분석한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프로듀싱까지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는 최고의 음향 전문가들을 이즘이 만났다. 그들이 꼽는 명곡 명반은 과연 뭘까. 이즘 필자, 독자, 라디오 PD에 이은 '내 인생의 음악' 시리즈 일곱 번째 특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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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직업은 음악 사랑이 필수 덕목이지만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조상현 몰 스튜디오 대표는 특히나 진성 메탈 마니아다. 그의 음악 사랑이 녹음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태지 공연의 엔지니어로 '덕업일치'에 성공한 그는 잠비나이, 넬, 혁오와 같이 합이 맞는 팀이 있다면 언제든 스튜디오를 벗어나 공연장으로 출동한다.
'서태지'와의 인연은 2014년 9집 < Quiet Night > 투어부터가 시작이다. 그와의 공연 중에서도 AB 음향 시스템을 국내 처음으로 시도했던 < 2015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을 언급하며, 모두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덕분에 소리가 크면서도 좋아서 정말 신나게 작업했다고 회상했다. 같은 포인트에서도 아웃은 악기, 인은 보컬만 확성하는 이 방식으로 명료하고도 입체적인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었다.
조상현 엔지니어(이하 조상현)하면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 출발부터 함께 소리를 다진 '잠비나이'다. 국악기를 활용하지만 단단한 록 사운드 덕에 외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이다. 2016년 해외 순회공연 중 프랑스의 유럽 최대 헤비메탈 축제 < 헬페스트 >에 참가해 취향을 저격당한 음악 외에도, 메인과 서브를 나누는 것이 의미 없을 정도로 훌륭한 시스템을 갖춘 무대들의 모습에 놀랐다고 전했다.
가장 강렬했던 공연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2006년 롤링홀에서 있었던 일본 포스트락 밴드 모노의 첫 내한을 뽑았다. 소리가 엄청나게 커서 장비에 경고등이 들어오고, 악기들은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안달이 나 있던 공연이다. 관객이 귀 막고 나갈지언정 그게 뮤지션이 원한 것이고, 엔지니어는 그것을 표현해 준 것이다. 조상현도 그 마인드에 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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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향 엔지니어는 사운드 체크용으로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조상현 기사는 케미컬 브라더스의 'Sometimes I feel so deserted'(< Born In The Echoes >, 2015년 8집)를 무조건 틀어본다고 한다. 평소에는 듣지 않는 장르였지만 사운드에 반해, 그는 특히 초중반 비트가 바뀌는 부분에서 쏟아지는 서브감을 느끼기 위해 이 노래를 선택했다.
인생 밴드이자, 앨범으로 브루탈 트루스라는 데스 메탈 밴드의 1992년 1집 < Extreme Conditions Demand Extreme Responses >가 나왔다. 조상현은 선명하고 꽉 찬 사운드가 마음에 들어 라이브의 음향 체크용으로도 사용했다. 이 앨범은 그가 좋아하는 메탈 전문 프로듀서 콜린 리차드슨의 작품이며, 1991년 결성한 메탈 밴드 크래시도 이 분에게 여러번 프로듀싱을 맡기며 국내에 많은 기대를 안겼었다.
메탈 애호가 조상현은 최신 음악도 잘 챙기고, 음향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요즘 핫한 빌리 아일리시도 취향에 맞지 않아 들어보지 않았지만 작년에 나왔던 < Happier Than Ever >의 'Getthing older' 보컬 목소리에 홀렸고, 개성 넘치는 소리를 찾기 위해 올 댐 위치스의 2013년 2집 < Lightning At The Door > 속 'Mountain'처럼 독특한 드럼 사운드에 빠지기도 했다.
일화를 부탁하자 그는 한 대중 가수와의 작업을 떠올렸다. 정말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주문에 정상적인 소리가 하나도 없던 시이나 링고의 '宗敎(종교)'를 레퍼런스 삼았지만 너무 멀리가는 것 같아 무난하게 바꿨다고 한다. 그 후 빌리 아일리시의 'Happier than ever'가 나와 들어보니 '해도 되는 거였네'라 회상하며 달라진 시대의 사운드를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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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현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메탈을 좋아한 덕분에 오딘(블랙 메탈), 블랙 신드롬(헤비 메탈)같은 밴드와 교류하면서 음향 세계에 들어왔다. 그가 인정하는 당대의 기타리스트 김재만, 현장 드럼 사운드의 최고봉인 사하라의 우정주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꿈을 키었다. 이렇게 확고한 취향을 가졌지만 트렌드도 놓치지 않는 그의 중심에는 어떤 소리가 있을까.
음향 분야에서 일하는 게 어렸을 때 꿈이었나요?
데스 메탈 밴드를 하고 싶었다. 몰래 밴드 연습도 하고 그러다가 대학교 3학년 진로를 결정할 즈음 음악 언저리의 직업을 찾다가 나우누리에서 앤디 스닙(메탈 분야에서 유명한 뮤지션겸 엔지니어)의 음향 콘솔 사진을 보고 반했다. 원래 노래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잘 못했고, 기타를 쳤는데 그것도 잘 못했다. 그래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했다.(웃음) 데스, 블랙 메탈을 너무 사랑해서 당시 콜린 리차드슨(제자가 앤디 스닙)의 작업물은 다 좋아했다. 크래시 1집 < Endless Suply Of Pain >이나, 카르카스 음악은 너무 충격이었다.
롤링홀에서의 시절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롤링 스톤즈 시절부터 대표와 아는 사이였고, 작은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작업하던 밴드들이랑 친해져서 공연도 함께 했다. 그러다 롤링홀에서 하우스 엔지니어를 맡아달라는 연락이 와서 4년 정도 했다.
직접 운영하고 있는 몰 스튜디오는 주로 어떤 작업을 하나요?
과거 GMC 레코드의 음반들을 거의 다 했고, 바세린 2집부터 해서 인디 메탈, 하드코어, 펑크 작업을 많이 했다.
직접 레코딩한 것 중 추천작을 뽑는다면?
2019년 잠비나이 3집 < 온다 (ONDA) >를 추천하지만, 올 가을에 나올 미니 앨범의 반응이 더 기대된다.(웃음)
레코딩과 라이브의 차이는 뭘까요?
공연에서는 음원의 감동을 느끼길 원하면서도, 음반에서는 바로 앞에서 연주하는 것처럼 라이브감이 느껴지길 원한다. 기술적인 부분을 빼고 얘기하자면 감성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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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엔지니어로서 가장 중요한 것을 뽑는다면요.
감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관객들의 성향도 신경을 쓴다. 아티스트가 마음에 든다고 관객도 다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아니다. 뮤지션과 팬 서로의 감성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같이 작업하는 팀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관객 특징까지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 공연은 다같이 만들어가는 것 같다.
라이브 믹싱할 때 작업은 어떤 편인가요?
많이 바쁘다. 원곡에 충실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계속해서 생각한다. 연주로 표현해야 하는 부분과 그것을 보완해서 엔지니어가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엔지니어로서 자신의 특징이나, 표현 세계의 정의하자면?
현장이나 레코딩이나 입체적으로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보이는 모습과 사운드가 일치해야 한다. 눈 앞에서는 공연이 펼쳐지지만 몸과 귀는 무대 위에 있는, 현실감과 비현실감이 동시에 일어나는 느낌이다. 마치 연주자들 사이에 내가 함께 있는 기분일 것이다.
서태지의 공연을 맡기 전부터 조상현은 그의 음악을 이미 좋아하고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갖춰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앞서 말한 관객과의 감성 일치부터 해서 라이브에서 펼쳐지는 조상현 사운드의 구현이다. 궁금한 것도,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을테니 몇몇 일화를 통해 좀 더 자세한 대화를 나눴다.
< 2015년 펜타포트 록 퍼스티벌 > 때의 시스템에 대해 좀 더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스템 팀이 JBL 본사에 자문도 구하고, 정말 오래 준비를 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땅이 울릴 정도로 소리가 커서 기술팀 하우스가 무너지는줄 알았다. 정말 희열이었다.
서태지 공연 때의 일화가 또 있을까요?
'Take one' 곡 뒷부분에 스네어 프리 딜레이 값이 길어서 슬랩 딜레이처럼 특이하게(땃-따-) 들리는데 이런 디테일을 표현하고 싶었다. 결국 테스트 후에 바로 진행하게 됐다. 또 '로보트'는 1절과 2절의 드럼 소리가 다르다. 특히, 2절에서는 필터링 걸린 깡통 같은 소리가 나는데 그것도 현장에서 해보고 싶어서 그 파트만 다른 믹스를 적용했다. 클린, 디스토션 보컬이 서로 오버랩되는 것이나, '오렌지'의 인트로 드럼이 확 달라지는 것도 구현할려고 노력했다.
서태지는 정말 음향에 심혈을 기울인다.
음악 뿐 아니라 음향에도 진심이더라. 내 모든 걸 내어줄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 잠비나이, 넬, 혁오도 마찬가지다. 다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정말 하고 싶은게 느껴지는 그런 열망이 누구보다 진했다.
서태지는 조상현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처음에는 성의 없어 보인다고 미움과 오해를 많이 받았다. 유난 떤다고 생각할까봐 조용히 작업했는데 나중에는 다 풀려서 신뢰도 쌓이고, 사이도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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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에게 받은 칭찬도 있나요.
펜타포트 끝나고 9집 투어 콘서트 블루레이가 나왔다. 당시 잠비나이 해외 투어 중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음반들을 집으로 보내주셨다. 그런데 과분하게도 거기에 '괴물 엔지니어'라고 적어줬다. 평생을 인정 안해주시던 아버지도 그걸 보고 인정해주셨다.
잠비나이도 궁금합니다.
초반에는 폼도 정해지지 않아서 혼란스러운 상태였고, 앨범을 낸 뒤에야 곡에 대한 이해가 됐다. 그래서 재믹싱 앨범을 냈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음원으로 담고 싶었다. 결국에는 라이브와 음원의 이미지를 맞추기 위해 공연을 하면서 형식을 먼저 잡았다. 무대나, 편곡이나 안정이 된 뒤에 확실해지면 녹음을 했다. 잠비나이 음악에서는 이런 부분들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음향을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데, 좋아하는 음악이 확실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정말 다양하게 많이많이 들어야 한다. 나는 과거에 메탈을 좋아했지만 지금은 좋은 사운드의 음악을 찾아들을려고 노력하고 있다. 음악으로 듣는 재미와 음향으로 듣는 재미는 분명히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찾아서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르마다 특성이 다른 것이니 '장르 부심'은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인터뷰 : 임진모, 임동엽
정리 : 임동엽
사진 : 일일공일팔, 조상현 제공
이미지 디자인 : 정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