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 스코어(Original Score)' 부문 음악상 수상은 그중에서도 < 레이더스 >(Raiders Of The Lost Ark)의 존 윌리엄스를 필두로, < 용과 마법 구슬 >(Dragonslayer)의 알렉스 노스, < 황금 연못 >(On Golden Pond)의 데이브 그루신, < 랙타임 >(Ragtime)의 랜디 뉴먼과 같이 제각기 실력과 명성이 쟁쟁한 작곡가들 속에서 일궈낸 쾌거였다.
수상자 반겔리스에게는 최초의 주류영화 데뷔작 수상이었기에 또한 남다른 결실이었다. 그의 음악은 특히나 오케스트라에 의한 전통 클래식 스코어가 아니었다. 관현악 중심의 클래식 스코어와 달리 전자악기인 신시사이저 중심의 현대음악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로 주류 영화음악가가 되기 전까지 그리스 출신 청년은 이미 정평이 난 대중 음악가였다. 1968년 후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를 결성해 음악 활동을 시작했으며, 해체 후 1979년부터 그룹 예스의 보컬인 존 앤더슨과 함께 듀오로 4장의 앨범을 발표할 만큼, 프랑스와 영국을 근거지로 왕성한 음악 활동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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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에게 < 불의 전차 >는 음반 제작과 곡을 쓰는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영화음악가로 다시금 인식되는 계기를 마련해준 셈. 반겔리스가 < 불의 전차 >의 음악을 맡게 된 것은 감독 허드슨과 제작자 퍼트넘의 결정에 따른 것이었다. 감성적인 면에서 전통 오케스트라 음악보다 현대적인 양식의 음악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반영한 선택이었다. 허드슨 감독과 다큐멘터리와 광고에서 협업한 바 있는 반겔리스가 낙점된 것은 일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허드슨 감독은 우선 반겔리스에게 영화 음악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음악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종교적인 면을 위해 교회 성가대가 필요하다고 하는 한편, 1979년 다큐멘터리 < Opera Sauvage >에 쓴 곡 'L'Enfant'을 메인 테마로 삽입하기를 원한 것. 하지만 창의적인 면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고, 결국 반겔리스의 새로운 독창적 주제곡을 듣고 나서야 허드슨은 만족감을 표명했다.
피아노, 타악기, 드럼, 신시사이저 등 모든 악기를 1인 밴드처럼 연주한 반겔리스는 영화의 사운드스케이프를 위해 우선 5개의 기본 테마를 작곡했다. 단연 으뜸은 영화의 도입부를 위해 쓴 레전드급 메인 타이틀 테마. 주제곡은 달리기의 기쁨과 해방감을 보강하는 음악적 표현임과 동시에 감독이 구상한 영화적 본질을 포착한 사운드트랙이다. 그다음은 에릭 리델과 해롤드 아브라함을 위한 테마. 'Eric's theme'은 클래식의 삼부형식(ABA)구조로 엄숙한 선언 후 더욱 경건한 곡조의 화음을 들려준다. 아브라함의 테마는 신시사이저의 전자음 파동이 대기를 순환하듯 자욱이 깔린 가운데 온화하고 내관적인 터치의 건반 화음이 '에릭의 테마'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마지막으로 영국 대표선수들과 미국 대표선수들을 위한 테마를 이야기 전개의 장면에 맞게 설정했다. 두 가지 주제 모두 선수들의 훈련 장면을 지시하고 보강하는 곡으로 풍부한 신시사이저 연주가 청년 선수들의 활력과 자신감, 결심을 대변한다. 영국 선수들을 위한 반주는 프랑스 국가('French national anthem')의 멜로디를 혼합한 곡 구성이 특징. 비틀스 곡 'All you need is love'의 도입부를 연상케 하는 발상이다. 한편 미국 선수들을 위한 전자 반주는 훨씬 더 박진감 있는 리듬을 강조했으며, 신시사이저 기반 디스코 팝 스타일을 지향했다. 확성기를 들고 군대식으로 선수들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장면에 비춰 무한 자신감 표출을 위한 음악적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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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경기가 치러지는 장소를 고려해 다수의 국가가 사용되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의 열망을 노래한 군가 'When Johnny come marching home', 미국 국가 'The star-spangled banner', 프랑스 국가 'Le Marseillaise'를 포함했고, 전함 피나포어(H.M.S. Pinafore)의 'He is englishman', 미카도(The Mikado)의 'Three little maids from school are we', 펜잰스의 해적(The Pirates of Penzance)의 'With catlike tread', 인내심(Patience)의 'Soldier of our queen', 곤돌라(The Gondoliers)의 'Theater lived king'과 같이 5곡의 길버트-설리번(Guilbert and Sullivan) 오페라 가곡들이 접목되었다.
끝으로 전통 찬송가 'Jerusalem(예루살렘)'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브라함의 장례식에서 영국 합창단의 노래로 들리는 이 곡은 원래 1808년경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로 쓰였으며, 1961년 1차 세계대전 이후 암울한 영국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허버트 패리 경이 작곡했다. 가사와 음악의 조합은 실로 숭고하고 너무 아름다운 동반 상승효과를 만들어냈다. 이 찬송가는 영국 문화 정체성의 바탕을 이루며 영국의 업적을 기념하는 의미의 비공식 대안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사운드트랙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역사와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 명곡들이 실렸다. 극의 장면에 따라 이해를 돕고 공감을 불러내는 부분적 설정. 오리지널 스코어인 전자음악과 대비되는 면이다. 반겔리스의 < 불의 전차 > 스코어는 대중문화의 조류가 변화함에 따라 영화 음악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다시금 입증했다. 충분히 대중적이며 전염성이 강한 멜로디를 작곡해 영화의 제목과 주제에 상징성을 부여한 그는 이후 지난 세월을 무색하게 할 만큼 강력한 음악을 대중들의 집단의식에 이식시켰다.
1978년 명화 <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Midnight Express)로 오스카 음악상 트로피를 거머쥔 조르지오 모로더가 전통 클래식의 장이었던 영화 음악 부문의 관문을 연 혁명적 시발점이었다면, 반겔리스의 수상은 이제 전자음악이 당시 현대 대중들의 문화적 요구와 경향에 힘입어 그 파장이 더 크게 확장될 것임을 재확인해준 개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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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앨범으로 소개돼 대중음악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 증거. 음반으로 제작된 영화 음악은 연주곡이었음에도 미국 빌보드 앨범 순위 1위에 올라 4주간 내려오기를 거부했고, 무려 97주 동안 빌보드 200순위에 머물렀다. 영국에서도 5위까지 올라 107주간 앨범 차트를 점령했다. 'Titles'란 싱글로 발매된 주제곡 또한 빌보드 핫100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북미에서만 1백 만장 이상 판매 음반에 주는 플래티넘을 기록한 앨범은 첫해에만 3백만 장 이상이 팔렸다. < 불의 전차 > OST는 그렇게 시대를 빛낸 명반이 되었고, 반겔리스는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했다.
참고로 다음은 1982년 아메리칸 필름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반겔리스가 남긴 말이다.
"난 고전주의 음악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현대적이고 영화의 시대와 잘 맞는 스코어를 작곡하고자 했다. 나는 그러나 완전히 전자음악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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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
사이드 1
1. Chariots of fire (Titles)
2. Five circles
3. Abraham's theme
4. Eric's theme
5. 100 Metres
6. Jerusalem (허버트 패리, 윌리엄 블레이크 작사, 해리 라비노비츠 편곡)
사이드 2
1. Chariots of f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