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일곱 번째는 '로큰롤의 왕'이자 최초의 록스타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의 전기 영화 < 엘비스 >다.
1950년대 초 미국 음악은 태동하고 있었다. 척 베리, 리틀 리차드, 빌 헤일리 등 수많은 로큰롤 기수들이 흑인 블루스와 백인 컨트리의 황금 비율을 찾아 음악으로 구체화했고, 로큰롤도 이에 질세라 자신의 진정한 주인을 만나기 위해 계시를 기다렸다. 왕은 하늘에서 내려준다고 했던가, 신은 흑인 동네에서 자란 한 백인 아이를 선구자로 점지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그의 등장과 함께 로큰롤은 걸음마를 떼고 '대중 음악'으로 새롭게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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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제왕(King of rock and roll)의 탄생 실화
엘비스 프레슬리는 흑인이 강제로 끌려와 노역하던 미국 남부 주요 5개 주(텍사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앨라배마, 조지아) 중에서도 미시시피 투펄로에서 태어났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블루스와 컨트리가 조심스럽게 서로의 몸을 탐하던 시기에 흑인 동네에서 유년기를 보낸 것이다. 영화 < 엘비스 >에서는 'That's all right'을 엮은 'Tupelo shuffle'을 배경으로 블루스에 영혼을 빼앗기고, 가스펠에 영적 부름을 받은 소년을 짧지만 강렬한 장면으로 담았다.
미시시피강을 타고 테네시에 위치한 멤피스로 거주지를 옮겨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비비 킹과 선 레코드가 있던 '블루스의 성지' 빌 스트리트에 자주 놀러가 미래의 꿈을 다졌다. 학교에서는 숫기 없고, 마마보이라며 학우들의 외면을 받았지만 어릴 적부터 꾸준히 기타를 배우며 언제든 날아오를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53년 고등학교 졸업 후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경험을 쌓기 위해 선 레코드를 빌려 녹음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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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알려진 대로 어머니에게 선물도 드릴 겸 레코딩을 했지만 그의 의중에는 혹시 제작자의 눈에 띄지는 않을까 하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예상 적중. 선 레코드 대표 샘 필립스도 흑인음악 대중화를 위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바로 세션으로 스코티 무어와 빌 블랙을 섭외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취입했다. 긴 녹음에도 이렇다 할 소득이 없던 와중 그가 한 곡을 흥얼거렸다. 아서 크루덥의 1946년 블루스 'That's all right', 그렇게 전설은 탄생했다.
최초의 아이돌, 시대의 아이콘
록스타와 아이돌, 참 어울리지 않는 자격을 엘비스 프레슬리는 모두 얻었다. 잘생긴 백인 남성이라는 좋은 조건은 있었지만, 로큰롤이라는 장르를 들고나와 이견 없는 출중한 실력으로 세상을 휘어잡았다. 록의 시작인 로커빌리와 로큰롤의 첫 스타이니 최초의 록스타인 셈이다. 또한 음악 외에도 골반을 흔들고 다리를 떠는 퍼포먼스는 그를 21세기까지도 잊히지 않을 시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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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등장은 대중 문화계 일대 '자이언트 스텝'으로 문화 시장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영화에서는 그의 골반 떨림에 홀린 여성들의 모습으로 이미지를 정리했다. 연예 산업의 마케팅 대상은 단숨에 십대로 향했고, 당시, 그리고 지금도 보수적인 미국 기성세대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저속의 대명사로 찍었다. 1956년 < 애드 설리번 쇼 >에 출연했을 때 그의 허리 아래를 비추지 않은 일은 대대로 내려오는 일화 중 하나다.
최고의 조력자, 최악의 매니저
비틀스에게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있었다면, 엘비스 프레슬리에게는 톰 파커 대령이 있었다.(대령은 명예 직위다.) 네덜란드계인 톰 파커는 평생이 비밀에 싸인 인물로 카니발에서 경험을 쌓아 음악 업계로 발을 옮겼다. 영화 제목이 < 엘비스 >인 것과 다르게 극의 진행은 톰 파커의 시선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의 업적과 잘못에 대해서는 이야깃거리가 많지만 엘비스 프레슬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임은 틀림 없다.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톰 파커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RCA 레코드와 연결하며 1956년 미국에 'Heartbreak hotel'이라는 음악적 폭격을 가했다. 이후 매니저 톰 파커는 각종 TV, MD, 영화 업계와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 많은 계약을 성사했다. 그의 매니지먼트로 엘비스 프레슬리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온 세상이 올백 머리 백인 남성의 목소리에 주목했고, 그의 매니저 톰 파커 대령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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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비스 프레슬리의 성공에 톰 파커의 영향은 지대했지만 그 이면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1958년 군 복무부터 1967년 프리실라 프레슬리와의 결혼까지도 관여했음은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의 초기 음반 저작권도 임의로 팔아버렸다. 심지어 톰 파커는 불법체류자였기에 신분이 들통나는 것을 우려해 엘비스 프레슬리의 해외 투어도 막았다.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톰 파커에게 엘비스 프레슬리는 뮤지션이기 이전에 돈벌이 수단에 불과한 한명의 연예인일 뿐이었다.
시대로 읽어보는 엘비스 프레슬리
역사적으로 문화 산업은 전쟁을 기점으로 부흥기를 마련했다. 미국의 음악 산업을 기준으로 보면 1910년대 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재즈와 블루스'가 생겨났고, 1945년 막을 내린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대중 음악의 시초격인 '로큰롤'이 등장했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벌어진 20년의 월남전 중에는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가 나타났으며, 히피 무브먼트를 중심으로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포크 록 등 수많은 음악 장르가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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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 후 국제 정세는 본격적인 냉전 체제에 들어간다. 소련의 공산주의와 미국의 자본주의가 대립하던 이 시기에 두 국가는 경제, 과학, 체육 등 분야를 가릴 것 없이 서로를 이기기 위해 맞섰다. 점점 코너 몰리던 미국은 메카시즘 같은 극단적 반공주의까지 등장했고, 체제 선전용 기수가 필요했다. 톰 파커에게는 '돈줄', 기성세대에게는 '문란의 상징'이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렇게 자본주의 미국의 구세주이자, 히든카드가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
< 엘비스 >만 봐도 1900년대 중반의 미국 문화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등장하는 인물만 해도 '블루스의 왕' 비비킹, 엘비스 프레슬리가 불렀던 'Hound dog'의 원가수 빅마마 쏜튼, 컨트리의 전설 행크 스노우, 원조 로큰롤의 왕 리틀 리차드 등 당대 음악 신(scene)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뿐이다. 이외에도 레드 제플린, 비틀스 같은 뮤지션이 잠깐이나마 언급된다. 마치 살아 있는 대중 음악 박물관을 보는 것 같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톰 파커를 매개로 작금의 연예 산업, 좁게는 한국의 K팝 같은 아이돌 시스템의 이면을 비추고 있다. 음악, 예술적 이해보다 비즈니스를 강조한 이 시스템의 희생양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택한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지난 6월 큰 반향을 낳았던 BTS의 발언들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의 상업성은 당연히 고려해야 하지만, 그 중간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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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 보헤미안 랩소디 >, 2019년 < 로켓맨 >, 2020년 < 주디 >, 2021년 < 리스펙트 >에 이어 음악 전기 영화의 명맥을 잇는 < 엘비스 >. 고전으로만 여겨지던 블루스, 알앤비, 로큰롤을 체험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사운드트랙 또한 영화의 감상 포인트. 도자 캣, 에미넴, 모네스킨, 테임 임팔라, 제이미 설리번 등 핫한 뮤지션들이 참여한 것 이상으로 엘비스 프레슬리 역을 한 오스틴 버틀러의 배역 일치율도 훌륭하다. 극장에서의 필수 관람을 요한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Suspicious minds (Vocal intro) - 엘비스 프레슬리
2. Also sprach Zarathustra/An american trilogy - 엘비스 프레슬리
3. Vegas - 도자 캣
4. The king and I - 에미넴, 시로 그린
5. Tupelo shuffle - 스웨리, 디플로
6. I got a feelin' in my body - 엘비스 프레슬리, 스튜어트 프라이스
7. Craw-Fever - 엘비스 프레슬리
8. Don't fly Away (Pnau Remix) - 프나
9. Can't help falling in love -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10. Product of the ghetto - 엘비스 프레슬리, 나르도 윅
11. If I can dream - 모네스킨
12. Cotton candy land - 스티비 닉스, 크리스 아이작
13. Baby let's play house - 오스틴 버틀러
14. I'm comin' home (Film mix) - 엘비스 프레슬리
15. Hound dog - 숀카 두쿠레
16. Tutti frutti - 레스 그린
17. Strange things happening every day - 욜라
18. Hound dog - 오스틴 버틀러
19. Let it all hang out - 덴젤 커리
20. Trouble - 오스틴 버틀러
21. I got a feelin' in my body - 레네샤 랜돌프
22. Edge of reality (Tame Impala Remix) - 엘비스 프레슬리, 테임 임팔라
23. Summer kisses / In my body - 엘비스 프레슬리
24. 68 Comeback special (Medley) - 엘비스 프레슬리
25.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 - 재즈민 설리번
26. If I can dream (Stereo mix) - 엘비스 프레슬리
27. Any day now - 엘비스 프레슬리
28. Power of my love - 엘비스 프레슬리, 잭 화이트
29. Vegas rehearsal / That's all right - 오스틴 버틀러, 엘비스 프레슬리
30. Suspicious minds (Film ㄷdit) - 엘비스 프레슬리
31. Polk salad Annie (Film mix) - 엘비스 프레슬리
32. Burning love (Film mix) - 엘비스 프레슬리
33. It's only love - 엘비스 프레슬리
34. Suspicious minds - 파라비
35. In the ghetto (World turns remix) (Feat. Nardo Wick) - 엘비스 프레슬리
36. Unchained melody (Live at Ann Arbor, MI) - 엘비스 프레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