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기세가 조금씩 저물자 삭막했던 극장가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지구촌 곳곳에는 흥미로운 작품 소식들이 당차게 고개를 내미는 추세다. 이러한 스크린 흐름에 발맞춰 IZM이 무비(Movie)와 이즘(IZM)을 합한 특집 '무비즘'을 준비했다. 시대를 풍미했던 아티스트의 명예를 재건하고 이름을 기억하자는 의의에서 매주 각 필자들이 음악가를 소재로 한 음악 영화를 선정해 소개한다. 여섯 번째는 비치 보이스의 멤버이자 시대를 앞선 천재, 브라이언 윌슨의 전기를 다룬 영화 < 러브 앤 머시 >다.
완벽주의에 매몰된 음악 천재들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 혹은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하나에만 몰두한다. 음악 앞에서는 그 어떠한 절충과 타협 없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들에겐 외골수 센서가 작동하는 것 같다. 우리는 모차르트, 존 레논, 마이클 잭슨, 프린스, 조지 마이클을 추앙하지만 그들의 주변 사람들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고 난처하게 만들었고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도 마찬가지다. 2014년에 개봉한 영화 < 러브 & 머시 >는 행복하지 못했던 천재 브라이언 윌슨, 그에 대한 영화다.
명과 암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름이 되면 듣는 'Surfin' U.S.A.', 'Fun fun fun', 'Barbrara Ann', 'I get around', 'Help me Rhonda', 'Sloop John B', 'Kokomo'는 기적 같은 노래들이다. 이 곡들을 들으면 뜨거운 여름과 시원한 해변, 맑은 날씨가 떠오르니 비치 보이스는 대중가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완수했다. 이 노래들처럼 멤버들도 행복할 줄 알았던 대중에게 < 러브 & 머시 >는 낯선 충격을 던진다.
영화는 동시대 라이벌이었던 비틀즈에 대한 비치 보이스의 생각,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과 강압, 정신과 주치의의 무책임한 진료와 약물중독, 동생 데니스 윌슨의 갑작스런 죽음, 정신불안증세로 두 딸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불행한 가족관계, 음악적인 변화로 인한 멤버 간의 갈등까지 캘리포니아의 햇살처럼 밝았을 것 같은 브라이언 윌슨의 어두운 면을 송두리째 드러낸다. < 러브 & 머시 >는 홀로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을 겪어야했던 주인공이 밝고 행복한 노래를 만들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더 슬프고 안쓰럽다.
두려움과 용기
비틀즈의 앨범 < Rubber Soul >은 브라이언 윌슨에게도 충격이었다. 이 걸작과 견줄만한 음반을 만들고 싶었던 브라이언 윌슨이 당시 아내에게 < Rubber Soul >보다 더 멋진 음반을 만들겠다고 얘기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지만 그 욕망에 따른 강박증과 편집증은 환청과 정신질환 악화로 나타났고 이 고질병은 평생 그를 괴롭힌다. 예민한 성격의 그에게 이런 정신적인 고통을 처음 안긴 사람은 아버지다. 음악업계 종사자였던 아버지 머리 윌슨은 세 아들 브라이언과 칼, 데니스를 혹독하게 훈련시켰고 세 아들은 자신들의 선택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음악을 강요받았다.
영화 < 러브 & 머시 >는 아버지가 브라이언 윌슨의 허락 없이 비치 보이스의 음악판권을 75만 달러에 팔고 통보하는 장면,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 자주 뺨을 맡아서 귀가 안 들린다고 말하는 모습도 가감 없이 묘사한다. 10대 초반부터 강압적인 방식으로 길들여진 소년들에게 자신들의 생각, 관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었고 그럴수록 소심하고 예민한 브라이언 윌슨은 안으로 움츠러들며 공상과 망상의 우주에서 허우적거렸다. 대중음악 역사에서 이런 스파르타식 훈육은 오스몬즈와 잭슨 5에게 대물림됐고 마이클 잭슨도 브라이언 윌슨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이 어두운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한 건 역설적이게도 음악이었다.
광기와 집념
영화의 연출은 아쉽지만 베테랑 배우 존 쿠삭, 폴 지아마티, 엘리자베스 뱅크스의 연기와 음반의 녹음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은 인상적이다. 멤버들의 세세한 검증을 거쳐 카메라에 담은 'God only knows', 'Caroline, no', 'Wouldn't it be nice', 'Good vibrations'의 제작 과정은 사실적이며 브라이언 윌슨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미지의 소리를 사운드로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에도 초점을 맞춘다. 클래식 연주자에게 기존과 다르게 연주를 부탁하고, 일정 부분을 수십 번씩 녹음해 주위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며 녹음실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며 스튜디오 대여비용 5,000 달러를 포기하는 모습은 집념보다 오히려 아집과 광기로 비춰지기도 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 Pet Sounds >는 미국을 대표하는 그룹이라는 명성에 맞게 성공했어야 했지만 골드 레코드(미국 내 판매량 50만장)에 그쳤고 이 상업적 실패는 팀 내 분열을 잉태했다. 브라이언 윌슨의 음악적인 고집은 자신의 리더십에 상처를 냈지만 'God only knows'에 대한 폴 매카트니의 극찬은 한 가닥 위안이었다. 이 장면도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브라이언 윌슨의 소리에 대한 집착과 난해한 가사에 거부감을 가졌던 다른 멤버들은 팬들의 이탈을 염려했고,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은 그의 독선과 질주에 질렸다. 8명의 엔지니어와 많은 세션맨들, 오케스트라 단원이 담아낸 음악과 사운드는 오직 브라이언 윌슨만을 위한 얼음 왕국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단지 이방인이자 초대 손님일 뿐이었다. 영화에서 세션 드러머 할 블레인은 브라이언 윌슨에게 말한다. “우리 세션맨들은 프로야. 프랭크 시나트라, 딘 마틴, 엘비스 프레슬리, 필 스펙터와도 일해 봤지만 그들에 비하면 너는 천부적이야.” 이 말을 들은 브라이언 윌슨은 필 스펙터보다 더 하냐고 반문했고 할 블레인은 “너한테는 쨉도 안 돼”라고 대답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 프로듀서 필 스펙터보다 더 지독하다는 의미였지만 순진한 브라이언 윌슨은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Through the fire
긴 암흑기를 보낸 비치 보이스는 1988년에 영화 < 칵테일 > 삽입곡 'Kokomo'로 22년 만에 다시 한 번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했고 브라이언 윌슨은 그해에 첫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이 음반의 1번 트랙이 바로 영화 제목으로 선택된 'Love & mercy'다.
'난 앉아서 손을 턱에 괴고 재미없는 영화를 보고 있었죠.
일어나는 모든 폭력은 결코 이겨낼 수 없는 것처럼 보였죠.
사랑과 자비, 오늘 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그래요. 당신과 당신의 친구들에겐 오늘 밤 사랑과 자비가 필요해요.'
사랑과 자비가 필요한 사람은 브라이언 윌슨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의도, 청사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 없이 홀로 외로운 투쟁을 할 때 그의 손을 잡은 사람은 전직 모델 출신의 자동차 판매원이었던 멜린다 레드베터다. 그의 도움으로 천재 뮤지션은 자신을 옥죄던 담당 정신과 의사로부터 벗어나 정상적인 생활로 나올 수 있었고 브라이언과 멜린다는 1990년대 중반에 결혼했다.
< Pet Sounds >와 브라이언 윌슨
1960년대 영국의 비틀즈와 맞선 유일한 미국 밴드 비치 보이스는 < Pet Sounds >로 팝 역사에서 가장 완벽한 역주행의 서사를 일궜다. 음반이 발표된 1966년 당시의 평가와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명성을 쟁취한 것이다. 1993년 < 더 타임즈 >지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앨범 100'에서 1위, 1995년 음악 전문지 < 모조 >에서 정한 '최고의 앨범' 1위, 2003년 음악 전문지 < 롤링스톤 >이 결산한 '가장 위대한 앨범 500'에서 1위, 2017년 음악매체 < 피치포크 > 선정 '1960년대 최고 앨범'에서 2위 등 대중음악 역사는 < Pet Sounds >에게 수많은 훈장과 면류관을 하사했다. 브라이언 윌슨은 틀리지 않았다. 먼 길을 돌아왔을 뿐이다.
- 영화에 사용된 음악 목록 -
1. Surfin' U.S.A.
2. Don't worry baby
3. Surfer girl
4. I get around
6. Fun, fun, fun
7. Songbird
8. These dreams
9. Nowhere to run
10. The in crowd
11. On the wings of love
12. Nights in white satin
13. God only knows
14. I'm waiting for the day
15. Pet sounds
17. Wouldn't it be nice
19. You still believe in me
20. Love & mercy
22. Hang on to your ego
23. Here today
24. Caroline, no
26. I live for the sun
27. Heart full of soul
28. Don't talk (put your head on my shoulder)
29. Sloop John B
30. You don't have to say you love me
31. Good vibrations
33. Surf's up
35. The elements: fire (Mrs. o'leary's cow)
36. Heroes & villains
37. Do you like worms
38. In my room
39. Day by day
40. Til i die
41. One kind of love
42. Love & mercy
43. Black hole
44. Good vibrations
45. End date
46. Believe
47. Silhouette
48. Headphones
49. Knives and forks
50. Deep end
51. B&m studio
52. Baby no morph
53. Bed montage
54. Into mercy
55. Be my ba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