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를 타고났다기보다 꾸준히 실력을 갈고닦았다. 대중에게 어느 정도 거리가 있던 우리 음악, 국악이 퓨전, 크로스오버란 수식어를 달고 보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지금, 소리꾼 고영열은 양지 아닌 음지에서 꾸준히 제 것을 했다. 피아노를 치며 소리를 했고, 재즈 뮤지션과의 협업도 가리지 않았다. 새로운 시도 앞에 주머니가 가벼워져도 그는 '도전'을 좇았다.
크고 작은 방송과 공연을 이어오던 그에게 2020년 < 팬텀싱어 3 >의 출연은 큰 변곡점이 됐다. 고영열의 실력과 센스와 야망이 거침없이 세상에 터져 나왔다. 뮤지컬 배우, 성악가로 활약하는 멤버들과 함께 만든 그룹 '라비던스'에는 분명 그 정수가 녹아있다. 30살의 시작. 그리고 독립적인 라비던스 활동으로 새로운 출발점 앞에 선 그를 초여름의 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파주에서 만났다. 묵직한 목소리에 시원한 성격을 지닌 고영열과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얼마 전 소속사 사장님이 되었다고 들었다.
라비던스로 함께하며 다사다난한 2년을 보냈다. 다들 각자 하고 있는 음악 영역이 있는데 그것과 병행하며 그룹 활동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넷이 모여서 방법을 고민하다가 회사를 차리게 됐다.
판소리, 뮤지컬, 성악 등 각기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라비던스'가 됐다.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이 있다면?
일단은 '라비스러운 것'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찾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가장 적절한 답을 찾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고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지난 6월 24일 발매된 미니 음반에 도전적인 요소를 많이 심었는데 이 역시 우리만의 길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피아노 치는 국악인'이라는 수식어도 그렇고 도전, 새로움은 고영열과 잘 어울리는 단어다.
옛것을 고집하고 지켜왔던 시간이 길었다. 그 시기를 지나 지금은 새로운 터닝 포인트 앞에 서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다. 라비던스와 함께 만든 소속사에 '네오(Neo Eqeal Origin : 새로움과 근원은 같다)'이란 단어를 넣은 것도 그런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퓨전, 크로스오버 국악인으로 영열을 소개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 좋다고 보는 편이다. 대중에게 조금이라도 국악이 친숙한 이미지로 비친다면 내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어도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중학교 때부터 판소리가 너무 좋았다. 전공으로 삼고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당시 학교에 같이 다니던 친한 친구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참 속상했다. 그때부터 조금씩 마인드 세팅을 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국악을 사랑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한 거다. 국악이 대중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면 나는 다 괜찮다. (웃음)
데뷔 연도가 언제인가?
2005년 광주 MBC에서 진행하는 '흥부와 놀부'라는 뮤지컬에 출연했다. (흥부였냐고 물으니) 놀부를 했다. 아주 잘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소리를 시작하고 바로 선 무대였다. 더 제대로 된 방송 경험은 대학생 때다. '국악 한마당'에 나갔었다.
벌써 음악 연차가 꽤 쌓였다.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
대학 시절, 독립을 좀 일찍 하고 아르바이트를 참 많이 했다. 웬만한 아르바이트는 다 해봤던 것 같다. 그렇게 돈을 벌면서 학창 시절에 배워야 할 전통에 대한 정체성을 갖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다. 동시에 크로스오버적인 것도 꿈꾸고 있던 터라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맨발로 뛰어들었다. 뭐라도 한번 해보겠다고 피아노 치면서 곡을 쓰고, '사랑가' (공연을) 올리고 했는데 조금 지나니 공연 수익이 거의 제로가 됐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때가 온 거다. 전통 음악 잘하던 애가 갑자기 크로스오버를 한다고 하니까… 이상한 거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던 거나 하지 피아노 치면서 뭘 저러고 앉아 있냐고. (웃음) 라면만 먹고, 감자 칩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기가 생각보다 길어졌다. 이런저런 힘들고 값진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어쩌면 데뷔 이래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그였다. 퓨전, 크로스오버 국악의 대중적 관심과 더불어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고영열' 세 글자를 정확하게 아로새긴 덕이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짧지 않았던 무명 시절이 궁금해 힘들었던 때를 알려 달라 하니 대뜸 '초등학교 6학년 국악 학원 발표회' 얘기를 꺼냈다. 가사를 까먹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괜한 조급함에 더욱더 힘들었던 때는 없었냐 물으니 머리를 갸웃거렸다. “힘들긴 했지만 다 극복했어요. 아사 무사 넘어갔습니다. 하하하” 마치 소리를 한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다는 듯, 당연지사 종종 찾아오는 슬럼프 역시 의연하게 대처했다는 뜻처럼 느껴졌다. 그의 소리가 담은 힘찬 에너지만큼이나 시원한 답변이었다.
커리어에 있어 2020년 < 팬텀싱어 3 > 출연 및 준우승을 빼놓을 수 없다.
진정한 크로스오버 팀을 꾸리고자 하는 < 팬텀싱어 >의 목표는 긴 시간 크로스오버 작업을 해오던 내게 도전 의식을 불러왔다. 오랜 시간 타 장르 혹은 다양한 악기와 결합해 음악을 하고 있는데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보다 실력 좋은 사람들과 큰 무대를 만들며 (음악적) 정점을 찍고 싶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아주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다.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국악을 편협하게 바라보던 게 있었다. 국악의 한계를 스스로 정했다고 할까? 그런데 1차전, 2차전 계속 올라갈 때마다 '아, 한국 음악으로도 이게 가능하구나'를 몸소 느끼고 증명했다. 국악이 좀 더 범주가 넓은 장르였음을 그때 많이 깨달았다. 한마디로 국악의 가능성을 체감했다.
그 가능성을 제대로 보여준 무대를 하나 꼽아 달라.
성악을 하는 존노씨와 1라운드 무대에서 쿠바 노래를 불렀었다. 처음에 불렀을 때 이게 괜찮을까 싶었는데 작업해가며 다시 한번 (국악에) 한계가 없구나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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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light', '그대의 날개가 되어'를 비롯해 다수의 자작곡이 있다. 뿐만 아니라 거문고, 트럼펫 등을 다루고 프로듀싱도 한다고 들었다.
엄청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다. (웃음) 그냥 좋아서 하다 보니까 이거 해보고, 재밌으니까 또 저것도 해보고 이러면서 점점 범위를 넓혀가게 됐다.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큰 것 같다.
커도 너무 크다. 그래서 회사나 주변에서는 별로 안 좋아한다.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고 다양한 취미생활도 하라고 잔소리를 듣고 있다. (음악이 좋은 이유가 뭐냐 물으니) 재밌다. 일단 그냥 재밌고 지루하지가 않다. 음악을 하며 '언제 끝나지'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작업을 한번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싶다. (웃음)
활동하면서 국악, 퓨전 국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짐을 느끼는지.
확실히 느낀다. 많은 사람이 관심 두고 함께하려 한달까? 뮤지션의 콜라보 요청도 많아졌다. 대중들도 이런 협업에 적응된 것 같다. 요즘은 오히려 크로스오버로 국악을 접했던 분들이 그 원형을 찾기 위해 전통 공연을 보러 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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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부평문화재단이 주도한 리애스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배호 원곡의 '배신자'에 목소리를 보탰다.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 선생님이 노래의 편곡 및 전체 프로듀싱을 해주셨는데 함께 상의해 이 곡을 선택했다. 플라멩코 스타일을 살짝 가미해 노래의 매력을 살렸다.
노래 제작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녹음할 때 선생님께서 그냥 기타 반주 하나만 깔아 놓으시더니 알아서 부르라고 하셨다. 그래서 정말 내 느낌 가는 대로 불렀다. 한 번에 '오케이'를 주시더라. 솔로 파트를 이렇게 끝낸 건 처음이었다. 노래를 꼭 들어 보길 바란다. 플라멩코, 국악, 원곡의 느낌이 어디 하나로 치우치지 않고 고스란히 자리 잡아 이국적이고 국악인이 내가 함께함으로써 우리나라 정서에 잘 맞는 요소가 더해졌다. 새롭다.
30대의 시작, 소속사 사장이자 크로스오버 그룹 라비던스로의 시작. 어떻게 보면 올해를 음악가 고영열이 다시 출발점에 선 해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나. 30살이면 아직 아기다. 또 24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지금이 몇 시쯤이 될까. 음, 아무튼 아침일 뿐이다. 힘차게 나아가야 할 때라고 본다. 아직 부족하지만 좀 더 도전하면서 좌절을 맛보더라도 여러모로 다양한 작업을 하려고 한다.
고영열에게 소리란 무엇인가?
어떤 소리든 보이지 않는 건데 들리는 걸로 춤을 추는 것 같다. 어떤 소리를 가져와도 말이다.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어떤 걸 보면 춤을 추고 싶은 것처럼 음악을 들으면 자꾸 무언가가 떠오르고 내 속에서 내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내게 소리는 춤사위다.
* 고영열이 선정한 나를 대표하는 곡 best 3
1. '사랑가'
피아노 버전과 오케스트레이션 버전이 각각 존재한다. 이 두 버전을 다 듣는 것을 추천한다.
2. '천명'
정규 2집 < 초월 >의 타이틀 곡이다. 신분의 차이를 느낀 슬픈 사랑 노래인데 사실 이 곡을 듣기 전에 먼저 발매됐던 '이룰 수 없는'이라는 싱글을 들어야 한다. 스토리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곡을 연달아 들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그려질 거다.
3. '궁자노래'
지난 6월 24일 발매된 라비던스 미니 음반 < The fourth power of four >의 타이틀이다. 판소리 춘향가 중에 '사랑가' 가장 마지막 대목으로 음악적으로 공을 많이 들였다. 사랑의 마지막을 담고 있는 만큼 가사가 조금 야하다. (웃음) 자칫 외설적으로 오해할 만한 가사를 전통 그대로 문학적으로 살려 작업했고 사운드는 네오소울, R&B를 살려 힙한 요즘 노래(?)로 표현했다. 재미있게 들어 달라.
진행 : 박수진
사진 :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