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 기술의 발전은 음악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으며,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바꿔 놓았다. 대중음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곡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만, 노래에 '대중성'이라는 특수성을 더하는 데에는 음향 엔지니어 혹은 음향 기사라 불리는 이들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음악가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음악을 조율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악을 분석한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프로듀싱까지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는 최고의 음향 전문가들을 이즘이 만났다. 그들이 꼽는 명곡 명반은 과연 뭘까. 이즘 필자, 독자, 라디오 PD에 이은 '내 인생의 음악' 시리즈 네 번째 특집이다.
음악가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음악을 조율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악을 분석한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프로듀싱까지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는 최고의 음향 전문가들을 이즘이 만났다. 그들이 꼽는 명곡 명반은 과연 뭘까. 이즘 필자, 독자, 라디오 PD에 이은 '내 인생의 음악' 시리즈 네 번째 특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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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환 기사는 음악 외골수다. 여전히 신보를 찾아 듣고 관련 다큐멘터리를 챙겨본다. 젊은 시절에는 외국 잡지를 하나하나 구해서 공부했고, 지금까지도 뮤지션의 일대기나 정보를 검색하며 학구적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음악에 관한 얘기라면 그와의 대화가 끊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인터뷰는 음향 엔지니어 특집이지만 대담 내용은 오로지 음악을 향했다.
이번에는 다르게 시작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마이클 잭슨으로 문을 연다. 괜히 '팝의 황제(King of Pop)'가 아니다. 이제는 그를 0순위로 채우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임계환 기사가 지목한 첫 타자는 컨트리 록으로 시작해 미국적 록 사운드로 전설의 위치에 오른 밴드 이글스다. 그가 느낀 이들의 매력은 멤버 모두가 악기를 다루면서도 노래를 잘 불렀다는 점이다.
1976년 명반 < Hotel California >를 좋아하지만 임계환 기사는 이글스가 14년만에 재결합하며 제작한 라이브 앨범 < Hell Freezes Over >(1994)를 리스트에 넣었다. 'New York minute'에서는 현악기와 로즈 피아노(Rhodes piano)의 세련된 사운드에 반했고, 'Hotel california'에서는 타악기와 통기타를 이용한 도입부에 깜짝 놀랐다. 그는 “편곡과 사운드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라며 극찬했다.
이글스 음악에 반했던 그는 음향을 기준으로 토토를 골랐다. 정상급 세션 맨이 모인 토토는 밴드 사운드의 정석으로 불린다. 특히 1982년 4집 < Toto IV >는 음악가와 엔지니어 모두가 마이클 잭슨의 것들만큼이나 많이 언급하는 앨범이다.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라는 표현이 여기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깔끔하고 정교한 사운드의 극치를 임계환 엔지니어라고 벗어날 수 없었다.
LA 메탈에 빠졌던 임계환 엔지니어는 강렬한 록 사운드 중에서도 정교하고 섬세하며 파워풀한 드럼 사운드에 로망이 있었다. 캐나다 록을 대표하는 브라이언 아담스와 주로 작업하며 데이비드 보위, 폴 매카트니 등과도 일했던 프로듀서 밥 클리어마운틴(Bob Clearmountain)이 롤 모델. 드럼 메이킹 권위자인 그의 결과물을 찾아 끊임없이 들으며 드럼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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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넥스트의 1997년 대작 < Lazenca (A Space Rock Opera) >를 최고로 꼽았다. 한국에서 녹음하고, 영국에서 믹싱했다. 자신이 레코딩했던 작품 중에서는 가장 이상적인 녹음 방식을 설명하며 임재범의 < Story Of Two Years >(2000)를 예로 들었다. 메일로 소스를 하나하나 받는 요즘과 달리 과거에는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상한 부분을 실시간으로 수정하며 취입했다.
직접 믹스한 노래 중에서는 생각지 못한 연주곡이 나왔다. 그는 김진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 < 바람의 나라 >의 OST '무휼의 노래'를 추천했다. 녹음본은 컨트리를 중심으로 팝 산업이 모여 있는 미국 중남부 테네시주의 내슈빌에서 건너왔다. 당시에는 믹싱에 두 프로(녹음실 사용 시간 단위, 보통 한 프로에 3시간 반) 정도를 할애했지만 이 곡에는 하루를 전부 투자하며 열정을 쏟아부었다.
하얗게 불태운만큼 임계환 기사가 역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웅장함에 초점을 맞췄다. 배경으로서 역할을 다하며 뾰족하게 튀어나오지 않고, 묵직하게 깔리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 거대한 사운드를 작업하며 비교적 늦은 시기에 라지 스피커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저음 보강을 통해 더 맑은 해상도를 얻을 수 있었다.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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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작은 앞서 말한 임재범의 앨범을 포함해 이소라의 '청혼', '기억해줘'가 담긴 < 영화에서처럼 >과 윤상이 월드뮤직을 구사한 < 移徙(이사) > 등 여전히 회자되는 음악들이 많다. 그의 이름을 가장 널리 알린 활동은 아무래도 버즈와 작업일 것이다. 1집부터 3집까지의 음향을 책임지며 전성기를 견인했다. 국내 가요계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임계환은 어떤 소리를 가지고 있을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광한 선생님(팝 전문 라디오 DJ)의 자그마한 편집실에서 시작해 오아시스 레코드사의 메이저 녹음실을 거쳐 강남 압구정에 있는 리드 사운드에서 17년 정도 근무했다. 이후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프로듀서의 꿈을 키우고 있다.
가장 처음으로 했던 작업은 어떤 건가요.
오아시스 레코드 때는 트로트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때는 어시스트였다. 리드 사운드로 넘어오면서 메인이 됐고 그때 처음 했던 작업이 2003년 이현우의 < Da Painkiller >다. 원래 드럼만 녹음하러 왔었는데 드럼 소리가 너무 잘 나와서 다른 작업들도 다 맡았다.
많은 가수들이 임계환을 찾아왔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특유의 스타일이나 질감이 있었을까요?
어쿠스틱 레코딩이나 드럼 레코딩에 강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 80% 이상은 어쿠스틱 녹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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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소리를 잘 잡는다는 건 어떤 걸 의미하나요.
녹음을 받을 때부터 마이크 세팅을 잘 해서 기계로 많이 안 만져도 되는 걸 말하는 것 같다. 드럼 세트에 보통 12개의 마이크를 설치하는데 충분하게 받고서 나중에 믹싱할 때 불필요한 부분을 버린다.
드럼 녹음이나, 레코딩 할 때 임계환 기사만의 비법이 있나요.
앰비언스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러려면 일단 공간도 매우 중요하다. 정말 좋은 공간에서 지금까지 축적한 모든 기술을 발휘해 스트링이고, 드럼이고 녹음해보는 게 꿈이다.
사운드 엔지니어링이 잘 된 앨범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멜로디는 이미 나와있는 것이기 때문에 편곡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대표적인 뮤지션이 마이클 잭슨이다. 음악이 설계 도면처럼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다. 편곡이 전제가 돼야 훌륭한 사운드를 뽑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쿠스틱 녹음에 있어서 임계환 기사는 도가 텄지만 놀라운 부분은 따로 있다. 음악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점이다. 최근에 들었던 일본 음악부터 시청했던 뮤지션 영상까지 음악에 관한 모든 곳에서 영감을 받는 그는 엔지니어링에 대한 여러 질문에서도 음악을 중심으로 풀이했다. 그에게 있어서 음향은 음악과 동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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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가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음악도 좋아해야 하고 공부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성실해야 한다. 처음 시작했을 때 센스 있던 친구들 중에서도 금방 도태되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엔 음악을 진짜 좋아하고, 열정적으로 끊임없이 듣는 게 중요하다. 많이 듣다 보면 분석 능력도 좋아진다. 엔지니어든, 작곡가든, 연주자든 듣는 걸 멈추는 순간 다 끝이다. 후배들이나 어린 친구들에게는 듣기 싫고, 귀찮아도 카피를 많이 하라고 추천한다. 학원에서 기초를 배우는 것도 중요한데 모두가 다 똑같이 배워선 매력이 없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개성이 중요하다.
소스가 성에 차지 않은 경우에도 음향 작업을 통해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뽑아낼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밭이 좋아야 좋은 작물이 나오듯 소스가 나쁜데 히트하긴 힘들다. 히트 가능성이 있다고 해도 짧게 소비되거나 인정받지 못한다. 이승철의 < The Secret Of Color >(1994)나 조용필의 < The Dreams >(1991) 같은 앨범을 엔지니어들이 인정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히트가 보장되어 있는 스타임에도 좋은 사운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에 대한 철학과 음악적 깊이를 인정하게 되었다.
음향과 음악을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고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나의 생명을 낳는다는 기분으로 임할 때 제일 즐겁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작품들이 내 손을 떠나 대중이 소비하기 시작하면 가장 고통스럽다. 짧게 소비되기 보다 길게 회자되었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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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로 넘어오면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따랐을 것 같다.
어느 순간 엔지니어가 부업이 된 느낌도 있다. 다른 쪽에서 수입을 지탱하면서 음악을 이어가고 있는데 요즘은 뜻이 맞는 후배들과 같이 작업하는 중이다. 의뢰를 받아서 하는 일이 아니다보니 제약도 없고, 허심탄회하게 조언하면서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하시나요.
믹싱 엔지니어는 최종 단계의 편곡자라고 생각한다. 기존에 레코딩 된 소스를 갖다가 만지는 작업이지만 항상 편곡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믹싱하는 편이다. 물론 옛날에 힘이 없을 때는 그냥 올리라면 올리고 내리라면 내렸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 하면서 그 전부터 생각해 온 걸 표현하고 있다. 내가 작업한 결과물은 평생 남기 때문에 돈과 관계없이 일종의 '사명감'과 '철학'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
엔지니어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즘엔 엔지니어를 직업으로 삼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작곡, 편곡, 믹싱하는 걸 좋아한다면 그 꿈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하며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
인터뷰 : 임진모, 임동엽, 정다열
정리 : 임동엽, 정다열
사진 : 일일공일팔, 임계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