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향 기술의 발전은 음악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으며, 누구나 손쉽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바꿔 놓았다. 대중음악은 그렇게 탄생했다. 음악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곡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지만, 노래에 '대중성'이라는 특수성을 더하는 데에는 음향 엔지니어 혹은 음향 기사라 불리는 이들의 힘이 결정적이었다.
음악가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음악을 조율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악을 분석한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프로듀싱까지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는 최고의 음향 전문가들을 이즘이 만났다. 그들이 꼽는 명곡 명반은 과연 뭘까. 이즘 필자, 독자, 라디오 PD에 이은 '내 인생의 음악' 시리즈 세 번째 특집이다.
음악가들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음악을 조율하는 이들은 누구보다 소리에 민감하고, 누구보다 많은 양의 음악을 분석한다. 녹음, 믹싱, 마스터링에 프로듀싱까지 음악 제작의 거의 모든 부분에 참여하는 최고의 음향 전문가들을 이즘이 만났다. 그들이 꼽는 명곡 명반은 과연 뭘까. 이즘 필자, 독자, 라디오 PD에 이은 '내 인생의 음악' 시리즈 세 번째 특집이다.
녹음, 믹싱, 서라운드, 마스터링까지 레코딩 전 분야에서 활약한 음향 스페셜리스트 도정회 기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서울 스튜디오,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던 킹 스튜디오, 노래방 시장을 주름잡는 태진미디어를 거쳐 현재는 방배동에 위치한 '사운드맥스'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 MBC에 재직한 부친과 터울이 긴 형제들 덕에 음향과 음악을 다양하게 섭렵할 수 있었던 그는 당시 생소했던 엔지니어에 인생을 걸었다. 그를 꿈꾸게 만든, 그를 최고의 엔지니어로 만든 노래와 앨범 이야기.
이 인터뷰 시리즈에는 또 다른 주인공이 있다. 국내 레코딩 엔지니어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아티스트, 바로 마이클 잭슨이다. 그의 앨범 엔지니어와 관련, 전에는 믹싱 기사와 프로듀서였지만 이번에는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이름을 올렸다. 스틸리 댄의 < Aja >, 닥터 드레의 < The Chronic > 등 불세출의 걸작들을 작업했던 그래미 최우수 엔지니어 부문 수상자인 버니 그런드만(Bernie Grundman)이다. 그의 또 다른 작업 물 중 하나인 MJ의 < Dangerous >를 현대 음향 기술의 절정이라 표현한 도정회 기사는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라며 그때의 충격을 전했다.
형님들을 따라 노래를 자주 들었던 그는 사운드를 초월해 음악 자체의 매력에 반했던 비틀스의 < Sergean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1967)를 매그넘 오퍼스로 꼽았다. 영미 권에서 듣기 힘든, 라이브 같지도 않고 리버브가 많지도 않은 귀에 짝짝 들어오는 아주 독특한 질감의 소리였다고 평했다. 음향 역사의 발전도 함께 견인한 비틀스는 이후 < Abbey Road >에 와서 그 사운드가 완성됐다.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세 번째 뮤지션은 레드 제플린이었다. 앨범마다 사운드의 변화가 확연히 느껴지는 실험적 사운드의 밴드로도 정의하며 도정회 기사는 특히 그들이 스스로 설립한 레이블 스완 송 레코드에서의 결과물을 강조했다. “좋은 사운드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다른' 사운드였다!!” 소리 측면에서 미완성 같은, 1979년 활동 당시의 마지막 작품인 8집 < In Through The Out Door >를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꼽은 그는 여기서 사운드가 음악을 어떻게 지배하고 표현하는지 깨쳤다고 했다.
레드 제플린 하면 리버브(reverb) 아닌가요. 그럼 리버브를 사용한다는 게 소리의 개념으로는 어떤 차이를 말하는 것인가요?
일반적인으로 음악의 시작은 고전 음악이었다. 그때는 전부 공연이었는데 대부분 홀이나, 교회였을 것이다. 그레고리안 성가 같은 건 극단적인 예지만 홀에서 느껴지는 잔향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익숙한 사운드였다. 때문에 음악을 만들 때 리버브를 채우는 게 익숙했으리라 본다. 딜레이는 퀸 같은 밴드가 잘 썼지만 리버브 사용은 레드 제플린이 독보적일 만큼 대단했다.
공일오비, 언니네 이발관 등 도정회 기사하면 떠오르는 아티스트가 무수하지만 본인은 자신이 소리를 만진 앨범 중 과연 어떤 작품을 기억할지 궁금했다. 열심히 공들인 만큼 소리가 잘 나왔던 1992년 예민의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가장 먼저 언급했다. 도정회 기사는 정말 예민의 수채화 같은 맑은 가사처럼 사운드도 깨끗하고 따뜻하고 맑게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최신 장비였던 초고도의 '돌비 노이즈 리덕션'을 사용했다고 밝혔다. 음향측면에서 좋은 작품이 되려면 가사를 비롯한 음악을 정확히 이해하고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설명이었다.
'성덕', 성공한 덕후. 도정회 기사에게도 같이 일해보고 싶은 뮤지션이나 스태프가 있었다. 김건모의 곡을 번안했던 일본 아이돌 칼라였고 그들과 작업하면서 상기한 버니 그런드만에게 마스터링을 의뢰했다. 결과는 완벽했다. 존경하고 동경하던 전설에게서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정회 엔지니어 경력에서 1호에 해당하는 음악가 양희은도 빼놓을 수 없다. 친누나를 통해 어릴 적부터 즐겨 들으면서 그의 노래는 물론 곡을 쓴 김민기와 저항음악에도 꽂혀 있었다고 한다. 결국 양희은의 1998년 작 < 양희은 1998 >과 30주년 DVD를 도맡으며 성공한 팬심의 끝을 보여 줬다. “어릴 적 음악 영웅과 작업했으니 소원 풀이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여전히 음악에 목말라 있었다. 스튜디오와 음악을 총괄하는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 음향을 택했지만 처음부터 트렌드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곳에서 레코딩 엔지니어로 활동, 음향적 자아와 자유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마스터링을 하는 지금은 다행히 그 꿈을 이루고 있다. 그는 사전 질문을 노트에 적으면서까지 하고 싶은 얘기를 꼼꼼하게 준비했다. 자신의 작품 중 최고를 뽑아달라는 물음에 겸손을 표하면서도 모든 질문에는 열과 성을 다해 응답했다. 인터뷰 중에도 음악과 음향에 대한 무한애정이 피어났다.
음향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홍익대학교 방송국 출신으로 '이주일의 노래'라는 방송을 만들었다. 상황이 잘 풀려 당시 대학 방송국으로는 힘든 장비를 드물게 보유하고 있었고 덕분에 일반 예술가들도 와서 녹음을 진행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본격적으로 엔지니어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유학보다 경험을 먼저 쌓아야겠다는 마음에 국내 최고의 서울 스튜디오, 지구 스튜디오 등의 녹음실에 문을 두드렸다. 앞서 언급한 홍대 방송국에서 밴드 블랙테트라를 녹음한 적이 있어 그 카세트테이프를 서울 스튜디오에 보냈다. 운 좋게 먼저 지원한 서울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왔다. 대학생이 록 밴드를 녹음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시절이었는데 그걸 해내 가능성과 노력을 평가해줬던 것 같다.
도정회 엔지니어링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나는 사운드 엔지니어지만 실상 음악을 하려고 이 길을 걸었다. 모든 장비와 기술이 나의 악기이자 연주다. 사운드에 대한 개념은 음악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좋다고 하는 사운드는 있겠지만 이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망쳐야 감흥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완성된 믹스보다 러프(rough) 믹스가 좋을 때도 있다. 음악을 위해서라면 과감한 선택이 필요하다.
엔지니어 생활을 삶과 연결시킨다면요?
엔지니어는 수용해야 할 게 많은 직업이다. 제작자와 아티스트 요구를 들어야 한다. 나도 고집이 센 사람인데 사람들의 이런저런 요청을 다 들어주려다 보니 정말 힘들었다. 스트레스도 심했다. 한 20년 전부터는 이러다 죽을 것 같아 정상에서 일을 그만두었다.
아티스트들과 작업한 것 중에 특별한 기억으로 남은 일화가 있는지요?
김건모의 앨범 2/3 정도는 내가 작업했는데 7집 < Kim Gunmo #007 Another Day... >의 '짱가'를 녹음한 뒤의 일이다. 어느 날 김건모가 갑작스레 “예전에 녹음했던 '짱가' 말이에요. 베이스가 없던데요.”라고 하길래 나중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 베이스가 없었다. 가수도, 엔지니어도 깜빡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떠버렸다. 신기하게 빠지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느낌이 좋았다. 유머러스하고 특이한 음악이었던 탓인지 베이스가 빠졌는데도 당시엔 아무도 몰랐다. 오죽하면 수년 뒤에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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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딩, 믹싱 같은 용어는 미디어를 통해 많이 퍼졌지만 '마스터링'이라는 말은 대중에게까지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마스터링은 음원이 만들어지는 최종 단계라 어느 때보다 최상의 장비와 최고의 귀가 필요하다. 여기서 놓치면 끝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설명과 함께 도정회 기사는 독자들이 궁금해 할 사항에 대해 답을 남겼다.
마스터링은 어떤 작업인가요?
관점이나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6개로 정리하고 싶다. 가장 먼저 '음압 조절'이다. 버니 그런드만은 마스터링을 '음악 소리를 맥시마이징(Maximizing)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동의한다. 그래서 나의 회사 이름도 '사운드맥스'로 지은 것이다. 두 번째는 '상업화', 소비자화' 하는 것이다. 믹싱까지는 '아트 파트'고 그 이후는 상품화를 위한 과정이다. 음악적 단계의 끝이면서 상품이 되기 위한 시작 단계가 아닐까 싶다. 다음으로는 '타깃 사운드(target sound)'가 있다. 사운드, 장르, 용도에 맞게 마스터링하고 음악에 미세한 변화를 줘 타깃화를 유도한다.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업계에서는 '뉘앙스를 만든다'고 한다. 이게 네 번째 단계다. 제일 중요한 레벨을 조절할 때 음악적으로 접근하는 게 요점이다. 특정 주파수, 즉 어떤 악기가 얼마나 크고 작게 들리느냐에 따라 소리의 좋고 나쁨이 나뉜다. 음악과 어울린다면 때에 따라 그 뉘앙스를 틀어버릴 수도 있다. 다섯 번째는 '믹스의 문제점 보완'이다. 마스터링은 노래를 발매하기 전에 가능한 마지막 수정 과정이다. 이큐(이퀄라이저, Equalizer), 컴프레서(Compressor), 장비, 전기 등 원인과 해결책만 해도 수천수만 가지다. 이게 앞서 말한 뉘앙스에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요즘은 이 부분을 잘 신경 안 쓰는데 '잘 된 믹싱을 유지하는 것'이 마지막 마스터링의 역할이다. 전통적인 개념이지만 사실 가장 어렵다. 자꾸 얘기하지만 버니 그런드만이 이 능력으로는 으뜸이다. 나는 같이 작업한 적도 있었고, 일본 세미나에서는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이 모든 걸 정리하자면 결국 마스터링은 뉘앙스를 찾아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날로그가 갖는 강점이 지금도 필요하다고 보는지요?
완성도와 음향적으로 좋은 건 디지털이다. 진짜 퀄리티는 안 보이는 쪽에 있다. 기음 부분이라고 해야 할까. 숨어 있는 에너지, 이 부분에 있어서 디지털은 맹점이다. 그래서 오래 들으면 힘들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이 들어간 4집 LP를 루프 시켜놓고 온종일 들은 적이 있다. 한 7~8시간까지. 젊어서 그랬는지 그렇게 오래도 들어도 피곤하지 않았다. 반면에 리마스터된 CD는 몇 번 못 듣겠더라. 기술적으로는 하급이지만 음악은 시작할 때부터 아날로그였다. 숫자나 측정보다 귀로 들어서 좋은 것들이 살아남은 거다. 그리고 그 힘이 아직 남아있다. 이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인데...아날로그는 분명 강점이 있다.
엔지니어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을 것 같다.
조언하기 쉽지 않다. 쫓아야 할 가치와 삶은 또 다른 얘기니까. 먹고 사는 문제도 있고. 그런 측면에서는 우리 세대가 운 좋았던 부분도 많다. 우리는 과거의 윤기 있는 부분과 장래의 밝은 희망을 다 먹으면서 올라왔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급속하게 올라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재능과 잠재력은 내가 배워야 할 만큼 굉장하다.
인터뷰 : 임진모, 임동엽, 염동교, 정다열
정리 : 임진모, 임동엽, 염동교
사진 : 일일공일팔, 도정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