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문화전문지 《 쿨투라 》를 발간하는 도서출판 작가는 지난 2006년 이래 줄곧 전 년도 개봉 영화들을 대상으로 영화 및 문화 관련 종사자들에게 의뢰, 한국과 외국영화 각 10편 전후를 선정해 단행본을 출간해왔다. 비록 단행본으로 내진 않았어도, 16회째인 올해도 그 선정은 지속돼 시, 소설과 함께 그 결과가 《 쿨투라 》 2021년 2월 호에 특집 '쿨투라 AWARDS로 발표됐다. 100명에 달하는 설문 참여자들에게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은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는 <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과 < 1917 >(샘 멘데스)이었다.
기획원으로서 또 다른 기획위원인 유지나 동국대 영화과 교수와 한 대담에서도 말했듯, 그 작업을 진행할 때만 해도 '코로나 19'가 큰 변수가 되지 않을까, 그래 적절한 영화들을 선택하는 일이 곤혹스럽지 않을까, 등의 크고 작은 염려들을 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웬걸, 최종 선택된 영화들의 면면이 그 어느 해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만큼 수준이 높은 게 아닌가. 흥미롭다 못해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상당 기량의 작품들이 극장은 물론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인 OTT(Over The Top) 플랫폼을 통해 선보인 덕분이랄까. 그중 외국영화에서 수·걸작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여느 해라면 의당 포함됐어야 할 마땅한 영화들 중 베스트 10 안에 들지 못하는 예가 유난히 많았다. 당장 내가 5편 가운데 한 편으로 선택한 < 소년 아메드 >가 그랬다. 상기 대담에서 다소의 과장을 무릅쓰고 “외국영화의 경우에는 역대 리스트 중 가장 수준 높은 것이 아닌가, 싶어요”라는 의견을 표명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참고삼아 < 1917 > 외에 나머지 9편의 '2021 오늘의 외국영화'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 마틴 에덴 >(피에트로 마르첼로), <맹크>(데이비드 핀처), <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제이 로치), < 안티고네 >(소피 데라스페), < 작가 미상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셀린 시아마), < 테넷 >(크리스토퍼 놀란), < 페인 앤 글로리 >(페드로 알모도바르).
1. < 안티고네 >, 소피 데라스페 감독
'캐나다 영화'의 어떤 저력! 드니 빌뇌브의 여성 버전으로 손색없는 연출력에,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압도하는 안티고네 캐릭터, 나에마 리치의 폭발적이면서도 섬세한 열연 등이 큰 주목감. 2019년 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걸작과 조우한 이후 줄곧, 나는 10대 후반의 소녀 주인공 안티고네의'장엄한'자존감·저항의 자장 안에서 살고 있다. 그 선택이 정의감의 표출이든 치기 어린 범죄의 자행이든…. 2020년 한국영화에 < 소리도 없이 >와 문승아가 있다면, 외국영화에는 < 안티고네 >와 나에마 리치가 있다.
2.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 셀린 시아마 감독
< 브로크백 마운틴 >(이안)의 여성 감독 버전?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흥행 수치에 연연해하지 않는다면, 2020년 한국에서의 외국영화는 셀린 시아마의 해였다. 이 영화를 계기로 전작들인 < 톰보이 >(2011), < 워터 릴리스 >(2007), < 걸후드 >(2014)까지 개봉되면서, 한 감독의 영화 4편이 한 해 동안 선보이는, 흔치 않은 진풍경이 벌어졌다. 코로나의 해'였던 2020년 국내외를 불문하고 여성 감독들이 단연 주목할 만한 선전을 펼쳤는데, 그 대표주자로 손색없다.“위기=기회”라는 명제를 새삼 입증하면서….
3. < 작가 미상 >,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
< 타인의 삶 >(2006)으로 아카데미 국제장편극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관객과 비평가들의 열렬 성원을 받아온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 현존 가장 비싼 미술가라는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삶과 예술세계를 통해 현대 미술사 전체를 조망하려는 감독의 야심이 돋보인다. 현대미술의 오디세이'를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 그래서일 듯. 전기성 휴먼 드라마의 가능성도 그렇지만, 시대와 개인의 완벽한 결합에 경의를! 영화를 통해 나는 작가와 짝사랑에 빠졌다. 관련 원서들을 몇 권 구입할 정도로….
4. < 페인 앤 글로리 >,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126년 세계영화역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감독 한 명을 꼽으라면, 그 이름은 < 나, 다니엘 블레이크 >(2016) 등에 빛나는 켄 로치다. 가장 좋아하는 감독은? 다름 아닌 이 감독이다. < 내 어머니의 모든 것 >(1999)이나 < 그녀에게 >(2002)는 워낙 열광하는 걸작들이기에, < 그녀에게 >는 내 생애의 영화 10편 중 한 편이기에, 그의 신작을 만난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알모도바르 월드'를 충실·감동적으로 증거하는, 여전한 거장의 숨결! 감독의 두 페르소나인 페넬로페 크루즈와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케미도 '엄지 척'….
5. < 소년 아메드 >, 장 피에르 & 뤼크 다르넨 형제
세상 모든 종교 근본주의의'한계'·'폐해'를, 감독 특유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단 한 순간도 감상성으로 흐르지 않으면서 포착·묘사하는 가슴 서늘한 휴먼 드라마. 더욱 큰 눈길을 끄는 건, 주인공이 10대 소년이라는 사실. 형제 감독은 1999년 < 로제타 >와 2005년 < 더 차일드 >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회 거머쥐었는데, 2019년 칸 감독상을 가져갔다. 그들은 영화적 소우주에 머물지 않고 늘 이 세속적 세계의 '반영' 및 '연장'(Extension)으로서 문제작들을 구현해왔는데, 이 영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