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의 도전-

성시경은 인터넷의 한 음악사이트가 주최한 사이버 가요제에 입상하면서 가수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다. 시작의 이미지는 인터넷과 사이버이지만 이후 폭발적으로 누린 인기의 비결은 결코 그런 '앞선 것'과 인연을 맺고있지는 않다. 성시경의 서포터스는 그에게서 느끼는 '재래식의 편안함'에 정서적 기반을 둔다.

그가 구사하는 깨끗하고 유유한 느낌의 발라드부터가 그렇다. 그런 조용한 노래는 신세대도 끌릴 수는 있지만 기성세대도 좋아한다. 게다가 순수하면서도 지적인 얼굴, 186㎝의 훤칠한 키 그리고 명문대 재학생(고려대 인문학)이라는 신분은 기성세대가 '안심'할 수 있는 프로필이다. 그 때문인지 성시경은 10대 소녀 뿐 아니라 그들의 부모도 팬층으로 하는 이 시대 몇 안 되는 가수 중 한 명이다. 아마도 어머니는 어린 딸이 성시경의 음반을 산다고 한다면 기꺼이 용돈을 내줄 것이다. 그의 인기가 노래만이 아닌 '가수 이미지의 승리'임을 말해준다.

하지만 가수로서도 그는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가창이 주는 매력은 음색보다는 음역에 있다. 솔직히 그의 음색은 독특하지 않다. 그저 편안할 따름이다. 음역도 실은 높지 않다. 고음으로 올라갈 때는 상쾌하지 않을뿐더러 약간은 막히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중음(中音)대만은 가히 독보적이다. 소리가 아주 깨끗하고 물 흐르듯 유려하다. 지난해 첫 앨범의 히트곡들인 '처음처럼' '내 안의 그녀' '포용'을 들을 때의 편안함이 바로 여기에 기초한다.

막 발표한 그의 두 번째 앨범 '사랑의 멜로디'(Melodie D'Amour)도 1집의 연장선상에 있다. 윤종신이 써준 곡 '넌 감동이었어', 조규만의 '선인장', 그와 밀접한 관계인 김형석의 곡 '사랑해서 슬픈 날' 그리고 곡의 질감이 좋은 수작 'Love letter' 등에서 성시경은 '중음대의 파괴력'을 충분히 발휘한다. 신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발라드 가수는 앨범을 낼 때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어렵다. 가장 중요한 멜로디가 명확하고 거기에 노래만 잘 입힌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히트도 보장된다. 하지만 성시경은 신보에서 그런 공식에 안주하지 않고 나름의 과감한 정중동의 실험을 감행한다.

판에 박힌 발라드가 아닌 라틴 민속음악, 정확히 말하자면 쿠바의 전통음악인 '손'(son)의 리듬을 끌어들인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운 것이다. 퍼커션(타악)에다 손을 연주하는데 필수적인 4줄 소형기타인 '우크렐레' 연주를 집어넣어 그 낭만적 분위기를 축조해냈다.

꽤 괜찮은 '손의 가요화'를 이룩했지만 그래도 신보의 간판으로 내걸기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타성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이 부분이 돋보인다. 아마도 작년 광고촬영차 떠난 쿠바여행이 낳은 소산으로 보이는데, 워낙 해보고싶은 욕심이 강했던 탓인지 성시경 자신도 신나는 기분이 역력하다.

새 앨범은 대중만을 따르지 않고 중심을 자신으로 옮겨보려는 자세의 은근한 발진(發進)이다. 하지만 우리 가요환경에서는 조그마한 변화도 쉽지 않다. 앞으로 그가 대중의 시선과 자신의 욕구 사이에서 갈등과 고민을 겪게 될 것임을 말해주는 앨범이다. 그것은 진정한 뮤지션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고통이기도 하다.

-수록곡-
1. 넌 감동이었어
2. 선인장
3. 사랑해서 슬픈 날
4. Love Letter
5.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
6. 이렇게라도
7. 바램
8. Happy Birthday To You
9. 좋을텐데
10. 첫눈에 반하다
11. 사랑이 변하나요
12. 슬픔이 슬픔을
13. 어느 멋진 날
14. Sweet Dream
15. 사랑이겠죠 (Duet With 김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