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나 델 레이(Lana Del Rey) - < Norman Fucking Rockwell! >
전반에 서려있는 서정미와 비장미. 관조하듯 천천히 끓어올라 묵직하고 은근하게 내뱉는 세상을 향한 목소리는 조소, 환멸, 고통, 비극을 경유해 끝내 아픔을 포용한다. 하지만 관점의 시작은 여기, 나로부터 출발하여 이 음반에는 라나 델 레이 본인의 경험과 추억, 그가 들어왔던 음악들이 여기저기의 영감이 되어 자리한다. 비치 보이스, 데이비드 보위의 곡을 인용하고 카니예 웨스트를 차용해 전달하는 미국에 대한 통박은 그렇게 이 음반의 품격을 높였다.
여전히 세상의 틀에 자신을 맞추지 않는다. 노이즈로 풍성하게 소리를 키운 수록곡 'Venice bitch'는 10분의 러닝 타임을 지닌 채 싱글 커트 되었고, 오르간과 다층의 코러스를 사용해 씁쓸한 정취를 살린 'California'와 고독의 정서를 토해내는 'Fuck it I love you'는 회색빛 감정으로 작품의 얼개를 잡는다. 유명 화가 노먼 록웰이 삽화로 아메리칸 드림의 허물을 형상화한 것에 영감 받아 라나 델 레이는 그 사이 'Fucking'이란 수사를 덧댔다. 유영하듯 침잠해 날선 메시지의 적확함으로 작금의 미국을 소환하고 꼬집는 음반. 흔들리지 않고 쏘아붙인다. (박수진)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 -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
2019년의 동의어는 '빌리 아일리시'였다. 그로테스크한 뮤직비디오는 Z세대의 열띤 환호를 받았고 'bad guy'는 '힙'의 대명사와 다름없다. 폭발적인 가창력이나 달달한 사랑을 외치는 전형적인 팝스타를 거부한 17세 소녀는 발칙하고 괴이한 상상('우리가 잠에 들면 어디로 갈까?')의 영토로 우리를 이끌며 잠재된 반항 정신을 건드렸다. 의식과 무의식, 꿈과 죽음이라는 대조적인 공간을 마구 헤집어 놓는 광기는 그 어떤 로커보다도 '록'스러웠다.
영리하기까지 했다. 스산한 곡에서 댄서블한 후크를 뽑아낼 수 있고 로드, 에이브릴 라빈, 마릴린 맨슨을 언뜻 내비치다가도 순식간에 자신으로 돌아간다. 자기 파괴와 고딕 이미지가 절정에 올라 죽음으로 귀결되는 일련의 테마는 지루할 틈이 없으며 'bury a friend', 'you should see me in a crown'으로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홈메이드 방식과 원시적 감정의 부각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 음악의 유통기한을 매기는 틴 팝 시장을 향한, 무심한 꾸짖음 그 자체이다. 대중성과 유니크, 저항 정신을 모두 잡은 올해의 앨범. (임선희)
랩소디(Rapsody) - < Eve >
"블랙 우먼의 이야기, 그런 랩은 원하지 않아
그들은 환상을 좋아해, 총이 울리는 액션을 좋아해
노예 시절에도 강간했고, 다시 우릴 강간하지
가슴이 출렁거리는 경우만 TV에 내보내"
- 'Cleo' -
< Eve >는 피가 끓는다. 들끓다 못해 철철 흐른다. 인종과 젠더의 차별을 받는 당사자가 직접 마이크를 잡아 더욱 리얼하다. 흑인 사회의 영웅들, 그것도 여성들의 이름이 곡의 이름으로 붙여졌다. Nina, Michelle, Aaliyah, Whoopi.. 흑인 탄압에 핏대를 세웠던 니나 시몬의 목소리로 시작해 현재 가장 존경받는 오프라 윈프리와 미셸 오바마도 그녀의 음악이 되었다.
귀를 기울일 곳이 참 많다. 정곡을 찌르는 가사는 물론이고 모티브를 푸는 세련된 전개, 공들여 얹은 샘플링까지. 앨범은 완벽함에 가까운 만듦새를 자랑한다. 2008년 데뷔해 남자들 투성이인 힙합씬에서 단단하게 버틴 그녀, 레전드들의 호위를 받으며 자신의 신념을 널리 포효하기 시작했다. (김반야)
FKA 트위그스(FKA Twigs) - < Magdalene >
핵심은 모순의 공존이다. 제목부터가 창녀와 신실함의 이미지가 혼재한 마리아 막달레나에서 따왔다. 사운드에서도 알앤비와 일렉트로닉의 영향이 뒤엉키고, 가사에는 진지함과 조소, 연약함과 단단함의 콘트라스트가 매혹적이다. 가사를 내뱉는 FKA 트위그스의 목소리 역시 섬세함과 강렬함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FKA 트위그스는 언제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자신을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편성을 잊지 않는다. 우울한 자위를 노래하는 'daybed', 고통과 분노에서 서글픔으로 이어지는 'Home with you', 그리고 정제되지 않은 두려움을 드러내는 'cellophane' 까지, 한 사람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면서도 사회에게 부여당한 정체성을 직시하는, 정치적인 주체로서의 개인의 서사다. FKA 트위그스는 분노와 자애, 욕망과 신성함을 모두 끌어안아 입체적인 자아를 완성한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입장에 빗대어,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그 어떤 개인도 한가지 틀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 이건 시대정신이다. (황인호)
자밀라 우즈(Jamila Woods) - < Legacy! Legacy! >
자신의 뿌리에 대한 위대한 찬사. 그는 이미 1집 < HEAVN >을 통해 시카고, 흑인, 여성에 대해 노래하며 자신을 지배하는 예술적 자아를 언급했고 더 나아가 이번 앨범으로 시대를 앞선 다인종 예술가들의 행적을 통해 본인이 움직여야 했던 이유의 당위성을 알렸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흑인 혹은 여성 사회의 기억을 더듬으며 발견한 차별과 항거의 흔적은 그가 부당에 투쟁해야만 하는 확실한 근거가 됐다. 그는 사서(司書)가 되길 자처하며 영감을 준 이들의 이름을 따 음악으로 기록했다.
단지 소개로 끝나지 않았다. 알앤비와 소울, 힙합을 기반으로 시도된 음악적 실험은 흑인 음악의 역사를 훑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했고 박자에 얽매이지 않고 흐르는 목소리는 앨범의 처음과 끝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역사를 완성했다. “My wings are greater than walls.” 그는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굴복하지 않고 항쟁한 선구자에 대한 존경과 성찰 그리고 자기애를 담아내며 체제에 저항했고 그들이 남긴 발자취에 자신의 메시지를 덧씌우며 뚜렷하게 이름을 새겼다.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최신 '유산'이다. (손기호)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 < Assume Form >
범연한 소리를 곧이곧대로 따르는 모습은 매혹적이지 않다. 오리지널리티가 그래서 사랑스럽다. 그러나 그 오리지널리티마저도 기존하는 형식과 내용을 맴도는 순간부터는 따분하다. 기껏 얻어듣는 입장에 입맛이 뭐 이리 강퍅하냐마는 아무튼 간에 나는, 여태껏 말해보지 않은 것을 포착해다가 기어이 제 언어를 동원해 말해내는 이에게 실로 크나큰 감흥을 느낀다. 오직 그러한 이만이 전에 없던 것들을 쉬지 않고 재차 포획할 수 있다. 이상은 < Assume Form >을 듣고는 다시 한번 떠올린 내 청취에 관한 화두다.
제임스 블레이크는 늘 상투성의 함정을 교묘히 피한다. 선례를 조금씩 왜곡해가며 타인과, 그리고 기존의 자신과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습관은 또다시 다른 소리를 내어놓는다. 고요하면서도 번잡한, 몽환적인 일렉트로니카라는 자신의 언어 대종에 계속 의지하면서도 전보다는 다분히 밝고도 팝적인 사운드를 이식하기도 하고, 이제는 범상해질 대로 범상해진 트랩을 포섭해서는 신선한 모델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이제 두 가지 경로에서 익숙하고 또 낯설다. 친근한 팝 사운드가 아티스트의 왜곡과 함께 멀어졌다는 게 하나고, 아티스트의 스타일 역시 여전히 모호한 가운데서도 예상 밖으로 팝적으로 변모했다는 게 다른 하나다. 이러한 제임스 블레이크 또한 분명 전에 없었다. (이수호)
로살리아(Rosalía) - < El Mal Querer >
'Despacito'로 정점에 달한 2010년대 라틴 팝은 혁신과 열정의 젊은 아티스트들에게로 2020년대의 바통을 넘겼다. 제이 발빈(J Balvin), 배드 버니(Bad Bunny), 말루마(Maluma) 등이 각축장을 벌이는 가운데, 대세는 홀연히 떠오른 뮤즈 로살리아를 주목하고 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유럽 대륙,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나 그들의 전통 민족 예술 플라멩코(Flamenco)를 13세부터 수련해온 수재(秀才)다.
플라멩코의 혼과 새 시대 대중음악의 차분한 문법을 자유롭게 혼합하는 < El Mal Querer >는 앨범 커버처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을 기묘한 청각적 경험과 감각의 승천을 인도한다. 중세 기사도의 비극을 2000년대 초 아이돌 팝으로 수놓고, 원시적인 리듬으로 호흡을 가쁘게 가져가다 전자음의 치밀함을 전개하기도 한다. 이 태피스트리 위에서 눈물짓고, 몸을 불사르며, 절규하고 또 다짐하는 젊은 뮤즈의 모습이 숭고하다. 로살리아는 이 걸작의 메시지를 이후 히트 싱글 'Con altura' 속 가사로 다시 강조했다. "이 높은 곳에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해 / 난 일찍 죽어 묘지로 갈 거야" (김도헌)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 - < Father Of The Bride >
그간 꾸준하게 장르 다양성을 시도해온 그룹 뱀파이어 위켄드는 포크와 가스펠, 그리고 소울, 재즈, 팝 등 여러 장르를 한 데 섞은 요리를 꾀한다. 신선한 재료에 걸맞은 담백한 건강식이자, 깔끔한 플레이팅이다. 아이비리그의 키덜트(Kid+Adult)들은 미니멀리즘으로 더욱더 명징해졌고 여유로운 포용력으로 한층 더 성숙해졌다.
2013년도 작 < Modern Vampires Of The City >의 심오한 향을 가지면서도 그 형태는 2009년도 작 < Contra >와 같이 가볍고 경쾌한 것이, 올해 가장 리스너블한 록 음반의 탄생이다. 적당히 알싸하면서도 부담 없는 사운드 속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하는 밴드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벅찬 감정과 휴머니즘, 소소한 기쁨이 오가는 < Father Of The Bride >는 밴드의 따뜻한 새 국면을 선사한다. (장준환)
유나(Yuna) - < Rouge >
유나의 네 번째 글로벌 앨범 < Rouge >는 전작 < Chapters >(2016)로 지명도를 얻은 뮤지션의 야심작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지-이지(G-Eazy), 리틀 심즈(Little Simz), 카일(KYLE) 등 영미의 래퍼와 일본의 로커 미야비, 한국의 박재범 등 글로벌 합작 군단을 구축해 좀 더 과감하고 관능적인 음반을 꾸렸다. 잘 들리는 알앤비 앨범의 근간에는 재즈와 일렉트로닉, 힙합을 재료로 한 사운드 디자인이 위치한다.
앨범은 여러 스타일을 오가며 듣는 재미를 다채롭게 풀어냈다. 펑키한 디스코 풍 'Blank marquee'와 'Pink Youth', 건반과 보이스 샘플의 활용이 빛나는 힙합 알앤비 넘버 '(Not)The love of my life', 미야비의 기타 연주와 유나의 보컬이 섬세하게 어울린 'Teenage heartbreak', 박재범과의 하모니가 인상적인 하우스 트랙 'Does she' 등 매력적인 수록곡이 가득하다. 노래마다 톤과 창법을 달리하며 흔들림 없이 음반의 중심을 잡는 가창 또한 수준급이다. 아티스트의 음악적 성장이 돋보인 앨범. (정민재)
포스트 말론(Post Malone) - < Hollywood's Bleeding >
어디를 가나 포스트 말론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한 앨범에 수록된 17개의 노래가 모두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안에 들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 Hollywood's Bleeding >은 현재 그의 커리어 하이를 증명하듯 종합 히트곡 세트로 올해 팝 신을 강타했다. 힙합과 록을 가로지르는 작법에 더욱 완숙해진 프로듀싱을 받쳐 매끄러움을 살렸고, 여유롭게 끌어안은 팝 멜로디와 고유 매력이던 슬프고 어두운 캐릭터도 놓치지 않았다.
그에게 장르의 정의는 무의미하다. 어느 쪽에 치우침 없이 여러 양식을 두루 접목한 틀, 곡의 감성에 따라 제각각 탈을 바꾸며 변조를 이루는 보컬과 랩에 아티스트의 특출한 재능이 녹아든다. 스타일의 융합으로 제시한 다양한 색깔을 빼곡하게 수놓으니 음반은 더없이 풍요롭다. 촉망받는 팝스타의 전진 앞으로! 당분간 가장 '다재다능한' 뮤지션은 포스트 말론으로 통할 것이다. (이홍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