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대중음악 역사에서도 1999년은 종잡을 수 없는 해였다. 일렉트로닉, 알앤비, 아이돌 그룹, 펑크 록, 스카, 뉴 메탈, 힙합이 각양각색 매력을 뽐내며 장르의 경계를 해체했고 동시에 대중의 호응까지 확보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이 해는 아주 먼 과거도 아니지만 아주 최신도 아닌, 묘한 매력을 발현한 때로 기억된다.
1999년의 명곡 특집을 기획했다. 팝 30곡과 가요 30곡을 아우르는 기획이다. 두번째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1999년을 휩쓴 팝 명곡을 젊은 에디터들의 시각으로 살펴본다. 아래 링크를 통해 [우리에게 덜 알려진 1999 팝 15] 특집도 확인해보자.
식스펜스 넌 더 리처(Sixpence None The Richer) - Kiss me
개울물에 조약돌 튀어가듯 깨끗하고 청량한 기타 리프와 맑디맑은 여성 보컬 리내쉬가 속삭이는 달콤한 한마디 'Kiss me'! 다소 직설적인 제목과 달리 선율과 분위기 그 모든 것은 감성적이고 순수하다. 풀스 가든의 'Lemon tree', 노르웨이 출신 얼렌드 오여가 이끄는 밴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몇몇 곡과 함께 기분 좋은 날 가끔 꺼내 듣는다. 지금도 각종 매체에 자주 흘러나오는 탓에 익숙한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이들이 CCM 밴드라는 것이다. 곡은 최대 히트작으로 당대 차트 2위까지 올라가며 성공했다. 개인적으로 귀로만 흘려들은 음악의 정체를 제대로 알게 되었을 때 즐거움을 느끼는데 이 곡이 딱 그랬다. 나만의 대표 세렌디피티 노래! (박수진)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 Let's get loud
지나가는 이에게 들려주면 십중팔구 '아, 나 이 노래 알아!'라 대답할 테다. 대한민국에서 방송과 라디오를 보고 자란 세대라면 모르기 힘든 삼바 리듬의 주인공, 온갖 예능 프로그램에서 댄스 배틀만 열리면 어김없이 나오던 이 노래. 배우로도 유명한 제니퍼 로페즈의 1집 < On The 6 >의 수록곡인 바로 'Let's get loud'다.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라틴의 흥겹고 관능적인 리듬. 비록 자신의 곡 'If you had my love'의 돌풍에 밀려 세계적으로는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한국인에게만큼은 밀레니엄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애정이 담긴 곡. (장준환)
셰어(Cher) - Believe
셰어에게 '여성 최고령 빌보드 싱글 1위'라는 기록으로 새 전성기를 선사한 스물두 번째 앨범 < Believe >의 동명 타이틀 곡이다. 50대의 연륜이 있는 음악가였지만 영화 < 킬 빌 >에 흘렀던 'Bang bang'(영화에서는 낸시 시나트라의 리메이크), 인디언 혼혈 출신이라는 자전적 메시지를 담은 'Half-breed', 디스코 앨범 < Take Me Home >에 연기와 패션까지 무지개 같은 장점은 그를 신세대 전자 음악으로 끌어들였다. 'Believe'의 힘은 후렴의 중독적이고 쉬운 선율과 보컬의 노화를 중화한 '셰어 이펙트'라 불린 오토튠에 있다. 2000년대 중반 티 페인의 활약 이후 자주 듣지 못했던 깔끔한 튠을 20세기에 탄생한 'Believe'로 경험한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음악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임동엽)
마크 앤서니(Marc Anthony) - I need to know
라틴 음악하면 흔히 불타오르는 '레드'를 떠올리지만, 이 곡은 안정된 '블루'에 더 가깝다. 정제된 보컬과 빠르지 않은 박자 덕분일까. 타악기 콩가를 사용해 라틴 특유의 리듬감을 놓치지 않으면서 바이올린, 피아노 리프 등 블루스 요소를 섞어 느긋한 댄스가 절로 나온다. 작사, 작곡에 능하여 보컬을 살사 풍 오케스트라처럼 연주하는 재능도 맘껏 펼친다. 첫 영문판 앨범인 < Marc Anthony >의 'You sang to me'와 더불어 빌보드 10위 안에 들며 제니퍼 로페즈, 리키 마틴과 함께 세기 말 라틴 열풍을 주도한 역작. (임선희)
로린 힐(Lauryn Hill) - Doo wop
로린 힐의 유일한 스튜디오 앨범이자 데뷔 앨범인 <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의 수록곡이다. 동시에 빌보드 핫 100 1위라는 짧지만 굵은 커리어를 남겼다. 심플한 피아노 리프, 전형적인 펑크 그루브와 가스펠 풍의 코러스. 힙합 그룹 푸지스의 일원답게 기본에 충실한 진행은 우리 안의 원초적이면서도 촌스러운 힙합 본능을 일깨운다. 흥겨운 분위기 속에는 사랑받지 못하는 여성과, 여성을 사랑해주지 않는 남성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 있다. 세상과 예술에 대한 투쟁이 서려있어 귀는 즐거워도, 마음은 즐거울 수 없다. (조지현)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 - Angel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스매싱 펌킨스의 세션 멤버, 조나단 멜보인에 영감을 얻어 만든 'Angel'은 사라 맥라클란의 대표작이다. 1997년에 정규 1집 < Surfacing >의 수록곡이었다가 이듬해에 영화 < 시티 오브 엔젤 >에 삽입되면서 유명해졌고 1999년까지 그 인기를 유지했다. 헤로인을 '천사'에 빗댄 비유적 표현이 슬픔과 서러움을 일시적으로 마약을 통해 해소하려는 사람들의 심정을 담고 있으며, 눈부시게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의 나긋한 분위기는 불안한 현 젊은 세대들의 마음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듯하다. 4분 동안 느껴보는 현실 도피. 무거운 세상의 책임을 잠시 내려놓게 한다. (이홍현)
루 베가(Lou Bega) - Mambo no.5
뒤뚱거리는 사운드의 포석이 깔리고 그 위로 강렬한 쿠바 리듬이 몸을 이끈다. 전 세계에 맘보 열풍을 이끈 곡, 바로 루 베가의 'Mambo no.5'다. 페레스 프라도(Pérez Prado)의 1949년도 곡의 리프를 따와 스윙과 랩 대중 친화적 요소를 적절하게 조합하며 획기적으로 만들어낸 라틴 팝이다. 조금은 다가가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적극적이지만, 그래서인지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댄스곡. (장준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 Genie in a bottle
떡잎부터 바오밥나무 급이다. '초대형 신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데뷔를 알린 이 곡엔 스무 살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능숙한 농염함이 그윽하다. 후일 그의 전매특허가 되는 폭발적인 가창력은 없다. 그런 것 없이도 '노래의 맛'을 어떻게 살리는지 그는 이때 이미 알고 있었다. 선율 역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그래서일까. 같은 해 데뷔한 라이벌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대단했지만, 그래미는 크리스타나에게 신인상을 안겨줬다. 이후 커리어를 떠나 적어도 데뷔곡만큼은 크리스티나가 한 수 위였다. (조해람)
에미넴(Eminem) - My name is
수위 높은 가사에 한 번, 빈정거림 가득한 하이 톤에 한 번, 귀에 계속 맴도는 후렴구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그가 랩을 안 했더라면 연쇄살인범이 되었을 거예요.'라는 리아나의 말이 단번에 이해가 갈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디스의 향연이다. 대통령부터 동성애까지 건드는 가사는 살기가 가득하지만 통통 튀는 래핑은 더없이 가볍다. 중독적인 미드 템포의 그루브를 갖춘 'My name is'의 내용은 논란거리로 가득하지만 2000년 힙합 솔로 그래미 수상, 올 타임 힙합 36위에 드는 등 자신의 이름을 톡톡히 알렸다. (임선희)
리키 마틴(Ricky Martin) – Livin' la vida loca
리키 마틴은 그 시절 라틴 팝 열풍의 주역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공식 주제곡 'La copa de la vida'는 어디서든 울려 퍼졌다. 초등학생들까지 뜻도 모르고 “알레 알레 알레!”를 따라 했다. 이듬해 나온 'Livin' la vida loca'가 그 바통을 넘겨받았다. 글로벌 히트를 겨냥한 영어 가사와 단번에 귀에 꽂히는 스페인어 후렴 한 줄로 그는 라틴 팝 그 자체가 됐다. 우리 가수 홍경민이 라틴풍 '흔들린 우정'(2000)으로 인기를 얻자 미디어는 그를 '한국의 리키 마틴'이라 불렀을 정도다. 산타나, 제니퍼 로페즈에서 홍경민, 백지영까지 이어진 라틴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리키 마틴이 있었다. (정민재)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 - Back at one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다. 미국 최고의 알앤비 싱어송라이터인 그를 국내에서의 전성기로 이끈 곡이다. 선명한 멜로디에 중독성 있는 후렴구, 세련된 연주까지 더해지니 대중성은 따놓은 당상! 세레나데의 공식으로 자리 잡은 아름다운 선율의 피아노와 리듬 타기 좋은 미디엄 템포로 알앤비의 정석을 따르지만 구성은 단출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쉽게 접할 수 없던 멜로디와 창법이 반대 정서에 놓여있던 우리를 이끌었다. 감미로운 목소리의 힘이다. 때로는 이유 없이 먹는 달콤한 디저트처럼, 마음을 녹여줄 달콤한 사랑 노래도 필요하다. (조지현)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 - I want it that way
영어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청소년기에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As long as you love me'로 문법을 익힌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쉽고 단순한 노래라 좋아했던 것 같다. 1999년에 만든 타임캡슐이 있다면 반드시 들어가야 할 이 곡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6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적 인기와 비교해 순위가 낮다고 생각했던 나는 훗날 이유를 알게 되었다. 보통은 특정 싱글을 다시 발매해 확실한 히트송을 만드는 전략을 택한다.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앨범 판매에 집중했기 때문에 싱글 1위를 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실제로 이 곡이 수록된 3집 < Millennium >은 빌보드 연말 차트 1위에 올랐다. (정효범)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 …Baby one more time
2000년대 세기의 라이벌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당시 승자는 데뷔 앨범 < ...Baby One More Time >을 미국에서만 1,400만 장 이상 팔아치운 브리트니 스피어스였다. 비록 그래미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손을 들어줬지만, 브리트니는 교복을 입고 10대의 솔직한 감정을 당돌하게 표현하며 <미키 마우스 클럽>의 귀염둥이에서 만인의 섹시 하이틴 스타로 거듭났다.
10대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던 그의 전 세계적인 상업적 성공에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춤 좀 춘다, 하면 꼭 장기자랑 시간에 '...Baby one more time'과 'Oops!... I did it again'을 틀어놓고 안무를 맞추거나, 간드러진 콧소리와 어린애 같은 목소리를 흉내 내며 모창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여학생들뿐만 아니라 국내 여성 솔로 가수들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콘셉트를 종종 참고하곤 했으니. 필자 역시 2002년 에이브릴 라빈으로 갈아탄 척했으나 방 문을 잠그고는 기타를 잡는 대신 몰래 브리트니의 댄스곡을 틀어놓고 춤을 만들었다. 그때 함께했던 친구 성은아. 잘 지내고 있니? (정연경)
산타나(Santana) - Smooth (Feat. Rob Thomas)
근사한 라틴 리듬의 기타 사운드가 문을 연다. 곡의 이름과 뮤지션이, 심지어 멜로디가 익숙하지 않을지라도 금세 정겨워질 만큼 쉽다. 기타 장인 산타나가 구현한 끈적한 연주 톤과 농염한 멜로디라인 덕분! 제니퍼 로페즈와 리키 마틴으로 라틴에 입문한 나는 이 노래로 산타나까지 만났다. 공교롭게 1969년 우드스탁을 통해 데뷔했고 1999년 50세의 나이로 이 곡을 히트시켰으니 2019년, 올해가 딱 데뷔 50주년 된 거장중의 거장. 피처링으로 참여한 롭 토마스는 매치박스 20란 그룹의 보컬로 당시에 인기가도를 달리던 밴드 맨이었다. 그러니까 이 곡은 젊음과 연륜의 두 음악가가 만든 합작품이다. 싱글차트 12주 연속 1위란 대기록과 주춤한 산타나 기세에 활력을 불어넣어준 효자곡. (박수진)
슈가 레이(Sugar Ray) - Every morning
스스로를 '파티 펑크 밴드'라 자처하던 슈가 레이가 내놓은 완벽하게 대중 지향적인 노래. 1집에서 보여주던 강하고 저항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2집 히트곡 'Fly'와 비슷한, 여유롭고 연한 분위기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전면에 내세운 댄서블한 기타 리프와 말로(Malo)의 'Suavecito'에서 따온 중독적인 후렴 등 풍성한 들을 거리를 지녔고, 그 결과 노래는 메인스트림을 장악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당시 미국 전역의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다. 당대 최고로 인기 있었음과 동시에 지금 들어도 캘리포니아 특유의 싱싱하고 후끈한 무드를 느낄 수 있는 곡이다. 해변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는 기분. (이홍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