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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3시간도 전부터 SNS에는 현장 도착을 인증하는 사진이 올라왔고, 시작 시각인 6시에 다다르자 올림픽 체조 경기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각자의 휴대전화 갤러리 속 이 순간을 기념하는 사진에는 자신의 모습과 함께 박효신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필자가 관람한 7월 7일이 네 번째였음에도 스탠딩을 비롯한 지정석은 1 회차부터 다 회차 팬들 가릴 것 없이 같은 마음의 기대감으로 시끌벅적했다.
< 박효신 LIVE 2019 LOVERS:where is your love?>라는 제목에서 보이듯 이번 공연의 주제는 연인과 인연, 만인에 대한 사랑이다. 단순하고 삭막해진 세상에 회의를 느낀 박효신은 데뷔 2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기보다 팬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에 집중했다. 관객을 향해 연신 'Hey, Lovers'라 외치던 그는 스탠딩 구역을 각각 'L, O, V, E, R, S'라 이름 붙였으며, 인트로를 포함한 영상과 토크 시간에도 인류애적 애정표현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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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가 비추는 반투명한 스크린 속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얼마 전 공개한 '戀人 (연인)'으로 막을 열었다. 무대는 360도로 구성해 왼쪽을 밴드, 오른쪽을 오케스트라 자리로 마련했으며 연주자석은 곡에 따라 마법의 양탄자처럼 이동했다. 음악의 콘셉트에 맞춰 '별 시 (別 時)'에서는 LED 조명이 머리 위에서 춤 췄고, 'I'm your friend'에서는 외로운 등대의 핀 조명이 한 줄기 빛처럼 새어 나왔다. 무대만 봐도 퍼포먼스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었다.
자기가 최초라며 자부심을 밝힌 '이 자식'이라는 애칭의 원격 조정 색 팔찌는 관객을 박효신의 정신과 시간의 방으로 데려갔다. 과거 핸드폰이 연출하던 단색 풍경과 달리 'Wonderland'의 붉은색, 'Happy together'의 노란색, '야생화'의 흰색, '1991年, 찬바람이 불던 밤....'의 주황색 등 때마다 형형색색 빛깔이 이곳 전체를 수놓았다. 관중 사이에서는 팔찌를 2~3개씩 낀 사람들도 적지 않았으며 이들은 양팔의 무게와 밝기로 팬심을 드러냈다.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공연의 으뜸은 가장 신나는 록 뮤직의 순간에 터졌다. 'Alice'(미발매)에서 'The castle of Zoltar', 'V'(미발매)로 이어지는 소프트 록과 신스팝을 아우르는 무대에서는 마치 콜드플레이의 라이브가 떠올랐다. 그중 'The castle of Zoltar'는 'Viva la vida'를 닮아 그 느낌이 강했으며 청중은 '하늘보다 더 높이 날아가고 싶어'라는 가사처럼 입석과 좌석 구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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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의 노래 중 제일 유명한 '눈의 꽃'을 부르기 위해 영화 < 기생충 >의 음악 감독이자 이번 라이브의 밴드 마스터인 정재일이 그와 스테이지로 나왔다. 통기타 한 대로 만든 의외의 어쿠스틱 편곡은 서글프게만 들리던 이 음악과 기분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언플러그드이기에 가능한 외적으로 잔잔하지만, 내적으로 흥분한 상태를 경험했다.
떼창으로 유명한 국내 공연 스타일과 비교해 박효신의 무대는 '대장'이라고 불리는 그를 영접하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모두가 박효신 나라의 'Alice'가 돼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환호를 질렀고, 'Wonderland'의 '나 키스해줄래'와 같은 가사에서는 가공할 만한 부르짖음을 터뜨렸다. 최근 신변에 논란을 야기한 그이지만 콘서트에서의 모습은 흐트러짐이 없었으며, 박효신과 팬들은 오로지 이날의 환상적인 시간에만 집중했다. 당분간 박효신의 판타지에서 빠져나오긴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