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튼 존은 전 세대가 공감하는 아티스트다. 1970년대 왕성한 창작욕으로 불타올랐던 천재이자 기인이었던 그는 돌발 퍼포먼스 속 서정적이고도 강렬한 필살 멜로디라인으로 반세기 넘는 음악 시장을 지배했다.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까지 엘튼 존의 노래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였다. 그의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여정은 6월 5일 국내 개봉한 영화 < 로켓맨 >과 고별 월드 투어 < Farewell Yellow Brick Road >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방대한 그의 음악 세계를 집대성하기는 쉽지 않다. 이즘은 엘튼 존의 업적을 두 부분으로 나눠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이즘의 젊은 에디터들이 엘튼 존을 대표하는 20곡에 대해 논한다. (김도헌)
|
Your song (1970)
빌보드 싱글 차트에 8위까지 오른 'Your song'은 엘튼 존의 첫 번째 싱글 히트곡이다. 등장하자마자 대중의 호응과 평론가들의 상찬을 얻은 이 노래로 그는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름과 동시에 그 후의 음악적 방향을 잡았다. 좁은 음역대의 가창과 그걸 보좌하는 단출한 반주가 잔잔한 분위기를 그리고, 오랜 동료 버니 토핀이 17살에 쓴 다소 유치하고 엉성한 가사는 무구한 사랑의 모습을 선명히 담고 있다. 사랑 앞에 어쩔 줄 몰라 떨리는 감정, 가진 건 없지만 노래 하나로 연인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 하는 순수한 마음이 꾸밈없이 전달되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든다. 1998년에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홍현)
|
Rocket man (1972)
광활한 우주를 외로이 떠도는 그는 사색에 잠겨, 쓸쓸하고도 낭만적인 멜로디를 내뱉는다. 정체되지 않고 다양한 음역대를 넘나드는 멜로디의 진행, 선명한 피아노 선율과 함께 '로켓맨'을 부르짖는 엘튼 존의 탄성. 이는 따분하고 분주한 일상에 존재하는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만든다. 영영 떠나보지 못할 우주에 잠기게 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지독히 고독하며, 지독히 황홀하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누구나 로켓맨이 된다. (조지현)
|
Bennie and the jets (1973)
어린 날의 나에게 엘튼 존은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을 점잖게 부르는 모습이 전부였다. 화려한 복장과 현란한 피아노 연주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 'Bennie and the jets' 영상 속 그를 마주했을 때는 그래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라이브 버전을 그대로 발매한 줄 알았으나 콘서트에서 들리는 소리를 의도적으로 넣은 곡이었다는 사실 역시 신기했다. 가수 핑크를 비롯해 요즈음의 뮤지션들이 커버한 버전을 들어보니 유행을 타지 않는 멜로디였음을 깨닫게 된 기억도 난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의 위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정효범)
|
Goodbye yellow brick road (1973)
어느덧 데뷔 52년 차에 다다른 그는 3년에 걸친 월드투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 공연의 제목은 바로 < Farewell Yellow Brick Road >. 이것만 봐도 이곡의 가치가 드러나지 않을까? 커리어 사상 가장 번뜩이던 시절, 1970년대 엘튼 존을 담고 있는 곡으로 화려하게 쌓인 코드와 피아노 반주 그리고 노래만큼이나 빛났던 그의 무대 위 의상들은 바로 동명의 이 음반, 이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제는 고전이자 명작으로 남아있는 영화 < 오즈의 마법사 >에서 등장한 노란 벽돌 길을 차용한 제목은 환상의 나라이자 꿈의 공간이 알고 보니 우리의 곁에 있었음을 은유한다. 카펜터스의 'Top of the world'에 밀려 싱글차트 2위에 머무르긴 했지만 레전드 송의 무게가 덜어지진 않는다. 아름답고, 반짝이는 엘튼 존 대표 팝송. (박수진)
|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1973)
처음부터 끝까지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와 밴드 사운드가 휘몰아친다. 금요일 밤 술집에서의 한바탕 소란을 담은 곡답게 쉴 새 없이 내려치는 심벌즈는 부딪히는 술잔을, 따발총을 쏘는 듯한 건반은 떠들썩한 손님들을 연상케 한다. 꽉 찬 사운드 속 시원하게 내뱉는 샤우팅은 귀를 번쩍 뜨이게 한다. 'Saturday night's alright'은 당시 폭력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방송매체에서 금지되었으나 발매 이후 라이브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를 뮤지컬 음악과 발라드로 처음 접한지라 하드 록을 하는 모습은 꽤나 낯설지만 몸이 먼저 반응한다. 덩달아 흔들지 않고는 못 배기는 노래. (임선희)
|
Daniel (1973)
1973년, 베트남 전쟁의 열기가 치솟고 광기와 혼란이 미국을 지배하던 시절. 어디선가 잔잔한 플루트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참전용사의 이야기를 담은 곡 'Daniel'이 바로 그 주인공이였다. 다소 산뜻한 음선과 대비되는 작사가 버니 토핀의 노랫말은 획기적인 반전의 메시지이자 평화를 향한 목소리였다. 엘튼 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로 꼽은 이 곡은 빌보드 차트에서 2위를 거머쥐고, 이듬해 1974년 그래미 최우수 남성 팝 보컬 부문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장준환)
|
Crocodile rock (1973)
'Your song'이나 'Candle in the wind'같은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의 발라드 곡보다 한결 경쾌해졌다. 활기 넘치는 피아노 연주는 저절로 몸을 비틀리게 하고 발을 구르게 한다. 이 흥겨운 선율을 타고 들려오는 노랫말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크로코다일 록을 노래하고 춤추던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특히 중독성 강한 코러스 '라라라'의 외침에는 그때를 향한 그리움이 깃들어있다. 로큰롤은 떠나갔다지만 'Crocodile rock'은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있을 걸작이다. (박설희)
|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1974)
1974년 엘튼 존의 < Caribou >에 들어 있는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는 왬(Wham!)의 조지 마이클 버전이, 정확히 말하면 그와 엘튼 존의 듀엣이 유명하다. 원곡은 피아노와 보컬의 잔잔한 시작 이후 비치 보이스의 칼 윌슨, 브루스 존스턴 등이 펼친 깔끔한 화음과 델 뉴먼의 관악 편곡이 합쳐지며 웅대한 끝을 맺는다. 조 카커, 마일리 사이러스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이 리메이크함과 동시에 엘튼 존이 라이브 후미를 장식하기 위해 애창한다는 점에서 이상의 평가는 필요 없다. 발라드를 사랑하는 국내 팬들에게도, 엘튼 존을 처음 접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영화 < 로켓맨 > 덕에 이 곡에 생명을 불어넣을 기회가 생겼다. (임동엽)
|
Philadelphia freedom (1974)
최초로 커밍아웃한 여성 운동선수,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을 위한 찬가다. 그의 팬이었던 엘튼 존은 평생의 작사담당 버니 토핀에게 노랫말을 주문했다. 그렇게 빌리 진 킹 없는 빌리 진 킹 노래, 테니스 없는 테니스 찬가가 탄생했다. 버니 토핀의 '참뜻'을 아직도 잘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가지는 확실하다. 하나는 그 옛날 대도시의 흑인들을 위로했던 끈적한 필라델피아 사운드의 재현. 또 하나는, 별것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겐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됐을 한마디. "Shine a light!" (조해람)
|
Someone saved my life tonight (1975)
과격하게 내리치는 업라이트 피아노의 공간감. 그 사이로 우직하게 흐르는 선율. 듣는 이의 시간을 사로잡는 서사. 요즘 도무지 찾기 힘든 것들을 이 곡은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엘튼 존을 사랑하는 이유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곡엔 요즘도 도무지 참기 힘든, 해결되지 않은 어떤 부조리도 함께 있다. 혐오다. 곡은 실제 엘튼 존이 커밍아웃 후 밀려드는 고통 속에 자살을 기도했다가 절친한 친구들에 의해 살아난 경험을 노래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처연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깊은 심연에서 돌아와 웃을 줄 아는 인간. 이 역시 우리가 엘튼 존을 사랑하는 이유다. (조해람)
|
Don't go breaking my heart (1976)
같은 멜로디를 사이좋게 주고받는 남녀 보컬, 그를 받치는 밝고 풍성한 반주로 엘튼 존의 노래 중 가장 춤추기 좋다. 1976년 발매된 'Don't go breaking my heart'는 엘튼 존과 키키 디의 듀엣 곡으로 타미 테렐, 킴 웨스턴과 함께 부르던 초기 모타운 시기 마빈 게이의 스타일을 본떠 만들었다. 사랑을 약속하는 가사, 듣고 부르기 쉬운 가벼운 선율로 빌보드 차트 1위와 커리어 첫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이루어냈고 그해 두 번째로 많이 팔린 노래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캐나다, 프랑스, 호주에서까지 정상의 인기를 차지하며 얻은 국제적, 상업적 성과는 엘튼 존이 가진 마력을 증명한다. 누구나 좋아할법한 확실한 멜로디, 그의 음악이 강한 이유다. (이홍현)
|
Sorry seems to be the hardest word (1976)
"슬프죠, 너무 슬퍼요. 왜 우리는 더 이상 얘기할 수 없는 거죠. / 미안하단 말은 가장 어려운 말 같군요." 이 간결하면서도 솔직한 가사는, 끝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지 못해 사랑을 놓치고 마는 우리의 연애담과 비슷하기에 공감대를 자극한다. 전체적으로 마이너한 사운드는 연인의 불협을, 비브라폰과 아코디언의 애처로운 연주는 '사랑' 그 아름다운 단어에 상실감을 부여한다. 이따금 떠오르는 사랑하는 연인의 잔상에, 애틋함과 미안함을 가득 메우는 노래. (조지현)
|
Blue eyes (1982)
정체기에서 점프한 < Jump Up! >은 그의 복귀를 알렸다. 'Blue eyes'는 게리 오스본의 감성을 자극하는 가사와 엘튼 존의 수려한 피아노 선율이 수놓아지며, 전성기 시절 팝 발라드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파란 눈 너머로 보이는 고달픔을 감싸주는 목소리가 가슴 깊이 파고들고, 묵직한 울림은 감동을 선사한다.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를 비롯하여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르며 엘튼 존은 제2 전성기의 준비운동을 마쳤다. (박설희)
|
Empty garden (Hey hey johnny) (1982)
'여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뉴욕의 해가 저물었을 때, 저는 거리 속 비어있는 한 정원을 발견했어요..'
정원사가 사라진 정원을 떠올려보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무성해진 잡초와 발길이 끊긴 풀밭이 떠오른다. 쓸쓸한 이미지의 텅 빈 정원, 'Empty garden'은 바로 총격 사고로 세상을 떠난 존 레논에게 바치는 추모곡이다. 절절한 목소리와 상실의 공허함을 표현한 시적 가사가 돋보인다. 아마도 소중했던 친구를 떠나보내는 가장 아티스트다운 방법이 아닐까. (장준환)
|
I'm still standing (1983)
엘튼 존의 자그마치 17번째 정규음반 수록곡. 빛나던 1970년대를 뒤로하고 당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의 그는 잠시 주춤거렸다. 쉬지 않고 이어온 창작활동은 엘튼 존을 지치게 했고, 화수분처럼 터져나온 많은 곡들 사이 대중의 주목도는 점점 쩔어져만 갔다. 이 흐름을 꺾어준 효자 트랙이 바로 이 곡이다. 도입부터 몸을 흔들지 않고는 못 배길 신나는 리듬감과 당시 유행하던 뉴웨이브 성향을 가미해 적극 사용한 신시사이저는 이 곡의 시원함을 살리는 일등공신이다. 사랑에 실패한 남성이 이를 이겨낸다는 가사를 담고 있지만, 지난 몇 년의 침체기를 겪고 다시 돌아왔음을 시사하는 개인적 발화라는 해석이 좀 더 우세하다. 이후 몇 번의 시련이 있었지만 엘튼 존은 이 노래처럼 이겨냈다. 그는 여전히 여기에 서 있다. (박수진)
|
I guess that's why they call it the blues (1983)
작사가 버니 토핀과 오래간만의 재회 후, 1950년대로의 회귀를 담아 그간 성적면에서 부진한 상태를 깨고 빌보드 싱글 차트 4위에 이름을 올렸던 싱글. 버니 토핀이 당시 아내에게 바치는 곡으로, '나의 삶 자체보다 당신을 더 사랑해요'라는 가슴을 파고드는 가사와 스티비 원더의 하모니카 연주는 한 장의 연서(戀書)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1950년대 블루스의 향수가 느껴지는 재지한 피아노 연주가 엘튼 존의 노련한 가창을 든든하게 뒷받침한다. 쉬운 가사와 또박또박한 발음은 학창 시절 선생님께서 이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며 받아쓰기를 시켰던 추억에 잠기게 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듯 잔잔하고 따뜻하게 감성을 터치하는 타임리스 곡. (임선희)
|
Nikita (1985)
1980년대 뉴 웨이브의 특징인 은은한 신시사이저, 특유의 드럼 사운드가 돋보이는 곡이다. 'Nikita'에는 대중의 취향을 응시하며 발맞춘 엘튼 존이 존재한다. 대중성을 확보한 덕에 빌보드 싱글 차트 7위에 오르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에서는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해 슬픈 표정으로 돌아가는 엘튼 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곡을 썼을 당시 독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된 때였다. 사랑하는 이와 훗날 자유롭게 만나는 날이 오길 바라는 노래는 어린 세대에게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준다. 50년 넘게 활동해온 그이기에 음악 속에는 시대가 녹아있을 수밖에 없다. (정효범)
|
Sacrifice (1989)
빌리 조엘의 1983년 앨범 < An Innocent Man >에 영감을 받은 엘튼 존의 스물두 번째 음반 < Sleeping With The Past >는 빌리 조엘과 마찬가지로 1960-70년대 알앤비를 따라간다. 전체적으로 리듬감 강한 수록곡 사이에서 'Sacrifice'는 별다른 도약 없이 유려한 멜로디의 힘으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간다. 기계적 타악기와 여러 건반 소리는 최근 유행하는 시티팝의 도회적인 느낌과 함께 고독한 잔상을 남긴다. 고음 중심의 역동적인 '한국식 발라드'와 다른, 말 그대로 잔잔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는 명곡이다. (임동엽)
|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1994)
엘튼 존은 몰라도 < 라이온 킹 >은 알았다. 어린 시절 동네 비디오 대여점에서 제일 인기 있었던 만화가 라이온 킹이었으니, 빌려보고 싶어도 테이프 곽이 왕왕 비어있어 예약자 명단에 이름을 적기도 했다. 그렇게 겨우 구한 비디오를 하루에 몇 번이나 재생했다. 특히 심바와 날라가 눈을 맞추고, 두 사자가 풀밭을 뒹굴 때 흘러나오는 웅장한 가스펠 코러스를 듣기 위해 테이프만 서너 번 돌리기도 했다. 어린 시절 마음을 울린 이 노래의 제목을 모른 채로 시간이 흐를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종종 올드팝을 틀어놓으시던 어머니 덕분에 이 노래가 엘튼 존 원곡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인 줄 알았다. 가사도, 가수도 모르고 무작정 멜로디가 좋아 따라 불렀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는 명곡이기 이전에, 우리 세대가 공유하는 공동의 기억이자 추억이다. (정연경)
|
Circle of life (1994)
엘튼 존을 '1도' 모르더라도, 이 곡은 모두가 안다. < 라이온 킹 >에 울려퍼진 "나주평야". 바로 이 노래다. 엘튼 존이 부른 원곡엔 '나주평야'는 없지만, 나주평야보다 더 널찍한 공간감을 뽐내는 오케스트레이션이 매력이다. 단단한 중저음 보컬의 타격은 꽉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준다. 어릴 적 < 라이온 킹 > 노래로 엘튼 존을 처음 접한 이들이 전기영화로 그를 다시 만난다니, 역시 인생은 'Circle'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