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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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머리, 파격적인 패션과 거침없는 도전, 화려한 공중 퍼포먼스, 인권과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높여온 여전사, 두 아이의 엄마이자 뮤지션. 이 모든 이미지는 대중의 기억에 자리한 핑크의 모습이다. 실력과 개성을 갖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은 핑크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수차례 언급하며 존경을 나타내기도 했다.
6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두아 리파는 < 보그 >와의 인터뷰에서 어떤 뮤지션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는지를 묻는 말에 '핑크'라고 대답했다. 저스틴 비버의 히트곡 'Sorry'를 비롯한 팝스타들의 곡을 쓰고 가수로 데뷔한 줄리아 마이클스 역시 그래미 레드 카펫 행사에서 핑크를 '나의 우상'이라 표현했다. 이렇듯 후배 뮤지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핑크는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 여성으로 데뷔 19년 차가 지난 지금까지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오고 있다. 핑크의 삶과 음악을 3개의 키워드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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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름다운 트라우마
1979년 미국에서 태어난 알레시아 베스 무어는 아티스트 핑크가 되면서 자신을 감싸던 트라우마와 불안을 내던진다. 어린 시절 그는 혼란과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핑크는 열 살이 되기도 전에 부모님이 이혼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2집 < Missundaztood >에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이 담긴 곡이 수록되어 있다. 'Family portrait'는 당시 부모님의 싸움을 떠올리며 쓴 곡이다. '아빠, 제발 소리 지르지 말아요 / 엄마를 그만 울려요 / 아빠 떠나지 마세요'라는 가사처럼 부모의 이혼이 어린 시절 핑크에게는 아픔으로 남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이 노래에 대해 '이혼은 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음악과 친숙하게 지낸 가정에서 자란 핑크는 학창시절부터 곡을 썼다. 핑크의 곡을 본 그의 어머니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내성적이었던 핑크의 노래는 깊고 어두웠다'고 말했다. 당시 핑크는 반항적이었고 세상을 째려보고 있었다. 10대 초반에 이미 담배, 문신, 피어싱과 마약에 손을 뻗었고 가출과 비행을 일삼았다. 2집 수록곡인 'Just like a pill'은 그가 어린 시절 마약을 했던 기억과 약물 남용의 위험성을 녹여낸 곡이다.
2008년 발표한 5집 < Funhouse >에는 핑크에게 첫 솔로 싱글 차트 1위를 가져다준 'So what'이 수록돼있다. 시원한 가창력과 멜로디가 뚜렷한 록 사운드 덕에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곡이다. 핑크는 2006년에 결혼한 남편 캐리 하트와 별거한 후의 감정을 이 곡에 풀어냈는데, 뮤직비디오를 비롯해 가사 역시 유쾌하게 풀어내어 핑크의 대범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난 괜찮아 / 나 아직 록 스타야 / 너 같은 거 원하지 않아 / 지금이 더 재밌어'
캐리 하트가 촬영장에 오기 전까지 노래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별거 중이던 그가 'So what'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러 왔다는 사실도 놀라움을 준다. 이들은 1년 후인 2009년에 다시 재결합에 성공했고, 핑크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
어느덧 40대에 가까워진 핑크는 2017년 < Beautiful Trauma >를 통해 더 성숙해진 음악을 들려준다. 팝에 가둬지는 것을 기피했던 그는 잭 안토노프, 그렉 커스틴, 맥스 마틴과 같은 팝 프로듀서들과 함께 음반을 제작했다. 한결 유연한 태도로 팝 선율을 적극 도입한 핑크의 앨범에는 남편 캐리와의 결혼 생활에서 느낀 감정을 담은 노래들이 수록돼있다.
특히 동명의 수록곡 'Beautiful trauma'에서 핑크는 지난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삶은 결국 아름다운 트라우마라는 패러독스를 제시한다. 그동안 힘든 일도 있었지만 좋은 일도 있었으며, 완벽히 밑바닥 생활에 처했을 때와 악몽과도 같은 상황들이 있을 때도 사랑과 아름다움이 있었음을 노래한다. 어린 시절 방황과 고난, 사랑하는 이와 이별과 만남을 겪으면서 성숙해진 핑크는 자신의 삶을 온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진정한 뮤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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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o What? 난 록 스타야
본격적인 핑크의 음악 커리어는 16살에 들어간 알앤비 그룹 초이스에서 시작된다. 그룹은 베이비페이스와 엘에이 리드(L.A. Reid)가 설립한 라페이스 레코드와 계약을 했으나 솔로 제안을 받게 된 핑크는 라페이스에서 데뷔 준비를 시작했다. 힙합, 알앤비를 전문으로 하는 레이블인 만큼 그의 데뷔 음반 < Can't Take Me Home >은 TLC의 색채가 짙었고 핑크는 알앤비 여가수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했던 2000년대 초반은 블랙 뮤직이 좋은 성적을 거둔 시기였다. 따라서 1집은 핑크가 원했던 음악이라기보다는 레이블의 색깔과 당시 트렌드가 깊이 침투한 앨범이었다.
핑크는 이후 영화 < 물랑루즈 > OST이자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한 'Lady marmalade'로 더 유명해졌고 대중은 핑크의 2집을 주목했다. 그러나 독립적 성향이 짙었던 그는 프로듀서의 입김을 무시하고 자신의 색이 들어간 음반을 만드는 일에 힘쓴다. 바로 2집부터는 팝 록으로 기울기 시작했으며 이때 바로 핑크의 롤모델이자 포 넌 블론즈의 린다 페리를 앨범 제작진으로 영입했다. 2집의 히트곡 'Get the party started'는 린다 페리가 핑크에게 준 곡이다.
2집의 또 다른 수록곡 'Don't let me get me'에서는 레이블 설립자인 엘에이 리드에게 일침을 날린다. 엘에이 리드는 핑크가 안정적으로 성공 길을 달리는 팝 가수가 되기를 원했다. 핑크는 뮤직비디오 속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며 괴로워하지만, 밴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를 때 비로소 활기를 되찾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비교당하는 건 지쳤어 / 그녀는 너무 예쁘지만, 내가 아니잖아 / 난 항상 싸울 뿐'이라는 노랫말은 예쁘장한 틴 팝 가수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벗어던지고, '핑크'라는 뮤지션으로 살아가겠다는 외침을 나타낸다.
3집 < Try This >에서는 프로듀서로 참여한 린다 페리를 비롯해 록 뮤지션들의 참여를 보다 더 확대한다. 많은 이가 알고 있는 핑크의 로커 이미지는 이 시기부터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상업적 성적으로 보면 이전 음반들과 달리 부진했으나 핑크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이후 4집의 제목인 < I'm Not Dead >가 알려주듯, 핑크는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음악적 고집을 이어갔다. 수록곡 'Stupid girls'에서는 여성으로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있다. 당시 여성 연예인들이 겉모습에만 신경 쓴 나머지 자신의 내면을 가꾸지 못해 발생한 일들을 보며 핑크는 자라나는 소녀들에게 본이 되는 여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곡을 통해 말하고 있다.
'So what'에 이은 핑크의 빌보드 싱글 넘버원이자 데뷔 1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에 수록된 'Raise your glass'는 소수자와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을 주목하고 그들에게 함께 잔을 들자고 외치는 곡이다. 뮤직비디오 속에는 오늘날 강인한 여성과 미국 페미니즘을 상징하게 된 'We Can Do It!' 포스터를 표현하는 핑크의 모습이 등장한다. 함께 주목받은 곡 'Fuckin' perfect'는 '자신을 쓸모없다 여기지 마 / 넌 나에게 완벽해'라며 우울증과 자해로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로하고 자존감의 중요성을 짚어준 노래다.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핑크는 노래대로, 말하는 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 놀라운 건 2000년대 초반에 함께 출발한 가수 중 현재까지도 빌보드 1위를 하며 커리어를 이어오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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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린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사회적 메시지를 용기 있게 던지는 핑크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핑크는 미국 국적의 한 사람이자 뮤지션으로서 자국의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날린다. 'Dear Mr. president'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를 비판한다. 그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얼마나 혼란스러웠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 방치되었는지를 핑크는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적나라하게 표현해낸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이 있었을 때의 대통령이었다. 핑크는 그로 인해 사람들이 겪은 어려움을 당신은 공감할 수 있냐고 되묻는다. 핑크가 가장 좋아했던 밴드 포 넌 블론즈의 리더, 린다 페리도 동명의 곡을 발표한 적이 있다. < Bigger, Better, Faster, More! >에 수록된 곡인 'Dear Mr. president'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노랫말을 썼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자 핑크는 'What about us'라는 곡을 발표한다. 반이민 정책과 소수자를 배척하고 주변국과 장벽을 쌓는 대통령의 행보를 하나씩 짚어낸다. 이민자의 나라, 다양성의 나라, 모두가 평등한 나라 '미국'이 아닌 미국만을 위한 '미국'을 만드는 그에게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는다. 핑크는 이렇듯 개인의 문제와 가정의 문제를 넘어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주목하고 주변의 소외된 이들을 잊지 않았다. 파워풀한 보컬, 퍼포먼스와 강인한 이미지 속에 품고 있는 그의 진솔함은 여성 뮤지션 핑크의 역사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