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찾게 되는 플랫폼 창동. 작년 이맘때 포스트록의 거장 모노(MONO)에 이어, 올해 잠비나이의 초청장을 받아든 이들이 바로 일본의 혼성 4인조, 토리코다. 변화무쌍한 연주를 동반한 광란의 무대매너를 보여주는 이들의 입소문은 이미 아시아를 넘어 프랑스와 유럽에도 퍼져 있는 터였다. 그동안 몇 번의 아시아 투어를 진행했음에도 기회가 닿지 않아 찾아오지 못했던 한국 땅을 잠비나이의 도움 아래 밟게 된 것. 전날 취재했던 챠이도 그렇고, 인지도 등의 문제로 쉽사리 우리나라를 찾지 못하던 밴드들이 콜라보레이션 이라는 명목 하에 소개되는 것이 참으로 반갑게 다가왔다.
손님을 배려하듯 첫 번째 타자로 무대에 오른 잠비나이.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은 여전히 명불허전이었다. 심연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나가는 듯한 그 발걸음이 우리에게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순간, 그들의 음악과 존재 역시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리라. 그런 생각도 잠시 정규앨범을 준비할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그들은 말이 없다'로 어둠을 휘젓는 항해는 종료. 곧 순간을 폭파하고 해체시킬 토리코라는 다이너마이트에 불이 붙을 예정이었다.
20분여의 세팅을 끝내고, 드디어 드러머 요시다 유스케가 가세한 '4인조' 토리코가 등장했다. 첫 곡은 킥 드럼의 어프로치가 관객과의 기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에 제격인 'TOKYO VAMPIRE HOTEL'. 이어 키다의 기타 솔로잉이 전면에 부각되는 와중에 합주의 밸런스가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おもてなし(환대)'와 후렴의 훅이 매력적인 'WABI-SABI'까지의 흐름이 이르게도 이들의 진면목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본인에게도 고난이도의 곡이라고 인터뷰때 언급했던 '18, 19'에서의 연속되는 변박과 초창기 작품인 < 爆裂トリコさん(폭렬 토리코상) > 수록곡 'アナメイン'에서의 콜 앤 리즈폰스에 이은 기타와 베이스 협연은 이들의 연주가 왜 주목받는 지에 대한 대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페트롤즈의 라이브에서 받은 감흥을 토대로 만든 'よそいき(외출)'와 독특한 구성으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おちゃんせんすぅす'까지 몰아치고 나서야 보컬/기타의 나카지마 잇큐가 “안녕하세요!”하고 첫인사를 건넸다. “재밌어? 준비됐어? 내가 귀엽지?”라며 서투르지만 정성껏 준비한 한국어 멘트와 함께 잠비나이에게도 감사함을 전했다. 길지 않은 MC 후에 이어진 곡은 전열을 가다듬케하는 'pork side'와 'ポークジンジャー(Pork ginger)'와 그루브한 드러밍이 오감을 자극하는 'エコー(Echo)'. 때로는 관객을 붙들어 매는 충격에 가까운 연주를, 때로는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드는 중독적인 리듬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신기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연속해 선사했다.
참고로, 이 날은 아직 정식으로 발표되지 않은 신곡 'ブームに乗って(붐에 올라타)'을 들려주었는데, 킥 드럼이 장내를 울리는 가운데 스며드는 기타의 인트로 후 갑작스럽게 3연음으로 박자를 바꾸는 곡이 구성이 과연 그들다운 곡이었다. 대신 중반부에는 변화를 자제하고 멜로디와 보컬에 집중하며 어느 곡 보다도 토리코의 감성적인 측면을 느껴볼 수 있어 낯설면서도 편안한 인상을 주기도. 이어 공연은 마지막으로 치달으며 'E'와 '節約家(절약가)'까지 전력질주한 끝에 도달한 곳은 바로 앨범 < 3 >처럼 러닝타임의 대미를 장식할 'メロンソーダ(Melonsoda)'. 진하게 몰아치다 어느덧 사라지는 멜론소다의 달콤함 같이, 그들은 90여분간의 환상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앵콜로 'おやすみ(잘자)'를 들려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꿈을 꾸고 나니 또 다시 일상이었다.
처음 이들의 음악에 귀 기울이는 이들은 좀처럼 적응하기가 녹록치 않을 것이다. 적응하기가 바쁘게 모습을 바꾸는 변화무쌍한 그들의 노래들은 언제나 예상 안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그것이 오기를 부리게 만든다. 멀리 도망가는 그들을 어떻게든 쫓아간 끝에 깨닫게 되는 매력과 황홀감이야말로 이들의 음악을 계속 듣게 만드는 이유다. 고난이도의 곡들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하는 연주력, 보는 이들의 숨을 멎게 하는 아우라 넘치는 퍼포먼스. 이들만이 가지고 있는 유니크함을 완전연소시키며 우리나라의 머릿속에 토리코라는 세 글자를 각인시켰던 토요일 밤. 음악을 좋아하기에 이런 공연도 보는 거라고 자신을 칭찬하며 맥주 한잔 걸치러 가는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행복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진 : 김도헌
협조 : 더 텔 테일 하트(The Tell-Tail He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