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지는 켄드릭 라마와 7개 영역에서, 브루노 마스와 본상 중 3개 영역에서 부딪히며 작년 아델-비욘세의 라이벌 구도를 재현하고 있다. 올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라틴 팝 진영에서는 'Despacito'가 대표선수로 출전했으며 여성 리그에서는 줄리아 마이클스와 시저, 알레시아 카라의 삼파전이 기대된다. 60주년을 기념해 특별히 뉴욕에서 열리는 시상식엔 핑크, 엘튼 존, U2 등 선배 아티스트들과 신인들이 무대를 조화롭게 꾸민다고 한다. 관전 포인트 하나 더, 뉴욕에 온 김에 뮤지컬 배우들의 멋진 퍼포먼스도 준비했다는 소식! 다가오는 1월 29일(현지 28일) 따뜻한 안방에서 시상식을 보기 전 읽어두면 좋을 간단한 프리뷰를 준비했다.
Song Of The Year
보수적인 그래미도 대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라틴 사나이 루이스 폰시부터 흑인 제이 지, 혼혈 브루노 마스와 로직까지. 다른 부문들처럼 이번 < 올해의 노래 > 리스트도 후보군만큼은 '차별 없는 그래미'에 한 발짝 가까워진 모습을 보여준다.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음악의 본령은 캄캄한 '트럼프 월드'에서도 활발하게 맥동했던 것이다. 장르도 다양해서 제이 지와 로직의 힙합, 브루노 마스의 알앤비, 줄리아 마이클스의 팝, 루이스 폰시의 라틴 팝이 경쟁한다.
일단 인지도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빌보드 최장 1위 기록을 세운 라틴 팝 메가히트 'Despacito'를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노래 때문에 온 세상 모든 곳이 푸에르토리코였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러나 막강한 판매고를 떠나서 찬찬히 훑어보면 다른 노래들도 그 체급이 만만치 않다. 평단의 극찬을 받은 제이 지의 '4:44', 오늘날 가장 뜨거운 음원 강자 브루노 마스의 달달한 'That's what I like'도 유력한 후보다.
올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 '힐링 송'들도 이름을 올렸다. 내면으로의 침잠을 아름답게 노래한 줄리아 마이클스의 'Issues'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곡이고, 미국 자살 방지센터의 전화번호를 제목으로 한 로직의 '1-800-273-8255'도 희망의 메시지로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각각의 개성이 몹시 뚜렷한 다섯 곡이기에 이번 그래미가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더욱 궁금해진다. (조해람)
Record Of The Year
유색인종에게 유독 배타적인 태도를 보여 온 '미국 레코딩 예술 및 기술 협회(NARAS)'가 이번엔 꽤 유연한 선택을 보여줬다. 후보군에 백인이 없는 것이다! 물론 올해 라틴 팝 열풍을 몰고 온 루이스 폰시가 있긴 하지만 정통 미국계도 아니고 스페인어로 노래를 불렀으니 예외다. 과연 '화이트 그래미'란 꼬리표를 잘라낼 수 있을지 주목하며 가장 이례적인 노미네이트를 보여준 < 올해의 레코드 >를 살펴보자.
작년에 아델과 비욘세의 격돌이 있었다면 그 바로 전해에는 테일러 스위프트와 켄드릭 라마가 있었다. 역시나 일관된 그래미의 태도에 켄드릭 라마의 수상이 무산됐지만 올해 3번째로 많이 팔린 음반, < Damn. >의 리드 싱글 'Humble'로 설욕을 노려봐도 좋을 듯싶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을 가지고 돌아온 제이 지도 돋보인다. 그간의 상업적이고 화려한 외투를 벗어 놓고 자신과 흑인에 대한 이야기를 써낸 'The story of o.j.'로 목록에 올랐다.
마크 론슨의 'Uptown funk'로 같은 부분 본상을 수상했던 브루노 마스는 비슷한 질료의 '24k magic'으로 다시 한번 상패를 노린다. 그에 반해 루이스 폰시 새로운 강력 후보다. 작년 가장 판매량이 좋았던 아델에게 영광이 돌아갔던 것으로 본다면 빌보드 16주 연속 1위, 유튜브 역대 최다 조회수, 40개국 이상에서 음악 차트 1위를 거머쥔 'Despacito'의 파워는 묵직하다. 작년 말미에 발매돼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던 차일디시 감비노는 펑크(funk)와 소울을 감각 있게 조합한 < 'Awaken, My love!' >의 타이틀 'Redbone'으로 < 올해의 레코드 >와 < 올해의 앨범 > 후보에 각각 올랐다. (박수진)
Album Of The Year
< 올해의 앨범 >에서도 새 물결이 일고 있다. 이곳에서 백인 남성 뮤지션이 지명되지 못한 건 1999년 로린 힐의 수상 이후 18년 만이다. '백인'과 '기성세대 음악'을 향한 편애를 보여준 NARAS도 흑인 음악이 강세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더불어 그래미는 비욘세의 < Lemonade >가 아닌 아델의 < 25 >를 택한 작년의 사태를 의식해야만 했을 테다.
제 58회 레코드 부문 수상 경력이 있는 브루노 마스가 이번에는 앨범 부문에서도 선정됐다. 대중성으로 보면 그가 유력하지만, 작품성을 겸비한 경쟁자들도 빼놓을 수 없다. 'Redbone'을 품은 매혹적인 차일디시 감비노의 < 'Awaken, My Love!' >, 이번에야말로 승리의 왕관을 쓸 수 있을지가 기대되는 그래미 단골 후보 켄드릭 라마의 < DAMN. >, 올해 그래미에서 최다 노미네이트된 제이 지의 인간적 이야기가 담긴 < 4:44 > 모두 우열을 가리기 힘든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얀 그래미가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제56회 그래미에서 2관왕을 차지한 홍일점 로드의 < Melodrama >가 4명의 블랙 뮤직 후보를 막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흑백을 떠나 정말 좋은 앨범에 수여해야 할 상임은 분명하다. '그래미는 너무 하얗다'는 오명을 입은 NARAS의 선택을 다만 기다릴 뿐이다. (정효범)
Best New Artist
비(非) 백인 뮤지션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던 2017년을 반영하듯 < 올해의 신인 > 후보에도 다양한 인종의 아티스트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탈리아계 캐나다인 알레시아 카라는 2015년 소울, 팝 앨범으로 데뷔했지만 지난해 제드와 작업한 'Stay'로 식어가던 EDM의 열기에 다시 불을 지폈고, 혜성같이 등장한 텍사스 출신의 알앤비 가수 칼리드는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메이저 반열에 오른 자수성가형 가수다. 특히 이 둘이 래퍼 로직과 부른 '1-800-273-8255'의 사회적 파급력이 그래미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 다른 알앤비, 소울 장르의 신예 시저는 다소 실험적이었던 전작 < Z >를 벗어나 트래비스 스콧, 캘빈 해리스 등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하여 쉽고 듣기 편안한 사운드를 연출한 정식 데뷔 앨범 < Ctrl >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신인인 듯 신인 아닌 시저의 당돌한 메시지만큼이나 자극적인 마약 송 'XO Tour Llif3'의 주인공 릴 우지 버트도 주목할 만하다. 미고스의 'Bad and boujee'에 참여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 '작은 거인'의 데뷔 앨범 < Luv is Rage 2 >가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슈퍼 루키의 탄생을 신고했다. 다만 이들의 개방적인(?) 가사가 과연 NARAS에도 먹힐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한편 부문 내 유일한 백인 뮤지션 줄리아 마이클스의 등장 역시 막강하다. 다른 이를 위해 곡을 써주던 작곡자에서 직접 노래까지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로서 발매한 첫 싱글 'Issues'가 그야말로 대박을 친 것도 모자라 < 올해의 노래 > 후보이기까지 하니 알레시아 카라, 칼리드와 더불어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정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