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디시 감비노(Childish Gambino) - 'Redbone'
미스터리 영화 < 겟 아웃 >의 도입부에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곡이다. '겟 아웃!' 하면 이 노래가 연상될 정도니까. 음산하면서도 뒤숭숭한 분위기가 지배하는 음악과 영화는 닮은 점이 많다. 인종차별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흑과 백의 대비, '깨어 있어야 해'로 요약할 수 있는 'Redbone'의 가사. 서로가 매혹적으로 어우러져 우리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영화가 끝난 후 “처음에 나온 노래 제목 대체 뭔가요?”라는 질문이 쏟아져 나왔던 이유다.
앨범 커버에서 뜻밖의 무서움을 얻고 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차일디시 감비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범상치 않다. 그렇지만 올해 이 곡이 주는 마력에 많은 사람이 이끌렸음은 부정할 수 없다. 몽환의 어둠으로 서서히 이끄는 코러스, 소름 돋을 정도로 갈라지는 목소리. 영화를 보지 않고 접하더라도 충분히 그리고 분명히 매력적이다. 1970년대 음악의 탁월한 재현이자, 2017년 가장 감각적인 사이키델릭 소울. (정효범)
미고스(Migos) - 'Bad and boujee' (Feat. Lil Uzi Vert)
콰보(Quavo), 오프셋(Offset), 테이크오프(Takeoff). 음악 산업에도 성과급 제도가 있다면 이 세 남자부터 단단히 챙겨줘야 할 것이다. 메트로 부민(Metro Boomin)의 세련된 트랩 비트 위에 미고스의 쫀득한 래핑과 릴 우지 버트의 광기가 올라탄 'Bad and boujee'는 올해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힙합 트랙이다. 데뷔곡 'Versace'부터 'Bad and boujee'까지, 간단하고 반복적인 삼연음 플로우로 듣는 이를 단시간에 중독시키는 미고스 스타일은 현재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되었으며, 올 한해 힙합 씬에 재미있는 얘깃거리를 만들어낸 멈블 랩의 유행에도 크게 기여한다. 스스로가 선도한 트렌드에 마르지 않는 창작력이 뒷받침해주니, 2017년은 미고스의 해였다 해도 모자람이 없다. (이택용)
숀 멘데스(Shawn Mendes) -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
어린 나이에 이런 능숙함이라니. '포스트 저스틴 비버'라는 별명을 얻기 충분한,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를 팝 영재의 출현이다. 숀 멘데스에게 하나 더 있는 메리트라면 역시 기타 연주! 'There's nothing holdin' me back'은 그런 그의 여러 매력이 모여들어 발생한 폭발적 시너지다. 청아한 기타 리프와 함께 시작해 신나는 댄스 팝과 거친 록을 자유롭게 오가고, 밴드 사운드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렉트로 댄스 팝의 분위기도 잠시 빌려온다.
청춘의 솔직한 싱그러움이 가득한 이 곡은, 거의 '힐링' 아니면 '탕진'으로 양분된 코드만을 섭취하고 있던 한국의 젊은 음악 팬들에게도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간만에 만나보는 '생음악'의 순수한 에너지도 반가웠다. 절로 몸을 들썩이게 하는 리듬과 잘 뽑은 선율, 소년스러움을 담은 매력적인 음색이 마치 청량음료처럼 시원하다. 히트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멋진 싱글이다. (조해람)
줄리아 마이클스(Julia Michaels) - 'Issues'
감동의 곡이다. 진솔함을 넘어 처절하게 자기 자신을 분해하고 해체한 'Issues'는 지독히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이 노래를 욕심 낸 다른 가수에게 주지 않고 줄리아 마이클스가 직접 불러 그 감정선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과용하지 않은 악기와 허스키하고 낮은 톤의 목소리로 고음을 넘나드는 보컬은 불완전한 자신의 심정을 담아내어 2017년에 발표된 노래들 중에서 가장 투명하고 영롱한 싱글이 되었다.
줄을 뜯는 현악기 소리와 일렉트릭 킥 드럼이 만들어내는 불규칙적인 비트는 신시사이저 건반의 변화 없는 코드 진행과 불균형을 이루며 감정 기복이 심한 줄리아 마이클스의 마음을 대변한다. EDM 시대에 전자 소리를 최소화한 일렉트로닉 싱글 'Issues'는 완벽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고백을 격정적으로 토해낸 줄리아 마이클스에겐 가장 완벽한 곡이다. (소승근)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 'Sign of the times'
출신으로 '앞으로'를 재단해버리는 건 얼마나 고리타분한 방식인가. 나지막한 건반 위로 그의 목소리가 등장하면서 원 디렉션의 귀염둥이 막내는 이곳에 없을 거라는 걸 직감하게 된다. 전주에서 바람처럼 휘날리는 전자사운드가 시작되면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다.
잔잔하게 흐르다가 드럼과 함께 터지는 구성은 익숙하지만 여전히 '심쿵'하게 만드는 록발라드 스타일이다. 타이틀 뿐 아니라 앨범도 록의 고전미를 충실히 살렸다. 아재 느낌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록의 진지한 멋과 와일드한 스타일리쉬함을 부활시킨다. (김반야)
로직(Logic) - '1-800-273-8255 (feat. Alessia Cara & Khalid)'
미국 자살방지센터 전화번호를 곡목으로 한 로직의 래핑, 바로 이게 캠페인 송 또는 신파로 변질될 우려를 차단한다. 그만큼 건반을 타고 흐르는 언어들에 실린 진정함과 진실함이 다중의 공감을 획득한다. “나만의 것이라 할 공간도 없었어 / 집도 없었고, 아무도 내게 전화하지 않았지..”, “난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아..” 유년기의 불우한 처지를 딛고 '아픔과 희망'을 공유하려는 래퍼의 '진심'이 비극이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다른 길로 인도한다.
처절하지만 너저분하지 않게 절제와 동거한 것 또한 승리지점, 알레시아 카라, 칼리드도 한 절씩만 맡아 깔끔한 콜라보를 이뤘다. 그래미에도 진심이 통했다. '올해의 곡'에 노미네이트되었고 카라와 칼리드를 신인상 유력후보로 부상하는데도 기여했다. 이 트리플 크라운을 보면서 다시금 절감한다. '노래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모처럼 우리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음악을 만났다. (임진모)
파라모어(Paramore) – 'Hard times'
'Hard times'의 헤일리 윌리엄스에게선 블론디의 데비 해리와 프리텐더스의 크리시 하인드가 보인다. 1980년대 뉴 웨이브 펑크 팝으로 돌아온 파라모어는 노골적으로 과거를 언급한 < After Laughter >로 총천연색 개성을 심으며 올 한 해 선명한 궤적을 남겼다. 선 공개 싱글 'Hard times'는 이모 코어의 틀을 넘어 팝 펑크 밴드로 돌아왔던 < Paramore >로부터의 변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시한 곡이다.
옅어진 기타 톤에서부터 감지되는 변화는 댄서블한 비트 위의 신시사이저와 보다 절제된 헤일리의 보컬, 후반부 보코더로 구체화된다. 한 번 들으면 귀에 감기는 후렴부와 감각적인 멜로디 라인은 손쉬운 접근을 가능케 하고 헤일리의 독창적인 퍼포먼스 아래 숨겨진 밴드 재구성 과정에서의 우울한 감정은 레트로의 틀에 독창성을 부여한다. 'Hard times'는 30여 년 전의 영감으로부터 끊임없이 가지를 뻗어나가는 2017년의 록 씬을 대표한 싱글이다. (김도헌)
에드 시런(Ed Sheeran) – 'Shape of you'
가장 많은 사람이 듣고 여러 장소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다. 넘실대는 퍼커션 비트와 거칠게 생동하는 기타, 그 위를 유려하고 달콤하게 흘러가는 에드 시런의 보컬이 섞여 세련미를 발휘한다. 어느 팝보다 많은 영어를 담고 있지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선율 덕에 누구에게도 쉽게 다가왔다. 곡에 맞춰 안무를 보인 < 프로듀스 101 > 무대는 입체적 분위기와 표정을 입히며 화제성의 온도를 높였다. 팝과의 거리가 멀어진 10대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즐겼다.
힙합과 알앤비 사이의 빠른 리듬감을 자주 들려준 에드 시런이지만, 그의 음악을 수식할 때는 대부분 어쿠스틱한 포크송이 앞에 왔다. 그루브한 보컬과 섹시한 톤이 여유롭게 출렁이는 이 곡은 전에 없던 강한 인상과 파동을 남긴다. 'Shape of you'는 수수한 너드 캐릭터 같던 에드 시런을 매력 있고 반전 있으며 재능 갖춘 싱어송라이터로 만들며 음악성과 스타성 모두 견인했다. 내한이 성사되었다면 더 특별한 마침표를 찍었을 싱글이다. (정유나)
디 엑스엑스(The XX) - 'On hold'
그 어느 때보다 세 멤버의 균형이 잘 이루어졌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8할을 차지하는 로미 메들리 크로프트와 올리버 심의 보컬, 제이미 스미스(제이미 엑스엑스)의 샘플링과 비트 메이킹, 미니멀리즘에 걸맞게 반주의 전부인 베이스, 극적 효과를 위한 연출에 머무는 로미의 기타 연주까지 특정 멤버의 돌출 없이 그야말로 '디 엑스엑스'의 음악을 구현했다.
밴드의 정체성과 가장 맞닿아 있으면서도 멜로디는 선명하게 남겨두었고, 후렴 부분에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 홀 앤 오츠의 'I can't go for that(no can do)'를 붙여 넣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단순한 곡의 구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제 디 엑스엑스는 인디 팝이 아닌 인디와 팝이라는 두 개의 단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정연경)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 'Slide (Feat. Frank Ocean & Migos)'
그야말로 청량함 가득한 여름 특수 노래였다. 문을 여는, 휘파람 소리 마냥 밝은 피아노 반주에 착 달라붙는 클랩 비트는 간단히 덩실거리는 리듬감을 만들고, 그냥 떠나자, 즐기자 말하는 중저음 대세 래퍼들의 속삭임은 몸은 몰라도 마음만은 휴가지로 인도했다. 곡이 속한 앨범명 그대로 즐길 수밖에 없는 펑크(Funk), 웨이브, 바운스의 대행진!
곡의 가치가 더욱 반짝일 수 있었던 건 노래가 캘빈 해리스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DM의 가장 대중적인 디제이이자, 안정된 사운드 메이킹 실력을 지닌 그가 과감히 변신했다. 바로 1980~1990년대의 복고적 향취가 풍기는 펑키한 리듬에 힙합을 녹여서 말이다. 스피커가 터질 듯 화끈한 드롭은 없지만 리드미컬한 선율에 언제나처럼 곡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맞춤형 피처링진이 그에게 허술함이란 없음을 보여준다. 진정 안주하지 않는 이 시대의 노력형 아티스트다. (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