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은 인트로 'T-shirt'에 이어지는 하드록 트랙 'Run'은 앨범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곡이다. 히트곡 'The pretender'를 연상시키는 아르페지오 도입부와 에너지 넘치는 기타 리프의 전개, 끈질긴 반골정신과 비장한 서정이 감도는 후렴이 한 곡 안에서 멋지게 뒤섞인다. 듣는 이를 포획하는 능란한 리듬감도 일품이다. 정교함과 정직함을 오가는 리듬 설계가 인상적인 'La dee da'에서도 이들의 뛰어난 구성력이 드러나지만 결국 전체적인 방점은 하드록적 후끈함에 찍힌다. 스튜디오에서 우연히 만난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백 보컬로 참여한 'Make it right'에선 블루지한 클래식 록 리프가 곡을 관통하고, 'The line'은 시원시원한 푸 파이터스 식 로큰롤의 전형이다.
색다르게도,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하드록의 옷을 한 꺼풀 벗겨내면 서로 얽혀 있는 복잡하고 수많은 음악적 맥락이 모습을 드러낸다. 프로듀서 그렉 커스틴과의 작업(데이브 그롤은 앨범 작업 이후 쭉 그를 '천재'라 부르고 있다)이 이들에게 준 영감은 'The sky is a neighborhood'의 서사시적 웅장함에서부터 드러머 테일러 호킨스(Taylor Hawkins)가 마이크를 잡고 폴 매카트니가 드럼으로 참여한 'Sunday rain'의 팝적 감수성까지 이어지며 이들의 아홉 번째 앨범을 이전 작품들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위치에 세운다. 특히 푸 파이터스 특유의 진지함을 가득 담은 미드 템포 곡 'The sky is a neighborhood'의 처절함과 강렬한 리프, 호소력 짙은 멜로디가 주는 매력은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하다.
앨범 내내 꾸준히 드러나는 선배 록 뮤지션들의 영향도 흥미롭다. 비틀즈나 비치 보이스의 사이키델릭이 떠오르는 코드 진행과 포근한 코러스가 몽환적인 'Dirty water'의 전반부는 댄서블한 후반부와 설득력 있는 대비를 이루고, 보이즈 투 멘의 숀 스톡맨(Shawn Stockman)이 보컬로 참여한 'Concrete and gold'는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핑크 플로이드의 발자취를 좇는다. 어쿠스틱한 분위기로 앨범의 균형을 잡아 주는 소곡 'Happy ever after (zero hour)'에서는 비틀즈의 'Across the universe'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가 자연스레 겹쳐진다. 이러한 '록 고전'의 자연스럽고 창조적인 변용은 과거와 현재의 다리를 잇는 로큰롤 적자로서의 자부심을 가늠케도 한다.
< Concrete And Gold >가 좋은 앨범인 이유는 여럿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핵심은 앨범의 곡들이 결국엔 끝내주게 좋은 음악이라는 점이다. 전통적 답습과 실험적 진보 사이에서, 록의 살아있는 전설들 중 가장 '현재적인' 인물인 데이브 그롤과 그 동료들은 경지에 이른 노련한 줄타기 묘기로 완숙한 음악성을 뽐낸다. 어쨌거나 '달려야 하는' 하드록 밴드로서의 진정성과 숙명을 조금도 덜어내지 않은 채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들은 리더 그롤의 다리 골절에도 굴하지 않고 무대에 올랐던 투혼의 사나이들 아닌가. 그래서 다시금 확신한다. 이런 앨범이 계속 나오는 한, 'Rock will never die'라는 오랜 경구 역시 영원할 것이라고. 적어도 이들이 있는 한은!
- 수록곡 -
1. T-shirt
2. Run

3. Make it right
4. The sky is a neighborhood

5. La dee da

6. Dirty water

7. Arrows
8. Happy ever after (zero hour)
9. Sunday rain

10. The line
11. Concrete and gol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