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도착하기 전에 걱정을 좀 했다. 체인스모커스가 '#Selfie'와 'Closer'로 대박을 쳤다지만 이제 겨우 정규앨범을 한 장 냈을 뿐이고, 심지어 그 마저도 혹평이 난무한다(특히 <스핀> 지는 이들을 아마추어 취급하며 신랄하게 깎아내렸다). 그나마 'Don't let me down'이나 'Roses' 정도가 귀에 익을 텐데, 도대체 세트 리스트를 어떻게 채울지 감이 통 잡히질 않았다. 애초에 듀오의 본직은 디제이. 피처링 가수 하나 없이 온전히 둘의 믹싱과 디제잉으로 무대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말인데. 설사 앤드류 태거트가 마이크를 잡는다고 해도 지난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VMA) 때보다는 낫길 바라는 것 외엔 더 큰 기대를 할 수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우에 불과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조명이 비트에 맞춰 장막처럼 내리쬐더니 알렉스 폴이 디제잉 박스 위로 올라와 자신들을 소개했다. 앤드류 태거트가 먼저 믹싱을 하는 모습은 예상 밖이었다. 작곡과 보컬(그리고 얼굴)만 담당하는 줄 알았건만, 무대 내내 둘은 턴 테이블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무대가 펼쳐지자 'Inside out'부터앙코르 곡 'Don't let me down'까지 빅 룸 하우스와 덥스텝을 오가며 원곡을 파괴하는 공격적인 믹싱이 이어졌다. 이미 닉 마틴의 오프닝 공연에서 힘을 뺀 관객들에겐 꽤나 가혹한 시간이었을지도. 자비 없이 몰아치는 그들의 디제잉은 흡사 UMF(Ultra Music Festival)를 방불케 했다.
과열된 분위기를 '떼창'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모습은 확실히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의 모습이었다. 관객을 휘어잡던 폴이 내려가고 태거트가 반짝이는 바지를 자랑하며 마이크를 들었다. “Say you'll never let me go” 기다리고 기다리던 첫 번째 떼창 넘버. 관객들은 환호했고 'Roses'의 묵직한 비트가 공연장을 메웠다. 다만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아 노래 특유의 베이스가 주는 느낌을 살려 내지 못했다. 로지스(Rozes)의 목소리와 킥 드럼 외엔 소리가 먹먹하게 들려 아쉬웠던 무대.
원곡의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노래를 해체하고 또 섞어 완벽한 레이브를 재현하는 공연 특성상 수많은 곡이 빠르게 지나갔고, 계속되는 댄스 타임에 살짝 지쳐가던 와중 다프트 펑크의 'One more time'과 캘빈 해리스의 'How deep is your love'가 나오자 젖 먹던 힘을 내어 다시 일어났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바로 이어서 퀸의 'We will rock you'까지 등장해버리니 엉덩이를 영영 의자에 붙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도 중간에 'All we know' 한 곡을 온전히 다 플레이해, 태거트가 노래하는 부분에서 조금 숨을 골랐다. 놀라운 점은 그의 보컬이 안정적이었고, 듣기도 좋았다는 것! 스탠딩 석으로 내려가면서 불렀는데도 말이다.
호불호가 갈릴 법도 한 무대 연출이었다. 마시멜로(Marshmallow, 퓨처 베이스 프로듀서 겸 디제이)가 연상되는 그림과 손가락 욕이 난무하는 백 스크린, 그리고 하드한 비트들이 소리를 뭉개버리는 악조건의 음향 상태 속에서 쉴 새 없이 몰아치니 귀가 피곤할 법도 하다. 이들이 온전히 자신의 곡들을 플레이하고 노래를 부르며 감성적인 무대를 만들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이라면 뒤통수가 얼얼할 것이다. 이날만큼은 실내경기장이 커다란 하나의 클럽이었으니. 특히 줄담배 듀오 뒤로 석양이 지며 “아 그랬냐 바바리 치와와(라이언 킹 OST를 들리는 대로 표기한 것)”가 나올 때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얘네는 우릴 놓아줄 생각이 없구나. 이어서 'Wake up alone'의 브레이크 구간을 리믹스해 극대화 한 드럼 앤 베이스가 대형 스피커를 통해 귀를 때리는데, 와. 정말이지 끝내줬다. 앨범에선 다소 밋밋하게 여겨지던 곡이 입체적으로 변모한 순간이었다.
“와, 너희 진짜 미쳤어. 너희를 더 열광시키려면 뭘 해야 하지?” 태거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등장한 방탄소년단에 관객석은 당황한 듯 보였다. 빠르게 사태 파악을 하고 환호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이들이 보여준 우왕좌왕한 모습 때문에 그토록 기다려왔던 'Closer'가 흘러나오는지도 몰랐다. 따라 부르는 둥 마는 둥 어정쩡한 태도는 태거트의 목소리마저 희석했고 BTS 멤버가 말을 하는 도중 시작된 'Close'는 서로 조율되지 않은 듯 보였다. 약 2~3분간, 작업을 함께했다는 홍보성 멘트와 함께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진 방탄소년단은 이해되지 않는 연출이었다.
어쨌거나 당혹감은 절정에 다다른 열기에 서서히 잊히고,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가 기계적으로 반복되면서 화려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콜드플레이의 연주와 어떻게 다를까, 다들 내심 기대했던 부분일 터. BPM을 높이고 보다 명확해진 빌드업과 드롭 구간은 더 이상 팝이 아닌 완벽한 이디엠 그 자체였다. 그제야 'Something just like this'가 체인스모커스의 앨범 한쪽에 자리한, 엄연히 그들의 곡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를 전부 소진했음에도 짧은 플레이 타임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무대 쪽 조명이 꺼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앙코르를 외쳤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재등장한 폴과 태거트. 콜드플레이의 'Yellow'가 흘러나왔고, 폴이 스마트폰을 들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서로 암묵적인 교감을 나누고, 파파로치(Papa Roach)의 'Last resort'와 믹싱된 'Don't let me down'에 맞춰 미친 듯이 몸을 흔들며 공연의 마지막 밤을 불태웠다. 확실한 마무리 덕분에 사람들은 미련 없이 듀오를 보내주었다. 이렇게 쿨한 이별도 오랜만이다.
이번 체인스모커스 단독 콘서트는 아티스트 인지도에 비해 생각보다 빠른 내한 일정이었고, 페스티벌처럼 자유로운 공간이 아닌 폐쇄된 장소에서 한 팀이 이디엠으로 공연 시간을 다 채워야 했기에 우려가 됐던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런 성격의 무대라면 사운드의 미세한 차이가 곡을 좌지우지할 텐데, 잠실 주 경기장이나 실내 체육관의 음향 조건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신스와 하이햇은 찢어지는 소리가 나며 악기의 구분이 힘들 정도로 소리가 뭉친다.
다행인 것은 공연장이 실내였기 때문에 소리가 반사되어 이디엠 특유의 공간감과 묵직한 비트가 살아났다는 점이다. 실제 악기를 연주하는 밴드 사운드도 아니었기에 큰 불만 없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Young', 'Break up every night'의 단순 쿵짝 비트나 'Wake up alone'과 같은 곡은 공연장에 특화되어 온종일 심장을 쿵쿵 울려댔을 정도. 화끈하게 파티를 열어준 듀오 덕분에 여름의 막바지를 뜨겁게 보냈다.
[자료제공=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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