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까지의 조동진의 음악세계는 늘 강변에서 방황하며 사색하는 화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마지막 음반의 마지막 트랙이 '강의 노래'다) 그 과정에서 보는 꽃('제비꽃'), 나무('나무를 보라', '나무가 되어'), 새('저 멀리 저 높이'), 저녁노을('긴긴 다리 위에 저녁해 걸릴 때면')을 묘사하고 거기엔 늘 바람소리('바람 부는 길가', '끝이 없는 바람') 들어있다. 산이 동적이고 목표 지향적이며 남성적이라면 강은 정적이고 과정 지향적이며 여성적이다. 조동진이 이렇게 여성적 화자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아버지의 부재 때문이다. 부친은 1960년대에 사회성 짙은 영화를 많이 제작했던 조긍하씨이다.
영화촬영 때문에 항상 부친이 집안에 부재했기에 조동진의 자아는 거의 어머니의 영향이었을 것이다.(어머니마저도 25세 때 돌아가신다) 아버지의 존재는 적어도 20대 전까지는 가치관과 규범의 기초가 된다. 이것을 근거로 20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아버지의 가치관을 부수고 넘어서야 진정한 자신의 세계관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조동진에게는 애초부터 부친으로부터 영향 받은 가치관과 규범의 기초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조동진의 가치관 형성을 남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을 겪게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조동진은 예술가였기 때문이 이런 과정을 오히려 예술로 승화시켜 깊은 울림을 갖는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조동진의 또 다른 특징은 호흡이 매우 길고 느리다는 점이다. 이런 느림의 미학은 속도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생활감정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영혼의 그림자를 잃어버릴 정도로 질주하는 삶을 사는 현대인들이 놓쳐버린 소박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를 노래함('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기쁨의 바다로')으로써 진정한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조동진은 스스로 자신을 게으르다고 말했지만. 그냥 게으르게 시간만 보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 게으름은 충분한 숙성의 기간이었던 것이다. 굳이 해답을 빨리 찾으려 하지 않고 차분한 사색과 성찰 속에서 해답이 스스로 찾아올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던 것이다. 이렇게 이 느림의 미학이 초래한 양적인 성장은 어느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새로운 질적인 도약을 이루게 되고 그것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높은 성취로 이어진다.
조동진은 사실상 한국 통기타음악의 1세대인 세시봉 스타들과 친구간이지만 그들의 시대가 훨씬 지난 1980년대에 자신의 시대를 맞이하며 한국 통기타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충분한 숙성기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주류음악이 거의 완성되었던 1980년대 중반에 조동진은 동아기획의 중심인물로 주류음악에 대적하는 언더그라운드의 진영을 이끌었다. 이것은 그가 오랜 시간 고통의 과정을 통해 아버지의 부재를 극복하고 커다란 가지를 지닌 고목과 같은 존재로 우뚝 섰기 때문이었다.
조동진의 음반발매의 간격이 1년(1, 2집 사이), 5~6년(3, 4, 5집), 심지어는 20년(5, 6집 사이)으로 기하급수적으로 길어질수록 높은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던 것도 바로 이런 질적 도약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조동진의 6집 음반 < 나무가 되어 >가 올해의 음반상과 최우수팝음악 부문의 상을 수상했다는 사실 또한 느림의 미학의 결과이다. 그것은 수상부문이 2015년부터 신설된 포크음악 부문이 아니라 팝음악 부문이라는 사실이다. 더 이상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조동진만의 음악세계를 이룩했고 그것이 한국대중음악사에 조동진만의 음악적 위치를 달성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이었다. 그것도 70세의 나이에... 이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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