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밸리 스테이지에서 밴드 아이엠낫은 'Happiness'와 'Fly' 등의 곡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단번에 끓는점으로 도달하게 했다. 관람 포인트는 멤버들의 1인 2역. 베이스와 키보드를 오가며 연주하거나 드럼과 코러스를 동시에 해내며 각 곡에 가장 적합한 사운드를 구현했다.
'록' 페스티벌에 왔음을 실감하게 해준 건 이어진 라이프 앤 타임의 무대. 10분 정도 지연됐지만 등장하자마자 작열하는 기타 소리와 질주하는 베이스, 묵직한 드럼으로 눈이 번쩍 뜨이는 강렬한 음악을 선보였다. '급류'와 '대양'에서 보여준 폭포와 파도의 섬세한 영상미도 그들의 시원한 록 사운드와 좋은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록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지산 무대에 서는 것이 얼마나 상징적인지 알 것”이라며 본인들의 소회를 밝힌 뒤 이어진 송골매 리메이크곡 '세상만사'와 관객들을 모두 들썩이게 한 '호랑이'까지! 라이프 앤 타임의 질주에 관객들도 “우리는 호랑이”라는 떼창으로 화답했다.
그 뒤 9와 숫자들을 보기 위해 그린 팜파스 스테이지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한 층 뜨거워진 날씨와 들 뜬 마음으로 도착한 그 곳에선 '그대만 보였네'로 이미 무대가 진행 중이었다. 보컬 송재경은 페스티벌 공연에 익숙지 않다며 수줍게 고백한 뒤 “최대한 어울리는 곡을 준비했다”며 '다른 수업'을 들려줬다. 귀여운 가사에 맞추어 등장한 곰돌이와 토끼가 보여준 가벼운 율동이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자아내 더 브이와는 사뭇 다른 각양각색의 지산의 풍경을 그렸다.
다시 더 밸리 스테이지. 여기엔 흰 색으로 '깔맞춤'한 다섯 남자, 술탄 오브 더 디스코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의 가장 강점은 바로 중독성. 살랑이는 여유로움으로 단숨에 좌중을 주도했다. 댄서블한 디스코 리듬과 이들의 흥 넘치는 무대 퍼포먼스에 관객석도 전염되어 하나 둘 씩 안무에 맞춰 몸을 움직였고, '캐러밴'의 중독성 넘치는 후렴구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귀에서 맴돌았다.
'캐러밴'을 흥얼거리며 글렌체크를 보러 향했다. 이들의 청량한 신스팝 사운드, 귀에 착 감기는 멜로디 라인은 페스티벌에 안성맞춤이다. 이번에도 역시 관객석 한 편에선 슬램존이 형성돼 서로 부대끼며 축제를 온 몸으로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지산에서 글렌체크 무대가 특별했던 건, '60's Cardin' 같은 대표 페스티벌 송 말고도 이들의 신곡을 들을 수 있었다는 점!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 흐려진 날씨 속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오히려 관객들의 열기는 더해졌으니. 그 이유는 바로 애니메이션 < 너의 이름은. >의 OST로 유명해진 일본 밴드, 래드윔프스(Radwimps) 때문이었다. 몰린 인파는 이들의 국내 인기를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첫 곡은 이름을 알린 '前前前生(전전전생)'. 타국의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일제히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도쿄지헨(東京事變)의 드러머였던 하타 토시키가 더해진 투 드럼 체제, 노다 유지로의 섬세한 피아노 연주까지!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는 선물 같은 무대로 한국 팬들의 기대를 거뜬히 채웠다.
영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더 아마존스(The Amazons)는 그린 팜파스 스테이지에서 한국 팬들을 만났다. 현재 영국에서 핫한 신예로 급부상하는 이들이다. 강성 록 사운드 중에서도 내달리는 드럼 사운드와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리는 그로울링이 압도적. 'Stay with me', 'In my mind', 'Junk food forever' 등의 곡들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
올해 20년을 맞이한 밴드 자우림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새', '파애', '매직 카펫 라이드' 등의 히트곡에선 여기저기서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오며 흥취가 이어졌다. 그러나 관객과 함께 호흡했던 건 어슴푸레한 하늘과 어우러졌던 촉촉한 노래들이었다. '샤이닝', '미안해 널 미워해', < 나는 가수다 >에서 주목을 받았던 리메이크 곡 '가시나무'까지. 김윤아의 극적인 곡 표현 능력은 그 시간 더욱 빛을 발하며 위로하듯, 대변하듯 관객들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어느 덧 지산 3년 차에 접어들어 서브 스테이지인 그린 팜파스의 헤드라이너가 된 혁오. 무대에선 이제 노련함이 묻어나오지만, 여전히 어딘가 어눌한(?) 멘트가 반전 매력을 자아냈다. 이 날 영상의 최대 수혜자는 아마 혁오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Wanli万里'의 중국어 가사와 맞물려 스크린에 드넓은 평야가 펼쳐졌을 때의 압권이란! 쏟아지는 휘황찬란한 조명 사이로 사람들의 열기가 더해져 분위기는 식을 줄 몰랐다.
대망의 고릴라즈. 시작 전부터 더 밸리 스테이지 스크린에 떠 있던 강렬한 심벌이 왠지 모를 긴장감을 감돌게 했다. 'M1 A1'로 스타트를 끊은 뒤 'Last living soul', 'Tomorrows comes today', 'Rhinestone Eyes', '19/2000', 'On melancholy hill' 등의 히트곡이 이어졌다. 가장 인상 깊은 건 끈적거리는 퍼포먼스가 있던 'Sex Murder Party'! 뒤이어 'Out of body'에서 데이먼 알반이 관객석에 강림하고, 'DARE'가 이어지는 감탄스러운 무대에 관객석의 분위기는 열기를 이어갔다.
데이먼 알반도 한국 팬들에게 감탄하기는 마찬가지. 끊임없이 무대에서 내려오고, 한국어로 다양한 멘트를 하는 등 멋진 팬서비스를 보여줬다. 게다가 'Stylo'를 비롯한 총 다섯 곡의 앙코르는 국내 팬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 많은 히트곡들 중 아이팟 광고, 영화 < 빅쇼트 >에 삽입 돼 국내에서 익숙한 'Feel Good Inc.'를 들려주지 않았다는 것.
음악을 즐기는 이들에게 여름은 이제 록 페스티벌의 계절이다. 그 중에서도 < 지산 밸리록 뮤직앤드아츠 페스티벌 >은 놓칠 수 없는 큰 무대 중 하나. 하지만, 록도 아츠(Arts)처럼 하나의 성격처럼 여겨진다는 느낌은 마음에 작은 섭섭함이 됐다. 곳곳에서 보이는 다양한 조형물들, 첫째 날 헤드라이너였던 EDM 스타 메이저 레이저. 이러한 방향은 페스티벌이라는 큰 이름 안에서의 상생일까, 아니면 자본과 록 스피릿의 상충일까. 이렇게 지산은 달콤쌉싸름한 뒷맛을 남겼지만, 지산의 3일을 영롱하게 수놓았던 음악의 불꽃들이 관객들의 지친 마음 한 구석을 환히 빛내준 것은 누구도 부정 못할 것이다.
자료 제공=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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