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전보인데도 변함이 없다. '캠퍼스 산책'의 '오늘부터 봄인가보다 생각했어'나 '덴고'에서 보여주는 '난 아직 널 좋아해'라는 가사엔 여전히 다정함과 섬세함이 있고, 듣는 이를 나른하게 하는 박경환의 난로 같은 목소리에도 아직 따스함이 가시지 않았다. 이 위에 얹어진 편곡은 보드라운 무드 조성에 쐐기를 박는다. 어쿠스틱 기타가 조타기를 잡고, 이를 패드나 플뤼겐 호른처럼 몽실거리는 악기들이 뒤에서 껴안아 만든 크지 않은 진폭이 곡에 매끈함을 보탠다.
이런 잔물결은 박경환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사실 이전까지는 박경환, 유상봉 2인 체제인 재주소년'들'이었으나 이번 앨범부터는 박경환 홀로 활동하며 진정한 재주소년이 됐다. 프로듀싱에 참여한 유상봉은 그간의 팀워크를 십 분 발휘해 박경환의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냈으나, 늘 구사했던 기법이기에 크게 눈길 가진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곡을 어쿠스틱 사운드에 초점을 맞춰 표현의 폭이 좁다. 세련된 사운드가 듣기 좋지만 이전의 보여준 재기가 사라진 평이한 예쁜 결과물에 그친다.
게다가 이들은 끊임없이 제주도를 소환하고 있지만, 사실 그곳은 앨범 어디에도 없다. 여기서 제주도는 노스탤지어로 범벅한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유년일 수 있는 공간. 그 뿐이다. 이들이 세상과 닮아가는 어른인 '나'를 발견했을 때 행하는 가장 손쉬운 방어기제는 마음 속 소년을 제주로 보내 앳된 과거가 있었음을 되새긴 뒤, 사실 지금의 때 묻은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선고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하교길' 가사를 통해 명징하게 비춰진다. 긴 시간이 흘러 방문한 동네에서 어른이 된 나의 존재가 '어딘가 어색해져 이어폰을 꽂지만', 그대로인 모습이 과거로 유인한다. 이로 인해 현재는 전경화되고 '얼마 전까지 너희와 함께 했던' 과거만이 찬란하게 남는다.
첫 곡 'Drive in Jeju'는 티 스퀘어나 카시오페아를 떠올리게 하는 상쾌하고 산뜻한 소리로 드넓은 제주의 풍경을 그리며 몰입에 적합한 출입구를 만든다. 피아노가 루프를 반복하며 세운 탄탄한 골격 위를 베이스가 미끈하게 유영한다. 재즈의 빛깔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국의 정취를 밴 삼바 장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에서 더욱 생생해진다.
이 분위기는 '등대의 노래'에서도 이어진다. 6/8 왈츠 리듬에 가볍게 올라 타 우쿨렐레를 떠올리게 하는 나일론 기타 소리와 밀려오는 바다소리는 여유로운 섬의 공기를 몰고 오고, 말끔한 다장조는 밝은 대기를 조성한다. 이와 달리 음역대의 큰 변화를 주지 않은 채 덩그러니 놓인 멜로디 라인이 노래에 어슴푸레한 쓸쓸함을 덧칠한다.
지금껏 소년의 상태는 일시정지였다. 과거로 완연히 돌아가지도 못하고, 현재를 충실히 재생하지도 못하는. 하지만 이제 소년은 '이젠 움직여야 한다'면서 망설이지 않고 달리기로 결심한다. 소년은 이제 막 트랙 위에 섰다. 남은 것은 내딛는 일 뿐이다.
-수록곡-
1. Drive in jeju

2. 하교길
3. 캠퍼스 산책

4. 제주도 좋아하나요
5.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

6. 달리자
7. 좋아하는 마음

8. 덴고

10. 오래된 바다

11. 너를 만났던 봄으로
12. 등대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