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커리어 중 또 한 번의 전기를 마련한 래드윔프스. 그런 그들이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 6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내한공연을 펼쳤다. 공연 이틀째인 토요일에 현장을 찾은 필자의 호기심은 딱 하나였다. '과연 < 너의 이름은. >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를지'라는 것. 공연 전 만난 관계자에게 “팀이 한국에 오면 유독 보여주고자 하는 파이팅이 넘친다”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역시 한국 팬들에게 애정이 깊은 팀이구나 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궁금함과 설렘을 안은 채, 그들의 세 번째 내한 공연이 막이 오르는 것을 지켜 보았다.
원곡의 완벽재현을 의도한 세심한 무대 세팅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로 투 드럼 편성. 보다 웅장해진 무대를 가로질러, 큰 환호성과 함께 멤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첫 곡은 바로 < 人間開花(인간개화) >의 리드트랙인 'Lights out'. 복잡한 비트와 여러 가지 악기가 한데 교차하는 이 곡을 통해, 이전 라이브와의 차별점을 명확히 했다. 두 대의 드럼은 미묘하게 다른 채보를 동시에 방출하며 세세한 부분을 완벽히 재현했고, 노다 요지로는 노래를 부르던 도중 뒤에 있던 피아노로 이동해 유려한 연주 솜씨를 선보였다. 이처럼 시디에 실려 있는 음원을 라이브화하는 과정에서의 고심이 악기 편성과 위치 등에서 여실히 느껴졌다.
지난 내한을 통해 서포트 드러머로서 데뷔무대를 치렀던 모리 미즈키, 그리고 국내에도 팬층이 두터운 도쿄지헨의 붙박이 드러머였던 하타 토시키의 트윈 드럼은, 이처럼 보다 진일보한 라이브 사운드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리얼 세션 이외의 소스들이 많이 사용된 'AADAAKOODAA'나 'トアルハルノヒ(어느 봄날)'과 같은 곡들도 서로간의 완벽한 호흡을 통해 보다 역동적인 그루브를 만들어냈고, 전매특허인 'おしゃかしゃま(부처님)'의 잼 세션에서는 타케다 유스케&모리 미즈키 VS 쿠와하라 아키라&하타 토시키와 같은 2:2 구도를 통해 이전과 다른 놀라움과 재미를 주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내한 사이의 유사함 탓에 느꼈던 개인적인 아쉬움은, 이러한 혁신을 통해 어느덧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다.
이와 함께 'アイアンバイブル(Iron Bible)'와 같은 곡에서 노다 요지로만이 잠깐 사용하곤 했던 터치패드의 활용도가 높아졌다. 타케다 유스케나 쿠와하라 아키라 역시 이를 능숙하게 다루며 연주를 보조하는 모습이 여전히 부족한 점을 메워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棒人間(막대인간)'의 4분여는, 이러한 개선사항의 시너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 너의 이름은. > OST의 큰 존재감.
공연을 보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성 관객이 압도적이었던 지난번 공연들과 달리 남성 관객의 비율이 어림잡아 절반 가까이 육박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인기가 많다고는 해도, 일본 밴드들은 마니악한 특성으로 인해 아직까지는 팬덤이 강하게 작용하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팬덤 집약적인 그 느낌이 상당부분 옅어졌다는 점은 과연 고무적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단연 < 너의 이름은. >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공연 세트리스트에서는 후반부에 배치되어 있는 '前前前世(전전전세)'를 초반으로 끌어온 것은 굉장히 영리한 선택이었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을 통해 팀을 알게 된 관객들의 어색함을 상쇄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이어 '05410-(ん)(깨워줘)'와 'トレモロ(Tremolo)' 같은 과거의 곡들을 연결시키며 각각의 사람들을 하나의 큰 원으로 만들었다. 이후 모든 시간이 절정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클라이막스라고 한다면 역시 'スパークル(Sparkle)'와 'なんでもないや(아무것도 아니야)'에서의 떼창이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좋은 콘텐츠를 통해 이들을 알게 되고, 그들의 음악을 흡수하게 되는 과정. 일본 음악이 일반 대중에게 퍼져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례를 이번 공연에서 목격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싶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극강의 보컬 퍼포먼스와 여러 댄스(?)들을 선보인 프론트맨 노다 요지로. 원어민에 가까운 한국어 발음으로 경탄을 자아낸 쿠와하라 아키라. 연주를 하면서도 관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잊지 않은 타케다 유스케. 높아진 위치에 부응하듯,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라이브를 선사하며 좀처럼 잠들 수 없는 밤을 만들어 준 래드윔프스. 꽤나 오랜시간 음악을 듣고 공연을 보고 있음에도, 진부함을 타파하는 능동적인 행보엔 늘 리스펙트를 보내게 된다. 이번 기회에 새시대의 록 히어로를 접하지 못한 이들이라 해도 크게 아쉬워 할 것은 없다. 바로 다음 달, <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에서도 그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취재협조 및 사진제공 : 제이박스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