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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잭 스패로우의 몸엔 로큰롤의 피가 흐른다. 그의 아버지는 롤링 스톤스, 삼촌은 비틀스다! 물론 이 농담 같은 출생 비화는 영화의 설정이 아닌 캐스팅으로 비롯된 것이다. 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Keith Richards)는 시리즈의 3편과 4편에 잭 스패로우의 아버지 캡틴 티그 역으로,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현재 상영 중인 5편에서 삼촌 잭 역으로 출연한다. 치렁치렁한 장신구들과 새까만 분장을 덧칠한 채 등장하는 이들은 분명 적은 분량의 카메오임에도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낸다.
로큰롤의 산증인이자 전설인 키스 리처드와 폴 매카트니, 이 둘에겐 < 캐리비안의 해적 >에 출연했다는 점 말고도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다. 활동을 시작한 지 반백년이 넘어가는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그것이 공연이든, 새로운 음악이든, 심지어는 영화 출연이든 말이다. 2016년에 발매된 롤링 스톤스의 최근작 < Blue & Lonesome >과 우리가 체험한 폴 매카트니의 내한공연 모두, 이들이 1960년대의 역사로 남기 이전에 2010년대의 현재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부일 것이다. 이처럼 거장들은 갱신을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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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리비안의 해적 >이 전 연령이 즐길 수 있는 상업영화인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일흔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되도록 많은 대중, 특히 롤링 스톤스와 비틀스를 경험한 적 없는 어린 관객들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각자의 존재를 알기 위해 노력한다. 너저분한 분장이 덕지덕지 붙은 그들의 얼굴엔 위엄이나 권위 따윈 보이지 않는다. 2016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 씽 >의 수록곡인 'Faith'를 부른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경우도 마찬가지. 소위 '짬'으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한창 아래인 젊은 가수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와 함께 어린 관객들 앞에 섰다. 진짜 거장은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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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에서 폴 매카트니와 마주했을 때의 충격은 조용필의 'Bounce'를 처음 들었을 때의 것과 흡사했다. 부모 세대에서만 '가왕'으로 통했던 그는 당시의 트렌드이자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팝 록, 일렉트로니카, 심지어는 랩까지 선보이며 신세대의 새 '가왕'으로 등록되었다. 2013년은 트로트를 즐겨듣는 아버지와 마룬 파이브에 열광하는 아들이 '조용필'이란 창구를 통해 소통할 수 있었던 때다. 이는 그가 스스로를 가벼이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대사회는 정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완벽히 분열되었다. 이로 인해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공경하지 않으며,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더 이상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으며, 젊은이들은 기성세대를 '꼰대'라 부르며 폄하한다. 이를 해결해야할 위치에 있는 문화 또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음악만 봐도 확연하다. 젊은이들은 옛 음악을 듣지 않으며, 어른들은 음원순위 따위엔 관심조차 없다. 세대마다 듣는 음악이 따로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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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병처럼 작용하고 있는 극단적 세대 차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거장의 움직임이 필요시 된다. 같은 무대에 서게 된 싸이에게 '무대 위에선 내 몸 어디든 만져도 돼'라고 한 마돈나의 노래 'Open your heart'처럼, 대중문화의 거장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움직여야 한다. 신비주의가 자신의 가치를 상승 혹은 유지시킬 것이란 헛된 믿음은 버리고 많은 대중, 특히 세대 간 소통에 완전히 경직되어버린 젊은이들과 호흡해야 한다. 우스꽝스러운 해적의 탈을 쓰거나, 한창 어린 후배 가수와 협업하거나, 음악 스타일을 완전히 뒤엎는 등, 그 방식이 어떻건 상관없다. 그리고 젊은이들은 행동하는 거장들의 '진짜' 품격을 즐겁게 수용할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