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네 사람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스탠딩 구역에서는 생존 전쟁이 발발했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아서는 안 됐다. 장내에는 안전 요원이 있었지만, 이미 공기가 달아오른 시점에 그 넓은 범위를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다. 체격이 작은 관객에게는 단순히 시야를 확보하는 문제 이상으로, 다른 관객에게 밀려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무지막지한 깡이 요구됐다. 보통의 입석 공연이 안고 가는 고질적인 문제를 돌파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위치를 확보하자, 청각을 뛰어넘을 정도의 시각적 물량 공세가 공간 전체를 강타했다. 오프닝의 < A Head Full of Dreams > 심볼을 필두로 온갖 빛의 향연이 계속됐다. 화약 냄새가 점점 짙어지는 것은 이제 곧 전에 없던 황홀경이 펼쳐지리라는 신호였다. 'Adventure of lifetime'에 등장했던 짐볼 크기의 풍선과 'A sky full of stars'에 맞춰 흩날리던 종이별, 거대한 색깔 스펙트럼을 만들어낸 폭죽까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대망의 자이로 밴드(손목에 차는 LED 팔찌. 입장 시에 나눠준 소품으로 중앙 제어를 통해 객석의 빛깔을 연출한다). 곡에 따라 달리하는 손목의 색감이 마치 생명을 품은 듯 신비롭게 존재감을 발휘했다. 그날 공연장은 세상에서 가장 큰 점묘화였다.
이쯤 되면 컴퓨터 그래픽과 편집이 가해진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다만 엔딩 크레디트가 선언하는 것이 “준비한 쇼가 끝났습니다. 모두 돌아가 주세요.”의 뜻이라는 데서 서운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엄청난 데시벨의 커튼콜에도 무심히 막은 내렸다. 앙코르 곡을 넣어서라도 '음(音)'으로만 소통할 수는 없었던 걸까. 록 밴드의 라이브 공연인데! 곡의 일부 소절마다 '나 홀로 청개구리'가 되는 것으로 환상적인 천국에 조그만 반항을 시도했다. '우정' 눈을 감고 오로지 귀로만 즐기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아쉬움을 달랬다.
비주얼이 주를 이룬 것에 대해 투정(?)을 부렸지만, 사실 청각의 명도 또한 높았다. 장소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의 음향 구현은 상급에 속한다. 특히 잘 들렸던 곡은 기타 리프가 선명한 'In my place'였다. 다만 압도적인 웅장함을 자랑하는 'Paradise'와 차분한 소품인 'The scientist'가 같은 무게감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에는 의문이 든다. 전체적인 세트 리스트를 봤을 때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곡을 나열한 탓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열성 팬의 비율이 높은 만큼 호응은 최상이었다. 그러나 간혹 너무한 순간도 있었다. 음향이 좋다고는 해도 '떼창 선두 국가'를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퍼포머(performer)'보다 소리가 큰 관객”이라고 한 마틴의 말을 (그의 솔직한 심정이 어땠는지는 차치하고) 온전한 감사의 의미로 받아들이기엔 퍽 머쓱하다. 꽤 많은 수의 인원이 비교적 조용한 곡인 'Everglow'는 물론이고, 발매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Something just like this'를 첫 소절부터 따라 불렀다. 한국 관객 특유의 열정과 애정을 보여주기에는 좋았으나, 역시 몇몇 곡에서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뻐근하게 맴돌았다.
그래도 'Viva la vida'나 'A sky full of stars'의 특정 멜로디 라인에서는 한국 관객만의 힘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영국의 록스타 노엘 갤러거가 캐나다 CBC 'Q Interview'(큐 인터뷰)에서 말했듯 리더(밴드)의 선창 없이도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능했다. 영어 가사 전문을 외우는 팬들이니, 허밍 정도야 대단한 수고도 아니었다. 귀갓길에도 이들의 노랫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제프 백과 존 메이어가 자신들의 무대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 것을 기억한다. 한국인에게는 황순원의 < 소나기 >에 등장하는 보라색보다 더 가슴 아픈 색이 되어버린 게 노랑이다. (가사의 요지는 다르지만) 'Yellow'라는 대형 히트곡을 냈던 음악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공감을 바랐던 것이 사실이다. 밴드는 시리아 내전과 함께 '가라앉은 배'에 대해 언급했다. 세월호 참사 3주기 당일인 둘째 날 공연에서는 'Yellow' 연주 중 아예 무대를 중단하고 전광판에 노란 리본을 띄운 뒤 10초 동안 그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한편에 죄책감을 품고 왔을 관객을 위한 따뜻한 퍼포먼스였다.
이들의 배려는 'Fix you'와 'Viva la vida'의 만남으로 절정에 이른다. 서울 공연 이전의 세트 리스트를 살펴보자. < A Head Full Of Dreams > 투어의 시작이었던 아르헨티나(2016년 3월 31일)부터 타이완(2017년 4월 12일)까지 'Fix you'와 'Viva la vida'가 징검다리 없이 연이어 나온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대부분의 세트에서 두 곡 사이에 'Heroes'(데이비드 보위 원곡)가 있었다. 연주 순서까지 통일적으로 구성하며 오만 공을 들인 밴드가 투어를 돈 지 1년 만에 두 곡을 처음으로 나란히 배치했다. 파격이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게다가 그토록 화려한 현장에서 유일하게 흑백 스크린을 띄운 것이 'Viva la vida'였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사랑하는 이가 먼 곳으로 떠났다. 미안하게도 나는 아직 살아있다. 'Fix you'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곡이다. 3년 동안 온 나라가 “빛이 그대를 집으로 인도하기(Lights will guide you home)”('Fix you')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리고 기나긴 싸움 끝에 “예루살렘의 종이 울리(I hear Jerusalem bells a ringing)”('Viva la vida')듯 시민들은 정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각별한 밴드의 각별한 곡이 가장 큰 감동을 만들어냈다.
시선을 조금 돌려 돌출 무대 얘기를 꺼내야겠다. 주로 보컬인 크리스 마틴이 공연 도중 뛰어다니는 용도로 많이 이용했는데, 밴드 세트를 가볍게 옮겨 프론트맨뿐만이 아닌 멤버 모두가 주목도를 동일하게 나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스탠딩 구역에서는 스크린을 통하지 않으면 멤버들을 볼 수 없게 되어 불편하기도 했지만, 덕분에 상대적으로 집중도가 분산, 이는 과도한 '떼창'을 자제하는 데 일조했다. 올림픽 스타디움이 순식간에 소극장으로 변하는 광경이었다. 장내가 조용해진 덕에 'God put a smile upon your face'가 잘 들렸다.
특히 청소년기에 콜드플레이를 우상으로 삼았고, 성장해서 자신이 번 돈으로 콘서트에 오게 된 1990년대 출생에게 유독 각별한 경험이었을 테다. 그들의 기대가 깔끔한 가창력이나 연주력에 향해 있지는 않았을 듯하다. 팀에 대한 애정도와 만족도가 비례할 공연이었다. 3층의 C석까지 모두가 만점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선사했으니 충분히 좋은 공연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힙합이 독보적으로 호황을 누리는 한국에서 콜드플레이 티켓 매진 사태는 국내 음악계의 유행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공연이 흥행했다고 해서 록의 장르적 성공이라고도 할 수 없다. 스트리밍 시대에 아델이 음반 천만 장을 팔았듯 콜드플레이도 콜드플레이라서 잘된 것뿐이다. 아무렴 어떤가. 그들은 이틀간의 마법으로 먼 나라 팬의 마음에 '오조 오억'의 컬러를 흩뿌리고 돌아갔다. 꿈같던 시간과 기분 좋은 후유증이 일곱 빛깔 헤일로가 되어 기억 한편을 맴돈다.
[자료제공=현대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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