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시들었어도 / 깊고 고요한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 / 잠시라도 잠들었으면'
이런 가사는 없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쓰지 않는 사각거린다는 단어는 신선함을 뛰어넘는 파격이었다. 얇고 빳빳한 물체가 가볍게 스치는 소리인 사각거린다는 어감은 싱싱한 사과를 한 입 베어 무는 것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구어체 대신 시어와 같은 문어체로 끝나는 가사도 놀라운 접근법이었다.
'나는 그대의 빈틈이 있었다면 / 사랑했을 것이다 사랑했을 것이다
어둠은 내려앉는데 / 그대 들려줄 한줄 시도 못쓰고
기억 속으로 차가운 안개~비 / 안개비만 내린다'
'슬픈 계절에 만나요'로 유명한 싱어 송라이터 백영규가 작곡하고 조기원가 이야기의 생명력을 부여한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은 22살의 박정수가 1991년에 발표해서 인기를 누린 포크 발라드다. 주요 멜로디를 따라가는 성악 풍의 여성 코러스는 박정수가 품고 있는 미성의 쇳소리 음색과 대비를 이루며 균형을 유지하고, 노래의 큰 틀을 받쳐주는 신시사이저 연주는 곡의 전체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지탱한다. 단순한 포크 발라드로 한정하기 부족할 정도의 다양한 음악적 장치는 이 노래를 명곡의 반열로 끌어올린다.
1990년 신인가수선발대회에서 8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전업가수가 된 박정수는 독보적인 목소리로 다른 가수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했지만 1992년에 공개한 2집이 주목받지 못하자 군에 입대했고 그 후에는 김민우의 경우처럼 대중의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그러나 단 하나의 명곡을 내놓고 사라지는 것도 행복이고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