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바로 이 시점에 인기의 상승곡선이 한풀 꺾인다. 김창완을 제외한 두 동생(김창훈, 김창익)의 깜짝 군 입대 역시 한몫 했다. 데뷔 이후 쉬지 않고 발매되는 음반과 주춤한 방송 활동에 대중이 박수세례를 거둔 것이다. 관심은 적어졌지만 사운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특유의 단순하고 성긴 연주를 바탕으로 의도적으로 불편한 보컬을 얹고 곡의 길이를 마음껏 늘렸다. 당시 한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실험적 시도였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김창훈'이 있다. 그간 앨범 대부분을 채운 맏형 김창완의 자작곡에서 이번에는 김창훈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눈에 띄는 변화는 록(rock)적 펀치. 오르간, 키보드 등 여타 악기를 넣어두고 오로지 기타, 베이스, 드럼만으로 이뤄진 곡들은 어느 때보다 시원하고 거칠었다. 첫 곡 '내 마음'에서 드러나는 김창훈의 이질적인 탁성 보컬은 앨범에 담긴 실험적 시도, 혁신적 곡의 구성, 새로운 사운드의 맛보기다.
'아무 말 안 해도'는 트레이드마크인 퍼즈톤 사운드와 난폭한 코러스, 무심한 김창완의 보컬이 한데 뒤엉킨 곡이다. 9분짜리 '아무도 없는 밤에'는 기교보다는 매력적인 멜로디 중심의 블루스 곡이다. 그러나 이 앨범의 최고 가치는 역시 '그대는 이미 나'. 18분이 넘는 러닝 타임에 박자를 잘게 쪼게고 기타를 끈적하게 채색한 이 곡은 사이키델릭, 헤비메탈의 총가(寵歌)다. 귀신소리 같은 코러스에 불안하고 긴장감 넘치는 흐름. 기타와 베이스의 강력한 유니즌까지! 이건 우리나라 음악신의 장르를 넓힌 전례 없는 시도였다.
시대를 교류하는 훌륭한 앨범이다. 독특한 음악적 지평을 일궈냈고 그곳에 씨앗을 뿌려 후대 뮤지션이 자라날 자양분이 되었다. 요즘 세대들에게 산울림은 그저 얼마 전 리메이크 된 '너의 의미' 같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포크 가수로 인식되겠지만 그건 긴 그들의 음악사 중 일부분일 뿐이다. 원초적 사운드로 집약되는 초기 스타일의 마지막을 장식한 앨범. 40년이 지나도 독보적인 독특함은 한 장르의 원류(原流)가 되어 수많은 물줄기를 나누며 여전히 흐르고 있다.
-수록곡-
1. 내 마음 (내 마음은 황무지)

2. 아무 말 안 해도

3. 한 마리 새되어
4. 아무도 없는 밤에
5. 그대는 이미 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