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카이 노 오와리(SEKAI NO OWARI) 내한공연
작년 7월을 기억한다. < 밸리 록 페스티벌 >에서의 황홀했던 만남을. 그럼에도 마냥 행복하진 못했다. 꽤나 많은 가사와 선율을 꼭꼭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아낌없이 교감했음에도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었던 그 시간은, 훗날의 기대를 응축한 'RPG'라는 세글자의 연호와 함께 막을 내렸다. 그렇기에 이번 내한을 벼르고 있던 이들이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처 해갈되지 못한 갈증, 그 염원을 알아주듯 이르게도 내한이 결정되었고, 이에 화답하듯 격렬한 티켓팅이 펼쳐졌다. 이윽고 추가 공연 스케줄이 잡히며 일본 아티스트로는 이례적으로 이틀 연속 공연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게 된 그들. 바로 현실 속 판타지 세계를 구현하는 4인조 밴드 세카이 노 오와리의 내한 공연이 지난 18, 19일 양일간 용산 블루스퀘어에서 펼쳐졌다.
필자가 찾은 것은 마지막을 장식한 두 번째 공연. 다소 이른 시각에 도착했음에도, 공연장은 이미 굿즈를 사기위해 몰려든 팬들로 인산인해였다. 한 켠에서는 한국을 찾아준 데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준비한 이벤트를 홍보하며 열정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비와 눈이 섞여 내리는 다소 얄궂은 날씨였지만, '세카이 노 오와리'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모인 이들이었기에 추위와 기다림마저 즐거운 유희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자, 후텁지근한 열기가 확 느껴졌다. 실내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들의 가사와 음악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들로 위로를 받아온 이들이 내뿜는 열량이 기분 좋게 퍼져 있었던 덕분이 아닌가 싶다. 필자를 비롯한 팬들에게 있어 세카이 노 오와리라는 그룹은 단순히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닌, 삶의 오만가지 감정을 교환하는 친구들인 덕분이다. 그룹과 동명의 곡인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의 'The end of the world'가 반복되며 긴장감이 고조되는 사이, 'Welcome to the startlight parade'라는 목소리와 함께 본격적으로 콘서트의 막이 열렸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일본어 곡의 대향연
지산 공연 당시 가장 아쉬웠던 점이라면, 역시 '해외무대'임을 고려해 영어곡만으로 짜여졌던 세트리스트가 아니었나 싶다. 다행히도 그들은 이번만큼은 공연장을 찾은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스타트를 'スターライトパレード(Starlight parade)'로 끊은 그들은, 이어 'Death disco', '眠り姫(잠자는 공주)', 'スノーマジックファンタジー(Snow magic fantasy' 등 친숙한 히트곡을 쏟아내며 열광적인 반응과 함께 떼창을 유도했다.
특히 가장 리퀘스트가 많은 곡 중에 하나인 인디즈 시절의 대표곡 '幻の命(환상의 생명)'을 부를 때는 모든 이가 숨죽여 동작 하나하나 음 하나하나에 집중했으며, 'Hey ho'에서는 엄청난 합창소리를 통해 오히려 후카세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이가 그토록 듣기를 원했던 시그니쳐 곡 'RPG'에서는, 혼연일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블루스퀘어의 모든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 듯한 광경을 연출했다. 앵콜 전 마지막 곡이었던 'Dragon night' 역시 영어버전보다 한차원 더 높아진 리액션으로 밴드를 기쁘게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
세카오와식 EDM의 재발견
정규 2집 < Tree > 이후, 해외진출을 도모하며 시도했던 것이 바로 EDM과의 접목이었다. 아울 시티와의 합작을 통해 탄생한 'Tokyo'와 'Mr. Heartache'가 그 일환의 첫머리였으며, 작년 한국방문 시에도 'Monsoon night'과 'Roller skate' 등과 같은 유사한 기조의 곡을 선보인 바 있다. 기존의 지지층에겐 낯설게 여겨질 여지가 다분한 곡들이었지만, 공연장에서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Mr. Heartache'와 'Monsoon night', 그리고 처음으로 공개된 신곡 'One more night' 까지. 러닝타임 중 가장 '노는 분위기'를 이끌어 낸 것은 바로 '세카오와식 EDM'이 만드는 이 트라이앵글 편성이었다. 여기에 'Death disco'와 'Dragon night' 까지. 그들의 이미지를 뒤엎는 거대한 하나의 댄스플로어가 그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한국 팬들을 고려한 디테일한 배려
2012년 < 지산 록 페스티벌 > 내한 시 뒤에 플레이되는 영상의 가사를 모두 한국어로 번역해 온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역시 별도의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더빙해 오는 정성으로 현장에 있는 이들을 감동케 했다. 후카세의 시그니처 멘트와도 같은 '歌える?(우타에루?)'를 '노래 할 수 있어?'라고 한국어로 바꿔 질문해 주는가 하면, 관객을 향해 '대박'을 외치기도 하는 등 소통에 대한 노력이 중간중간 엿보였다. 현장을 찾아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트와이스의 'TT' 안무를 보여주고, 식당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도 섞어가며 리액션을 이끌어 낸 것도 세세한 부분을 신경썼던 덕분일 터. 물론 관객들의 일본어 듣기 능력은 이번에도 필자를 감탄하게 만들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연출이 아닌 노래 그 자체
페스티벌 출연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단독공연 관람이었는데, 솔직히 약간의 우려가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닛산 스타디움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 역대급의 물량을 쏟아부은 < Twilight City >에 비해 부족한 연출로 인해 감흥이 다소 줄어들지 않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첫 곡을 듣자마자 이르게도 그것이 기우임을 알아차렸다. 그들의 공연에서 메인이 되는 것은 조명과 특수효과로 장식된 시각적 효과가 아니라, 각자 자신이 처한 아픔과 상처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듬어주는 치기 어린 희망이 담긴 그들의 노래라는 사실을 국내 단독공연을 통해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곡이 바다를 건너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정말로 기쁘네요.” 사오리가 'RPG'를 들려주기 직전 해주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그만큼 진실한 메시지의 힘은 상상 이상의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 래드윔프스나 원 오크 록, 스파이에어와 같은 일본의 아티스트들이 잇달아 인기를 얻는 것은, 좀처럼 위로받지 못하는 내면의 것들에 대한 고찰이 그들을 통해 이뤄져서가 아닌가 싶다. 정서적 동기화를 통한 음악의 소중함,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임으로서 생겨나는 삶에 대한 의지. 한국팬들과의 소통에 각별히 노력했던 세카이 노 오와리의 공연은, 그야말로 상상으로만 존재하던 희망이 현실화되어 나타난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또 일상을 살아낼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