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웃은 건 아델이었다. 영국의 엔터테이너 제임스 코든(James Corden)의 사회로 진행된 제59회 그래미 시상식은 마지막까지 예측을 불허했다. < 25 >의 아델은 당초 비욘세와의 접전이 예상됐던 주요 부문을 포함, 후보로 지명된 5개 부문을 싹쓸이하며 5관왕에 올랐다. 놀라운 독주(獨走)였다. 전작 < 21 >로 2012년 54회 시상식의 (신인상을 제외한) 본상 3개를 모두 석권했던 그는, 이로써 그래미를 2회 '올 킬'한 유일한 인물이 되었다.
의외의 순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8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던 드레이크는 2개 부문 수상에 그쳤고, 역시 8개 부문에서 수상을 노린 카니예 웨스트와 리아나는 무관의 쓴맛을 봐야 했다. 반면, 생전에 그래미와 인연이 멀었던 데이비드 보위는 유작 < Blackstar >로 5개 부문을 휩쓸었고, 인디펜던트의 신성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 역시 3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물론 9개 부문 후보였던 비욘세의 부진도 뜻밖이었다. 이날 그의 트로피는 베스트 어번 컨템포러리 앨범상과 베스트 뮤직비디오 상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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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한 최신곡과 아티스트들의 이색 협업 등 다채롭게 구성한 공연 또한 볼거리였다. 특히 루프 스테이션을 이용한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 화려한 무대 장치, 연출로 승부를 본 케이티 페리와 스킵 말리의 'Chained to the rhythm'이 눈에 띄었다. 쌍둥이를 임신한 만삭의 비욘세는 'Love drought', 'Sandcastles' 무대에서 대규모 댄스 팀과 정교한 영상을 활용해 장관을 연출했다. 레이디 가가와 메탈리카가 함께한 'Moth into flame', 윌리엄 벨과 개리 클락 주니어의 'Born under a bad sign'은 그래미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 컬래버레이션이었다.
거장을 향한 트리뷰트도 이어졌다. 사회자 제임스 코든 외 여러 가수들이 객석의 닐 다이아몬드와 함께 그의 히트곡 'Sweet Caroline'을 열창했고, 데미 로바토 등 신세대 가수들은 영화 < 토요일 밤의 열기 > 40주년을 맞아 비지스에게 'Stayin' alive', 'How deep is your love' 등을 헌정했다. 밴드 더 타임(The Time)과 브루노 마스는 프린스를, 아델은 조지 마이클을 기리는 무대를 꾸며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2016년 음악계를 종합한 제59회 그래미 시상식, 그 본상 4개 부문의 수상 결과를 상세히 소개한다.
- Best New Artist -
대중성의 EDM도, 전통의 컨트리도 아니었다. 일생에 한 번 뿐인 신인상은 믹스테이프 만으로 뚝심을 발휘한 챈스 더 래퍼에게 돌아갔다.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쟁쟁한 후보 중에서도 특히 돋보인 음악적 완성도가 한몫을 했다. 가스펠, 일렉트로니카, R&B 등 다양한 장르를 특유의 래핑으로 유려하게 담아낸 < Coloring Book >이 그에게 트로피를 안겼다. 일련의 유통 과정을 거친 실물 음반이 아닌 온라인 스트리밍만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점도 특이사항. 이제는 레이블, 유통사 등 관례를 벗어나 '좋은 음악'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스타가 될 수 있음을 선포한, 새로운 힙합 스타의 탄생이자 쾌거! (정민재)
- Song of the Year -
가장 많이 사랑받은 'Hello'가 올해의 노래상을 품었다. 10주 연속 빌보드 1위라는 성과를 다른 이가 넘어서기엔 어려웠을 터. 고전적이고 단정한 곡 스타일까지 모범생을 좋아하는 그래미 심사위원의 취향과 맞아떨어졌다. 아델은 단단한 보컬로 자신의 입지를 철옹성처럼 지켜냈고, 변함없이 건재함을 알렸다. 'Rolling in the deep'으로 핵심 상을 휩쓸었던 2012년 이후 다시 이뤄낸 아델의 날! 범 대중적 가수는 그렇게 대기록을 세우며 이번 시상식 나들이에서도 두 손 가득 트로피를 가져갔다.
의상과 공연에서 빛났던 비욘세가 금빛 대열에 속하지 못한 건 아쉬운 부분이다. 'Formation'은 그가 불렀기에 더욱 당당하고 멋졌지만, 컨트리를 애착하는 화이트 중심 본부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곡이었다. 그래미는 여전히 사회성과 흑인음악에서 먼발치 떨어져 소극적으로 움츠리는 태도를 보여줬다. (정유나)
- Record of the Year -
사실 'Hello'는 팔릴 수밖에 없는 노래였다. 기성세대의 점잖은 취향에 정확히 부합하는 곡을 '아델'이 불렀으니 말이다. 그에 비해 'Formation'의 비정형성과 (몇몇 사람들에겐) 아니꼬운 텍스트는 폭넓은 대중을 사로잡기엔 부족하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에서 'Hello'와 'Formation'이 사랑받은 정도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물론 'Hello'의 완성도는 훌륭하다.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따라 부를 수 있는 팝적인 멜로디와 흠잡을 곳 없는 아델의 탁월한 가창, 효율적인 사운드의 운용 등, 진부한 구성의 곡을 다채롭게 꾸며냈다는 측면에선 수상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짐으로써 소수 사회를 옹호하고 변호한 'Formation'이 기득권자인 백인 혹은 기성세대를 자위해주는 곡에 영예를 빼앗겼다면, 이야말로 잘 팔리는 음악만을 추켜세우는 그래미의 한계가 아닐까.
작년에 이어 확실히, 흑인과 여성 사회에 대한 담론을 음악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이 나라스(NARAS) 어르신들의 입맛에 영 맞지 않는가 보다. 가장 권위 있는 음악축제인 그래미에서 소수는 또 한 번 무시당했다. 그렇다면 올해로 59살이 된 2017년의 그래미는, 과연 누구를 축하했고, 누구를 위한 축제였을까. (이택용)
- Album of the Year -
트럼프는 비욘세를 비욘시(Beyoncee)라고 잘못 발음했고 그래미는 아예 그의 이름을 호명조차 하지 않았다. 비욘세와 아델의 대결, 창과 방패의 싸움으로 불리던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마저 아델에게 돌아갔다. < Lemonade >로 비욘세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 때문에, 아델의 압승은 쇼킹하다. 그래머폰(Gramophone)을 받아 든 아델조차도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내게 올해의 앨범은 비욘세다. 나도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혔고, 실제 수상 소감에서도 비욘세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아델의 수상을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 견고한 고전의 가치는 그래미의 오랜 지향점이었고, 아델이 상을 싹쓸이한 것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첨예한 경쟁 구도 속에서 한 사람에게 상을 몰아준다는 것은 그래미의 성향과 색깔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올해도 그래미의 뒤에는 #정치적, #보수적, #인종차별적이라는 해시태그가 따라붙게 되었다. (김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