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우팅 하는 걸그룹 빗슈! 단연 올해의 아이돌입니다. 멤버 변동이 있어 이미 구작이 된 음반을 들고 오는 것이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올해의 펑크(Punk)로 놓칠 수 없는 작품입니다. 여기서의 펑크는 장르적 특성은 물론 애티튜드의 의미까지 모두 포괄한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만, 악기를 들지 않은 펑크 밴드가 슬로건.) 메인보컬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요. '아이나 디 엔드'의 (쇳소리에 가까운) 허스키한 음색과 시원한 가창력을 기반으로 팀은 'Brandnew idol SHiT'이라는 다소 험악한 뜻풀이에 걸맞은 악동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나의 무한 에너지 발산에 대비(對比)해, 팀의 캡틴(리더) 센토치히로 치치가 좀 더 대중감화력 있는 창법으로 중심을 잡아줌으로써 안정감도 확보했고요.
수록곡의 9할을 도맡은 작곡가 마츠쿠마 켄타의 공도 적지 않죠. 개러지 풍으로 꽉 채워져 역동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멜로디가 돋보입니다. 인디즈 1집 < Brand-new idol Shit >에서 가져와 다시 녹음한 'スパーク(Spark)'와 'BiSH-星が瞬く夜に(별이 반짝이는 밤에)', 'Monsters'까지 연속한 세 트랙의 퀄리티가 특히 준수하고, 신곡 가운데는 소년만화의 주제가 같은 인상을 주는 'Primitive'를 추천합니다. 분명 전형에서 벗어난 괴짜 폭발 콘셉트를 지향하면서도, 마니아 취향 일색이 아닌 일반에도 친근한 스타일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습니다. 본작 발매 후 8개월 만에 유수의 메이저 기획사 에이벡스와 손을 잡고 더 큰 무대에 입성한 빗슈. 이제는 부를 수 없는 '쿠소아이도루'의 이름에 영광을!
스쿠비 두(Scoobie Do) < Away > (2016.01.27)
시상식의 공로상 부문을 눈여겨본 적 있으신가요? 원 히트 원더의 반짝 스타가 아닌, 오랜 세월 한 분야에서 꾸준히 정진해온 이들이 트로피의 주인이 되곤 하죠. 지금 소개할 밴드의 근성도 만만치 않습니다. 숫자만 봐도 그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한 우물을 팠는지 알 수 있는데요. 20주년을 맞은 그룹의 메이저 정규 12집. 관록의 연주력을 자랑하는 스쿠비 두는 펑크(Funk) 현지화 밴드의 모범 사례로 꼽힐 만합니다.
긴 시간 동안 연구를 거쳐 골조를 튼튼히 한 끝에 이제는 장르에 통달한 듯 보입니다. 마치 브라스처럼 전방에서 음악을 '금빛'으로 잡아주는 기타 톤, 리듬 앤 블루스를 기반으로 지저분하지 않게 조직한 리듬, 때로는 블루지한 향취를 극대화하는 하모니카까지 자신 있게 치고 나오는데요. 스쿠비 두의 강점은 최상의 테크닉을 기반으로 한 자신감과 위트입니다. 움직임을 크게 하지 않은 채로도 실력 발휘를 기막히게 해낸다는 거죠. 적절한 때에 배치하는 리프 조각들은 재치 있고 감각적이며, 특히 자회사 '챔프 레코즈'의 이름을 빌린 'Live champ'에서는 객관적 체급의 높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자기 캐릭터를 확보했습니다. 그야말로 긍정의 에너지가 마구 뿜어져 나옵니다. 그래서 음악 잘하는 밴드임에도 접근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아카이 코엔(赤い公園) < 純情ランドセル(순정 란도셀) > (2016.03.23)
지난 두 장의 앨범을 '패치'해 최신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한 격입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기를 좀 더 고급스럽게 풀어냈는데요. < 猛烈リトミック(맹렬 리트미크) >(2014)에도 사용했던 실로폰을 개별 성부로도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라인을 붙이기도 하고('ボール(Ball)'), 펑크(funk)를 양념으로 화려한 선율을 선보였던 '108'은 신작에서 블랙뮤직의 미디움 템포 비트를 기반으로 한 'ショートホープ(Short hope)'로 진화해 훨씬 정돈된 양상을 보입니다.
턴마다 내밀 수 있는 패가 많은 팀입니다. 다채로운 스타일에 줄곧 착 달라붙는 보컬과 그를 받쳐주는 탁월한 연주력. 그들의 음악은 생동감이 넘치고, 단단하며, 밀도 있습니다. 모범 답안을 써내려가면서 줄곧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요. 벌써 세 번째 정규 앨범에 도달한 밴드는 지칠 새도 없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질주합니다. 감각은 싱싱하게, 표현은 성숙하게. 아카이 코엔은 그야말로 '잘하는' 밴드입니다.
퍼퓸(Perfume) < Cosmic Explorer > (2016.04.06)
이들의 초기 모습을 오랫동안 아껴왔던 팬이라면 아쉬운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팀의 고유한 이름보다 프로듀서 나카타 야스타카만을 부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금의 퍼퓸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순순히 뮤즈의 포지션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겠죠. 변화를 가장 맞춤으로 소화해내는 세 사람의 능력과 하모니는 관할 밖에서 스스로 발휘하는 무기입니다. 음악에서의 화음은 물론이고, 새로 주어진 콘셉트를 입는 방식, 안무의 창의성, 어떻게 해야 협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능적인 판단 능력과 융통성까지. 그런 건 누가 디렉팅 해준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닌, 멋진 천성이지요.
파동이 큰 스네어 드럼으로 무한의 공간감을 불어넣는 (앨범과) 동명의 곡 'Cosmic Explorer'는 하모니가 가장 깊이 녹아든 명곡입니다. 음향은 시원시원하게, 그리고 곡의 내용을 보강해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이뤘습니다. 따뜻한 소리를 캐치해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잘 살린 'Babyface'도 인상적이고요. 이 곡의 멜로디 일부는 언뜻 콜드플레이의 'Paradise'와도 닮아 있는데요. 이전보다 훨씬 큰 스케일을 지향한다는 뜻이겠죠. 소녀풍의 건조한 칩튠에서 시작해, 라이트한 EDM을 거쳐 마침내 아레나로 진화한 퍼퓸. 성장 스토리의 주인공이 또 한 걸음 전진하는 순간입니다.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열의의 일렉트로닉 장인과 영리한 싱어의 합작!
공기공단(空気公団) < W > (2016.07.06)
'힐링'이 범람하는 세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음악이 주는 위로는 여전히 각별하죠. 느린 사회에 대한 향수가 있는 이들에게 필청을 권합니다. 음반에는 편안한 정서와 인간미가 흐릅니다. 먼저 전통가요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선율에 어쿠스틱의 기타팝 편곡을 입혀, 마치 과거의 한 순간을 회상하듯 가슴 찡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곡의 구조도 단순해 예스럽고요. 후주를 채우는 악기들의 합은 서로를 배려하듯 침착하게 각자의 소리를 냅니다. 트레이드마크인 오르간 역시 제몫을 다했네요. 누구 하나 튀는 구석이 없이 참 친절하고, 친근합니다.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감상을 하다 보면 '쉬운 음악'에 대한 논쟁이 떠오릅니다. '힙'한 것이 권력으로 작용하고, 복잡함의 정도로 쉬이 예술성을 판단하는 흐름 안에서 대중 친화적 성격은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요. 물론 몰개성에의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무게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휘발의 위험도 높기 마련이니까요. 그럼에도 공기공단과 같은 밴드는 대단한 실험으로 자신을 부각하는 대신,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노래의 힘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에게는 '좋은 모티브 한 마디'를 보장받는 데도 전혀 어려움이 없으니, 과연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다난한 시대에 건네는 음악가의 다정한 손길. 이것이 공기공단의 모토이자 존재 의미입니다.
노이즈(Nowisee) < 掌の戦争(손바닥 전쟁) > (2016.08.10)
서로 대면하지 않아도 되고, 그걸 원하지도 않는 사회. 히키코모리와 니트족이 대세가 된 지금 '손바닥 전쟁'이라는 테마는 애써 가장할 필요도 없이 가까운,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입니다. 밴드 멤버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방침은 당면한 현실과 맞물려 설득력을 얻습니다. 음악과 함께 써내려가는 소설 '52Hz'도 어쩌면 픽션이 아닐지 모르죠. 우리에겐 방탄소년단의 'Whalien 52'로 알려진, 동족과 소통할 수 없는 주파수 대역을 가진 고래를 모티브로 삼은 것 자체도 현대적이고, 그것을 전달하는 매개체도 21세기 맞춤형입니다. 용감하게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음원, 영상, 소설, 때로는 만화까지 다매체 콘텐츠를 발표해 대중에의 새로운 접근법을 열었습니다. 동시대 감상자를 고려한 방식. 무거운 주제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자세라고 할 수 있겠네요.
반면 음악은 철저하게 기성 문법을 취합니다. 전파 세상을 그리면서 리얼 악기를, 그것도 가장 전형적인 밴드 구성을 쓰고 있네요. 또한 하나의 곡 안에서 기승전결의 플롯을 제시할 줄도 알고요. 물러나야 할 땐 깔끔하게 물러나고, 몰아붙일 땐 지독할 정도로 맹렬하게 감정을 끌고 나가는 '행동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Platanas'에서 그런 끈기가 유독 드러나네요. 아무리 대단한 착상이라도 그것을 5분 규모로 이어갈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겠죠. 탄탄한 기본기로 신뢰도가 높아집니다. 2010년대의 IT 행성에서만 탄생할 수 있는 작품, 그와 동시에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듣기 좋을 수작입니다.
키린지(Kirinji) < ネオ(Neo) > (2016.08.03)
6인의 악단은 이제 'キリンジ'(키린지 1기)'와는 또다른 'Kirinji'만의 이름을 찾는 법을 깨달은 듯합니다. 3년 만의 컴백에 임하는 키린지의 시선은 점점 더 단란하고 낮은 곳을 향해 갑니다. 사실 멤버 변동이 있은 후에 냈던 첫 작품은 결성 자체에 의의가 더 컸고, 변화한 색깔을 본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이제야 찾아온 것인데요. 기존의 재지한 감성을 은은하게 간직한 채 좀 더 편곡을 간소화했습니다. 'Mr. BOOGIEMAN'이 대표적일 텐데요. 마치 풍으로 경쾌하게 진행하면서도 군더더기가 없어 깔끔한 맛을 냅니다. 트랙을 넘겨보면 때로는 클래식에 가까울 때도 있고, 감정선을 건드리는 부분도 늘어났고요. 인원이 늘어 분명 이전보다 풍부한 시도가 가능해진 환경에서 더욱 미니멀한 터치를 선보이는 것을 혹자는 안일하게 볼 수도 있겠으나, 완숙에 이른 이들에게는 이보다 꼭 맞는 옷이 없겠지요. 아이러니하게도 피아노와 여성 보컬,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로만으로 이루어진 'あの娘のバスデイ'(그 여인의 생일)이 앨범의 최고의 순간으로 꼽을 만합니다. 적은 도구로 이룬 성취가 썩 근사합니다.
콧코(Cocco) < Adan Ballet > (2016.08.24)
'생존자'를 주요 키워드로 내세운 콧코의 신작에는 휴식으로 분한 죽음의 정서가 독처럼 서려 있습니다. 제목만 보자면 (실제 타이틀이기도 한) '有終の美'(유종의 미)가 가장 중요한 트랙이겠지만, 콧코의 정체성과 가장 근거리에 닿아 있는 곡은 단연 'Rosheen'입니다. 무용수를 꿈꿨던 그에게 하바네라 리듬(오페라 < 카르멘 >에 쓰인 춤곡 음형을 기억해보세요)을 도입한 이 곡은 그야말로 찰떡궁합! 특히 현을 뜯는 피치카토 기법과 반대로 현을 켜는 아르코 기법을 동시에 연주한 도입부가 굉장한 흡인력을 발휘합니다. 보컬 역시 기악으로 쓰이는 듯 바이올린, 기타, 베이스 등 다수의 스트링 악기와 유려하게 어울리고 있지요. 'Sleeping beauty'와 '卯の花腐し'(장마)의 드라마틱한 코러스는 또 어떤가요. 겉으로 보면 평범한 팝록을 구현한 듯 보이는 노래가 아티스트 고유의 캐릭터를 입음으로써 우아함을 자아냅니다. 울림을 많이 걷어낸 것이 때로는 너무 건조한 게 아닐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작품 전체에 드리워진 고독의 기운과 절박함으로써 다시 한 번 당위성을 획득합니다. 유일무이, 개성의 싱어송라이터가 또 한 번 독특한 수작을 낳았습니다.
미오 야마자키(ミオヤマザキ) < anti-these > (2016.11.02)
앨범 커버를 처음 맞닥뜨린 순간 '넥스트 시이나 링고'라는 말이 자막처럼 머리를 스쳤던 기억이 나네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우선 깨끗하고 귀여운 목소리의 보컬이 의외로 감상자를 맞이해줬습니다. 다수의 곡에서 내레이션과 더불어 아예 캐릭터가 대사를 읊는 것 같은 구간을 캐치할 수 있는데요. 성우가 만든 음반이나 보컬로이드 프로그램을 이용한 창작곡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작법이죠. 'Hのすゝめ'(H의 진행)'에는 유명 애니메이션 < 바케모노가타리 >의 오프닝 도입부로 익숙한 “세~노!”까지 등장합니다. 음악 자체를 보면 재패니메이션에 친숙한 리스너가 가볍게 듣기에 좋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미오 야마자키만의 개성은 뭘까요? 답은 앨범 타이틀인 '안티-테제'에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정립에 반(反)한다는 의미의 '반정립'이죠. 앞서 언급했던 'Hのすゝめ'(H의 진행)을 한 번 더 가져오겠습니다. 아일랜드 풍 바이올린이 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요. 알고 보니 가사가 엉큼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른 수록곡을 살펴봐도 공통적인 맥락의 가사가 몇몇 눈에 띕니다. '사랑하기에 죽음을 바란다'는 이율배반의 내용도 보이고요. 주로 명랑쾌활한 음악적 성격에 발칙한 성적 메타포를 부여하는 방식인데요. 그렇다면 음반을 관통하는 '안티-테제'라는 말에 모순, 역설, 위악, 이런 해석을 붙이는 것도 과하지 않겠죠. 또한 그 바탕에 애증이라는 양가감정이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작품의 베이스이자 흥미 유발 지점입니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 Exist! > (2016.11.09)
청명한 건반 소리가 들립니다. 밝은 분위기의 피아노 록 음반일까? 생각하는 순간, 바로 다음 곡에서 인상이 확 바뀝니다. 디스토션을 잔뜩 걸어 무겁게 째진 기타의 질주. 좀 더 기다려보죠. 이번엔 드림팝 부류의 몽롱한 신시사이저 스트링이 흘러나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것.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방향성. 영미권에서 핫했던 밴드 The 1975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한 앨범 안에서 연달아 장르의 변화를 시도하는 데는 분명 리스크가 있을 테죠. 밴드는 이를 뛰어난 센스와 재능으로 훌륭하게 방어합니다. 트랙 단위로 즉각 달라지는 기타 톤은 그들이 선택한 편곡 스타일에 맞춰 최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스트링의 두께도 섬세하게 조절했습니다.
설계의 철저함은 보컬에도 적용됩니다. 'Swan'에서는 오토튠을 이용해 소리를 왜곡, 차가운 이미지를 조성했고, 반대로 'New wall'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구성에서는 어떤 효과도 주지 않은 그대로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노래 대신 쫀쫀한 래핑을 구사하는 곡 'Kaiju'도 있고요. 자신들의 음악성을 발휘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패기와 넘치는 아이디어, 그러한 번뜩이는 감각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해내는 끈기가 알렉산드로스의 특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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